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112)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112)
유서
점심시간을 앞둔 3교시.
오늘 수업도 이제 1시간만 지나면 모두 끝이 난다.
다음 주부터 오후 수업이 시작되니 이번 학기에 편히 수업을 듣는 것도 오늘로 마지막이 되는 셈이다.
놀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학생의 본분은 학업에 있으니까.
미래를 위해서라도 부단히 수양해야 한다.
나는 강의실로 들어와 교탁에 선 홍예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백지 뭉치를 들고 있었다.
“대표와 부대표는 앞으로 나와서 반 애들한테 한 장씩 돌려 주렴.”
“네.”
“네에.”
홍예나의 부름을 받고.
민아린을 설득하는 것에 성공해, 이전보다 조금 뒤에 앉게 된 나는 그녀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교탁으로 나가 백지를 나눠 받은 우리는 강의실을 돌며 자리에 앉은 학생들에게 배부했다.
“애들이 뒤죽박죽으로 앉아 있어서 나눠 주는 것도 번거롭네.”
“…동감이야.”
“언제 시간을 내서 고정좌석제로 추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고정좌석제? 흠….”
민아린이 몸을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탓인지, 웬일로 뜻이 맞았다.
학생들에게 백지를 돌리던 그녀가 고민에 잠긴 기색을 보였다.
“애들이 반발하지 않을까?”
“반발이야 하겠지. 그렇게 될 때는 실력으로 때려눕히면 되지 않겠어?”
“흠….”
“너랑 나랑 힘을 합치면 쟤네들을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잖아.”
“그건 그렇지.”
“무엇보다.”
“우리가 십가문의 일원이니까?”
“그렇지. 누가 거역하려 하겠어.”
“….”
근처에서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던 학생들은 흠칫 몸을 떨었다.
시선이 마주친 그들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어 댔다.
무언가 간절함이 담긴 눈빛이 마치 내게 전하는 듯했다.
우리는 동의한다고.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인 법이다.
“애들도 찬성하는 느낌인데?”
“…!”
“그럼 자리를 어떻게 배정할 건지 생각 좀 해 봐야겠네.”
“저, 저기, 견우야? 아린아? 일단 우리 의견도 들어 보고….”
“너는 찬성 아니야?”
“지금 내 말에 반대하겠다고?”
“나, 나는 당연히 찬성이지…. 근데 다른 애들 의견은 다를 수도….”
“다들 찬성 아니야?”
“반대하는 사람 없지?”
“….”
침묵 또한 긍정이다.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와 민아린은 조만간 시간을 내서 긍정적으로 고정좌석제를 검토해 보기로 했다.
언젠가 대항전도 벌이게 될 텐데, 반 학생들의 단합을 생각해서라도 좋은 방안이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이걸로 뭘 하려는 거지?’
자리에 앉은 나는 책상 위에 놓인 백지를 가볍게 살폈다.
뒷면을 뒤집어 봐도 마나가 가미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보아하니 아티펙트는 아니고, 단순 평범한 종이인 듯했다.
“이게 뭔지 아는 사람?”
“….”
“아무도 없어?”
“뭔지 맞히는 사람한테는 교관님이 맛있는 사탕을 줄게요!”
홍예나가 종이를 팔랑거렸다.
그녀의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역시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정체를 추리하기만 했다.
그때, 민아린이 입을 열었다.
“저요.”
“그래, 아린이. 말해 보렴.”
“유서 아닌가요?”
“….”
“정답이야. 맞아, 이건 유서야.”
“아린이한테는 사탕을 줄게요!”
민아린이 별거 아니란 듯한 얼굴로 훗 소리를 낸다.
옆에 앉은 나는 그녀가 턱을 들고, 콧대를 세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편, 학생들은 유서란 말을 듣고 술렁거리는 기색을 보였다.
홍예나는 그런 그들을 가라앉히며 차분히 설명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면서, 언제나 갑자기 찾아오기 마련이야.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예의 없이 그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못해. 주어진 기대 수명이 다하기도 전에 죽는 경우가 허다하지. 어떻게 보면 사람은 죽기 위해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알 수도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야.”
“….”
“너희도 알 테지만, 헌터는 죽음을 누구보다 바로 가까이에 두고 있어. 마나로 신체 노화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기대 수명이 길다고 하지만, 온갖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헌터는 기대 수명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보다도 짧은 편이지. 이 중에서 헌터의 기대 수명을 아는 사람?”
“저요.”
“그래, 아린이.”
“38세입니다.”
“맞아, 협회에서 발표한 통계로는 올해 헌터의 기대 수명은 38세야. 작년보다 2년이 더 늘어났다는 건 활발하게 활동하는 세대의 실력이 높아졌다는 뜻이라서 고무적이지만, 그렇다고 여전히 낮은 수치라는 건 무시할 수 없어. 37.2%.”
“….”
“아카데미를 졸업해 사회로 진출한 헌터가 5년 안에 사망할 확률이야. 너희 중에 3분의 1은 졸업하고 5년 안에 사망할 거란 소리지. 이렇게 말해도 아마 잘 와닿지 않을 거야. 너희가 사선을 경험한 적이 없을 테니까.”
“….”
“그런데 내가 말했잖아. 죽음이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법이라고. 사회 초년생이 사망하는 확률이 그 정도로 높은데 아카데미 학생들의 사망률은 어떨 것 같니?”
“작년 통계로는 18.4%입니다.”
“그래, 답해 줘서 고마워. 18.4%야. 아카데미에서 안전에 주의하는데도 사망률이 낮지 않게 나온다는 거지. 헌터가 되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람이 5명 중에 1명꼴이 된다는 거야. 우리 반은 정원이 50명이니 그중에 10명은 졸업하기 전에 사망한다고 할 수 있어. 너희는 헌터와 다르게, 죽어도 연금 받지 못하는 거 알지? 너희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개죽음이란 소리야. 그러니 되도록 죽지 않도록 해.”
“….”
“하지만 그게 말이야 쉽지 어떻게 노력한다고 가능한 범주겠니? 결국 죽음은 피하지 못하는데.”
홍예나가 거침없는 단어를 사용하며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준다.
그로 인해서 강의실에는 불편하고 숙연한 분위기가 깔렸다.
가문에서 헌터의 현실을 들은 나도 그 분위기를 거스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홍예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런 너희의 죽음을 적어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게 바로 유서야. 소중한 사람들에게 너희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는 거지. 이번 시간에 너희는 그 유서를 쓸 거야.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계속.”
“….”
“협회 규정에 따라서, 모든 헌터는 반년에 한 번씩, 또 목숨이 위험한 임무에 나설 때 의무적으로 유서를 쓰게 되어 있어. 헌터를 지망하는 너희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너희 역시 아카데미에 3년 동안 재학하며 주기적으로 유서를 써야 해. 오늘만 쓰고 끝날 게 아니라, 앞으로 계속 쓰게 될 거란 소리야.”
“….”
“다음 주부터 오후 수업이 시작돼. 오후 수업은 오전 수업에 비해 훨씬 어렵고 위험할 거야. 이제부터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장난으로 작성해서 내려 하지 말고, 정말 자신이 죽었을 때를 가정하고 진지하게 쓰도록 해.”
“유서를 처음 써 보는 사람을 위해 교관님이 유서에 기본적으로 들어갈 형식을 알려 줄게, 얘들아―.”
그렇게 우리는 유서를 쓰게 됐다.
* * *
헌터는 누구보다도 언제나 죽음을 가까이에 달고 산다.
내가 가문에서 검을 배우며 줄곧 들어 왔던 말이다.
그렇기에 홍예나의 경고는 내게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5년 전, 전생을 떠올린 그때부터.
죽음이라면 이미 각오한 바였다.
이제 와서 흔들리지 않는다.
두렵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나아갈 수 없다.
헌터가 되지 못한다.
되더라도 죽을 뿐이다.
내가 누군가를 죽인다는 뜻은 곧 그 누군가가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마당에 죽음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상대에게 죽게 되리라.
더 강한 각오가 각오를 죽인다.
약한 각오로는 죽는다.
얄궂게도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그러나 산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죽어 간다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죽어 가고 있다.
죽기 위해서 살고 있다.
그 진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인정해야만 깨치는 게 있다.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아니,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검을 휘두르며, 죽는 그 순간까지 살아가거라.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순간순간에, 하루하루에 집중하며 충실하게 살아가거라. 내 오늘 하루는 보람이 있었는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으며 마음속에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검을 세워라.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죽을 때까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다짐하는 것이다.
언젠가 할아버지가 나와 도시은에게 진심을 담아 건넨 충고였다.
그 충고를 가슴 깊이 새겼기에.
나는 부동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며 유서를 쓰든 혹은 유서를 쓰며 죽음을 각오하든.
학생들과 달리 이미 죽음을 각오한 내가 유서를 대하는 마음은 덤덤했다.
‘그렇다고 해도 유서라….’
이 세상에 살아 있던 흔적을 남긴다.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다.
서걱서걱 펜을 놀리는 듯한 소리가 주위에서 들려오는 가운데.
나는 아무것도 적지 못한 상태로 백지를 노려보기만 했다.
‘뭐라고 쓰지….’
죽을 때 남는 미련이 뭐가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살아가려는 내게는 이렇다 할 만한 미련이랄 게 없었다.
명예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죽어서 흔적을 남기는 것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애초 내가 죽으면 세상의 운명도 거기에서 끝이다.
세상이 멸망하는 마당에 유서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좋아, 그냥 쓰지 말자.’
어차피 유서를 쓰는 것은 자유고, 다른 사람이 함부로 보지 못한다.
내가 죽음을 각오했다고는 하나, 지금 당장 죽을 생각도 없었다.
5년하고 3년이다.
5년 전에 전생을 자각한 이래로 나는 아카데미에서 3년간 들이닥칠 온갖 사건으로부터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죽지 않는 것이 내 목적이다.
그런 내게 유서를 쓰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내가 죽을 때를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다.
그렇게 결심하고 종이를 곱게 접어 봉투에 넣으려고 할 때였다.
“유서를 쓰는 건 개인의 자유고, 실제로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유서를 쓰지 않는 헌터도 많긴 해. 개인 정보에 관련된 거라 누가 함부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이용해 형식적으로 제출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실력을 과신해 지금 당장 죽지 않을 거라며 빈 봉투를 제출하는 헌터도 있어. 그런데 너희는 학생이잖아?”
“….”
“너희를 지도해야 하는 교관으로서 내가 너희 유서를 확인할 예정이니까 혹시나 아무것도 적지 않고 제출해서 괜히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은 만들지 말자?”…꼭 나를 지목해서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종이를 접던 손길을 멈춘 나는 안타깝게도 단념해야 했다.
어쩔 수 없다. 뭐라도 써야겠다.
─ 유서 ─
전투계 검술 계통
1학년 17반 11번 도견우
[세상에게>할 말은 많지만 지면이 모자라 하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쓰면 욕먹겠지?’
뭐라도 쓰려고 한 결과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쓰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때, 책상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나는 어느샌가 내 앞으로 다가온 유노을을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교관님?”
“지면이 모자라면 언제든지 말해. 교관님이 얼마든지 가져다줄게.”
“…아니요, 그냥 처음부터 다시 쓸 생각이에요.”
“내 생각에도 좋은 판단인 것 같아. 유서는 장난치라고 있는 게 아닌 거 알지?”
“네에….”
“견우는 가족
없니?”
“…저희 부모님 두 분 다 건강하게 잘 계시는데요. 여동생도 있고요. 그러는 교관님은 가족은 잘 계세요?”
“교관님은 가족이 없는데 그렇게 물으니까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려 하네. 흑….”
“아…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미안, 거짓말이야. 잘 살아 계셔.”
“….”
“근데 교관님이 가족이 없는 건 거짓말이 아니야. 절연했거든.”
“아, 네….”
“이야기가 어쩌다 옆길로 샜는데, 교관님이 말하고 싶은 건 마땅히 생각이 나는 내용이 없으면 가족한테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라도 쓰라는 거였어.”놀리는 것을 좋아하는 유노을이다.
예상치 못한 장난에 당황한 나는 그녀를 떠나보내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내 그녀의 조언대로 가족들에게 편지라도 쓸까 싶었다.
하지만 문장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음….’
너무 상투적이고, 낯간지럽다.
마음이 동하지 않다 보니 생각처럼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결국 나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유서를 제출하지 못했다.
의외로 다른 사람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홍예나는 그런 우리에게 말했다.
“유서는 자신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너희를 그리워할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걸 명심해. 오늘 제출하지 못한 사람은 과제로 내줄 테니까, 다음 주 월요일까지 해 오도록 해. 성의 있게 써 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만약 성의 없이 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한테는 중간고사 성적에서 감점을 줄 거야. 강의실 청소도 시킬 거고. 반대로 성의 있게 잘 쓴 사람에게는 내가 가산점을 부여할 거야.”
“내일부터 주말이죠? 주말이라고 너무 놀려고 하지 말고, 성실히 과제도 하기를 바랄게요! 그럼 얘들아, 다음 주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