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151)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151)
시험에서 가장 예상이 되지 않는 과목은 화요일 4, 5교시의 다이스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수강 과정에서 행운 수치를 올려 주는 수업이란 것이 납득이 갈 만큼 행운에 의지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담당 교관이 수업 첫날에 당당하게 “운도 실력이다.”란 가르침을 내세웠을 정도다.
수업 내용도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배울 게 없었다.
그럼에도 구태여 수업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게 도박이고, 자칫 패가망신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것 정도일까.
여하간 수업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복분(福分)이 크게 관여하는 터라 시험에서 무엇이 나올지 전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수업을 같이 듣는 나와 연하늘, 세쌍둥이는 중간고사를 준비할 때부터 일찌감치 다이스 게임에 열정을 쏟지 않았다.
수업에서 담당 교관이 누누이 말한 대로, 어디까지나 운에 맡기기로 했다.
“똘마니들은? 같이 안 간대?”
“톡 안 봤구나? 아까 연락 왔는데 먼저 가 있겠다고 하더라고.”
“먼저 간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 어차피 운이 중요한 시험인데.”
“음…. 쌍둥이들 말로는 먼저 가서 시험장의 기운이라도 받고 있겠대.”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데 노력도 참 쓸데없다.”
화요일, 4교시가 시작되기 30분 전.
기숙사 앞에서 만난 나와 연하늘은 다이스 게임의 시험장으로 향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중, 그녀가 짐짓 엄한 얼굴로 “떽.” 소리를 내며 훈계했다.
토끼 귀는 까딱까딱 흔들렸다.
“남의 노력을 비하하면 어떡하니? 그러면 못써.”
“나도 알아.”
“알면서도 그런다고?”
“걔네한테는 그래도 되거든.”
“에휴….”
“뭐, 걔네 마음도 이해가 되긴 해. 어제 나랑 같이 시험을 봤는데, 걔네가 검무를 추다 그만 발이 미끄러져서 실수했거든. 그 후에 본 시험도 성적이 좋지 않다니까, 조금이라도 만회하려고 기를 쓰려는 거겠지.”
“3명 다 미끄러졌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러게 말이야. 나도 처음에는 얘네가 콘셉이 지나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드는 생각으로는 얘네는 정말 셋이서 하나가 아닐까 싶더라.”
자리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세쌍둥이를 흉보는 일은 즐겁다.
내가 키득거리며 어깨를 들썩이자, 끝내 연하늘도 못 말리겠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한편, 시험은 수업 장소와 동일한 문화관에서 진행됐다.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핀 꽃과 봄의 전경은 그녀와 화사하게 어우러졌다.
햇살이 반사되는 호수를 등에 진 그녀의 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
“왜 그래?”
“…아니, 그냥.”
“그냥? 그냥 날 보고 있는 거야? 아무 이유도 없이?”
“왜? 그냥 보면 안 돼?”
“어… 음… 되지. 응….”
“돼지? 꿀꿀? 오리는 꽥꽥? 하늘이는 깡충깡충?”
“아, 모야아! 재미없어, 하지 마―.”
정말이지….
눈처럼 희면서도 푸른 머리카락은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아니, 어울리지 않는 계절이 없다.
연하늘에게 가볍게 어깨를 맞아 준 나는 그렇게 봄빛을 걸었다.
이내 화제를 바꿨다.
“시험으로 뭐가 나오는 걸까?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궁금하기는 하네.”
“음… 그러게. 시은이 언니한테 이야기를 듣기로는, 작년에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시험이었다지? 일반 유리와 강화 유리로 된 다리를 건너야 했다고….”
“재작년에는 게이트에 들어가서 교관님이 뿌린 드래곤볼을 1성구부터 7성구까지 찾아오는 거였다고 하고.”
“그리고 재작년 기말에는 무작위로 사다리를 타서 시험 성적을 결정했다고도 하던데….”
“학생들의 시험지를 선풍기에 날려 가장 멀리 날아간 사람한테 A+를 줬다는 이야기도 있었지. 이렇게 말하니까 그 교관님은 잘리지 않은 게 용하다니까.”
“응, 그러게. 잘리지 않은 것도 운이 좋네. 혹시 이사장님이나 높으신 분의 친척 아닐까?”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네.”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시험이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우리는 어느덧 시험장에 다다랐다.
평소에도 수업이 진행되는 공간은 카지노를 연상케 했다.
“견우야! 하늘아! 여기야!”
“야! 우리 오다가 설렁탕 집 쿠폰 주웠다!?”
“오늘 운수 좋은 날인가 봐!”
“오히려 재수가 없지 않을까?”
“견우야, 괜히 부정 타는 소리를 하면 어떡하니?”
먼저 온 세쌍둥이가 우리를 반겼다.
그들과 합류한 우리는 시간을 때우며 시험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다이스 게임의 담당 교관, 소국진이 무대로 올라왔다.
“지금부터 시험을 시작하겠다. 시험은 1시간 동안 진행될 거다. 올해는 결과에 승복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패자부활전도 준비했으니, 관심이 있으면 시험이 끝나고 남아도 좋다.”
“….”
머리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눈 밑으로 다크써클이 심한 중년의 남자였다.
전형적으로 도박 중독에 빠져서 도박장을 드나들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가 피로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각 테이블에는 시험에 필요한 게임 도구들이 구비돼 있다. 너희는 마음에 드는 테이블을 골라 자리를 잡으면 된다. 이때, 게임에 참가할 수 있는 인원은 6~8명으로 제한한다. 그러고 나서 무슨 게임을 할 거냐면….”
“….”
“너희는 시험을 위해서 개조한 부루마블을 할 거다. 원래는 4명까지 플레이할 수 있는 구조를 크게 확장한 부루마블이지.”
…부루마블이 설마 내가 아는 그 부루마블을 말하는 건가?
사실상 운이 제일 크게 작용하는, 상대방을 파산시키는 그 게임?
나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연하늘이나 세쌍둥이, 그밖에 다른 사람들도 아리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국진은 그런 우리의 의문에 답하듯 개의치 않고 설명을 이어 갔다.
결론만 말하자면, 우리가 아는 그 부루마블이 맞았다.
‘진짜 교관 편하게 하는 거 아니야? 전생에 고등학생이었을 때, 공만 꺼내 주고 알아서 놀라며 방치한 체육 선생이 떠오르네. 그때 나야 좋았었지만….’
게임의 규칙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참가자는 플레이할 말을 선택하고, 인원에 맞춰 자본금을 나눈다.
한 사람이 가지는 자본금은 ‘참가자의 수×25만 원’으로 계산한다.
6명이면 150만 원, 7명이면 175만 원, 8명이면 200만 원으로 설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순서를 정해 게임을 시작한다.
게임의 기본 골자는 주사위를 굴려, 세계 일주를 하며 돈을 버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땅을 사고, 건물을 세워, 상대에게 통행료를 받으면서….
상대를 파산시켜야 한다.
“시험은 정해진 시간이 다하거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진행될 거다. 그리고 성적은 살아남은 순서에 따라 차등적으로, 최종적으로 보유한 금액에 따라 상대적으로 평가될 것이다. 당연히 파산해서 남겨진 빚도 보유 금액에 해당한다. 파산했다고 다 똑같지는 않다는 거지.”
“….”
“그럼 5분 뒤에 시험을 시작할 테니 다들 어서 자리를 잡고 대기해라.”
과연 이것을 시험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어처구니없어 했지만, 소국진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위해 주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까? 같이 할까?”
“같은 테이블에서 경쟁할 바에야, 따로 앉는 게 낫지 않을까.”
“하긴…. 역시 그렇겠지?”
“괜히 잘못해서 너랑 싸우고 싶지 않아.”
“맞아, 나도 그래.”
부루마블은 우정을 파탄 낼 수도 있는 악마의 게임이다.
나는 연하늘과의 관계를 위해서 같이 게임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도 이해한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얼른 자리 찾으러 가야겠다. 게임, 아니… 시험 잘 봐.”
“너도. 이번 시험 점수로 나랑 내기한 거 잊지 말고.”
“킥, 알겠어.”
그리하여 우리는 오랜만에 동심에 젖어 들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건물주야말로 최고란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서울 땅을 사야 해. 서울을 먹는 사람이 1등이 될 수 있어.’
* * *
이따금 연하늘은 생각한다.
어쩌면 자신은 도견우를 만나기 위해서 평생의 운을 다 쓴 게 아닐까 하고.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녀가 유달리 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시험에서 모르는 문제가 출제됐을 때.
―음…. 1번이랑 3번 중 하나가 정답일 것 같은데…. 3번은 많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3번으로 찍는 게 좋겠지?
연하늘은 항상 정답을 빗겨 나갔다.
경험을 바탕으로 심리전을 벌이듯 사고를 꼬아 답을 바꿔 찍더라도 오답은 피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로서는 열심히 공부해서 오답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보육원 선생들이 재미 삼아 아이들에게 복권의 당첨 번호를 추천받고는 했을 때.
―얘들아! 선생님 복권 사러 갈 건데 1에서 45 중에서 지금 제일 떠오르는 숫자 좀 하나씩 알려 줄래!? 당첨되면 한 사람당 피자 한 판 쏠게!
―원장 선생님, 저는 그럼 44….
―음, 그래. 하늘이는 44구나. 그럼 44 말고 다른 숫자로 해야겠네.
―….
보육원 선생들은 언젠가부터 연하늘이 언급한 숫자를 기피했다.
그녀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지만, 하늘이 원망스럽게도 그녀의 번호가 당첨 번호가 되는 일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즉석 복권을 무더기로 긁어도 1,000원 한 장 나온 적이 없기도 했다.
오죽하면 함부로 하늘이란 이름을 써 액운이 낀 게 아닐까 싶었다.
또한 모처럼 중국집 쿠폰을 모아서 주문하려고 할 때면 으레.
―여보세요? 거기 은혁반점이죠? 쿠폰을 모아서 그걸로 탕수육도 시키고, 짜장면이랑 짬뽕을 시키려고 하는….
―[안녕하세요, 은혁반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의정부에서 절 필요로 하는 일이 생겨, 그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애용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아…. 또 없어진 거야?
―…다음부터 하늘이는 쿠폰만 모으고, 주문은 다른 사람이 하자.
―….
연하늘이 쿠폰으로 주문하려는 가게는 절묘하게도 폐업을 맞이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녀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혹시 몰라 대신해서 주문할 정도였다.
도견우의 경우에는 불행한 그녀를 곧잘 놀리고는 했다.
―하늘아, 오늘 날씨 어떨 것 같아?
―응? 기상청에서는 오늘 전국적으로 화창할 거라던데….
―그럼 우산을 가지고 나가는 게 좋겠네.
―너어….
―널 못 믿는 게 아니라, 내가 기상청을 못 믿어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삐지지 마.
―몰라. 진짜 너까지 이런다 이거지?
그런데 마냥 장난으로 넘길 수 없었다.
연하늘이 일기 예보를 운운할 때면, 날씨는 변덕스럽게 반응하기 일쑤였다.
―어, 진짜 오네….
―….
―…하늘아?
―나… 세상에 절망할 것 같아…. 이딴 세상, 없애 버리고 싶어.
―…무서운 소리 하지 마.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기상청이 원래 그렇지, 뭘.
―흑….
마법과 과학, 이세계의 기술력으로 예보의 오차를 줄였음에도 기상청은 여전히 오보가 잦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본디 천체와 대기의 흐름을 읽고, 변동이 심한 마나 환경을 파악하기란 난해할 수밖에 없었다.
일기(日氣)란 곧 자연의 섭리를 읽고, 미래를 내다보는 것과 다름없었다.
기상청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연하늘은 기상청을 찾아가 때려 부수고 싶은 심정이었다.
“으으….”
이렇듯, 연하늘은 운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그녀는 다이스 게임의 시험에서도 불행에 치이고 있었다.
그녀는 황금 열쇠 카드를 뽑았다.
「무인도: 폭풍을 만났습니다. 당신은 무인도에 난파됐습니다.」
“….”
연하늘은 카드에 적힌 내용을 보고 제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3턴 동안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고 쉬고 있어야 하는 무인도.
인원이 8명으로 늘어난 게임에서 3턴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그사이에 다른 참가들이 빠르게 자산을 증식할 게 불 보듯 뻔했다.
“하, 하늘이는 무인도가 나왔네? 안됐다. 그래도 주사위를 던져서 더블이 나오면 탈출할 수 있으니까 승산이 있어!”
“응….”
이전부터 뒤처지고 있던 연하늘이다.
참가자들은 주사위 운이 없는 그녀를 안쓰럽게 여겼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말을 옮겨, 무인도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주사위를 던져 더블이 나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무인도에서 3턴을 쉬고 나서야 게임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다른 참가자들이 노른자 땅들을 먹은 뒤였다.
그럼에도 반전의 기회는 있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건물과 땅만으로 통행료를 받는다면….’
연하늘은 머리를 굴렸다.
그녀는 황금 열쇠 카드를 뽑았다.
「반액대매출: 보유한 부동산 중에서 가장 비싼 곳을 반액으로 은행에 팔아야 합니다.」
“아….”
호텔을 지어 통행료로 105만 원이나 받는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날아갔다.
슬픈 사실은 거두어들인 통행료가 아직 없었다는 점이다.
연하늘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후로도 그녀의 불행은 계속됐다.
“아, 하늘이… 뉴욕에 걸렸구나. 거기 내 땅인데.”
“….”
“어디 보자…. 150만 원만 주면 돼.”
“여, 여기….”
실제로는 화폐로서 가치가 없는 종이에 불과하건만.
돈을 건네는 연하늘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이사: 뒤로 세 칸 옮기세요.」
“아, 싱가포르에 걸렸네. 거기 주인이 누구였지? 싱가포르 가진 사람?”
“나야. 호텔이니까… 55만 원이야.”
“….”
연하늘의 자산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녀를 파산에 이르게 만든 것은 다음에 뽑은 황금 열쇠 카드였다.
「관광 여행: 세계의 중심, 서울로 가세요. 서울의 주인에게 통행료를 지불합니다.」
“아….”
부루마불의 끝판왕, 서울.
통행료, 200만 원.
“뭐, 뭐가 이렇게 비싸….”
현재 연하늘이 보유한 돈은 33만 원.
그녀는 파산에 이르고 말았다.
참가한 테이블에서 가장 먼저 몰락하며, 최저점을 받게 된 것이다.
“마이너스 167만 원….”
이번에도 하늘은 연하늘에게 손을 들어 주지 않았다.
그녀는 토끼 귀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에게 모진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은 기분이었다.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그나마 도견우가 있어서 참는다.
* * *
인생은 부동산이란 것을 알려 주는 부루마블 게임이 종료됐다.
아쉽게도 나는 당초의 바람과 달리 서울을 차지하지 못했다.
다행히 컬럼비아호를 구매한 덕에 요긴하게 통행료를 거두며 어찌어찌 꼴찌를 면했을 뿐이다.
8명 중 4등으로 게임을 마감했으니 성적도 중간은 갈 것이다.
그에 비해 연하늘은….
“나는 빈털터리야…. 아니, 빚쟁이야….”
연하늘은 제일 먼저 파산하며 성적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내게 다가온 그녀가 처연한 얼굴로 자학 개그를 늘어놓았다.
“내 통장에는 마이너스 167만 원이 있어…. 이걸로는 밥도 못 먹고, 차도 못 사고, 집도 못 사고, 결혼도 못 하고, 애도 못 낳아…. 토끼 1마리도 못 길러…. 갚고 싶어도 갚을 수 없어…. 아하하, 아하하하….”
“…너, 괜찮은 거 맞지?”
“세상이 너무 원망스러워….”
“그냥 게임이고, 시험이야. 그러니까 우리 너무 신경 쓰지 말자.”
“나는 빚쟁이야, 빚쟁이야, 다리디리 다라 두―.”
“….”
연하늘의 어깨가 힘없이 들썩인다.
그녀의 상태는 척 보기에도 심각했다.
이래서 부루마블이 무서운 것이다.
아마 연하늘과 같이 게임을 했다면, 나를 증오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 힘내. 그래도 패자부활전이 있다잖아.”
“응….”
“그리고 너 돈 없으면 내가 토끼도, 밥도, 차도, 집도 다 사 줄 테니까 울적해하지 말고.”
“…애도 낳아 줄 거야?”
“뇌절.”
“아야!”
손날을 세운 나는 토끼 귀 사이에 있는 연하늘의 머리를 가볍게 내리쳤다.
그녀는 일부러 아픈 소리를 내고는 감정을 환기했다.
나도 그녀를 따라 키득거렸다.
그래도 그녀에게 아직 기회는 남아 있었다.
때마침 무대로 올라온 소국진이 입을 열었다.
“이 중에는 시험 성적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F는 주지 않을 테니 위안으로 삼아라. F는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거나, 출석 점수가 미달인 사람에게만 줄 것이다.”
“….”
“어쨌든 시험은 이것으로 끝내겠다. 이제 돌아갈 사람은 가도 좋다. 하지만 만약 시험 결과에 불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0.5점이 걸린 패자부활전을 진행하겠다. 물론, 탈락하는 사람은 0.5점이 차감될 것이다.”
0.5점은 한 등급을 +로 만들거나, -로 만들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점수가 낮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만도 했다.
반면에 1등을 한 사람들은 대체로 위험한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은지 몸을 돌렸다.
떠나는 이들을 곁눈질한 나는 연하늘과 함께 자리에 남았다.
“나갈 사람은 다 나간 것 같으니 패자부활전에 대해 설명하겠다.”
소국진이 어느새 무대 위에 마련된 긴 테이블을 가리켰다.
테이블에는 수십 개의 종이컵이 나열되어 있었다.
“패자부활전은 간단하다. 쌈장과 불닭볶음 소스로 하는 복불복 게임이지. 쌈장을 먹는 사람은 0.5점을 받을 것이고, 불닭볶음 소스를 먹는 사람은 감점을 당할 것이다. 비율은 50:50이다.”
“….”
얻어 갈 게 쥐뿔도 없는 수업이다.
분명 다른 사람들도 내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형용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복불복 게임에 참여하러 줄을 섰다.
어느덧 내 차례가 됐다.
‘확률은 50%란 건데…. 어떤 게 쌈장 소스인 거지?’
겉으로 보기에는 소스의 차이를 구분할 수가 없었다.
나는 별수 없이 손이 가는 대로 아무 종이컵이나 골랐다.
그러고는 음료를 들이켰다.
‘…쌈장이네.’
생각해 보면 의외로 얻어 갈 게 많은 시험인 것도 같다.
나만 아니면 된다.
오늘은 웬일로 운이 좋은 날인 듯했다.
0.5점을 얻게 된 나는 흥겨워하며 무대를 내려갔다.
그리고 연하늘의 성공을 기원했는데….
“무, 물!”
“…연하늘, 0.5점 감점이다.”
불닭소스를 마신 연하늘의 토끼 귀가 하늘로 삐죽 치솟았다.
혀를 내민 그녀가 머리칼을 휘날리며 물을 마시러 뛰어갔다.
나는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쟤가 진짜 운이 없긴 하네.’
* * *
불닭볶음 소스의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문화관 계단에 주저앉은 연하늘은 종이컵에 담긴 물 속에 혀를 집어넣고 있었다.
자판기에서 딸기우유를 뽑은 나는 축 처진 토끼 귀로 얼굴이 가려진 그녀에게 다가갔다.
“자, 마셔.”
“아…. 고마워. 잘 마실게.”
상심이 큰 듯한 연하늘은 딸기우유도 제대로 까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래서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옆에 앉은 나는 보다 못한 나머지 대신 입구를 열어젖혔다.
“진짜 나 없으면 딸기우유는 어떻게 마시고 살래?”
“으… 그러게….”
“기운 내. 오늘은 운이 좋지 않은 날이었던 모양이지. 하늘이 네 실력이라면 다른 수업으로도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테고.”
“응….”
나는 손을 뻗어 기울어져 있는 토끼 귀를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오늘따라 유난히 몸을 맡겼다.
내 손길에 안심이라도 되는 걸까.
그렇다면 좋겠다.
“아직도 매워?”
“딸기우유 마시니까 덜 매운 것 같아.”
“더 마시고 싶으면 더 뽑아 올까?”
“아니야, 괜찮아.”
나는 연하늘의 머리를 쓰다듬고, 귀를 만지며 그녀를 위로했다.
그러자 그녀가 슬슬 기운을 차렸다.
한편 나나 그녀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계단에 앉은 우리는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그녀가 운을 뗐다.
“어쨌든 내기는 내가 진 거네.”
“덕분에 샐러드 바에, 스테이크 맛있게 잘 먹을게.”
“그래, 그래….”
연하늘이 한숨을 쉬며 허공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나는 내기에서 져서 분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민 그녀를 보고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그날 영화도 볼까?”
“어?”
“그러고 보니 우리, 입학한 후로 영화도 본 적 없잖아. 요새는 어떤 영화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밖에 나가서 밥 먹는 김에 같이 보는 건 어때? 내가 예매할게.”
“나야… 좋지. 응! 좋아.”
연하늘의 얼굴이 밝아진다.
시험을 망쳤다는 기억은 저 멀리 사라진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은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그럼 밥 먹고, 영화 보고… 끝나고 커피랑 케이크는 내가 살게.”
“응?”
“볼링도 치러 갈까? 내가 근처에 볼링장 있는지 알아볼게.”
“…네가 다 돈을 내겠다고? 그럼 네가 더 많이 쓸 것 같은데…. 됐어, 같이 반반씩 내자.”
연하늘이 화들짝 놀라며 사양한다.
나는 손사래 치는 그녀를 다독이며, 토끼 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대꾸했다.
“그냥 내가 낼게. 원래 이런 건 시험 잘 본 사람이 쏴야 하지 않겠어?”
“….”
“대신 밥은 네가 사.”
“그래두…. 돈 많이 들 텐데….”
“괜찮아.”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보는 연하늘.
그녀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은 나는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기만 했다.
“너한테 쓰는 돈은 하나도 안 아까워.”
“….”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나를 위해 쓰는 돈은 아깝지 않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돈은 훨씬 더 아깝지 않다.
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것으로 족했다.
“근데… 다른 사람들도 같이 갈 거야?”
“다른 사람들도? 나야 상관없지만, 그럼 네가 걔들 밥도 사 줘야 하지 않을까?”
“…음, 흐름상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네. 아니야, 역시 우리 둘만 가자.”
“그래, 조만간에 날이나 잡자. 보고 싶은 영화 있어?”
“음… 나는 아무거나 다 좋아!”
“그게 제일 어려운 거 알지?”
그리고.
어차피 내 돈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