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13)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13)
집 밖에 있는 훈련장은 조금 전에 사용인들이 청소를 마쳐서,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듣고, 훈련장에 가기로 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나도 훈련 같이 할래!”
“예은이 너도?”
그동안 분위기를 파악하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도예은.
그런 예은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폴짝폴짝 뛰는 기세로 보았을 때, 섣불리 거절했다가는 집안을 한바탕 울음바다로 만들 것 같았다.
“음….”
어머니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인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이내 어머니가 내게 시선을 보내며 어떻게 할 것인지 의견을 구했다.
‘어쩔 수 없네.’
예은이가 저렇게 보채기도 하고, 삐순이로 변모하면 뒤가 피곤하다.
나는 예은이랑 놀아 주기로 하며, 연하늘에게 양해를 얻기로 했다.
“하늘아, 예은이도 끼어도 될까?”
“응, 나는 괜찮아. 나도 예은이하고 같이 놀고 싶은걸?”
“그럼 다행이고…. 예은이 너, 대신 하늘이 훈련하는 거 방해하지 말고 옆에서 조용히 훈련해야 한다?”
“응! 나 조용히 잘할 수 있어!”
연하늘이 순순히 받아들여 준 덕에 예은이도 끼게 되었다.
이에 우리는 준비를 마치는 대로 훈련장에 나서기로 했다.
“옷 갈아입고 밖에서 보기로 하자. 훈련장은 어디에 있는지 알지?”
“응, 아까 오면서 봤어. 근데 옷은 어디에서 갈아입으면 될까?”
“마침 예은이도 갈아입어야 하니까 예은이 방에서 갈아입도록 해.”
“언니! 이리 와! 내 방으로 가자! 방에 몽순이도 있다!?”
“어!? 자, 잠깐…!”
“쟤가 정말….”
예은이가 끼니 정신이 없다.
예은이는 대뜸 연하늘의 손을 끌고 쏜살같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와 어머니는 사라진 그녀들을 보고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나서 나도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올라갔다.
―언니! 얘가 몽순이야!
―와, 얘는 정말 순하다.
예은이의 방이 바로 옆에 있었다.
예은이가 어찌나 크게 말하던지, 내 방까지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간간이 연하늘의 소리도 들렸다.
‘둘이 잘 노는 모양이네.’
방에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옷을 갈아입는 동안 옆방에서 까르르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자, 잠깐 어디를 만지… 꺄악!
‘…대체 뭘 하는 거지.’
연하늘이 꺅 소리를 질렀다.
아무래도 한참 더 저럴 것 같았다.
훈련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몽실아, 형 훈련하러 갈게.”
연하늘이 온 것을 아는 것일까.
아니면 나를 반가워하는 것일까.
나는 흥분해서 사육장을 나오려고 뛰어오르는 몽실이에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최근에 사육장을 높여, 몽실이는 내가 방에서 나갈 때까지 사육장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처음에는 뭘 가르치는 게 좋을까. 일단은 훈련장 주위를 달리게 해서 몸을 풀게 하는 게 낫겠지?’
이윽고 훈련장으로 나오고.
나는 가볍게 준비 운동을 하면서 연하늘에게 어떤 것부터 가르칠지 궁리했다.
‘기초 체력을 위주로 단련시키고, 남는 시간에 검술도 가르쳐야겠네.’
마나를 제어하는 방법도 알려 줄지 잠시 고민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괜히 좋지 않은 버릇을 들일 수도 있었다.
고민은 단념하기로 했다.
‘검술은 내가 조언해 줄 수 있지만, 마나는 내 전문성이 많이 떨어져. 마나 제어술을 알려 주는 것은 그냥 전문 교사에게 맡기는 게 낫겠어.’
그러니 마나 제어술은 보류한다.
나는 그렇게 계획을 짜면서 얼른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안해, 우리가 좀 늦었지?”
“우리 왔어!”
연하늘과 예은이가 나타났다.
체육복을 입은 연하늘은 오자마자 미안하다며 사과를 건넸다.
“뭘 하다가 이제 온 거야?”
“그게, 예은이 때문에….”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예은이의 장난에 휘둘리다가 그만 늦어지고 만 것이리라.
이에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훈련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때, 예은이가 화제를 던졌다.
“오빠! 그거 알아?”
“뭐가?”
“있지, 하늘이 언니는 정말 굉장해! 갈아입는 걸 봤눕…!”
“예은아, 그런 건 말 안 해도 돼.”
“….”
예은이가 말을 하려는 도중에 돌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버린 연하늘.
나는 입가를 씰룩이는 그녀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이내 연하늘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웃고 있었다.
“왜 그래? 훈련 안 할 거야?”
“…그래, 훈련이나 하자.”
“웁웁!”
못 들은 척하라는 듯한 뉘앙스.
연하늘에게 암묵적인 위협을 받은 나는 화제에 관심을 끄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훈련을 시작했다.
우선, 열 바퀴 완주였다.
‘생각보다 더 잘 뛰네.’
아인이라서 그런 걸까.
연하늘은 나보다 뒤처지기는 해도 페이스를 잘 유지하며 뛰어왔다.
제법 운동 신경이 있는 것 같았다.
* * *
운동에는 나름대로 자신 있었건만,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을 쓴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으….”
몇 시간 동안 이어진 훈련을 마친 연하늘은 허벅지 뒤쪽을 주무르며 앓는 소리를 냈다.
경험적으로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스쿼트를 하는 데 사용된 엉덩이와 다리에 알이 배길 것 같았다.
“처음 하는데도 잘하네. 다음에는 무게를 40으로 늘려서 해 보자.”
“…진심이야?”
“그때 가서 안 되면 낮추면 되지. 헌터가 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해.”
“….”
스쿼트를 40Kg로 하겠다니.
그 정도면 자신의 몸무게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무게였다.
연하늘은 장난을 치는 듯이 말하는 도견우를 째릿 노려보았다.
부디 농담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여하튼 그녀는 훈련하며 흘린 땀을 씻으러 가기로 했다.
그러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저녁 준비해 놨으니까 씻고 나서 저녁 먹고 가렴. 훈련하느라 배도 많이 고팠을 거 아니니?”
주방에서 나온 도견우의 어머니가 저녁을 먹고 가라고 권유한 것이다.
생각지 못한 제안을 받은 연하늘은 깜짝 놀라서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집에서 먹으면 되는걸요.”
이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거듭 거절했으나, 도견우의 어머니를 이기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사양하지 않아도 돼. 이 늦은 시간에 저녁도 먹이지 않고 하늘이 너를 그냥 집에 보내 버리면, 너희 집에서 날 어떻게 생각하겠니? 그러니 나를 생각해서라도 집에서 저녁 먹고 가렴.”
“…감사합니다.”
“그래! 언니! 나랑 같이 밥 먹자!”
도견우의 어머니는 정말 다정하다.
꾸벅 고개를 숙인 연하늘은 이내 도예은을 따라 욕실로 들어갔다.
‘진짜 럭셔리하우스네….’
보육원에는 샤워실밖에 없건만.
도견우의 집에는 드라마에서 보던 커다란 욕조가 있었다.
연하늘은 그 욕조에 몸을 담그며 드라마 속 세상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사실, 그 정도로 크지는 않았지만, 욕조에 몸을 담근 일이 드문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충분했다.
“에잇! 에잇!”
“꺅! 예은이 너어….”
그때 도예은이 물을 뿌렸다.
따뜻한 물 속에서 안락감을 느끼던 연하늘은 얼른 장난에 응수해 줬다.
보육원에서 그녀 또래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일상이기도 했던지라, 그녀와 친해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도예은은 보육원 아이들보다 더 기운차서, 상대하는 자신도 적잖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그런 한편으로….
‘나이가 어려도, 명가의 사람이라 그렇게 훈련할 수 있던 걸까?’
도예은은 기운이 셀 뿐만 아니라, 체력도 무척 좋았다.
7살 아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자신과 비슷한 강도의 훈련을 척척 수행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 모습과 다르게 자신에게 물을 뿌려 대며 장난을 치는 그녀는 영락없이 그 나이 또래 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에잇! 에잇!”
“에잇! 에잇!”
그렇게 첨벙첨벙, 첨벙첨벙.
연하늘은 훈련을 하고서도 아직도 힘이 남아도는 도예은과 놀아 준 뒤에 몸을 씻었다.
욕실을 나왔을 때쯤에는 도견우도 목욕을 마치고 식탁에 앉아 있었다.
연하늘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엄마, 그런데 아빠는요?”
“아빠는 일이 늦어질 것 같다면서 밖에서 먹고 온다더라고.”
식탁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연하늘은 샤부샤부를 먹었다.
샤부샤부는 드라마에서나 봤을 뿐, 직접 먹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거짓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바로 데쳐 먹어야 하는 샤부샤부의 특성상, 보육원에서는 잘 선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기랑 야채를 같이 데쳐 먹으면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
그래서 처음으로 먹은 샤부샤부는 그녀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몰라도,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음식을 우물거리는 그녀가 토끼 귀를 쫑긋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 있으니까 많이 먹으렴. 이따가 칼국수도 넣고, 볶음밥도 만들 거니 그것도 먹고.”
“와, 정말요?”
“우리 집이 다들 잘 먹거든.”
“견우야, 엄마는 빼 줄래?”
“엄마! 저 고기 더 주세요!”
세상에… 칼국수에 볶음밥이라니.
샤부샤부는 완벽한 음식이다.
연하늘의 마음이 절로 들떴다.
그러던 그때였다.
“자, 언니!”
“응? 아, 고마워.”
손에 들고 있던 앞접시가 비어서, 음식을 새로 담아 오려고 했더니.
마침 음식을 담고 있던 도예은이 집게로 음식을 집어, 그녀의 접시로 내민 것이다.
친절하다.
연하늘은 그녀가 준 음식을 받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맛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해 담아 주어서 그런 걸까.
음식이 더 맛있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당근, 양상추, 버섯, 당근을 입에 우물거리며 맛을 음미했다.
“예은이 너, 너는 고기만 담아 가고, 하늘이한테는 야채랑 당근만 주면 어떡하니?”
“응? 그랬어?”
“얘가 정말… 안 되겠다. 이제부터 엄마가 주는 대로 먹도록 해.”
“엄마는 악마야….”
“그럼 넌 악마의 딸이니?”
두 사람이 다툰다.
정작 당사자가 된 연하늘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예은이는 야채는 잘 못 먹는구나. 야채도 먹으면 맛있는데….’
다만 그렇게 생각할 뿐.
연하늘은 접시에 담긴 음식을 마저 다 먹었다.
그때, 도견우의 손이 뻗어 나왔다.
“자. 고기도 먹어.”
“응? 아… 고마워.”
도견우가 집게로 고기를 집어 줬다.
연하늘은 그에게 음식을 받고서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다른 사람이 내주는 음식은 더 맛있는 것 같다.
그날, 그녀는 그렇게 저녁을 먹고, 도견우의 어머니가 모는 차를 타고 보육원으로 돌아갔다.
“하늘이 왔니? 재밌게 놀다 왔어?”
“네, 잘 놀다 왔어요! 그리고 오늘 친구 집에서 샤부샤부를 먹었어요! 엄청 맛있더라고요!”
샤부샤부, 또 먹고 싶다.
* * *
그 후로도 연하늘의 훈련은 꾸준히 이어졌다.
그녀는 학교가 끝나면 내가 다니는 검술관에서 기초 검술을 배우거나, 체력을 단련하는 것에 매진했다.
내가 검술관에 가지 않는 날에는 집에서 같이 훈련하고는 했다.
‘어째 훈련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저녁을 먹으러 오는 것 같지만.’
주객이 전도된 것 같기도 하지만 동기 부여가 있는 것은 좋다.
다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얼른 그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검사도 아닌 그녀가 이대로 체력만 단련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마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교사를 섭외해야 했다.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게임에서는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주로 원소 마법을 가르치는 교관.
칠색의 마녀, 홍예나.
아직 아카데미의 교관이 되지 않은 이 시기에는 오색의 마녀라 불리며 전국을 떠돌고 있을 터였다.
나는 그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부탁해 봤는데, 아직 들려오는 소식이 없었다.
‘이건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겠네.’
그래도 조만간 만나기는 하리라.
이 시기에 그녀는 명가의 요청을 거절할 정도로 명망이 높은 위치에 있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요청을 받으면 한 번쯤 얼굴을 비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가 좋든, 싫든 간에.
그러니 나는 가만히 때가 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내 생각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가능하면 학원도시에 가기 전에 배우고 싶은데….’
얼마 전에 본능 제어를 배웠음에도 그것만으로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여차할 때, 본능 제어를 보조해서 회피 본능을 통제할 수 있는 스킬을 하나 더 배워 두고 싶었다.
담력이라는 스킬이었다.
‘그건 무조건 배우기는 해야 해.’
존재가 발산하는 프레셔에 의한 능력치 저하에 저항하는 스킬.
담력은 생명의 위기를 느낀 순간에 집중력과 회피율을 높여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회피 본능과 본능 제어의 조합으로 전투를 펼치는 내게는 궁합이 좋은 스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떡하지.”
문제는 담력 스킬을 얻기가 상당히 까다롭다는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나온 훈련장에서.
오늘은 검술관에서 수업을 받느라 훈련 할당치를 다 채우지 못한 나는 몸을 풀며 고민했다.
‘역시 조건이 문제야, 조건이.’
게임에서는 담력을 습득하기 위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우선, 담력을 얻으려는 캐릭터와 파티에 무조건 속하는 강한별 외에 다른 캐릭터를 파티에 집어넣어서는 안 됐다.
그 상태에서.
담력을 얻으려는 캐릭터는 혼자서 프레셔를 발산하는 상대와 전투를 치러야 했다.
강한별은 담력을 습득하기 전까지 전투에 개입해서는 안 됐다.
‘그런 의미에서 강한별의 존재는 필요 조건이 아닐 거야. 게임에서는 강한별로 플레이할 수밖에 없어서 파티에 속하게 됐을 뿐이니까.’
스킬이란 캐릭터가 특정 상황에서 특정 조건이나 경험치를 달성해서 습득할 수 있는 노력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게임과 달리 자유도가 높은 이 세상에서는 강한별이 없더라도 담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담력을 얻기 위한 조건은 여기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때, 담력을 얻으려는 캐릭터는 상대의 공격을 회피해야 확률적으로 담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 확률은 상대의 격이 높을수록 비례해서 올라가고는 했다.
‘진짜 뭐 그런 조건이 다 있어?’
그만큼 게임에서는 담력을 얻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나마 본능 제어를 배운 도견우가 담력을 얻기 쉬웠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고민이었다.
‘내가 아직 약할 때 습득하는 게 더 쉬울 텐데….’
본능 제어와 같은 이치였다.
담력도 내 역치가 낮은 이 시기에 배워 두는 편이 나았다.
문제는 프레셔를 발산하는 상대를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하물며 나 혼자서 상대해야 했다.
무턱대고 덤벼들었다가는 자칫해서 죽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아빠한테 부탁해 볼까.’
문득 그 생각도 해 보았다.
아버지 정도 되는 실력자면 어쩌면 프레셔를 발산할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프레셔란 위압이나 살의로 상대를 위축시키는 힘이었다.
“….”
과연 아버지가 내게 살의를 품고 프레셔를 발산할 수 있을 것인가.
회의적이었다.
아버지가 그럴 수 있을 리 없다.
어찌어찌 아버지를 잘 설득한대도, 아버지가 이상하게 여길 게 뻔했다.
그랬다가는 사실 나는 전생했고, 이 세계가 전생에 내가 하던 게임을 그대로 반영한 세상이라는 사실을 전해야만 하리라.
아버지가 믿어 줄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고민을 안고 검을 휘둘렀다.
그러던 그때였다.
“이 녀석, 지금 딴생각하고 있구만. 검로가 일정하지 않잖아.”
“아빠?”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오늘도 일이 많아서 늦어질 거라던 아버지가 훈련장에 나타났다.
클랜복을 입은 모습으로 보아서는 이제 막 퇴근하고 온 모양이다.
“다녀오셨어요. 저녁은 드셨어요?”
“아니, 집에서 네 엄마가 차려 주는 저녁을 먹으려고 안 먹었지. 그러다 오는 길에 견우 네가 보여서 이렇게 들르게 된 거고.”
나는 아버지의 얼굴이나 목소리로 많이 피곤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쾌활한 척하며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무슨 생각을 했던 거야? 또 누가 괴롭히는 건 아니지?”
“이제 그런 일은 없어요. 그냥… 어떻게 훈련할지 생각한 거예요.”
“그럼 다행이고. 누가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면 아빠한테 꼭 말해라.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네. 그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제가 깽판이라도 칠게요.”
“어… 음… 그냥 나한테 말해 주고 권력으로 해결하면 안 되겠니?”
“검술명가의 사람인 만큼 검으로 해결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살살 해라, 살살.”
“그때 상황 보고요.”
나는 장난으로 얼버무렸다.
그러자 아버지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하는 말에는 절실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견우야, 얼마 전에 네가 찾아 달라고 한 사람하고 오늘 연락이 닿았거든.”
“아, 정말요?”
“어. 그동안 통신이 잘 되지 않는 강원도 산골에 있었다고 하더라고. 내가 신검 도가의 사람인 걸 밝히니 거기서 하고 있는 일을 끝내는 대로 찾아오겠대.”드디어 홍예나를 찾았다.
아버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가 늦어도 한 달 안에 방문할 거라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너희의 실력을 확인하고 자기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더라.”
“그래도 괜찮아요. 재능이 없으면 어쩔 수 없죠, 뭐.”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는 몰라도, 홍예나가 연하늘에게 관심을 보이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마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연하늘의 재능을 절대 무시할 수가 없을 테니까.
“뭐, 네가 그런다면 상관없다만…. 네가 생각하는 바가 있는 거겠지. 그리고 말이다.”
“네. 뭔데요?”
한편, 아버지가 내게 전할 소식이 하나 더 있는 듯했다.
아버지의 얼굴이 다소 어두워졌다.
“다음 주에 어버이의 날이 있어서 본가에 가야 할 것 같은데… 너는 괜찮은 거냐?”
“….”
“불편하면 가지 않아도 돼. 가서 내가 잘 말해 놓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5월이 머지않았다.
이제 곧 어버이의 날인 것이다.
신검 도가의 사람은 그때가 되면 본가에 모여 친목을 다지고는 했다.
‘친목은 개뿔.’
친목을 다진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명분에 불과했다.
실질적으로는 가주인 할아버지에게 손주들의 실력을 자랑하고 평가하는 자리에 지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위한 재롱잔치였다.
“괜히 우리 눈치 볼 필요는 없어.”
“….”
그리고 나는.
매년 있는 재롱잔치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 주기나 했다.
그때마다 가문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받았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말한 것이다.
“네 마음이 편한 대로 해.”
불편하면 가지 않아도 된다고.
얼마 전에 내가 검술관에서 일으킨 사건을 통해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아버지는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아빠.”
“그래.”
아버지의 배려가 고맙기는 했다.
전생을 깨닫기 전의 나라면 혹해서 아버지의 말을 따랐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전생을 떠올린 나는….
‘내가 도망쳐야 해?’
결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가문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순간 나는 더욱더 조롱받을 것이다.
나아가 신검 도가에서 내가 가진 영향력이 줄어들게 뻔했다.
‘그럴 수는 없지.’
그걸 알면서도 불참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것은 기회이기도 했다.
‘거기서라면 담력을 얻을 상황을 만들 수도 있겠는데?’
무엇보다, 내가 그 모임에 참석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 모임에는 도승우도 나오겠죠?”
“아마 그러겠지.”
“그래요?”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내 사촌 놈도 나온단다.
그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했다.
나는 입가를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