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1)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1)
Rabbit
게이트나 몬스터의 영향을 받아, 유전자가 변질돼서 태어난 존재가 바로 아인이다.
그로 인해 그들은 자신의 부모와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인이 배척받는 거지.’
세상에 얼마나 많은 부모가 과연 자신과 외견도, 유전자도 같지 않은 자식을 사랑할 수 있을까.
심지어 아인의 눈은 몬스터의 눈과 흡사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인은 괴물의 아이란 멸칭으로 불리기도 하며, 은연중에 기피되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건 다반사.
연하늘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보육원에 살고 있다는 것은 같은 학년 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보면…. 연하늘이 게임에서 재앙의 마녀가 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야. 어렸을 적부터 배척받으며 살아야 했을 테니까.’
나는 게임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세상에 절망한 연하늘이 재앙의 마녀로서 거듭나는 장면이었다.
「연하늘」
―이딴 세상, 없애 버릴 거야.
볕에 그을린 피부에, 머리를 새까맣게 물들인 상태로 주르륵 피눈물을 흘리던 연하늘.
게임 스토리는 중간 보스로 등장한 그녀와 전투를 벌인 결과에 따라서 분기점이 갈린다.
주인공 강한별이 그녀를 죽인다면 학원도시 일대가 초토화된 상황에서 스토리가 이어진다.
반대로 강한별이 사망할 경우에는 배드 엔딩으로 넘어간다.
그 배드 엔딩은 환생해서도 선명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연하늘은 기하급수적으로 분열해, 마침내 세상 전체를 뒤덮었습니다.] [세상이 멸망했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연하늘에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제 세상에 생명체는 없습니다. 사람도, 동물도, 몬스터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연하늘은 모든 존재를 소멸시키고 끝내는 자기 자신마저 소멸시키며 자멸을 선택했습니다.] [─Bad Ending─]44개 엔딩 중 하나.
무한히 분열한 연하늘이 결국에는 세상을 집어삼키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말소시키는 배드 엔딩.
‘그 엔딩의 주인이 도견우와, 아니, 나와 같은 초등학교였다니….’
게임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일이다.
나는 자기소개를 마친 그녀를 보며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멸망시킬 가능성을 지닌, 잠재적 재앙이 바로 저기에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자신의 힘을 모르고 재앙의 마녀로서 각성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이라면 그녀를 죽이고, 미래의 위험을 제거할 수 있었다.
“….”
이 세상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연하늘이 중간 보스가 되기 전에 죽여야 한다.
지극히 계산적이고, 기계적이면서, 냉정하고, 효율적인 해결책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겠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위해 그녀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미련하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내게도 신념이 있었다.
‘생각을 달리하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라면, 바꿀 여지는 충분히 있다.
무조건 죽이는 게 상책은 아니다.
오히려 아직 배역이 확정되지 않은 연하늘은 내 의지에 따라서 선역도, 악역도 될 수 있다.
그녀의 재능은 필시 대단하리라.
만약에라도 내가 그녀를 선역으로 탈바꿈할 수만 있다면….
‘전력을 강화시킬 수 있어.’
이 게임의 공략 난이도는 절대로 만만치 않다.
그러니 그녀를 전력으로 들인다면, 난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내가 연하늘과 친해질 계기를 마련해야 했다.
때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자기소개는 이걸로 다 마쳤으니 이제부터 자리를 정하도록 할게요! 여학생들이 원하는 자리에 앉은 뒤, 남학생들이 옆자리에 앉는 방식으로 정할 거예요.”연하늘의 옆자리에 앉을 기회였다.
* * *
여학생들의 자리가 다 정해지고.
담임 선생이 설명했다.
“남학생들도 제비를 뽑은 순서대로 원하는 자리에 앉으면 돼요. 이때, 옆자리의 여학생은 세 번까지 거절할 수 있어요.”
“….”
“남학생은 여학생이 허락할 때까지 얼마든지 자리를 선택할 수 있어요. 대신 교실을 한 바퀴 돌고 나서도 자리가 정해지지 않았다면, 순서는 맨 뒤로 밀려날 거예요.”
“선생님! 그럼 매번 남자가 여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건가요!?”
“그건 걱정하지 마렴. 이번 달에는 여자가 먼저 앉았으니, 다음 달에는 남자가 먼저 앉게 할 테니까.”
원하는 이성과 짝이 될 수 있다니.
누군가는 담임 선생의 자리 배정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 남학생들은 제비를 뽑으세요!”
과연 자신이 마음에 드는 이성과 짝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손바닥도 맞아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자신이 마음에 드는 이성 또한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할 것이라고는 보장할 수 없다.
‘나는 9번인가. 연하늘의 옆에 앉을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테니, 얌전히 차례나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네.’
상대방으로부터 거절당할 가능성과 자신이 선택당하지 않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헛된 기대감에 부풀어서는 무작정 자신이 이성을 고를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큰코다칠 것이다.
“1번은 나가서 자리를 선택하렴!”
그리고 지금 막.
기대감에 부푼 남학생이 움직였다.
“음…. 어디가 좋으려나?”
“….”
신중히 고민하는 척하지만 1번의 발걸음은 주저하지 않고 한 곳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본인 딴에는 무심한 척하는 연기가 통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겠지만, 목소리와 움직임에서 다 티가 났다.
뒤에서 나도 알아차릴 정도인데, 자리에 있는 여학생들이 그 연기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 없다.
“역시 창가 자리가 좋겠지?”
“….”
아마 1번은 모를 것이다.
자신이 여학생들을 품평하고 있듯, 그들도 1번을 품평하고 있다는 걸.
“아, 여기가 좋겠다.”
창가 쪽으로 한 바퀴를 돈 1번이 어느 여학생의 옆자리에 손을 댔다.
‘저 애는… 김수지네.’
우리 가문에 비할 바는 안 되지만, 나름 명가에 속하는 집안의 여학생.
공부도 운동도 잘하면서 예쁘장한 그녀는 꽤 인기가 많았다.
1번은 그녀를 노리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노린다고 다가 아니다.
“여기 앉아도 되지?”
“미안해.”
“어?”
“선생님, 저 거절할게요.”
“어, 어째서….”
1번이 크게 당황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거절당한 게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불쌍하네. 아니, 근데 선생님이 이렇게 사악해도 되는 건가?’
1번은 큰 깨달음을 얻었으리라.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과 마음에 드는 이성과 맺어지기란 힘들다는 깨달음.
그렇게 해서 꿈속에서 눈을 뜨고, 현실의 쓴맛을 알게 된다.
“수지는 두 번밖에 남지 않은 거야. 1번은 다른 자리를 선택하렴.”
그래서 낭만적이지 않은 것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낭만적인 건가. 거절할 수 있는 횟수가 세 번까지로 제한되어 있으니까.’
정말 현실적이었다면 거절 횟수에 제한이 없었을 것이다.
한편, 거절당하면서 평정심을 잃은 1번의 행보는 순탄하지 않았다.
“여기 앉아도 되지?”
“미안해.”
“여기 앉아도 될까?”
“나는 싫어.”
“여기 앉아도… 될까요?”
“왜? 나는 수지보다 쉬워 보이니?”
누구나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있어 자신이 첫 번째가 되고 싶어 한다.
두 번째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자신이 다른 사람 대신으로 여겨지고 싶지도, 비교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여학생들의 눈에 성급한 마음으로 하나라도 얻어걸리란 듯이 찔러 보는 1번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1번은 교실을 한 바퀴 돌았으니 맨 뒷줄에 서도록 하렴.”
“흑….”
“….”
결국 1번은 자리에 앉지 못했다.
분명 선택하는 입장이었을 테건만.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1번은 울상이 된 얼굴로 돌아와야 했다.
“다음 2번! 자리를 선택하렴.”
그런 상황에서 2번이 출발했다.
2번은 1번의 실패를 답습함으로써 일찌감치 현실을 깨우친 듯했다.
괜히 김수지의 옆에 앉으려 하다, 1번처럼 거절이라도 당해 버렸다가는 여학생들의 눈 밖에 나고 만다.
나는 그가 김수지를 곁눈질하다, 눈을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기에 앉아도 되지?”
그렇게 2번이 자리를 선택했다.
옆자리의 여학생은 위에서 아래로 2번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홱 고개를 돌렸다.
“흥! 앉고 싶으면 앉든가, 말든가.”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그럼에도 첫인상은 중요하다.
새 학년, 새 학기.
자기소개한 것 외에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은 첫인상으로 상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2번은 기준에 부합한 것이다.
“다음, 3번!”
“여기 앉아도 될까?”
“…미안, 다른 데 알아봐.”
반면에 3번처럼 첫인상을 보고서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사람의 이상형은 다양하다.
3번은 다른 여학생의 허락을 받고 옆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4번! 자리를 선택하렴!”
한편, 4번은 다른 자리를 지나쳐, 김수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옆에 앉아도 될까?”
“…미안. 선생님, 저 거절할게요.”
“수지는 이제 한 번 남은 거야.”
1번이 실패한 것을 봤을 텐데도, 두려움을 모른다는 듯 도전한 4번은 용감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용감하게 전사했다.
“다음 5번!”
김수지의 거절 횟수는 이제 한 번.
그녀가 한 번만 더 거절하게 되면 다음 차례가 되는 사람은 누구든지 옆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문제는 누가 거절당할 것이냐.
“다음 6번!”
“다음! 행운의 7번!”
자신에게 아무 이득도 되지 않는데 굳이 희생을 자처할 사람은 없었다.
“다음 8번!”
“에라,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나무는 찍어야 비로소 넘어가고, 문은 두드려야 열리듯이.
8번은 도박판에 큰돈을 건 얼굴로 김수지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미안, 거절할게.”
“크흡! 내가 뭐가 어때서!”
“수지는 이제 거절 못 하는 거야.”
“8번아! 얼른 내 뒤로 와!”
“야! 맨 뒤에서 구경하고 있으니까 개꿀잼이야!”
8번은 도박에서 잃고 말았다.
그는 모든 돈을 날려 버린 얼굴로, 망자처럼 손짓하는 1번과 4번에게 가야 했다.
그렇게 8번까지 차례가 지나가고.
“9번은 자리를 선택해 주세요!”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창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쟤도 수지 옆에 앉으려는 건가?”
“아, 진짜 부럽다.”
“운 좋은 놈. 수지 옆에 앉겠네.”
“쟤 도견우 아니야? 신검 도가의.”
“그 겁쟁이?”
등 뒤에서 남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날 신경 쓰고 있네.’
한편 앞에 있는 여학생들의 시선은 모두 내게 쏟아지고 있었다.
창가 쪽에 앉은 김수지도 지그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두 내가 그녀 옆자리에 앉으리라 예상하는 듯했다.
‘응, 아니야.’
교실 창가 쪽, 맨 뒷자리.
나는 사람들 사이로 가려지지 않는 토끼 귀를 눈에 담았다.
그곳에 연하늘이 있었다.
희면서도 푸른 머리칼이 인상적인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하고, 누군가를 선택할 권리도 없으리라 여기는 듯한 얼굴.
‘제발 이 시간이 얼른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 같네.’
그녀는 절로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울적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그런 그녀에게로.
나는 발을 내디뎠다.
“…견우구나. 네 이름은 알고 있어. 나는 거절하지 못하니 앉도록 해. 명가의 사람끼리 앞으로 한 달 동안 잘 지내… 어?”
“뭐야? 쟤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왜 저기로 가는 거지?”
뭐라 하는 김수지를 지나치고.
사람들의 경악을 무시한다.
내 눈에는 연하늘만 들어왔다.
이윽고.
“…응?”
나는 연하늘의 자리에 도착했다.
내내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그녀는 내가 지나치지 않고 걸음을 멈추자 깜짝 놀란 기색이었다.
퍼뜩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에는 당황함이 서려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옆에 앉아도 될까?”
“내 옆에?”
“네 옆에. 내가 싫으면 거절하고. 나는 안 했으면 좋겠지만.”
“왜….”
“뭐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원하는 엔딩에 도달하기 위해.
나는….
“…아니야. 앉아도 돼.”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