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8)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8화(9/668)
빌런으로 살면 일단 집은 구매하지 못한다.
아무리 집을 예쁘게 꾸며도 꼬리가 밟히면 집이 파괴되기 십상이니까.
그래서 빌런들은 그 누구도 함부로 다가오지 못할 천혜의 요새를 만들거나, 이동식 거처를 마련하는 게 보통이다.
아니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바탕으로 장기숙박으로 호텔에서 머무르거나.
돈지랄처럼 느껴지지만, 임시 거처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냥 월세로 사는 게 낫다.
특히 이 세계의 부산이라면.
‘현실 물가의 5배인데, 평생 살 것도 아니고 누가 여기서 집을 사고 싶겠어.’
물가가 비싸도 너무 비싸다.
이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역시 ‘마나’ 때문이다.
이능력자에게 있어 동해 쪽 도시는 마나를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곳이니까.
한국 사람들도 그렇지만 저기 해외에서도 이능력자들이 부산에 돈이 얼마가 되든 거처를 구하고 마나를 쌓고 있기에, 부산은 어딜 가도 집세가 비싸다.
‘그래도 부산이니까 이 정도지, 저기 위로 올라가면 끝장이야. 정말.’
저기 북쪽으로 갈수록, ‘세종섬’이라는 곳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 비싼 것이 함정.
세종섬과 직통으로 통하는 포항 같은 경우, 부산보다 더 물가가 비싸다.
부산은 수도라서 그나마 이해가 간다고 쳐도, 포항이 부산보다 더 비싸다?
이유는 하나.
단순히, ‘거리’와 ‘환경’ 때문에.
세종섬과 가장 가까운 도시가 포항이고, 포항에서 세종섬까지 약 150km를 동북쪽으로 북상하면 도착하는 곳이 세종섬이다.
‘울진이나 강릉 쪽으로 올라가면 거기는 풀빌라 일박에 300만원 받으니까, 부산이 제일 경제적이야.’
마나라는 것이 이 세계를 이렇게 만들었다.
이런 미친 물가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있으니, 파는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돈을 많이 받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론, 물가가 살인적이든 말든 나는 크게 관계 없다.
물가가 높아진 만큼, 내 보수 또한 높아졌으니까.
히어로는 공무원이라서 현실 월급처럼 받지만, 나는 프리랜서 빌런이라 결사가 망하지 않는 한 최소 월 5천만원 정도는 보수로 받는 입장이다.
결사가 망하면 안 된다.
내 밥줄이 끊기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결사를 망가뜨리는 제 1의 요소, ‘주인공’을 제거해야 한다.
“결국 나도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주인공을 죽여야 하는 운명인 건가.”
라노벨이든 판타지 소설이든 뭐든, 원작 속 엑스트라로 빙의하면 주인공을 대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주인공을 뒤에서 서포트하는 조력자가 되거나.
하나는 주인공을 뒤에서 칼로 찌르고 담근 다음 없애버리거나.
빌런인 나로서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주인공을 죽이는 것.
“미안하다, 주인공아.”
나는 저 멀리, 이제 아카데미 입학을 위해 해외에서 부산으로 오고 있을 주인공을 향해 애도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그리고 너, 변태잖아.”
국뽕 라노벨 주인공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는 ‘서비스씬’이라는 이유로 온갖 히로인들을 상대로 성희롱을 했다.
기숙사에 남녀가 같은 방에 배치되어 옷 갈아입는 중에 들어간다거나.
뭔가를 수색하던 와중에 캐비넷 안에 둘이서 들어가서 몸으로 부비적부비적 거린다거나.
여름합숙에서 수영복이 벗겨진 걸 눈으로 보게 된다거나.
빌런 도깨비의 습격 때문에 히로인과 동굴에 고립되어 서로 체온을 교환하며 추위를 버틴다거나.
온갖 성적 어필을 하는 이벤트들이 수도 없이 발생하는 게 주인공이다.
나는 이 주인공을 용서할 수 없다.
단순히 국뽕 라노벨의 주인공이라서?
그가 히로인들을 상대로 하렘을 차리기 때문?
그도 아니면 내가 앞으로 지낼 아카데미에서 히로인들을 비롯하여 S급 유망주들을 챙기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
전형적인 라노벨 소설 주인공 답게 출생의 비밀이 있고, 그게 상당한 권력자와 관련이 있고, 심지어 개인의 이능력 또한 세계구급, 유일신으로 강해질 수 있는 비결이어서?
전부 아니다.
나는 이미 놈에게 피해를 입었다.
빙의하기 전의 내가 아니라, 빙의하고 난 뒤의 내가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놈을 살려두면 세계는 파멸로 나아간다.
“운석 엔딩이라고….”
이 세계.
주인공이 유일신급의 힘을 가지는 순간, 멸망한다.
-모두, 이 세계와 함께 나와 죽어줘!
주인공은 신급의 능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손에 넣었으나, 장기 연재를 하지 못하는 작가가 하늘에서 메테오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지구는 멸망했다.
너무나도 불행스럽게도, 주인공에게는 저기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운석을 지구와 충돌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온갖 하렘을 펼쳐놓고 이제 행복한 일만 남아있을텐데 운석을 떨어뜨린 이유는 단 하나.
-완결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 새끼가 급완결을 냈기 때문이다.
개같은 놈.
그래서 리뷰로 쌍욕을 박았는데, 역시 급완결을 낸 양심없는 놈 답게 나를 강제로 이 세계에 빙의시켰다.
누가 그러더라.
주인공은 작가의 에고, 정신이 깃든 분신 같은 거라고.
즉, 이 세계에 있어 주인공은 곧 작가다.
그러니.
주인공을 죽여 나를 이 세계에 빙의시킨 작가를 죽이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렇게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다.
* * *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위장 신분이 필요하다.
다행히 내게는 대외적으로 ‘도지환’이라는 이름이 있다.
평범한 이름이지만, 내 본명은 아니고 이 세계에서 만들어진 가명이다.
작가 놈이 도깨비의 본명은 생각해두지 않은 건지 나의 이름은 ‘도창남’이라는 이름이었다.
아니, 아무리 악역 빌런이라도 그렇지.
마지막에 급완결 날림으로 모든 악의 근원을 받아들이고 개연성이고 나발이고 최종보스가 되었다고 해도 그렇지.
개명이 시급한 이름이었고, 나는 빙의한 뒤로 개명하여 새로운 이름으로 살기로 했다.
뭔가 도지환이라는 게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어감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총수가 직접 내게 붙여준 이름인 만큼 이대로 살기로 했다.
도지환.
23세.
실제 이름도 나이도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지금 이게 내 대외적인 신분이다.
이 신분으로 해야 하는 임무는 두 가지.
하나는 결사의 지시대로 히로인을 꼬드겨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문제로, 주인공을 죽이는 것.
이 두 임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 위장신분을 바탕으로 세종섬에 진입할 필요가 있다.
‘그냥 일반인으로는 결코 세종섬에 들어갈 수 없어.’
세종섬은 1급 군사경계 구역이다.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학생증’이 없으면 출입이 불가능하다.
출입구는 포항과 강릉, 그리고 울릉도 세 곳에서 이어지는 기나긴 다리 뿐.
-이 다리를 어떻게 만듭니까?!
-이능력자 있잖아!
-유치원생입니다!
-유치원 교사들 불러서 어떻게든 해봐!
이 다리도 이능력자의 도움을 받아 2005년 경에 건설된 것이고, 이전까지는 오직 배를 타고 다녀야 했었다.
신분증은 필수.
방문 목적도 수시로 확인.
미국 입국심사보다 더 까다로운 것이 세종섬 입도심사라고 하더라.
그런만큼 나는 대외적으로 확실한 신분이 필요했다.
세상 사람들이 도지환이라는 남자를 조사했을 때, 그 어떤 요인으로도 오해받지 않을 위장신분이.
그래서 선택했다.
“사서로 부탁드립니다.”
“…사서요?”
“예. 사서.”
나는 위장 신분을 만들어주는 전문 브로커, 결사에 소속되어있는 빌런 ‘페이스 메이커’에게 컨셉을 제시했다.
“개인적으로 제가 책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 사서라고 하면 남들이 신경을 잘 쓰지 않을 것 같아서요.”
“아카데미에 교직원으로 취직하려는 겁니까?”
“예. 낙하산 인사로 취직하려고 합니다.”
“…위험할텐데.”
페이스 메이커는 내 신분증을 조작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도 과장님이 대단한 분이라고 해도, 도 과장님이 들키면 바로 회장님 라인이 적에게 드러나는 거 아닙니까?”
“그만큼 회장님께서 저를 신뢰하신다는 거죠. 세종섬에 심어놓은 첩자들이 굳이 무리하게 움직여야 할 만큼, 제가 세종 아카데미에 들어갈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회장님 결정 사항이라면 저도 따를 뿐입니다만…. 도 과장님, 엄청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곳에는 S급 히어로들이 수두룩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당장 이번에 마주쳤던 백설공주도 세종 아카데미 강사로 들어간다는 소문도 있죠.”
“아시면서 들어가는 겁니까?”
“예. 회장님 지시사항이니까요.”
“…여기있습니다.”
나는 새롭게 만들어진 전자칩, 사서 자격증에 감탄이 절로나왔다.
“전산 문제는 오늘 지나기 전까지 다 처리될 겁니다. 이제 당신은 사서 교육을 마치고 나온 23세 ‘민간인’이 되는 겁니다. …이능력자가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나는 철저히 민간인을 연기해야 한다.
“애초에 거기는 도깨비가 필요한 곳이 아니잖습니까. 도깨비로 변신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가자마자 사고 칠 것 같은데.”
“사고를 치더라도 그건 제가 치는 게 아니라, 도깨비로 변신하게 한 빌런 놈들이 잘못이죠.”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저 민간인을 건드린 쓰레기를 처단할 뿐.
“저기, 그런데 왜 많고 많은 직업 중에서 사서를 선택하신 겁니까? 이것도 회장님 지시인가요? 그런 목적이라면 다른 직업도 많은데.”
“사서는 그냥 제 개인적인 취미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 떨어졌다고 한들.
“…제가 책을 좀 많이 좋아하거든요. 아카데미에 그런 소설들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밖에서는 읽을 수 없는 그런 소설들 말입니다.”
소문에 따르면.
“그거 아니었으면 저 아카데미 들어가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카데미 도서관에는 연중된 소설들이 ‘완결까지’ 책으로 나와있다고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