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118)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118)
입학하고 처음으로 맞는 주말이다.
쉬는 날이니만큼, 마음 같아서는 도견우와 시내로 나가 바람도 쐬고, 즐겁게 놀고 싶었건만.
안타깝게도 그는 달리 일정이 있어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됐다.
검술명가 학생들끼리 단합을 다지는 명가회가 있다는 모양이다.
‘이럴 때마다 깨닫는단 말이지….’
도견우가 가끔 가문과 관련된 일로 자리를 비울 때면 실감하고는 한다.
그가 부모가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아인으로 태어나, 보육원에 버려져, 사회적 약자로 살아온 자신과 달리,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명가의 사람이었다.
심지어 모든 명가의 위에 군림하는 십가문 중 하나인 신검 도가의.
그가 자신의 배경을 드러내지 않아 이따금 의식하지 못하는 것일 뿐, 원래라면 소꿉친구로서 이렇게까지 친해질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자신과 도견우는 대등하지 않다.
이 관계가 대등하게 보이는 것은 전적으로 그가 자신에게 맞춰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마음이 바뀐다면 언제든 청산될 수밖에 없는 관계다.
자신은 항거할 수 없다.
사는 세계가 다르니까.
서로에 대해서 깊이 알 수 있고, 서로를 삶의 일부로 여기도록 만든 5년이란 시간은 꿈을 꾸는 것처럼 덧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 버리지 마….’
그렇게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서 씁쓸한 현실을 자각하게 될 때면.
연하늘은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할 우울감에 빠지고는 했다.
도견우가 기존의 태도를 뒤집고 자신을 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마음속으로 땅을 팠다.
감정을 통제할 수 없게 될 때면 못된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다.
차라리.
‘견우가 어디 가지 못하게 방에서 꽁꽁 묶어 두고 키우는 거야.’
하고.
자신과 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 죽을 때까지 붙잡는 것이다.
아니, 죽은 후에도.
‘이참에 흑마법이나 공부해 볼까.’
흑마법사들이 어째서 영혼에 대한 연구에 심취하는지 알겠다.
연하늘은 나쁜 생각을 품었다.
어디까지나 상상만 할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분출했다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숙지하고 있었다.
애초에 자신이 두려워하는 가정은 그저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5년이란 시간에도 의미는 있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절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와 확신을 안겨 주었다.
그러니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걔가 나 없이 어떻게 살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도견우를 닮은 토끼 인형을 껴안고 침대를 뒹굴뒹굴 구르던 연하늘의 얼굴에 피식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내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주말이라고 방에 있을 수는 없지. 밖에서 산책이나 하고 와야겠다.”
돌아오는 길에는 편의점에 들러서 딸기우유를 사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자신에게 주는 보상이다.
기운을 차린 연하늘은 밖에 나갈 채비를 꾸리려 했다.
노크 소리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네에, 누구세요?”
“하늘아, 나야! 네 애인!”
“은비?”
문밖에서 고은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하늘은 슬리퍼를 신은 발을 끌고 문가로 다가갔다.
그녀가 고은비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었다.
“은비야, 무슨 일이야?”
“방에만 있기 심심해서 놀러 왔지! 뭐 하고 있었어?”
방으로 들어오자 연하늘을 껴안고, 강아지처럼 얼굴을 비비는 고은비.
이제는 그녀의 스킨십에 익숙해진 연하늘은 간지러워하면서도 조심히 그녀의 몸을 쓸어 주었다.
길쭉한 토끼 귀는 기분 좋다는 듯 깡충깡충 쫑긋거렸다.
“나도 방에 있기만 하면 답답해서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려 그랬지. 겸사겸사 딸기우유도 사 오고….”
“하늘이, 딸기우유 좋아하는구나? 아카마켓에서 딸기우유랑 초코우유 한 박스씩 사 줄 테니까, 내 방에서 평생 베개로 살래?”
“응? 정말? 그럴까?”
“아싸! 안고 자는 베개 겟또다제!”
“겟또다제? 그게 뭐… 꺄악!”
풀썩!
모르는 사이 고은비의 기술에 당한 연하늘이 침대 위로 쓰러졌다.
그녀의 몸 위로 올라탄 고은비가 숨겨 왔던 손놀림을 선보였다.
고은비의 테크닉을 이기지 못한 연하늘은 자지러지며 몸을 꼬았다.
간질거림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으, 은비야, 이제 그마아앙…!”
“이제 그만하라고? 견우도 없겠다, 여기서 그만할 수는 없지! 연하늘! 오늘 집에 못 갈 줄 알아!”
“여, 여기는 내 바아응….”
그동안 연하늘을 구석구석 만지며 그녀가 민감해하는 부분을 파악한 고은비였다.
도견우보다 그녀의 약점을 훨씬 더 자세히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고은비는 그녀의 애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게 그녀의 몸을 이리저리 탐했다.
“후우…. 오늘 하루도 알찼다.”
“아….”
한바탕 장난을 끝내고.
고은비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슥 닦아 냈다.
자신의 사명을 마친 그녀는 개운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반면 침대에 축 늘어진 연하늘은 심경이 복잡하기만 했다.
‘벌써… 끝난 거야?’
겉으로는 싫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속으로 은근히 즐기던 연하늘이었다.
그런데 채 즐기기도 전에 멋대로 고은비가 행위를 중단해 버리면서, 그녀는 기분이 붕 떠 버리고 말았다.
분명 다행으로 여겨야 할 상황인데, 이상하게 만족스럽지 못하고 아쉽다.
“하늘아, 기분 좋았어? 나 잘하지?”
“….”
정작 고은비는 자신만 만족해하며 옆에 누워 희희낙락거리고 있었다.
연하늘은 그녀가 몹시 얄미웠다.
‘견우는 안 이러는데.’
그만 비교하고 만다.
도견우는 험하게 건드리지 않고, 자신을 무슨 예술품이라도 되는 양 섬세하고 소중한 손길로 다뤘다.
그러면서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스치는 감각에조차 자극이 강해서 몸이 전율할 정도였다.
더욱이 그는 남자답게 손이 크고, 손가락은 예쁘고 길쭉해서….
‘…그리고 단단하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마음속에서 불만이 고개를 내민다.
실실거리는 고은비에게 짜증이 난다.
연하늘은 복수를 다짐하기로 했다.
“에잇!”
“꺄악!”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연하늘이 고은비의 위를 점했다.
조금 전과 상황이 반대가 됐다.
“하, 하늘아…?”
“나한테 불을 지핀 건, 은비 너야.”
“자, 잠깐, 우리 대화로 풀자아응!”
“내 방에 들어온 것도 너고.”
“꺄악, 하, 하지 마아아앙!”
“너도 한번 똑같이 당해 봐.”
공수 교대다. 2차전이다.
고은비만 지금껏 만져 댄 게 아니라, 연하늘도 틈틈이 그녀를 만져 댔다.
그 말인즉슨, 고은비가 연하늘의 약점을 파악한 것처럼, 연하늘 또한 고은비의 약점을 파악했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연하늘은 고은비가 도망치지 못하게 엉덩이로 그녀의 배를 꽉 누르고, 현란하게 손을 움직였다.
자신이 불완전연소를 한 감각을 맛봤듯, 그녀의 몸에도 알려 줄 생각이었다.
그녀가 저항하지만 소용없다.
키가 큰 연하늘을 당해 내지 못한다.
체내 마나를 발현한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마나를 다루는 측면에서는 연하늘이 압도적으로 우월하다.
올해 수석으로 마법 계통에 입학한 그녀를 막아 낼 재간이 되지 못한다.
“흐윽….”
“참지 않아도 돼. 그냥 받아들여.”
결국 고은비는 자신이 벌였던 대로 똑같이 농락당해야 했다.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주위에 보는 사람이 없었던 탓에 연하늘이 폭주해 버린 것이다.
“에잇!”
“…!”
하지만 고은비는 굳셌다.
완전히 쾌락에 몸을 맡기지 않은 그녀가 기회를 노려 반전을 꾀했다.
연하늘의 힘을 역으로 이용해서는 서로의 위치를 뒤바꾼 것이다.
레인저를 지향하는 그녀에게 있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에잇!”
“…!”
그러나 연하늘도 가만히 당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녀가 역으로 고은비를 침대에 쓰러뜨렸다.
그렇게 서로가 위를 차지하기 위한 장난질이 반복되었다.
두 사람은 침대 위를 굴렀다.
“이, 이제 그만하자….”
“나, 나도 포기….”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은 진이 다 풀려 버린 채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더는 장난을 칠 힘도 없었다.
그들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숨을 골랐다.
“하늘아, 우리 지금 뭐 한 거지?”
“그러게….”
호흡이 안정되고, 평정심을 찾은 두 사람에게 드리운 감정은 허무함과 알 수 없는 자괴감이었다.
그들은 잠시 말없이 시간을 보냈다.
“아까 산책하러 간다고 했었나?”
“응. 딸기우유도 사고.”
“조금만 쉬다 나갈까?”
“그래, 그러자. 한 10분만 쉬고….”
“이따 저녁에는 뭐 먹을까?”
“그러게….”
그동안 저녁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친구들과 같이 먹고는 했다.
그런데 오늘은 두 사람과 강한별, 박사군 넷이서 먹게 될 판이었다.
도견우도 그렇고, 세쌍둥이, 용해랑, 민아린도 명가회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리사도 그레이스 제국의 사람들과 교류회가 있다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은솔이도 명가회에 참가한다고 그랬지….’
연하늘은 문득 입학시험에서 친해진 차은솔에 대해 떠올렸다.
시험이 끝난 이후로 그녀는 종종 차은솔과 연락하고 지내왔다.
얼마 전, 차은솔의 연락에 따르면 그녀도 명가회에 참석한다는 듯했다.
도견우가 없는 주말에 그녀를 만나 저녁을 먹을 생각을 하던 그녀로서는 그러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한편으로 이번에 알고 놀랐다.
‘은솔이가 순환 차가의 사람이었다니….’
정령술 계통에서 제일가는 명가인 순환 차가.
설마 차은솔이 십가문 중 하나인 순환 차가의 사람일 줄 몰랐다.
그녀도 자신과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연하늘은 처음 그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하간 명가회에 초대받지 못한 연하늘은 자신과 처지가 같은 이들과 저녁을 해결해야 했다.
‘아예 초대받지 않은 건 아니지만….’
딱 하나.
연하늘이 초대받은 모임이 있기는 했다.
신검 도가의 후원을 받는 사람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교류회였다.
주관하는 가문이 같다 보니, 장소는 명가회가 진행되는 호텔 아래층이었다.
다만 그녀는 낯을 가리는 성격상,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교류회에 혼자서 참가하고 싶지 않았다.
도견우가 있었다면 모를까.
‘…견우는 거기서 저녁을 먹겠지?’
정말이지 없으면 허전한 소꿉친구다.
겨우 몇 시간 보지 않은 것만으로 도견우가 그리워진다.
“….”
보고 싶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연하늘은 입을 열었다.
“은비야.”
“응, 왜? 뭐 먹을지 생각해 봤어?”
“우리 견우 먹… 아니, 보러 갈까?”
“견우? 어떻게 보러 가게? 견우는 지금 명가회에 참석한 거 아니야?”
“그 밑에서 신검 도가의 교류회가 열린다고 하더라고. 거기 가면….”
“나는 도가의 후원을 받지 않는데, 참석할 수 있을까?”
“내 동행으로 참석하면 될 거야. 아니면 견우한테 물어볼까?”
“거기 가면 맛있는 것도 많겠지? 나는 찬성이야! 견우한테 물을 거면 한별이랑 사군이도 같이 데려가면 안 되냐고 묻는 건 어때?”
“응, 톡 해 볼게.”
“하늘아.”
“응?”
“그렇게 좋아? 얼굴이 환하네?”
“…몰라아.”
* * *
명색이 자신의 검에 자부심을 갖는 검술명가의 사람들인 만큼, 단순히 주위를 돌아다니며 하하 호호 수다나 떨기만 해서는 섭하다.
검을 쓰는 사람과는 말이 아니라 검으로 대화를 나눠야 하는 법이다.
게다가 이번 명가회의 주된 목적은 신입생과 선배의 원활한 융화에 있었다.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함이다.
검술명가의 사람들이 게이트에서 서로의 실력을 자랑하고, 칭찬하는 단합회는 그 취지에 충분히 부합한다고 할 수 있었다.
“단합회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저희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곳, 레굴루스 호텔 지하에는 인공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단합회는 그 안에서 진행된다.
검술명가의 학생들과 조금이나마 인연을 튼 나는 단합회에 참가하러 지하로 내려갔다.
그러면서 생각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하늘이가 교류회에 오겠다고 하고, 웬일이지….’
조금 전, 연하늘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가 고은비, 강한별, 박사군과 신검 도가의 교류회에 참석하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굉장히 의외이기만 했다.
갑자기 교류회에 참석하고 싶다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다.
‘보나 마나 은비가 꼬드긴 거겠지.’
당장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가정은 그것밖에 없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고은비의 성격이라면 그럴듯하다.
여하간 거절할 이유가 없던 나는 연하늘의 부탁을 흔쾌히 허락했다.
‘잘하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신검 도가의 교류회도 이 호텔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기회를 보고 명가회를 빠져나와서 연하늘을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기분이 들떴다.
‘몇 시간 동안 검 얘기만 해 대니까 하늘이 귀나 만지고 싶네.’
곁에 없으면 허전한 소꿉친구다.
그래서 소꿉친구라고 하나 보다.
그녀의 부재에 공허함을 느낀 나는 머지않아 인공 게이트 앞에 섰다.
‘황색인가.’
이미 가동 중인 인공 게이트.
차원의 색상을 확인한 나는 이윽고 게이트로 발을 들였다.
[게이트에 입장했습니다.] [황색: 바이슨의 초원 I]바이슨.
덩치가 크고, 머리에 큰 뿔이 난, 들소처럼 생긴 몬스터를 가리켰다.
들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납고 난폭한 놈들이었다.
[공략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게이트 키를 지닌 블러드 바이슨을 토벌하시오.]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치운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연 풀숲이 자란 초원 여기저기서 여러 종류의 바이슨들이 보이고 있었다.
‘황색 게이트니 출몰하는 개체는 최대 3랭크까지겠네.’
놈들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곧장 공격해 올 기미는 없었다.
그래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나는 언제든 군청검을 뽑을 수 있게, 허리춤에 찬 검집에 손을 얹었다.
도시은이 수행원들의 도움을 받아 마이크를 작동한 것은 그때였다.
[단합회에 대해 설명하도록 할게.]차분한 어조로 입을 연 도시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이 게이트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는 바이슨 계열밖에 없어. 우리는 바로 그놈들을 사냥할 거야. 그렇게 해서 얻는 부산물은 알아서 하도록 해. 신검 도가는 이 게이트에서 얻는 모든 부산물에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을 거야. 부산물의 소유권은 어디까지나 본인에게 달려 있어.]인공 게이트의 운임도 받지 않겠다니 통이 큰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3랭크 몬스터의 마석이나, 그에 준하는 부산물이 나오는 황색 게이트였다.
학생들은 구미가 당긴다는 것처럼 저마다 감탄사를 흘렸다.
[다들 게이트 공략 조건은 확인했을 거야. 바이슨 중에는 3랭크에 해당하는 블러드 바이슨이란 개체가 있어. 필드에 존재하는 몬스터가 일정 수준 이하로 감소할 때마다 출몰하는 필드 보스지.]“….”
[단합회는 그놈들에게서 게이트 키가 나오는 시점에서 종료할 거야. 그러니 그때까지 열심히,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죽이기를 바랄게. 혼자서든, 파티를 짜든 자유롭게 싸우도록 해.]친목을 다지기 위함이었던 만큼.
도시은이 기획한 단합회에는 과도한 경쟁이 배제되어 있었다.
덕분에 학생들은 순수하게 즐기면서, 성과에 따라 보상을 얻을 수 있게 됐다.
그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렸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럼 단합회를 시작하도록 할게. 다들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도시은이 주의 사항까지 이야기하고.
마침내 단합회가 시작되었다.
자리에 있던 학생들은 검을 뽑아 들며 몬스터를 사냥하러 초원으로 뛰어갔다.
그런 반면, 나는 자리를 지켰다.
그야.
“미안, 기다렸지? 우리도 이제부터 바이슨들을 사냥하기로 하자.”
“오랜만에 누나랑 같이 싸우겠네.”
“그러게. 5년 전 이후로 처음인가? 그때처럼 잘해 보자.”
도시은과 파티를 짜기로 했으니까.
그녀는 수연검을.
나는 군청검을 발도했다.
* * *
정령술명가회를 주관하는 가문은 십가문 중 하나인 순환 차가다.
정령술 계통 학생들을 선도하고, 그들의 총의를 대변하는 역할은 곧 순환 차가의 사람에게 있는 셈이다.
그로 인해서 순환 차가의 직계인 차은솔은 그녀의 본의와 상관없이 가문의 사람들에게 끌려와 명가회에 참석해야 했다.
“지금 오는 사람들은 우리 가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문의 사람들이야. 그러니 괜히 기분 상하지 않게 하고, 되도록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해.”
“네, 오빠. 그럴게요.”
“네에….”
귀찮은 일을 싫어하는 그녀로서는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3학년 대표를 따라다니면서 대표로서의 교육까지 받아야 했다.
물론, 대표가 될 생각은 없었다.
순환 차가 역시 그녀가 대표로서 역할을 다할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형식상으로 듣는 것일 뿐, 1학년 대표를 담당할 사람은 달리 정해져 있었다.
애초 정령술 계통의 수석 입학생은 그녀가 아니기도 했다.
“은서는 잘 배우도록 해. 은솔이는 알아만 두고.”
“걱정하지 마세요.”
“네에….”
순환 차가의 방계, 차은서.
정령술 계통에서 수석으로 입학한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비록 직계보다 격이 떨어진다지만, 순환 차가는 차은솔을 대신해 그녀를 대표로 삼을 예정이었다.
그녀도 그 속내를 모르지 않았기에 열심히 교육을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대용품에 지나지 않았다.
구성원의 관리와 대외 활동을 위한 형식적인 대표일 뿐이었다.
인사하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아닌 차은솔에게 관심을 보였다.
“안녕하세요, 선배. 저는 차은서….”
“은솔아, 오랜만이야. 우리 예전에 한 번 만난 적 있는데, 혹시 기억하니?”
“안녕하세요. 근데 누구세요.”
“아….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하긴, 그때는 잠깐 말을 섞어 보기만 한 게 끝이었으니까. 그럼 처음 만나는 거라 치고, 정식으로 소개할게. 나는….”
“….”
사람들이 차은솔과 차은서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차이가 났다.
직계와 방계의 차이이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차은솔이 특별했던 탓이다.
정령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대다수가 천성적으로 품는 자질이 바로 정령 친화력과 감응력이다.
정령들의 사랑을 받는 자질.
그녀는 그 자질을 강하게 타고났다.
세상에 현존하는 정령사를 통틀어,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앗! 내 물방개가…!”
“…안녕?”
“….”
차은솔이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정령들은 꼭 페로몬에라도 홀린 듯 그녀에게 접근했다.
오죽하면 다른 사람과 계약을 맺은 정령들까지 몰려들 정도였다.
그만큼 그녀가 품고 있는 자질은 다른 정령사들과 궤를 달리했다.
그녀야말로 진정한 천재였다.
그런 그녀가 바로 옆에 있었으니,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그녀에게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예상한 일이잖아. 신경 쓰지 마….’
차은솔과 비교돼야 하는 차은서는 울컥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마음을 추스르려고 했다.
어렸을 적부터, 아니, 오래전부터 겪어 온 일이었다.
서로 나이가 같았던 그들은 으레 가문에서 비교당하고는 했다.
“….”
게으름을 피우는 차은솔을 대신해 갖은 일을 도맡은 것도.
그녀의 대용품처럼 여겨진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죽을 때까지, 앞으로도 평생.
‘…질시하지 마.’
어찌할 수 없는 숙명이다.
차은서는 이를 빠득 악물었다.
3학년 대표가 말한 것은 그때였다.
“어라? 은솔이 얘가 어디 갔지?”
“어…. 그러게요. 제가 찾아올게요.”
차은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상념에 빠져 있었던 사이, 곁에 있어야 할 차은솔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짜증을 억누르며,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령들이 몰린 곳을 찾으면 됐기에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차은솔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얌? 배고파서 밥 먹고 있어.”
접시에 음식을 산처럼 쌓아 놓고.
차은솔은 입안에 음식을 가득 담고 우물거리고 있었다.
순환 차가의 사람에 걸맞지 않게 품위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차은서는 어처구니없기만 했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을 꺼냈다.
“그만 먹고 돌아가자. 인사해야 할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단 말이야.”
3학년 대표가 기다리고 있다.
순환 차가의 사람으로서 마땅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차은서는 좋게 타일러 차은솔을 데려가려고 했다.
그때, 음식을 꿀꺽 삼킨 그녀가 대뜸 물었다.
“그냥 너 혼자 하면 안 돼?”
“뭐?”
“어차피 대표는 내가 아니라 너잖아. 나는 없어도 되지 않아?”
“….”
순수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차은솔.
그녀가 얌 하고 음식을 먹는다.
“나도, 그러고 싶다고….”
그런데 다들 내가 아니라 너한테 관심을 보이잖아.
차은서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가 내 마음을 알아?’
천재로 떠받들어지는 차은솔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범재로 태어나, 노력을 통해서 수재밖에 되지 못한 자신의 심정을.
‘너는 평생 모르겠지.’
그녀의 이해를 바라서는 안 된다.
이해를 바라는 것은 사치다.
차은서는 몇 번이고 깨닫는다.
“얌얌. 맛있네. 하늘이가 같이 먹자고 했는데 그냥 데려올 걸 그랬나…. 아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