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659)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660화(648/668)
“나는 남들보다 더 늙고 싶지 않아.”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특히 여자라면 더 민감할 것이다.
남들보다 더 빠른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
‘불로(不老)’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시간 동안 뇌가 늙는 기분이 들게 된다면 마음도 늙기 마련.
그 누구도 늙는 걸 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배워는 보고 싶은데.”
“배우는 건 좋은데, 사용할 때마다 배속에 익숙해지면 그만큼 먹는 시간이 늘어난다?”
“뭐?”
“너 예전에 두억시니 잡을 때 시간가속 약간 이해했잖아. 그거 나 같은 단계에 이르면, 그 때는 진짜로 그만큼 더 늙는 거야. 더 빠르게. 왜냐하면 숙달될수록 더 많은 시간이 배속으로 걸리는 법이거든. 계속 2배속으로 감긴다고 생각해.”
“……막 1024배 더 빨리 움직이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2048배만큼 더 나이를 먹는 거야?”
“그런 셈이지.”
설령 엄청난 이능력이라고 해도, 그 부작용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면.
“저기, 도 과장?”
“응.”
“그러면 당신, 이론적으로는 막 남들보다 1만배의 시간을 더 빨리 살아갈 수도 있겠네?”
“그렇지. 그러다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의 세계에 빠지게 될 수도 있는 거고.”
시간가속의 부작용은 여러 콘텐츠 속에 이미 예로 많이 나와있다.
가령, 심장을 찌르는 칼이 고작 3초만 들어갔다 나왔는데 그 시간을 수 년에 걸쳐서 느껴야 한다거나.
가령, 영원한 초가속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어 초가속을 인지하는 자들만이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게 된다거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나는 수십 수백 년에 걸쳐서 지켜보고 있는데, 그 사람은 나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1초만 슬쩍 쳐다볼 정도로 시간의 괴리감이 멀어질 수 있지.”
“그, 그러면 그 이능력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거 아녜요?”
“그래서 함부로 안 썼잖아. 아, 그런데 왜 S급 협력자들 상대로 썼냐고? 적당히 ‘쿨’이 찼거든.”
두억시니를 잡고 제법 오랫동안 사용을 하지 않았으니, 시간가속에 관한 감각도 많이 무뎌져있었다.
“적당히 내가 이용하기 적당한 속도로 맞춰서 빨라질 수 있었으니, 문제 없어. 술이랑 비슷한 거야.”
“적당적당이네.”
“적당하다는 말 만큼 가장 말하기 쉬운 단어가 없지.”
뭐든지 적당하게.
그리고 상황에 맞추어.
“적당히 대충 이렇게 다섯 명이 같이 있는 사진만 찍어도 그래. 지금 이 장면이 누가 결사 간부들의 회합이라고 생각하겠어?”
나는 결사워치를 통해 찍은 우리의 사진을 마력 화상으로 꺼내들었다.
“애국명장이랑 S+급 이능력자, 아메리카의 네 라이더가 이렇게 노천탕에 들어와서 같이 몸을 담그고 있는데.”
그렇다.
현재, 우리는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다.
성지은도, 천주연도, 현세린도, 그리고 윤혜라미르도.
나도.
적당히 외부에 편집되어 나가는 이미지에는 당연히 많은 이들이 놀라지 않도록 나름 ‘수건을 걸친 모습’으로 나가겠지만, 그건 나중에 적당히 알리바이 사진을 찍고 난 뒤의 일.
“윤혜라미르가 그러더라. 네 명이서 메이드복 세트로 맞춘 다음, 정장 도지환 옆에 같이 있는 사진을 찍어보자고.”
“혜라가 할 부탁은 아닌 것 같은데.”
“언니. 저 미르인데요.”
“알아. 혹시 혜라가 그런 취향인가 싶어서 물어본 거야.”
다행히 윤혜라는 레드 라이더 연기를 해야 하는 이의 뒤틀린 소원으로 오해를 사는 일은 없었다.
“그 사진 찍고 나면 바로 개막식 가야하는데, 언제 떡밥 굴릴려고? 예선전 열리는 동안?”
“떡밥이야 어차피 시간 EX+급인 비능력자들이 알아서 굴려주게 되어있어.”
“시간 EX+급…?”
“다른 단어로는 시간 빌 게이츠라고도 하더군.”
“앗.”
대중적인 떡밥이야 잠시 타오르고 끝나더라도, 장작은 24시간 내내 타오르리라.
“그들을 이용해서 대외적으로 시선을 계속 애국명장의 일에 맞추는 동안, 우리는 다른 쪽으로 움직여야지. 애국명장의 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내가 나서면 되겠어?”
현세린이 눈을 반짝였다.
“아니, 현펜릴이 나서야 할 때가 온 거야?”
“현펜릴은 활약했으니까, 이쪽은 어때? 우리도 좀 부캐 만들어보고 싶은데.”
“…그냥 넷 다 부캐로 나서면 되는 거 아니야?”
현세린이 눈치를 챈 것처럼, 다른 둘도 은근슬쩍 의사를 내비쳤다.
“윤혜라미르는?”
“음…. 저는 백업…같은 느낌으로? 악마가 나타나면 대응할게요. 혜라 언니가 아니라, 백금태양으로.”
“그것도 좋지. 아무리 월드컵이라고 해도, 악마 될 놈들은 악마가 되는 법이거든.”
아내를 위해 도둑맞은 벌꿀을 되찾겠다고도 악마가 되는 세상이다.
“예선에서 떨어져서 악마가 되는 놈들, 분명 한두 명은 있을 걸. 아니면….”
“나라에서 보내준 특명을 이루어내지 못해서 악마가 된다거나.”
“한국에 있는 빌런에게 습격을 당해서, 살아남기 위해 악마가 된다거나.”
“…해그늘에 떼인 돈을 찾으러 왔다가, 그 돈 다 공중분해 되었다는 걸 알고 빡쳐서 악마가 된다거나.”
악마가 되는 요인은 정말 다양하다.
“합일을 하든 부캐로 나오든 그건 분명 고맙지만, 이미 너희들은 본캐를 꺼내서 공식석상에서 계속 움직여야 하잖아. 마음만 받도록 하지.”
그리고 그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현재 결사-히어로로 공개적으로 나서야 할 ‘라이더’들을 제외한 다른 간부의 역할.
“지금은 도깨비가 전국적으로 나서서 처리할 때지. 아쉽게도 너희들이 부캐로 나설 때는 아니야.”
“그건 조금 아쉽네. 그런데 도 과장 당신도 부캐 여러 개 동시에 꺼내야 하는 거 아니야?”
“맞아요. ‘도블린’도 있잖아요.”
윤혜라미르의 말대로, 나는 빌런과 악마를 쓰러뜨리는 동안 또다른 부캐를 꺼내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도깨비나 도지라이더가 아닌 또 다른 페르소나를 꺼내야 한다.
“그렇긴 하지.”
도블린.
여성 4인조 걸그룹처럼 느껴지는 S+급 파티에 유일하게 끼어있는 한 명의 ‘남자 S+급’ 이능력자.
알려진 것이라고는 공식 콜 사인이 ‘Doblin’이라는, 고블린(Goblin)에서 앞의 G가 D로 바뀐 것 이외에는 알려진 게 없는 존재.
“개막식 퍼레이드에는 참가해야 해요. 이능력자가 감기 걸려서 못 나왔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아메리카의 많은 이들도 그렇지만, 전 세계 다른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후보 마감 ’10분 전’에 히어로 등록과 월드컵 출전 등록을 마친 존재가 바로 도블린이다.
S+급으로.
“윤혜라미르야. 히어로 위키에 등록된 도블린의 자료, 혹시 알고 있어?”
“음…. S+급, 남자. 끝인데요?”
“그래. 그리고 너희들의 걱정은 그거지? 내가 주작범들을 잡으러다니면서 나오는 모습이, 혹시 도블린이랑 비슷할 것 같아서.”
“응.”
“딱히 다치거나 그런 걱정은 크게 안 하지만….”
“도블린은 아예 다른 형태의 존재여야 한다며. 도깨비를 연상케 한다는.”
“그래. 그렇긴 한데….”
나는 모두에게 화상 스크린 하나를 띄웠다.
“아무래도 지금 선비탈이 그 포지션을 가져간 덕분에, 내가 조금 여유롭게 부캐를 다른 포지션으로 잡아가도 될 것 같거든?”
“……흐음?”
선비탈이 도깨비다.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꾸준글로 올리고 있는 떡밥이고,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다.
해그늘을 물리친 건 도깨비고, 도깨비가 정의로운 행동을 하기 위해 도깨비 가면을 버리고 선비탈의 가면을 썼다고 하더라.
“이왕 이능력을 여러 가지로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써봐야지.”
모든 것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면 ‘그것도 전부 나다’라고 말은 하겠지만, 그 전까지 사람들 복잡하게 만들어서 머리카락 다 빠지게 해야 하지 않겠어?”
결사가 지배할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그래야 우리가 개발한 탈모약을 많이 사줄 거 아니야.”
이능력과 마력, 그리고 결사가 각고로 연구한 끝에 개발에 성공한 탈모치료제의 무궁무진한 판매를 위하여.
“변신.”
나는 도블린의 외형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보였다.
“다들 잊어버렸을 거야. 내가 이런 형태로도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어우, 씹….”
성지은이 코피를 터뜨렸다.
개막식, 21시간 전.
“어우, 날씨 추워.”
부산 해운대 공원 관리인이자 D급 이능력자, 김광현은 해운대에 높게 첨탑처럼 건설된 관리등대에서 몸서리를 쳤다.
“히터도 의미 없으니…. 어휴, 옷을 껴입어도 춥네.”
태극워치에 나오는 바깥 기온은 영상 12도였으나, 관리실 안에서 잠깐만 숨을 뱉어도 입김이 흘러나왔다.
“진짜 스노우화이트 너무하네. 올림픽이 무슨 동계 올림픽도 아니고. 으으….”
“선배. 조금만 참아요. 앞으로 3시간만 버티면 돼요.”
같은 이능력자이자 관리요원 후배, 박민영은 따뜻한 캔커피를 김광현에게 건넸다.
“3시간 뒤에 뒷 타임 애들 오니까, 걔들 올 때까지만 버티죠.”
“으으, 이러다가 둘 중에 한 명 얼어죽는 거 아닐지 몰라.”
“마음을 착하게 먹으면 된다고 했어요.”
“뭐야, 내가 지금 나쁜 마음 먹어서 스노우화이트의 얼음고성에 지금 한기를 느끼고 있다는 거야?”
“그럼 아니에요?”
박민영은 피식 입꼬리를 비틀며 캔커피를 뻗었고, 김광현은 캔커피의 끝을 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들으면 내가 너 뭐 어떻게 하는 줄 알겠다? 응?”
“아니었어요? 끝나고 같이 술 한 잔 하자면서요.”
“그거야 날씨도 춥고, 몸 따뜻하게 데우기에는 술만큼 좋은 게 없어서 그렇지. 야, 지금 내가 아끼는 후배 상대로 막 어떻게 해볼려고 지금 술 마시자고 하는 줄 알아?”
“양심에 손을 얹고.”
“자.”
김광현은 오른손을 자신의 심장에 올렸다.
“나 김광현은 약 19%의 사심으로 박민영 양에게 술을 권했습니다. 됐냐?”
“…흐응. 그래도 히어로 선서는 잊지 않았네요?”
“그럼. 그래서, 갈 거냐?”
“으음…답변은 세 시간 뒤에 드리면-”
“잠깐.”
김광현이 감시 카메라를 가리켰다.
“저거, 방금 뭐 지나가지 않았어?”
“뭐가요?”
“여기. 영상 30초 전으로 돌려봐. 배속 느리게.”
진지한 김광현의 말에 박민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CCTV 영상을 되돌렸다.
그리고-
파지직!
관리실의 전기가 나갔다.
모든 카메라가 검게 물들고, 내부에 있는 빛은 두 사람의 손목에 채워진 태극워치밖에 없었다.
“…….”
두 사람이 동시에 손목에 손을 올린 순간.
콰ㅡㅡㅡㅡ앙!!
폭음이 울렸다.
관리실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충격이 강했고, 두 사람은 동시에 관리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 저거 설마…?!”
“큭, 역시…! 아까 날아온 거, 이능력자였어!”
두 사람의 앞에는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노란색과 보라색이 서로 빠르게 반짝이며, 섬광이 되어 서로를 향해 강하게 부딪쳤다.
“박민영! 가서 협회에 긴급지원 요청을! 나는 저들을 말리러 가겠어!”
“선배! 미쳤어요?! 저 사람들, 분명 S급이라고요!”
“나는 대한민국 히어로 협회 요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