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116)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116)
명가회
아카데미에 입학하고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주말.
전날에 유서를 쓰느라 고생한 나는 마음 같아서는 편히 쉬고, 늘어져서 주말을 보내고 싶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신검 도가라는 이름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는 말이 있듯.
신검 도가의 비호를 누리고 있는 나는 가문의 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얌전히 따라야 했다.
가문에서 참여하란 모임이 있으면 필히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처럼.
‘학원도시에 와서도 가문의 행사는 계속 따라다니는구나….’
명가회라는 모임이 있다.
계통이 같은 명가의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는 모임이라 표현하면 적합할 것이다.
신검 도가의 사람인 내 경우에는 검술명가의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명가회에 참석해야 했다.
게다가 검술명가 중에서 제일가는 신검 도가가 주도하는 모임인 만큼, 내가 불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내가 주최하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숙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나는 도시은과 함께 명가회에 가기 위해 후문으로 나섰다.
그녀는 약속 장소에 먼저 와서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견우야, 여기야.”
“미안, 누나. 내가 늦었지?”
“아니야, 제시간에 왔는걸.”
“누나는 일찍 나온 것 같은데… 언제부터 와 있었던 거야?”
“나도 온 지 얼마 안 됐어. 한… 10분 일찍 왔을 거야.”
늦지 않기 위해 약속 시간보다도 일찍 나왔다는 소리를 들으니 과연 자신에게 철저한 도시은답다.
시간 관리도 엄격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그녀를 오래 기다리게 했을 것이다.
앞으로 그녀를 만날 때는 적어도 오늘처럼 약속 시간에 늦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그건 그렇고… 꾸며서 그런 건지 평소와 분위기가 다르네.’
나는 도시은의 차림에 주목했다.
학원도시에 입국하고 난 이후로는 학생회장으로서의 그녀만 보았기에, 교복이 아닌 화사한 사복을 입고, 구두를 신은 모습이 꽤나 신선하게 여겨졌다.
하얀 얼굴에 박혀 있는 푸른 눈은 꼭 청아한 호수를 보는 듯했다.
무엇보다.
‘무심결에 귀걸이로 눈이 가네.’
반짝이는 목걸이도 그렇지만.
과하지 않고 은은히 드러나면서, 두 귀에 매달려 흔들리는 귀걸이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도시은이 단발이라서 그런 탓인지 더 눈에 띄는 것 같았다.
청초함에 화려함을 한 스푼 더한 느낌이었다.
그때,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귀걸이가 빛을 반짝였다.
“왜 그래?”
“…평소 보던 모습이랑 달라서.”
“아…. 다른 가문에서도 참여하는 모임이라, 괜히 트집이라도 잡힐까 오늘 옷차림에 신경을 좀 썼는데…. 화장도 조금 했고…. …별로니?”
“아니, 엄청 예쁜데? 잘 어울려. 특히 귀걸이 예쁘다. 학생회장일 때도 이렇게 다니지 그래?”
“…학생회장으로서 모범이 되고, 품위를 지켜야 해서 이런 차림으로 다닐 수는 없을 것 같아. 내가 좀 민망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예쁘다고 해 줘서 고마워.”
“근데 누나, 이 차림으로 이따가 검을 휘두를 수 있어?”
“그래서 갈아입을 옷도 챙겨 왔어.”
푸른 눈이 호를 그린다.
학생회장으로서의, 벼락꽃으로서의 도시은을 아는 사람은 보지 못했을 미소였다.
나는 눈이 녹아내리는 듯한 미소에 그녀를 따라 웃어 주었다.
“그럼 갈까?”
“그래.”
“어제 지도로 호텔 위치를 봤는데, 후문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견우야, 이쪽으로 와.”
“응?”
나는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도시은이 몸을 돌리던 내 손목을 불쑥 잡은 것은 그때였다.
그녀가 주차장을 가리켰다.
“버스를 타고 가는 건 불편하니까 차를 타고 가자.”
“차라니…. 누나, 차 있….”
삐빅!
“가자, 내가 운전할게.”
“….”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는 양.
도시은이 핸드백에서 차 키를 꺼냈다.
그녀가 차 키의 버튼을 누르자, 주차되어 있는 차량 중 한 대가 라이트를 점멸했다.
회색 승용차였다.
그녀는 그대로 내 손목을 끌고는 차량으로 이동했다.
“앞에 타.”
“누나, 운전면허 있었구나….”
“입학하고 학생증이 나오자마자 바로 땄을 거야. 차가 있으면 편하거든. 안전벨트 매도록 해.”
“….”
운전석에 앉은 도시은이 익숙한 동작으로 차에 시동을 걸고, 사이드브레이크를 내린다.
전후좌우를 살피며 핸들을 돌리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차를 부드럽게 모는 그녀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멋지네.’
나와 두 살밖에 차이 나지 않건만 굉장히 어른스럽다.
세련된 차림을 하고 차를 운전하는 모습이 꼭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 같았다.
한편으로 차를 타고 가는 쾌적함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학원도시의 전경을 구경하며 입을 열었다.
“나도 차나 한 대 살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 전에 면허부터 따야겠지만.”
“면허야 따면 되지. 차도 아버지나 가주님에게 사 달라고 하면 되고.”
“나는 아버지가 사 줬어.”
“나도 그럼 아버지한테 사 달라고 부탁해 봐야겠다.”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전생의 기억이 있으니까.
나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차를 사면 하늘이하고 애들이랑 어디 놀러 갈 때 편하겠어.’
* * *
검술, 마법, 백마법, 흑마법, 창술, 연금술, 방패술, 무술, 궁술, 정령술.
이 주요 10개 계통에서 제일가는 가문을 일컫는 십가문은 한국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다.
한국에 있는 모든 가문은 예외 없이 십가문의 뜻을 따라야 했다.
거부해서도, 거슬러서도 안 된다.
‘게임에서도 나온 설정이었지.’
약 200년 전, 대격변으로 인해 세상은 한 번 멸망했다.
그 세상이 재건되는 과정에 대두된 존재가 바로 헌터였다.
당시만 해도 영웅, 용사, 구원자, 각성자, 초인, 개척가 등등 여러 명칭으로 불린 그들은 자연히 재건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들이 각지에서 발호하며 너도나도 중심이 되겠다며 싸움을 벌였다는 점이다.
군웅할거의 시대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세상이 멀쩡하게 돌아갈 리가 없었다.
십가문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세상을 평정하고 재건하기 위해서 결의한 그들은 미쳐 날뛰는 세력을 정리했다.
그러나 자신을 영웅이라고 칭하는 자들이 다시는 궐기하지 않을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법이다.
몬스터의 위협에 맞서는 헌터들의 초인적인 힘은 인류에게 희망이며, 동시에 절망이기도 했다.
세상은 질서가 있어야 성립하는데, 얄궂게도 그들은 잠재적으로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혼란이었다.
그러니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들을 통제해야 했다.
십가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잠재적인 위험이었다.
모든 헌터가 그랬다.
그렇기에.
‘사회적 합의를 맺은 거지.’
한 번 몬스터에게 멸망한 세상을, 이번에는 자칫 그들 자신의 손으로 멸망시키지 않기 위해.
십가문의 주도 아래, 모든 헌터는 자신의 영혼을 걸고 맹약을 맺었다.
만약 약속한 내용을 어길 경우에는 영혼에 마땅한 제약이 가해질 수도 있는 맹세였다.
맹약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나,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만이 헌터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나, 모든 헌터는 협회의 존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하나, 모든 가문은 서로를 존중하고,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하나, 십가문은 일정 주기를 두고 주요 10개 계통 부문에서 제일가는 가문으로 임명한다.
하나, 십가문은 모든 휘하 가문의 총의를 대변한다.
하나, ….
그러한 맹약이 발효했기에.
세상은 지금 내가 사는 세상으로 개편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로부터 기원한 맹약은 구성원의 동의가 없게 되면 효력을 잃고 만다.
따라서 구성원의 동의를 얻기 위해 단합을 도모할 필요가 있었다.
명가회는 그러한 의미에서 기인한 모임 중 하나였다.
계통이 같은 명가끼리 단합하고,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또한 그들을 대표하는 십가문으로서 그들의 의견을 듣고, 지지를 받기 위해.
제아무리 십가문이 맹약에 의거해 휘하 가문의 총의를 대변할 수 있는 힘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도, 결코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고, 무시해서도 안 됐다.
권위는 아래에서 오는 법이니까.
학생들의 명가회도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신검 도가의 사람으로서, 검술명가의 학생들과 친분을 다지러 가는 것이다.
“지금부터 만날 사람들은 우리가 사회로 진출해서도 인연을 이어 갈 사람들이야. 그러니 그들과 되도록 화목하게 지내는 게 좋을 거야.”
“그쪽에서 시비만 걸지 않는다면 나도 반목하고 지낼 생각은 없어.”
학원도시 제23구, 레굴루스 호텔.
신검 도가가 보유한 호텔에 도착한 나와 도시은은 복도를 걸으며 이야기했다.
5년 동안 내 성격을 파악한 그녀는 내가 괜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충고를 건넸다.
“명가회는 단순히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이 아니야.”
“그럼?”
“의사를 결정하는 모임이기도 해.”
“의사를 결정한다고?”
“응.”
도시은의 설명에 따르면.
탄탄한 배경을 지닌 학생들이 모인 명가회는 아카데미의 정책 수립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한다.
명가회의 의견이 그 계통에 속한 학생 전체의 의견이기 때문이라고.
학생회장인 그녀도 그들의 의견을 절대 괄시할 수 없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명가회의 총의를 대변하고, 때로는 총의를 주도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대표야.”
대표는 학년별로 나뉜다.
각 학년의 대표는 그 학년에 속한 학생들의 총의를 대변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명가회를 주최하는 건 3학년 대표야. 올해는 내가 대표니까, 올해 명가회는 전부 내가 주최하게 될 거야. 그러니 견우 너는 내 옆에서 내가 하는 걸 보고 배우도록 해.”
“그러면 누나에게 3학년 검술 계통 학생들의 총의가 있다는 거야?”
“3학년 대표는 전체 학년을 포괄하는 대표이기도 해. 그래서 3학년 대표가 대변하는 총의는 곧 1, 2, 3학년 전원의 총의라고 볼 수도 있어.”
“그러니까 누나가 검술 계통에서 실세라는 뜻인 거네.”
“그게… 쉽게 말하면 그렇기는 해. 하지만 자신에게 총의가 따른다고, 그걸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해. 결국 총의란 구성원의 지지와 동의에서 나오는 거니까. 어디까지나 대표는 대변자지, 독재자가 아닌걸.”도시은이 똑 부러지게 주의했다.
과연 학적과 상관없이 모든 학년, 모든 계열과 계통의 학생들의 총의가 따르는 학생회장다운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의문이 하나 있었다.
“누나, 근데.”
“응. 궁금한 게 있으면 말해 줘.”
“학년마다 대표가 있다고 했는데, 1학년 대표는 어떻게 되는 거야?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한테 대표가 있을 수 있어?”
“1학년 대표는 너랑 승우야.”
“….”
“대표는 웬만하면 십가문의 사람이 맡게 되어 있어. 그야, 학생들의 총의를 휘두를 명분을 지닌 사람은 십가문의 사람밖에 없으니까.”
“….”
“그래서 내가 하는 것을 잘 보고 배워 두라고 말한 거야. 견우 너는 2학년이 되면 2학년 대표가 될 거고, 3학년이 되면 검술 계통 학생 전체의 총의를 대변하게 될 테니까.”…사실, 조금 예상하기는 했다.
도시은의 말대로, 총의를 대변할 명분을 지닌 사람이 십가문의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1학년으로 입학한 사람 중에서는 나와 사촌 도승우밖에 없는 것이다.
‘골치 아프게 됐네.’
1학년 검술 계통 학생들의 총의가 내게 따른다는 것은 기분이 좋은 한편, 성가시기도 했다.
내가 그들이 내는 목소리에 일일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과 같았다.
귀찮고, 번거롭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다.
내가 1학년 대표가 되지 않는다면.
‘도승우 그놈이 대표가 되겠지.’
내 사촌, 도승우.
놈에 대한 감정은 5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놈에게 학생들의 총의가 따르는 모습을 좌시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스토리를 진행하게 된다면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검술 계통의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있는 대표를 내가 차지하고 있기는 해야 했다.
‘문제는 내가 명가회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는 건데….’
시간이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나를 단련해야 하는 것은 물론, 연하늘, 강한별과 다른 애들에게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명가회를 관리할 시간이 없다.
이에 나는 비슷한 고민을 했었을, 학생회장과 명가회의 대표를 맡은 도시은에게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그래서 앞으로 만날 사람들하고 사이좋게 지내라 한 거야. 그들을 네 계파로 포섭할 수 있도록. 그 사람들한테 네가 해야 할 일을 맡기는 거야.”
“계파라….”
“그러니 가서 사람들을 잘 살피고, 네 힘이 돼 줄 사람들을 찾기로 해.”
“그래야겠네.”
“걱정하지 마. 내가 도와줄 테니까. 2학년 대표도 도와줄 거야.”
“정말? 고마워, 누나.”
내 역할을 대리해 줄 계파를 만든다.
확실히 그 수가 있기는 했다.
나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연회장 입구에 섰다.
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검술명가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걸 옷에 부착하도록 해. 서로가 잘못해서 실례를 범하지 않도록 어느 가문의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한 표식이니까.”
핸드백을 뒤적거린 도시은이 내게 조그마한 배지를 내밀었다.
신검 도가의 문장의 형태를 취한, 노란 배지였다.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사자를 형상화한 배지를 달았다.
“그럼 들어가자.”
“응.”
나와 같은 배지를 가슴팍에 부착한 도시은이 앞장선다.
나는 문을 연 그녀를 따라 연회장으로 발을 들였다.
“….”
‘…많기도 하네.’
연회장으로 들어서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우리를 보고 대화가 끊어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가볍게 주위를 슥 훑어본 바로는, 적어도 수십에서 이백은 될 듯했다.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많은 시선이 우리에게 꽂혀 떠나려 하지 않으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부담 갖지 마. 다들 우리가 신검 도가의 사람이란 것을 알고서 궁금해하고 있는 거니까.”
“알고 있어. 그러니까 저 사람들을 일일이 상대해야 하는 거지?”
“일일이 상대하는 게 좋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하루 만에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니 천천히 알아 가도록 해. 우선, 중요도가 높은 가문 사람들과 안면을 트는 것부터 시작하자.”
“어느 가문들인데?”
“첫 번째로 교류해야 하는 가문은 우리와 함께 5대 검술명가로 통하는 가문의 사람들이야.”
“그럼 어디에 있나 찾아봐야겠네.”
“괜찮아,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으라고?”
“그쪽에서 알아서 찾아올 거야.”
“….”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예의가 있듯, 가문과 가문 사이에도 예의가 있어. 격이 낮은 가문이 격이 높은 가문에 인사를 하러 오는 것이 예의야. 이 중에서 가장 격이 높은 우리는 기본적으로는 먼저 다가가지 않고, 인사를 받아 주는 게 예의고.”
“…그런 거구나.”
“응, 그러니 우리는 가만히 있다가 인사를 받아 주면 돼. 가장 먼저 인사하러 오는 가문은 5대 검술명가일 거야. 그 뒤로 격이 차례차례 낮은 가문들이 올 거고.”신검 도가에서 가르침을 받을 때, 가문 간의 예법도 배우기는 했다.
다만 그동안 다른 가문의 사람들과 공식적인 행사에서 만날 일이 없어 예법에는 서툴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명가회는 내가 처음 참가하는 공식 행사였다.
나는 예법 선생님이라도 된 것처럼 옆에서 조곤조곤 가르치는 도시은의 목소리를 새겨들었다.
그러던 그때, 그녀가 귀띔했다.
“온다.”
“….”
“마침 견우 너한테 소개하고 싶은 가문이었어. 나는 저 가문의 아이를 계파로 삼는 것을 추천할게.”
인파 속에서 한 무리가 움직였다.
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우리에게로 걸어왔다.
‘저 애는….’
나는 그중에서 낯이 익은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였다.
조역이냐 악역이냐 하면, 조역이었다.
“진홍 노가의 사람들이야.”
“…응.”
도시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가운데.
나는 그 여성에게 집중했다.
180에 버금가는 큰 키.
전투를 치르는 것에 있어 유리한, 길쭉한 팔다리.
진홍빛을 띠는, 길고 긴 머리칼을 검은 리본으로 묶은 헤어스타일.
갈색 눈동자.
“학생회장도 하고, 대표도 하느라 많이 바쁘겠다. 올해도 잘 부탁해.”
“나야말로 잘 부탁해. 그쪽은….”
“이번에 입학한 우리 쪽 사람이야. 안 그래도 인사시키려고 데려왔어. 효원아, 인사해. 아마도 입학식에서 한 번 봤겠지만, 너보다 2년 선배인 도시은이라고 해. 올해 학생회장이 된 사람이지. 이번 모임을 주최한 신검 도가의 사람이기도 하고. 이명은 벼락꽃이라고, 들어는 봤지?”“안녕하세요, 도시은 학생회장님. 진홍 노가의 노효원이라고 합니다. 입학식에서 학생회장님의 연설을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학생회장님의 검을 견문해 보고 싶기도 하고요.”“네 얘기는 입학 전부터 들어 봤어. 휘찬이랑 나는 편하게 지내는 사이니, 학생회장이라고 딱딱하게 부르지 말고 편하게 불러도 돼. 언니나, 선배라든가.”
“그럼 앞으로 선배라 부르겠습니다. 시은 선배.”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해. 그러면… 이제 우리가 소개할 차례네. 견우야?”
“아, 응.”
진홍 노가의 노효원.
이명, 투희(鬪姬).
나는 그녀와 인사를 나눴다.
“도견우라고 해. 이명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