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631)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632화(621/668)
“…….”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틈만 나면 비난하고 빈정거리던 사이가 맞는 걸까.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친해지는 거지.”
“뭘 당연한 걸 물어? 둘이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친해진 거지.”
“그럼, 그럼. 우리 그래도 원래 좀 친했어? 정부에서 우리 사이 갈라놓은 거지.”
“앙금이나 오해는 최대한 풀어진 모양이군.”
“밤 동안 누가 열심히 풀어준 덕분에.”
“내가 풀어준 건 그게 아니라-”
쿡.
두 여자가 동시에 발끝으로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더럽게 아프네.”
“방금 마력으로 막았으면서 무슨 소리야?”
“S+급들이 조인트 까는 걸 그럼 마력으로 막아야지.”
“다른 사람들 보면 어쩌려고?”
“여기 다른 사람들 없으니까 괜찮다.”
나는 케이블카 밖을 가리켰다.
우리의 앞뒤로 움직이는 케이블카에는 사람이 없었고, 그나마 맞은 편에 우리의 반대편에서 내려가는 케이블카에는-
덜커덩, 덜커덩.
“와….”
“멋지네.”
케이블카는, 겉에 달린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설희야. 방금 봤지?”
“응. 봤어. 굉장하네….”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쯧.”
“응?”
“무슨 소리야?”
두 여자가 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린다.
“당신, 못 봤어?”
“여기 있는 문구라면 봤는데.”
나는 케이블카 내부에 박혀있는 안내문을 가리켰다.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마시오.”
“위험하지 않으면 괜찮다는 거잖아.”
“그래. 그거 일반인들 대상으로 하는 말인걸.”
“…이능력자였나?”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뒤로 한참 내려갔고, 두 여자의 시선을 눈치챈 건지 잠시 흔들거림은 멈췄지만….
“아.”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만, 보고 말았다.
“이탈리아 A급 부부였나?”
“응. 아마 월드컵 출전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금강산 정기 받아 가면서 마력 늘리려고 하는 거지. 음, 좋은 생각이긴 해.”
금강산을 찾는 사람들은 많다.
북한 멸망 이후 개방된 자연경관을 보러 다니는 관광객들도 있지만, 한국인 이외에 외국인들이 더 많이 드나들기도 한다.
“저 사람들, 분명 금강산에서 산삼 찾으러 다녔을걸.”
“아니면 목청이나 석청 같은 거. 그거 먹고 지금 돌아가는 길에 저러는 걸까?”
“……뭐, 금강산에는 아무래도 소백산맥 쪽보다는 산삼 같은 게 더 많아질 테니.”
한반도에서 자라는 약초를 노리는 건 한국인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더 많이 찾는다.
마치 무협지에서 영약이니 영초니 인형설삼이니 하는 그런 것처럼, 외국인들은 한반도에서 나오는 온갖 약초를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3대 진미 중 하나인 트러플의 자리에 지리산에서 자란 송이버섯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세상은 여러모로 다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전부 금강산을 비롯해 이 지역을 탐험하는 이능력자들, 특히 월드컵을 앞두고 숙소를 정한 다음 전국을 누비는 이능력자들의 목표가 된다.
조금 전에 저기 케이블카에서 버섯의 힘인지 아니면 산삼의 힘인지, 열심히 케이블카를 흔들며 태극기가 펄럭거리게 하던 이탈리아인 A급 부부처럼.
“저러다가 혹시 월드컵 예선전 첫 경기에서 ‘각성’하는 거 아닐까 몰라.”
“S급으로? 그럴 가능성도 있겠다. 금강산 송이버섯 먹고 S급 되었다고 막 그러고.”
“보통은 그러면 산삼이지만….”
아무래도.
“좋은 거 먹는 걸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애초에 단순 여행으로 온 건 아니지만, 마침 딱 움직이기 좋은 때에 나타났다.
“둘은 쉬고 있어. 금방 다녀오지.”
드르르륵.
스쳐 지나가는 케이블카의 밧줄 위.
마치 줄타기하듯, 밧줄을 따라 버선발로 내려가는 백의의 남자가 있었다.
“와….”
묘기처럼 밧줄을 달려 내려가는 그를 보며, 백설희는 케이블카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렇게 높은데.”
“…….”
“지은아. 왜?”
“아, 아니. 그냥.”
성지은은 백설희에게 최대한 달라붙으며 겸연쩍게 웃었다.
“…….”
성지은의 명예를 위해.
나는 그녀가 비행기는 물론이거니와 헬기나 그런 것도 타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않으리라.
S+급 각성 이능력자라고 해도, 이능력으로 인한 요소기는 하지만, 태생부터 가지고 있던 고소공포증(?)은 참을 수 없다.
‘S급인데도.’
강한 이능력에는 강한 대가가 따르는 법.
63빌딩의 꼭대기에 한 발로 선 채 가만히 내려다보는 건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쉽게 하지만, 땅에서 떠오르는 호버크래프트는 무서워서 못 타는 게 성지은이다.
발아래에 뭔가 디디는 게 있어야만 안정감을 가지는 여자.
지금 이 케이블카의 위는 허공에 달린 줄 하나뿐.
[다녀오지.]나는 영체화로 케이블카에서 나온 뒤, 마력을 일으켜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장 케이블카의 전선을 따라 거꾸로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꺄아아아악ㅡㅡㅡ!”
찰칵, 찰칵, 찰칵!
흔들리는 케이블카 안에서 들리는 비명과 셔터음 소리.
[지금, 뭐하는 거지?]“…오, 선비탈 아닌가. 공교롭게도 나도 선비탈인데. 별건 아니고, 산림자원을 약탈한 자의 실체를 찍는 걸세.”
하얀 도포를 흩날리는 갈색 선비탈의 남자는 다소 투박한 DSLR 카메라를 든 채, 아래를 가리켰다.
“금강산 목청을 훔친 것도 모자라, 그걸 가지고 부부생활에 써먹는다니. 이 얼마나 괘씸한 자들이란 말인가?”
[…….]“벌들이 수년 동안 나무 속에서 모아둔 목청꿀을 신고도 없이 챙긴 것도 모자라, 그걸 가지고 막 이상한 곳에 바르고 빨아먹고! 그것도 케이블카에서!”
정체불명의 선비탈은 어떻게든 몸을 가리고 있는 두 부부를 손으로 가리키며 씩씩거렸다.
“외국인이면서!”
[한국인은 되고?]“당연하지!”
[전형적인….]나는 무기를 꺼냈다.
[활빈당의 논리군.]한국 땅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한국인의 것.
자원민족주의를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국가적이면서도 거시적으로 봐야 하는 문제다.
한 집단이나 개인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
그게 하나만 얻어도 수천, 아니 억 단위로 올라갈 수 있는 자원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물며 개인의 땅이 아니라 국가의 땅, 사유지도 아닌 곳에서 자라는 것이라면 더더욱.
“자네, 이것 한번 보시게.”
활빈당의 선비탈은 아래로 손을 뻗으며 마력을 일으켰다.
케이블카 안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직사각형 통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르며, 선비탈의 손바닥 위에 올라갔다.
그 안에는 나무 안에서 얻은 듯, 나무껍질 조각이 묻어있는 벌집이 들어있었다.
“금강산 목청! 38선 남쪽에서는 찾기 힘든 십수 년도 더 된 목청 같군.”
[벌집이 그 정도로 오래 가나?]“쯧쯧. 이 땅의 정기와 이 땅의 기운을 받고,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 자란 토종 꿀벌의 목청일세. 수 세대에 걸쳐 만들어진 벌집이라는 거지!”
선비탈은 통을 가볍게 손으로 튕기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조선시대였다면 이건 분명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되고도 남을 그런 물건이야. 이 목청 하나만으로 고을에서 공납으로 낼 세금을 한 해 대신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가치!”
금전적으로 굉장히 엄청난 물건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냥 보이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왜냐하면 저건 이능력적으로도 유의미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니까.
광물에 환의 의지가 깃들어 마나골드가 만들어지듯.
이 땅에 자라는 들풀, 꽃, 나무에도 환의 의지가 깃들어 마나가 충만해진다.
그리고 그 꽃의 정수를 모아 꿀로 정제하여 만들어내는 것 또한, 환의 의지가 담겨있는 물건.
즉, 마나허니다.
“이 얼마나 정순하고 고결한 색깔인가? 이걸 먹으면 분명 마력이 늘어나고, 어쩌면 각성할지도 모르지. 매일같이 꿀을 탐하게 되는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이 안에 담긴 마나는 정순하지.”
[마나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당연하지. 그러니까 이 코쟁이들이 멋대로 채취하여 여기에서 몸에 바르고 핥아먹고 그러는 거 아니겠나.”
선비탈은 자신이 올라탄 케이블카에 삿대질하며 으르렁거렸다.
“어딜 감히 토종 자원을 넘본단 말인가. 이탈리안은 저기 가서 고르곤졸라 피자 구워낸 다음 유럽 꿀이나 듬뿍 찍어 먹으라고. 남의 나라 자원을 축내지 말고.”
[그쪽의 논리가 어떻든, 이렇게 함부로 습격해도 되는 건가?]“그럼? 언제 경찰에 신고하고, 또 언제 협회를 부른단 말이지? A급 이능력자 둘이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데. 나는 애초에 그대가 왜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어.”
선비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네, 한국인이 아닌 건가? 선비탈의 모습을 한 외국인인가? 요즘은 코쟁이들도 한국어가 능숙해서 원.”
[한국인이지만, 동시에 지구인이기도 하지.]“……농담 따먹기는 좋아하지 않네만.”
[이능력자라는 걸 감안하면 25살도 되지 않은 남자가 노인네 말투 하는 것도 안 좋아하는 편이긴 해.]“…이 자식.”
가면이 벗겨지려고 한다.
실제 가면은 그대로 있기는 하지만, 가면 안쪽의 표정이 분명 일그러졌을 것이다.
“너는 뭐하는 놈이냐?”
[지나가던 선비다.]“뭐? 하하, 선비탈을 썼다고 해서 다 선비는 아니지. 진짜 선비라면 여기, 이 코쟁이 토종꿀 도둑들을 옹호할 게 아니라 같이 패야지.”
[선비탈을 썼다고 해서 하는 짓이 ‘씹선비’라면, 나는 차라리 선비탈을 버리겠다.]“……뭐?”
가면에 금이 갔다.
“나보고 지금, 씹선비라고?”
[세상에서 제일 골치 아픈 부류의 인간들이 젊은 꼰대지. 나이는 어린것들이 자기가 남들보다 더 깨어있다고 생각하고 떠드는 것들.]시간을 버는 중이다.
활빈선비탈의 멘탈을 긁으며, 동시에 이탈리안 부부가 몸에 묻어있던 꿀을 적당히 정리하고 옷을 챙겨입을 때까지 나는 시간을 버는 중이다.
…꿀을 닦을만한 적절한 수단이 하나뿐이라, 옷을 입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리고 있기도 하다.
[네가 선비질을 하려면 꿀을 훔친 걸 지적할 게 아니라, 케이블카를 흔드는 위험한 짓을 지적하는 게 정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