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88)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88화(89/668)
〈 88화 〉 4장. 히어로를 공략하는 방법 (8)
* * *
유미르를 태우고 다시 기숙사를 향해 바이크를 달리는 동안,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직감에 오한이 들었다.
‘얘 왠지 내가 도지환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굳이 확률로 이야기하자면, 약 90% 확률로 사실상 확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근거는 없다.
어차피 내 추측일 뿐이니까.
‘뭔가 EX급만이 느낄 수 있는 직감 같은 게 있나?’
아무래도 주인공이고, 원작에서는 나오지 않아서 내가 모르는 능력을 갖추고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주인공과 유미르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것처럼 얘도 나에 대해서 엄청나게 고민했을 수도 있다.
‘그럼 얘 지금 나 가지고 밀당하는 건가?’
내가 도지환이라는 걸 알면서 은근히 어필하는 거라면, 상당히 건방지면서도 귀여운 짓을 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도깨비의 정체를 모른다고 내게 말하고 있는 거니까.
[언제까지 그렇게 더듬을 생각이지?]“마력으로 보호하고 있는 몸의 실체를 파악할 때까지?”
유미르는 계속 내 복부와 허리를 더듬었다.
반쯤 영체화하고 있는, 도깨비감투를 쓰고 있는 내 육신의 이능을 파헤치기 위한 행동이겠지만, 뭔가 점점 손길이 노골적으로 끈적해지기 시작했다.
[그쯤 되면 성희롱 아닌가.]“어머. 저 성희롱으로 빌런 되는 거예요? 성희롱한 빌런은 어떻게 처형하죠?”
[글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성희롱에는 성희롱으로 대처해야 하나?]“정말 빌런다운 말씀이시네요.”
꾸우욱.
유미르는 내 뒤에서 더 몸을 붙였다.
“이걸로 봐주실래요? 궁금해서 그래요.”
[내 이능의 원천을?]“…네. 도깨비란 사람이 과연 어떤 이능을 쓰는지.”
[내 이능도 빼앗아 갈 생각인가?]“강탈하는 거 아녜요. 악마도 아니면서. 그냥…빌려쓴다는 느낌?”
[그러시든지.]서서히 기숙사가 보인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더욱더 마나를 정교하게 뿌리며, 유미르와 만났던 때처럼 기숙사 담벼락 위로 바이크를 몰았다.
[도착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겠지만 나도 바빠서 말이야.]“좀 더 이야기해도 좋은데.”
[그건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지.]“전화해도 되나요?”
[내 번호는 알고 있나?]“번호 주시면 자주 연락할게요. 명함 주셔야죠. 지금 당장은 생각이 없어도, 나중에 생각이 바뀌었을 때 연락하시면 되잖아요?”
[…….]도박을 걸까.
만약 도박을 건다면, 그때부터는 사실상 정체를 오픈하는 셈이다.
[흐음.]유미르가 내 정체를 알고 있을 때의 문제점.
도지환이 도깨비라는 걸 유미르가 알았을 때의 문제점.
하나의 경우뿐이다.
‘유미르로 인해서 내 정체가 노출될 경우.’
도지환이라는 남자 근처에 유미르가 자주 보인다더라.
둘이 뭔가 그렇고 그런 관계인 것처럼 보인다더라.
어라? 그런데 유미르가 백금태양이라고?
백금태양이 나타나는 곳에 도깨비도 항상 나타나던데?
설마?
[전화는 내 쪽에서 하도록 하지.]“…정말요? 제 번호 아세요?”
[인터넷 들어가면 다 나오는 게 개인정보고, 결사의 영업사원이 설마 E급 이능력자의 보안 정도도 뚫지 못할까 봐.]“와, 지금 해킹으로 제 번호 알아내겠다는 건가요?”
[이미 알고 있다면?]“…….”
유미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너를 백금태양으로 대하겠다. 너도 나를 도깨비로 대하도록.]“아항.”
유미르는 나를 향해 손가락을 튕기며 눈을 찡긋거렸다.
“그런 컨셉이시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군.]“저는 도깨비가 좀 더 솔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엄청 많이 재시나 봐요. 연애할 때 밀당하다가 막 실패하고 그러시죠?”
[하여튼 말이라도 못 하면.]나는 바이크에서 내린 뒤, 유리창 바로 앞에 있는 유미르를 향해 뛰어내렸다.
[잘 들어라.]나는 유미르의 옆으로 손을 뻗어 유리벽을 짚었다.
그리고 상체를 숙이며 유미르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서로 정체를 숨긴 히어로와 빌런이 서로 정체를 밝혀도 되는 때는 오직 하나뿐이다.]“뭐죠?”
[사랑에 빠졌을 때.]“…….”
유미르는 표정이 굳었다.
뭔가 웃음이 터지기 직전인 상황인 것 같아,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볼을 양쪽에서 잡고 꾹꾹 눌렀다.
[웃지 마라. 내가 농담하는 줄 아는가?]“아, 아뇨. 맞네요. 사랑에 빠지면 정체를 알고 싶어질 테고…. 뭐, 사랑하게 된다면 정체를 알고도 숨겨줄 수도 있고. 사랑이라….”
유미르는 나를 게슴츠레 바라보며 내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렇다면 제가 도깨비의 마음을 빼앗는다면, 도깨비가 제게 정체를 밝히게 되는 거군요?”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은 아닌데.]“하지만 맞잖아요? 도깨비가 마법 소녀 백금태양이 아니라, 저 유미르에게 반한다면, 도깨비가 아닌 진짜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어질 거 아녜요?”
[일반적인 빌런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나는 달라. 나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든.]“에.”
유미르는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왜? 이상한가?]“저예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너랑 얼마나 봤다고 네게 사랑에 빠지겠나.]“으으…. 사랑이 아니면 이렇게 잘 대해주는 이유가 뭐죠? 제 능력 때문인가요?”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네가 나의 적이 되면 상당히 곤란해지거든.]“와. 빈말이라도 너 때문이라고 말해줄 줄 알았는데.”
[나는 그렇게 막 재는 사람이 아니라서.]유미르가 입술을 삐죽였다.
[히어로의 길, 부디 계속 걷기를 바란다. 그럼.]“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뭐지?]“만약에, 정말 만약인데요.”
유미르는 우물쭈물하다가 결심이 선 듯, 주먹까지 꽉 움켜쥐며 나를 올려다봤다.
“…아녜요.”
[실없군.]“그냥 지금 말할까 고민하다가 멈춘 거예요. 아직 이런 이야기까지 할 단계는 아니라서.”
무슨 생각을 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거리감이 딱 좋다.
결사에 들어올 각오가 되지 않았다면.
옳은 일을 하더라도 남들에게 빌런이라는 소리를 들을 각오가 되지 않았다면.
좀 더 ‘진심’을 내보이는 건, 나중의 일.
[그럼 안녕이다.]“하나만 더요.”
[뭐지?]“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요? 앞에서.”
유미르는 두 팔을 벌렸고, 나는 잠시 고민했다.
[……뭐, 안 될 건 없지.]나는 두 팔을 벌렸고, 유미르는 내게 그대로 와락 안겼다.
[굳이 그렇게까지 내 이능을 확인하려고 하는…야.]나는 유미르의 얼굴을 잡고 밀어냈다.
그녀의 손길이 내 아래에 남았고, 그 손길은 너무나도 찝찝했다.
[이제는 대놓고 성희롱하다니.]“히힛.”
유미르는 두 손을 얼굴 옆으로 든 채, 허공을 조물조물 거렸다.
“도깨비 엉덩이는 탄탄하네요.”
[죽는다.]“어디 말 안 해요. 그냥 이 감촉 그대로 가지고 잘게요. 하항.”
[어디 가서 함부로 그런 짓 했다가는 너도 똑같이 당하는 수 있어.]“어디 가서 함부로 하겠어요? 당신이니까 이런 거 하지.”
[내가 아무리 너를 영입하겠다고 많이 봐주고 있지만, 내가 너무 저자세로 나왔나? 내가 S급 빌런이라는 걸 잊지 마라.]“저는 그러면…EX급 히어로라고 하죠. 그리고.”
유미르는 내 손을 잡은 뒤, 자기 가슴 위에 올렸다.
“이러면 쌤샘이죠?”
[…….]“손 안 떼는 거 봐라?”
[내가 안 떼는 게 아니라,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싶어서 생각하는 중이었다.]크다.
역시 EX급.
[그리고.]나는 빌런이다.
[이러면 내가 뭐 숙맥처럼 그럴 줄 알았나?]“……?!”
유미르가 순식간에 긴장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향해 얼굴을 묻고, 손을 가볍게 옆구리 안으로 밀어 넣으며 밀착했다.
“아, 그, 저기…!”
[왜? 네가 먼저 시작한 거다.]“아니, 그…잠시만요.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빌런이 예상대로 움직이는 인형이라고 생각하나.]꽈아악.
조물조물.
“아으, 저기, 죄송해요. 장난이 도가 지나쳤, 히약?! 거, 거긴…?! 죄송해요! 진짜 안 그럴게요! 네?!”
[하여튼.]나는 유미르에게서 떨어졌다.
유미르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울먹거렸다.
“으으, 이제 시집 못 가….”
[무슨 조선시대 아녀자들도 하지 않을 소리를.]“뭐라고요?”
[선 넘지 마라.]나는 유미르와의 사이에 가볍게 손으로 선을 그었다.
[다음에도 그러면 도깨비방망이로 혼을 내겠다.]“거기 안에 수납하고 계신 걸로…아얏.”
나는 유미르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끝까지.]“…흐흥. 그래도….”
유미르는 울먹거리면서도 활짝 웃었다.
“이렇게 어울려주시는 걸 보면, 정말 좋으신 분이네요. 도깨비는.”
[…빌런에게만 처형인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따지고 보면 나는 영업사원이나 마찬가지니까.]나는 제자리에서 뛰어, 바이크 위에 올랐다.
[결사에 들어오고 싶다면 언제든지 이야기해라. 새로운 동료는 언제나 환영이니.]“생각 있으면 먼저 전화해도 되죠?”
[…….]나는 바이크의 시동을 걸었다.
[그러시든지.]울타리를 따라 달리며,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정면을 주시했다.
[…씁.]아무리 생각해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쟤, 나중에 나 도지환일 때 엉덩이 막 만지고 그러지는 않겠지?
[좋아.]이제는 자존심 싸움이다.
[어디 한 번 서로 끝까지 모르는 척해보자고.]이 싸움은 내가 이긴다.
* * *
“…….”
유리창 너머로 바로 들어온 유미르는 변신을 해제한 뒤 침대에 누웠다.
“…흐흥, 흐흐흥.”
유미르는 허공을 향해 뻗은 두 손을 어루만지며 실실 웃다가, 곧 그 손을 자기 몸에 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쉽지 않네.”
유미르는 잠시 한탄한 뒤, 태극워치를 차고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
연락은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연락을 주고받을 사람도 없으니.
“……전화해볼까.”
최근에 통화를 한 사람의 전화번호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유미르는 스마트폰을 안은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아니지, 아니야. 이건 내 프라이드가 용납 못 해. 그래, 이건 대결이라고."
짝.
“결정했어.”
유미르는 자기 뺨을 두드리며 선언했다.
도지환은 여자로서 공략하고, 도깨비는 히어로로서 공략한다.
입 모양으로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