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90)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90화(91/668)
〈 90화 〉 4장. 빌런을 공략하는 방법 (2)
* * *
나는 삼척시의 가장 높은 건물, 30층짜리 호텔의 가장 높은 층에 있는 펜트하우스에 초대받았다.
“어서 와, 도 과장님. 뭐부터 할래? 밥? 샤워? 아니면 나?”
“셋 다 동시에는 가능합니까?”
“오….”
여인은 내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걸.”
“그런 식으로 장난치는 건 익숙해졌으니까요.”
“어머, 장난이 아니라면?”
“그럼 차부터.”
나는 티테이블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변신 풀어도 됩니까?”
“변신 중이야? 상관은 없는데…잠깐.”
나는 바로 변신을 해제했다.
내 피부에 달라붙어 있던 옷은 바로 해제되었고, 여인은 미니바를 향해 걸어가다가 바로 방 입구로 향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뭘 부끄러워하십니까. 우리 사이에.”
“당장 입어!”
“입으라고 하니까 입겠습니다만, 딱히 그런 거 신경 쓸 시기는 지났잖습니까.”
“매너를 지키란 말이야, 매너를!”
여인은 버럭 화를 내며 내게 가운을 던졌고, 나는 바로 가운을 입고 허리띠를 묶었다.
“한결 낫군요. 항상 마나를 몸에 두르고 다닐 때는 발가벗고 다니는 기분이라서.”
“맞잖아?”
“겉으로 보이는 게 슈트 차림이니, 남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니까 괜찮습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거지?”
“예.”
여인은 입꼬리를 비틀며 내 앞에 마실 걸 가져왔다.
술은 아니다.
홍차다.
미니바에는 이미 술이 한가득 쌓여있었지만, 나도 그녀도 술을 마실 생각이 없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갑자기 네 마력이 바다에서 느껴져서 놀랐다고.”
“표류해서 그렇습니다. 세종섬에 다녀왔거든요.”
나는 여인에게 내 상황을 전했다.
여인은 진지한 얼굴로 내 말에 귀를 기울였고, 나 또한 그녀가 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백금태양을 설득하러 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사이에 연료 부족으로 잠시 멈췄다? 백금태양이랑 혹시 싸웠어?”
“물리적 충돌은 없었습니다. 대신 마나를 이용한 신경전은 조금 벌였죠.”
유미르가 나를 더듬고, 나는 그녀의 손길에서 내 육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마력이 좀 줄어들었고, 바이크까지 타고 오다니다보니 생각보다 더 많은 마나가 소모되었다.
“다시는 세종섬으로 왔다 갔다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냥 편하게 배 타고 차 타고 이동하는 게 편하겠더라고요.”
“생각보다 마나 소모가 심했나 보네. 편히 쉬…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나는 도 과장님이 나 지원 나온 줄 알았어.”
“지원?”
“응. 여기, 지금 전쟁터거든.”
“…….”
아무래도 발을 잘못 들인 것 같다.
아니다.
발을 제대로 들인 걸지도 모른다.
나의 마나 부족과는 별개로, 도깨비가 있어야 할 곳은 처형장이니까.
“나쁜 빌런이 있는 곳에 도깨비가 있는 법. 무슨 일입니까?”
“옥토버 트래블. 알아?”
“항공사 아닙니까? 저기 양양 공항에 한 발 크게 들어온 회사.”
대한민국 모든 공항에는 당연히 공기업인 한국공항공사가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의 출입이 잦은 인천과 양양과 같은 곳에는 외국계 항공사들이 각종 로비를 통해 자기 지분을 넣는 데 성공했고, 옥토버 트래블은 양양에 모든 지분을 때려 박았다고 알고 있다.
나도 가끔 이용하고는 했다.
총수를 의전할 때 일등석에 자주 타고 다녔고, 외항사다 보니 기내식으로 양식을 먹을 기회가 많아서 좋았다.
“맞아. 국제선 외항사를 이용한다고 하면 다들 옥토버 트래블을 이용하지.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옥토버 트래블의 회장이랑 손녀가 지금 여기 삼척에 있단 말이야?”
“혹시 자료 조사할 패드 있습니까? 태극워치를 서울에 두고 와서.”
“내가 말해줄게. 뭐가 궁금해?”
“그 손녀, 제 기억으로는 이능력자였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맞아.”
기억이 난다.
원작 속, 조연 여캐 중 한 명이다.
“이름이….”
“율리아나 페이그린. 국제 표준에 따르면 C급 이능력자야. 양양으로 올라가서 국제선을 타야 하는데, 지금 살해 협박받아서 삼척에 머무르고 있어.”
“옥토버 트래블 정도 사람들이 회장 손녀 영애가 살해 협박을 받는다고 비행기 안 띄우거나 양양으로 안 들어갈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된 일입니까?”
“살해 협박을 한 조직이 생각보다 강한 조직이거든.”
여인은 내게 다른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화질이 다소 좋지 않은 CCTV 사진 속에는 어딘가 익숙한 사람들이 골목길로 향하고 있었고, 나는 그들이 누군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여기에서 이런 악연이 이어지는군요.”
“맞아. 지금 테러를 일으키겠다고 한 녀석들은 바로…’활빈당’이야.”
여인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동시에 나 또한 헛웃음이 다 나왔다.
“활빈당에서 왜 율리아나를 습격한답니까? 외국인이라서?”
“그런 이유였다면 진작에 온갖 테러를 당했겠지? 그런 이유는 아니야. 들어보면 정말 기가 막힌데….”
여인은 슬쩍 나를 향해 상체를 숙였다.
“임무 중에 미안한데, 도와준다면 알려줄 수 있고.”
“마력 좀 주실 겁니까?”
“못할 것도 없지. 대신 길게는 못 해. 지금 한창 일이 터지는 중이라, 실시간으로 싸우는 중이거든.”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끝내도록 하죠.”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가볍게 마력 공급 도와주시죠, 혜라 씨.”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는 게 어디 있어…?”
“그럼 이름으로 부르지, 빌런 이름으로 부릅니까?”
이름. 윤혜라.
이능력. S급. 파이로키네시스화염마법.
“솔직히 이매망량 간부 이름들 다 구리잖아요.”
“……너는 지금 이매망량의 근간을 흔들려고 하고 있어. 알지?”
“글쎄요. 저는 개인적으로 ‘원래 이름’으로 다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파라서.”
“으, 그거 싫어. 특히 나는 더 싫다고. 나는 그거잖아.”
“‘궁기’보다는 좋지 않겠습니까?”
“빌런 이름답지 않잖아!”
“예, 예. 알겠습니다.”
빌런네임. [궁기].
“마력 공급…. 아니, 당신의 안에 있는 제 마력을 일부 회수하겠습니다. 마력 주머니에서 직접 빼갈 겁니다.”
“…….”
“일단 애국가 1절부터 부르고 시작할까요?”
이 나라에서 마력을 회복하는 방법?
“아프면 말하세요. 혜라 씨.”
“아플 리가 없…!”
당연히,국뽕이지.
* * *
그 시각.
속초의 모 호텔, 29층의 스위트룸에 머무르고 있는 한 금발의 여인은 초조한 얼굴로 이를 갈았다.
“으으, 내가 왜 이런 꼴을….”
여인은 뺨이 퉁퉁 부어있었다.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그녀는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이를 갈았다.
“씨이….”
“아프냐? 미안하다.”
여인의 맞은편에 있는 노인, 옥토버 트래블의 회장 데스몬드 페이그린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너도 알잖니. 그게 어떤 물건인지.”
“알아요. 아니까 집으로 가져가려고 한 거 아녜요.”
“그게 외부에 알려지면 우리는 끝장인 거, 너도 알잖니.”
“…하지만 본국으로 가져갔을 때, 그 효과는 엄청날 거예요.”
데스몬드는 손녀, 율리아나의 제안에 한탄이 절로 나왔다.
“할아버지. 나라를 생각하세요. 언제까지 이 소국에 머리를 숙이고 살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율리아나. 네 행동이 잘못되는 순간, 우리 회사의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그건 알고 있지?”
“그건 제가 감당할게요. 저 혼자의 짓이라고, 저 혼자 꾸민 일이라고 하면 돼요.”
“그러니까 오너리스크라는 게 있다니까….”
“제가 잘못했는데 왜 회사에 피해가 가요? 저는 회사 사람도 아닌데.”
“하아.”
데스몬드는 몇 번이고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저기 슈테른의 경우를 봤잖니. A급 이능력자인 에르미나 슈테른페르트가 E급 이능력자를 죽이려고 하다가 악마가 되었고, 이능력을 모두 잃어버린걸. 그 뒤로 어떻게 되었니? 지금 슈테른은 도산 직전이야.”
“도산 직전이라도 도산하지는 않겠죠.”
“그렇게 편하게 이야기할 게 아니라니까….”
“괜찮아요. 다 잘 될 거예요.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데스몬드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손녀가 이능력은 분명 뛰어났지만, 세상을 보는 눈과 경험은 여전히 부족했다.
아니,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작 17살 어린 아이일 뿐이니까.
데스몬드의 손녀로서 최대한 다른 이들에 비해 많은 경험을 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였다.
“율리아나. 너는 그 활빈당으로부터 그 ‘물건’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니?”
“네. 물론이에요. 제 이능력이라면 결코 어디에 있는지 들키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활빈당에서 저를 잡으려고, 저를 죽이려고 하는 거잖아요.”
씨익.
율리아나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이건 그들과 저의 게임이에요. 이능력의 시대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가지고 가는 저, 그리고 저를 노리는 활빈당. 제가 무사히 그 물건을 가지고 출국하면 승리하는 거고, 실패하면 살해당하는 거죠.”
“일단 국가에….”
“아뇨. 말하지 마세요.”
율리아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할아버지한테서 뺨까지 맞고 얻어낸 물건인데, 그걸 가지고 돌아가지 못한다고 지금 도와달라고 하면”
삐거덕.
위층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미묘하게, 애국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쯧. 스위트룸인데 층간소음이 말이나 되나….”
율리아나는 천장을 향해 중지를 세웠다.
“확 이거나 먹어라.”
“이해하렴, 율리아나. 저들은 지금 ‘애국’중이니.”
“애국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이 나라에서는 애국이지. 30층 펜트하우스에 장기 투숙을 하는 사람이 애국 중인데, 당연히 이능력자가 나오지 않겠니.”
“…이능력자만 낳으면 다 애국인가. 아, 진짜.”
율리아나는 침대에서 아등바등하며 짜증을 냈다.
“야!! 애국하는 소리 안 나게 해라!!”
여전히, 침대는 삐거덕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