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132)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132)
수업을 모두 끝마친, 목요일 저녁.
이날은 강한별의 용무를 해결하러 헌터 뱅크에 들리는 김에, 다 같이 외식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기숙사로 돌아와 간단히 씻은 나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시간에 맞춰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집합 장소는 언젠가부터 고착된, 정원이 보이는 창가 자리였다.
그곳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1명 있었다.
“오, 견우견우! 견우견우가 2등이야! 나는 1등이고!”
“일찍 나왔네. 언제부터 있던 거야?”
“음…. 내 생체 시계를 기준으로는 1시간 6분 38초 전부터?”
“왜 1시간이나 일찍 나오고 그래? 그냥 방에서 쉬고 있지….”
“나도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는데 방에만 있는 게 너무 심심했거든!”
“밖에서 기다리는 건 안 심심했고?”
“얼른 놀러 가고 싶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금방 가던걸? 그리고 이젠 견우견우도 나왔으니까 시간이 더 빨리 갈 거야!”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물장구를 치듯, 다리를 동동 굴리는 연성 남가의 남유리.
나는 까르르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입은 원피스에 눈길이 갔다.
장식이나 무늬를 찾아 볼 수 없는, 수수한 분위기의 하얀 원피스였다.
“지금 입고 있는 옷, 입학시험에서 입었던 거 아니야?”
“응? 이거? 그런가? 잘 모르겠네. 나는 이거랑 똑같은 옷을 몇 벌이나 가지고 있거든. 사복은 전부 이래. 이건 왜 물어보는 거야?”
“…다른 사복은 없다는 거지?”
“응, 그렇다니까?”
“왜… 없는 거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인데…. 옷의 기능은 결국 몸을 보호하고, 보온을 위해 존재하는 거 아니야? 그런 점에서 내가 입은 옷은 충분히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무엇보다 입고 벗거나 싸울 때 편리하거든. 태어날 때부터 가문에서 받은 옷이 전부 이렇기도 했고. 나한테는 이게 너무나 당연해서 다른 사복이 없는 이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
게임에 등장하는 일러스트에서 남유리는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유독 차별 대우를 받았다.
그녀의 의상 디자인이 시간, 장소, 상황을 가리지 않고 하얀 원피스로 통일됐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변화를 준 것이라고는 몬스터나 사람의 피를 묻힌 거였지.’
전생에 게임을 플레이할 당시에는 제작사가 그녀의 광기를 표현하려, 무언가가 묻으면 눈에 확 들어오는 하얀 원피스를 고수했으리라고 추리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가진 사복의 종류가 설마 하나밖에 없었을 줄은 몰랐다.
‘어쩐지 사복을 입고 만날 때마다 저것만 입고 오더라니….’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
속으로 한숨을 쉰 나는 남유리에게 말을 꺼냈다.
“다음에 애들하고 같이 네 옷이나 사러 가자. 기능만 따지면 안 되지. 하늘이랑 여자애들한테 옷이나 골라 달라고 하자고.”
“응? 옷 보러 가자고? 나 한 번도 옷 산 적이 없는데, 재미있겠다! 그래, 좋아! 기대할 테니까 나중에 잊고 그러면 안 돼!?”
“안 잊어, 걱정하지 마.”
연하늘은 워낙 심미안이 좋다 보니 코디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오늘 내가 입은 옷이나, 다른 옷들 전부 그녀가 골라 준 옷들이었다.
그러니 그녀에게 남유리를 맡기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나는 남유리와 추후 약속을 잡고는 다른 사람들을 기다렸다.
“도견우! 닭가슴살은 먹었냐!?”
“아, 견우야. 일찍 나왔나 보네. 기다릴 거면 미리 연락하지….”
“얘들아! 우리 나가서 뭐 먹을까!? 먹고 싶은 거 있는 사람!?”
“유리도 일찍 나와 있었나 보네요. 좋은 저녁이에요, 다들.”
“얌….”
시간이 지나자 용해랑이 나타나고.
곧 연하늘, 고은비, 리사, 차은솔도 우르르 얼굴을 비췄다.
보아하니 여자들은 사전에 모여서 집합 장소로 내려온 듯했다.
‘유리하고는… 아직 그 정도까지 친하지는 않은 건가.’
하기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고, 통제가 힘든 남유리의 성격이니만큼 이해가 되기도 했다.
차은솔도 비슷한 유형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통제가 어렵지 않은 편이라 그녀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이리라.
‘그래도 은비랑 리사가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친해질 수 있겠지.’
자연히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다.
부대끼고, 일상을 공유하다 보면 언젠가 잘 융화되어 있으리라.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뭐라고 부탁은 해야겠다.
나는 어느새 곁에 선 연하늘에게 말을 걸었다.
“유리하고도 친하게 지내 줘.”
“…나도 알고 있거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웃는 얼굴로 내게 재잘거리던 연하늘이었다.
그런 그녀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을 흘기며 대꾸했다.
토끼 귀는 뾰로통해졌다는 것처럼 파닥거리고 있었다.
“보자마자 유리 이름이나 꺼내고, 유리가 그렇게 좋니?”
“나는 하늘이 널 제일 좋아하는데 무슨 소리야?”
“치이, 맨날 말로만….”
“아, 그리고 다음에 시간 내서 다 같이 옷이나 보러 가자.”
“옷? 옷은 갑자기 왜?”
“유리가 사복이 저것밖에 없대. 저걸로 여러 벌이라더라고. 그래서 네가 보는 눈이 있으니까 다음에 같이 옷을 사러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나야 상관없긴 한데…. 그 외에… 혹시 다른 의도는 없는 거지?”
“다른 의도? 무슨 의도?”
“응, 아니야. 없나 보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연하늘이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연유를 알 수 없는 나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답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옷이 정말로 교복이랑 저것밖에 없대?”
“생전 옷을 산 적이 없다더라.”
“명가의 사람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연성 남가의 사정은 모르지만, 그런 경우도 있는 거겠지.”
“지금 거짓말한 것 같은데….”
“그리고 아마 은솔이 쟤도 직접 옷을 산 적은 없을걸?”
“응? 은솔이가?”
“쟤가 옷에 관심 있을 것 같아?”
“으음….”
“보나마나 가문에서 사 주는 대로 옷을 입었겠지.”
“에이, 설마….”
귀차니즘 만렙 차은솔은 스스로 옷을 고를 위인이 아니었다.
연하늘은 내가 확신에 차서 한 말을 선뜻 부정하지 못했다.
그녀도 이제는 차은솔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아는 것이다.
“그나저나 아린이는 보이지 않네. 결국 못 온대?”
“아린이는 중간고사를 준비하느라 못 간다고 전해 달라더라고.”
“중간고사는 아직 한참 남았는데, 너무 일찍 시작하는 거 아니야?”
“솔직히 한참은 아니지, 견우야…. 이제 한 달 조금 안 남았는데.”
동아리 체험회가 끝난 후부터였다.
민아린은 공부해야 한다는 이유로 만남을 최소화하고 있었다.
최근 그녀의 태도에서는 은연중에 우리와 거리를 두려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점심은 같이 먹으려 하니 아예 멀리하는 것은 아닌데….’
민아린에게 근심거리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그녀로부터 쉬이 답을 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조용히 추이를 지켜보아야 했다.
‘말을 해 주면 좋을 텐데… 민아린 성격 참….’
만약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없다면 그때는 민아린을 추궁할 생각이다.
여하간 그녀가 불참을 표명했으니, 모일 사람은 전부 모인 셈이다.
이에 취옥 기숙사를 나선 우리는 감람석 기숙사에서 기다리고 있을 강한별, 박사군과 합류했다.
그러고는 헌터 뱅크로 떠났다.
* * *
헌터의 재산을 관리하고 투자하며, 대출을 제공하는 등 금융과 관련된 기능을 지닌 헌터 뱅크.
헌터 협회의 지침에 따라, 헌터는 헌터 뱅크를 통해 모든 금융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헌터들에게 친화적인 학원도시에서는 어디를 가든 쉽게 헌터 뱅크를 찾을 수 있었다.
“…투귀님의 금고에 출입하기 위해 본점을 방문하였다는 말씀이시죠? 고객님은 투귀님의 제자고요.”
“네, 강한별이라고 해요.”
“…잠시 협회에 조회해 보겠습니다. 네, 이름은 맞는데…. 신분증도 함께 보여 주시겠어요? 그리고 타인의 금고에 출입하려면 금고 소유주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증명할 서류도 같이 제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학원도시 제23구 로망로.
투귀 서정진의 금고를 보관하는 헌터 뱅크 지점을 찾은 우리는 영업원에게 용건을 전했다.
강한별의 신분을 확인한 영업원은 극도로 공손해지더니,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투귀님의 금고는 보안을 위해 지점장님께서 관리하고 계십니다. 제가 지점장실로 안내하겠습니다.”
“….”
투귀의 위상을 고려하면 영업원이 전담할 일이 아니기는 했다.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한 나는 당황하지 않고 안내를 받았다.
태생적으로 우대되는 삶을 살았을 용해랑, 남유리, 차은솔, 리사 또한 비슷한 반응이었다.
“역시 우리 사부님이셔!”
반면 서정진을 존경하는 강한별은 흡족한 얼굴로 자랑스러워했으며.
“지점장실이라니…. 나 처음 들어가.”
“나도…. 드라마에서나 봤었는데, 직접 들어가는 건 처음이야.”
“학원도시에서 알아주는 지점인데, 그 지점의 지점장이면….”
이런 대우에는 익숙지 않을 고은비, 연하늘, 박사군은 놀라워했다.
나는 지부장실로 가는 길에 전시된 그림이나 도자기를 보고 신기해하는 연하늘을 곁눈질하고 피식거렸다.
잠시 후, 지부장실에 들어섰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소문은 저도 익히 들었습니다. 전도유망한 새싹들을 이렇게 만나다니, 정말 기분이 좋군요.”
우리를 자리로 이끌어 준 지점장은 인자한 분위기를 풍겼다.
자신이 서정진과 젊었을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소개하는 한편, 잔잔하면서도 재치가 있는 입담은 금세 우리의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신뢰감을 이끌어 냈다.
친절하고 신사적인 노인이었다.
“강한별 학생이 정진이 제자란 건 더는 볼 필요가 없겠군요. 제출한 서류에도 이상은 없네요. 얼마 전에 정진이가 제게 조만간 한별 학생이 찾아갈 거라고 연락하기도 했고요.”
“아, 사부님한테 연락이 있었군요.”
“한별 학생이 여기 있는 동안에는 자신을 대신해 잘 부탁한다고 하더군요. 정진이 그 녀석이 저한테 빚지기를 죽어도 싫어하는데, 한별 학생이 많이 소중한가 봅니다.”
“사부님이….”
“그리고 이렇게도 당부했죠.”
그러나 방심해서는 안 된다.
상대는 돈이 오고 가는 세상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고 살아남아, 이 자리에 올랐을 인물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속에는 능구렁이가 득실거리고 있다는 것에 주의해야 했다.
지점장은 우리의 호감을 얻기 위해 우리가 원하는 이미지를 연기하며, 감정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게임을 통해서 지점장의 실체를 알고 있는 나는 속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점장이 가늘게 뜬 눈을 여우처럼 좁히며 덧붙였다.
“‘그 안에 있는 무기의 소유권은 아직 전부 나한테 있다. 그러니 네가 그곳에 있는 무기를 불출하거나, 온전히 네 소유로 만들고 싶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라. 내가 수십 년 동안 수집한 무기를 날름 먹을 생각이었다면 꿈 깨라.’라고요.”
“….”
“정진이가 이런 부분에서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더군요. 그러고 저한테 자신을 대신해 강한별 학생이 지닌 자질을 시험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그 안에 있는 무구는 대가를 받고 대여하는 형식으로 불출될 겁니다. 대가는 금강 코인이나, 현금, 마석 등으로 받으려고 합니다. 특정 무구의 경우에는, 강한별 학생의 기량을 확인하거나, 그에 걸맞은 의뢰를 해결해야 불출할 수 있고요.”
“….”
“젊었을 적에 내기에서 진 이후로, 정진이한테 수수료도 얼마 떼지 못하고 있던 저로서는 마침 잘된 일이죠.”
저도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점장은 형식적으로 웃음을 흘리고 찻잔을 입가로 가져다 댔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실망하지 않는다.
나는 분위기가 달라진 지점장에게 벙찌고 만 사람들과 다르게 태연히 다과를 먹었다.
값비싼 다과는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둬야 했다.
자고로 내 돈을 쓰지 않고 먹는 다과가 맛있는 법이다.
“얌얌….”
아무래도 차은솔과 생각이 일치한 듯했다.
그녀도 상황과 동떨어져 있는 채로 진과를 맛보고 있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주머니에 따로 챙겨 넣기까지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하늘이랑 같이 먹어야지.’
나도 은근슬쩍 접시에 담긴 과자를 빼돌렸다.
눈을 마주친 우리는 전우애와 같은 감정을 나눴다.
그러고는 약속이나 한 듯 순식간에 접시를 비우고 입을 모았다.
“더 주세요.”
“허허…. 그래요, 그래….”
지점장이 황당해하든, 말든.
우리에게는 염치가 없었다.
* * *
지점장에게 투귀 서정진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를 전해 들은 뒤.
강한별은 이제 그의 금고에 들르러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강한별에게 안내를 자처한 지점장이 우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여러분에게는 죄송한 일입니다만, 금고에는 보안을 위해서 허가받은 사람 외에는 출입할 수 없습니다.”
헌터 뱅크의 특성상, 보안과 신용은 그들의 생명이나 다름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흐름이기는 했다.
금고에 입장할 자격이 없던 우리는 처음부터 인지하고 있던 바였다.
다만 나는 예외에 속했다.
“지시에 따르면, 동행인을 1명까지 허락한다고 했으니 도견우 학생도 금고에 출입할 수 있습니다.”
게임에서는 간단하게 언급만 되고, 시스템으로 구현되지 않았지만.
서정진이 금고에 출입할 수 있도록 허가한 사람은 강한별만이 아니었다.
그의 친구가 아끼는 손녀인 동시에 강한별의 소꿉친구 누나.
그녀도 금고에 출입할 수 있었다.
‘서정진이 손녀처럼 여기기도 했고, 한별이의 마음도 눈치채고 있어서 두 사람에게 혼수 차원으로 금고를 물려주려 한 거였지.’
단, 사람 일은 어찌 될지 모르고, 자칫 강한별과 그녀에게 부담을 줄 우려가 있었기에.
서정진은 구체적인 명시를 피해서 그녀를 동행인으로 수정한 것이다.
‘그래서 게임에서는 구현되지 않은 시스템이었는데, 이걸 이런 식으로 이용하게 되네.’
추측컨대, 서정진은 그렇게만 해도 강한별이 어련히 소꿉친구와 함께 금고로 데이트라도 오리라고 예상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의 안배를 눈치채지 못한 강한별은 나를 동행인으로 뽑았다.
―견우야! 사부님의 금고에 가서 쓸 만한 무기가 있나 찾아보려는데, 시간 되면 너도 같이 갈래? 검은 나보다 네가 더 잘 볼 것 같거든!
그렇지 않아도 강한별을 설득해서 금고를 찾을 생각이었던 나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던 나는 그때 냅다 승낙했고, 바라던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따라오십시오.”
나하고 강한별을 제외한 사람들은 지점장실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우리는 지점장실에 마련되어 있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듣자하니, 이 지점에서 관리하는 금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한다는 모양이다.
‘꽤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은데.’
층수를 누를 수 있는 버튼은 불과 5개밖에 없건만.
층 하나를 내려가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리는 기분이었다.
한 층을 구성하는 높이가 그만큼 높은 것 같았다.
그때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철문이 열리고, 최하층의 광경이 두 눈에 들어왔다.
‘…으리으리하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복도 좌우로 거대한 철문이 일정 간격을 두고, 셀 수 없이 펼쳐져 있었다.
구조는 미로처럼 복잡해 보여서, 잘못하면 길을 헤맬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공간이 광대했다.
“우와….”
“한별아, 너무 한눈팔지 마.”
“아, 어! 나도 알고 있어!”
강한별은 탄성을 낼 정도였다.
나는 괜히 그가 길을 잃지 않을지 신경을 쓰면서, 거침없이 나아가는 지점장의 뒤를 따랐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여기입니다.”
“….”
지점장은 한 금고 앞에 멈춰 섰다.
그가 자신의 지문을 인식하고는, 몇 겹으로 된 잠금장치를 풀었다.
이윽고 철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열렸다.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두 분은 느긋하게 둘러보십시오.”
“….”
“금고에서 보관하고 있는 무구에는 그 무구에 대한 정보와 대여 조건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살피는 데 어려움은….”
서정진의 금고 앞에 선 우리에게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금고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의 기운을 느끼며, 진열돼 있는 무구를 바라보았다.
‘게임에서는 카탈로그로 나왔는데, 이렇게 보니 정말 굉장하네….’
게임에 등장한 무구는 어디까지나 일부에 지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문턱에서부터 무수히 많은 무구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대체 얼마나 뺏은 거야….”
“와…. 사부님 진짜 멋지다!”
투귀, 아니, 약탈왕 서정진.
우리는 그가 일평생에 걸쳐 이룩한 무기고로 발을 들였다.
‘여기서 한별이한테 어울리는 검을 찾아야 해.’
생각해 둔 검이라면 있었다.
마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