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160)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160)
시끄럽다. 시끄럽다. 시끄럽다.
도처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정신이 사납다.
어수선한 소리에 반쯤 정신이 든 연하늘은 멍하니 전장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 몬스터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조금 전, 자신이 소멸시킨 놈들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을 규모였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차은솔과 민아린의 상태는 진즉 확인했다.
자신을 치료하고 지키느라 힘쓴 두 사람의 얼굴에는 피로가 잔뜩 묻어 있었다.
미안함을 느낀 연하늘은 이제는 자신이 그들을 지키기로 했다.
정작 그들보다 상태가 심각한 것은 그녀 자신이었음에도.
그녀는 외견이 변화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희는 쉬고 있어.”
의식은 무의식에 발을 걸치고 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이 콕콕 쑤신다.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아프다.
간신히 피아가 구별될 만큼 정신이 몽롱한 연하늘은 마법을 펼쳤다.
태양의 자리를 차지한 달이 마치 만물의 왕처럼 군림하는 밤이었다.
어둠의 원소 마법을 펼치는 데에는 최적의 시간대라 할 수 있다.
하늘에 생겨난 마법진이 빠르게 너비를 확장했다.
그 아래에 몬스터들이 있었다.
[다크 레이드>3계위 어둠의 원소 마법.
마법진 아래에 존재하는 대상에게 시전자의 역량에 따라 무한정 포격을 가하고, 잠시간 이동 속도를 떨어뜨리는 마법.
붉은 마법진에서 어둠을 응축한 에너지가 유성우처럼 떨어졌다.
콰콰콰쾅!
암야 말벌의 독은 마나 회로에 오작동을 일으킨다.
자칫 마나 폭주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연하늘은 아랑곳하지 않고 몬스터들을 도륙하고, 도륙했다.
숲이 요란하게 들썩였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놈들은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포격에 휘말렸다.
깜짝 놀란 놈들이 모습을 드러내 도망치려 하지만, 오히려 표적을 자처하는 꼴이었다.
그중에는 필사적으로 포격을 뚫고, 그녀에게 달려드는 놈들도 있었다.
크르르르!
“짖지 마, 시끄러우니까.”
연하늘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의 주위로 상공에 떠오른 마법진과 비슷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지정된 위치에 고정포대를 설치해, 어둠의 탄환을 마구잡이로 연사하는 2계위 어둠의 원소 마법.
그녀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자, 마법진이 방향을 틀었다.
마법진이 번쩍 빛을 발한 순간, 탄우(彈雨)가 쏟아졌다.
그렇게 범위에 있는 몬스터들이 꼼짝없이 무차별 폭격을 당하는 흐름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탄환에 맞은 몬스터들은 구멍이 숭숭 뚫려 벌집이 됐다.
“말도, 안 돼….”
과연 이것을 전투라고 할 수 있을까.
학살과도 같은 광경을 눈에 담은 민아린은 말을 잇지 못했다.
연하늘이 일어난 것도 놀라울진대, 난데없이 참전한 상황에 그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갈색 피부에, 머리칼이 검은 그녀가 아예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무섭고, 섬뜩하다.
그때, 그녀가 돌연 휘청거리더니, 마법이 무위로 돌아갔다.
“야! 괜찮아!?”
뒤늦게 연하늘의 병세를 깨달은 민아린이 황급히 달려 나갔다.
조금 전에 느낀 감정을 잊은 그녀가 연하늘을 부축하려 했다.
연하늘은 손을 뻗어 제지하고서는 금속패를 손에 쥐었다.
민아린은 걱정돼서 다그쳤다.
“그 몸으로 어떻게 싸우겠다는 거야!? 그냥 들어가서 쉬고 있어!”
“…나는, 괜찮아.”
“내가 괜찮지 않으니까 들어가란… 야! 너 진짜 미쳤어!? 말 좀 들어, 이 미친 식빵아!”
난데없이 연하늘이 뛰쳐나갔다.
차마 ‘년’이라고 말할 수는 없던 민아린은 애꿎은 바닥을 때렸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후위에서 연하늘을 보조하기로 했다.
그런 한편, 연하늘은 금속패를 산울림으로 환원했다.
그녀가 산울림에 마나를 씌웠다.
[쇼크 웨이브>무기에 내장된 마법을 발동시키기란 어려운 편이 아니었다.
원거리전에서 근거리전으로 전법을 바꾼 연하늘이 지면에 산울림을 내리쳤다.
마나가 담긴 일격이 지면을 흔들고, 파문이 퍼져 나갔다.
파문에 닿은 몬스터들이 움찔하고, 일부가 잠시 행동 불능에 빠졌다.
그녀는 제일 먼저 움직이지 못하는 몬스터들의 숨통을 끊었다.
콰직!
반격하지 못하도록, 있는 힘껏.
들개형 몬스터의 두개골을 부순 연하늘이 곧장 다음 동작을 이어 갔다.
뼈가 으깨지는 소리가 연이어 터진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피와 살점이, 눈알이 공중에 나부낀다.
동시에 환청과 환각이 스친다.
―부모도 모르는 아인 주제에.
―천하고, 근본도 없는 것.
자비는 없다.
쇠망치는 원숭이형 몬스터를 내리찍어, 곤죽으로 만들어 버린다.
흠칫한 몬스터들이 뒷걸음질 친다.
인간의 천적인 몬스터가 인간에게 두려움을 느끼다니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연하늘은 꼬리를 내린 놈들을 쫓아, 산울림을 휘둘렀다.
콰드득!
―너 따위한테 어울릴 거라 생각하니?
아니야.
연하늘은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비릿한 맛이 입안에서 퍼졌다.
―견우가 놀아 주는 거겠지.
―언제까지 걔가 너랑 놀아 줄 거라 생각하니?
―꿈 깨, 너는 안 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자신을 비웃는 목소리를 물리치듯, 몬스터들을 향해 산울림을 휘두른다.
그럼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적진 깊숙이 파고든 연하늘은 놈들의 살기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크르르….
―견우한테 버려질 준비나 해.
“…아니라고.”
침을 뚝뚝 흘리며 송곳니를 드러내고, 붉은 눈을 번뜩이는 몬스터들.
그러나 붉은 눈을 지닌 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붉은 안광이 빛을 발했다.
[기프트: 분열>머릿속에서 울리는 환청과 함께, 이대로 몬스터들을 쓸어버린다.
검은 머리칼이 바람에 나부꼈다.
연하늘은 기프트를 발동했다.
1명이 2명으로, 2명이 4명으로, 그렇게 배로 늘어나려 했다.
그 수는 순식간에 주위를 포위한 몬스터들을 웃돌며….
“이제 진정해, 내가 왔으니까.”
“….”
그때, 누군가 뒤에서 눈을 가렸다.
본체 연하늘은 움찔했다.
그 사람이 단단한 팔로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견우야….”
“미안, 많이 아팠지? 이제 괜찮아.”
“아….”
“그러니까 푹 쉬어.”
눈물로 번진 시야에서 도견우가 시원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를 눈에 담고 안도한 연하늘은 곧 의식을 놓았다.
몸에서 힘이 풀린 그녀가 고스란히 그의 품 안으로 쓰러졌다.
한 손으로 그녀를 부드러이 안은 그는 몬스터들을 노려보았다.
그가 뇌까렸다.
“아픈 애 건드리니까 좋냐.”
* * *
밤이 깊은 시각에 숲속을 지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지 않아도 복잡하게 이루어진 산림에서 길을 찾기 쉽지 않기도 했고, 야성이 증가한 몬스터들이 걸핏하면 싸움을 걸어왔던 탓이다.
“너희한테 쓸 시간은 없거든.”
그러나 내게는 회피 본능이 있었다.
기프트를 역이용한 나는 어찌어찌 몬스터들의 추격을 따돌려, 때맞춰 연하늘을 만날 수 있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비록 머리카락이 검게 물들고, 피부가 갈색으로 변했다고 한들.
몬스터들과 혈투를 벌이던 연하늘은 어둠 속에서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척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던 그녀는 게임의 중간 보스로 등장하는 재앙의 마녀와 흡사했다.
더욱이 기프트를 사용하려 했으니 불길한 예감은 배가됐다.
혹여 무슨 사달이라도 나기 전에 그녀를 진정시킨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곤히 잠들었네.’
경계심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얼굴로.
연하늘은 내 가슴팍에 기대서 편안히 눈을 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쌔근쌔근하는 숨소리 사이로 미약한 신음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독에 괴로워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도 그녀가 싸웠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천불이 끓을 수밖에 없었다.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나는 민아린에게 말했다.
“아린아, 하늘이를 부탁할게. 네가 은솔이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줘. 은솔이라면 물의 정령의 힘으로 어느 정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것도 가져가고. 해독제야.”
“안 그래도 은솔이가 치료하고 있었어. 효과는 별로 없었던 것 같지만…. 그러다 쟤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이렇게 된 거라니까. 그런데 해독제라니? 설마….”
“이걸로 하늘이를 치료할 수 있을 거야.”
“…확실한 거지? 잘 가져왔네.”
민아린도 많이 지친 것 같았다.
이참에 나는 연하늘과 함께 그녀도 전장에서 내보내, 휴식을 취하게 하기로 했다.
물론, 계속 쉬게 둘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저 많은 몬스터들을 감당하려면 혼자서는 버거웠다.
“은솔이한테 해독제를 건네주고 나서, 잠시 쉬었다가 힘을 회복하면 돌아오도록 해.”
“으응? 뭐라고?”
자신보다 키가 큰 연하늘을 받고 몸을 기우뚱하는 민아린.
그녀가 얼굴을 팍 찡그렸다.
노란 눈이 나를 쪼고 있었다.
“저기, 연하늘이 이렇게 되기 전까지 혼자서 저놈들을 상대했던 사람이 나였거든? 그런데도 지금 나를 부려 먹겠다는 거야, 뭐야? 그리고 차은솔도 있잖아!”
“은솔이는 하늘이를 치료해야지.”
“그놈의 하늘이, 하늘이…. 멋지게 중요한 순간에 나타났나 싶더니, 하늘이부터 찾기나 하고…. 나, 우, 우리도 좀 신경 쓰란 말이야!”
“알고 있어. 고마워. 네가 없었다면 정말 큰일 났을 거야. 내가 다음에 뭐라도 보답할게.”
“…흥, 그렇게 나올 것이지. 그 보답, 나중에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하지 마. 일단 얘 좀 저기에 갖다 놓고 올 테니까 거기서 딱 기다리고 있어. 나, 마도 민가의 민아린이야. 날 부려 먹으려면 비싼 걸 각오해야 할 거야.”
“그래, 그래, 알았다.”
이전이라면 민아린을 달래는 데 더 시간을 할애해야 했겠지만.
그녀가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 주면서 불필요한 논쟁을 단축할 수 있었다.
나는 분이 풀린 듯이 흥 소리를 낸 그녀를 연하늘과 함께 뒤로 보냈다.
인기척을 느낀 것은 그때였다.
두 사람이 수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앗! 견우견우! 역시 견우견우도 여기 와 있었구나!? 내 예상보다 빨리 왔네?”
“아, 다행이다…. 유리 말대로 하길 정말 잘했다….”
“남유리? 고은비?”
밤중에 이동하느라 길이 험난했던 것인지, 새하얀 원피스에 몬스터의 피를 덕지덕지 묻힌 남유리.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손등으로 이마에 흐른 땀을 닦는 고은비.
두 사람은 나를 보고 반가워했다.
추측건대, 그들도 사정을 눈치채고 연하늘을 찾으러 온 것 같았다.
때마침 운이 좋았다.
“잘됐다. 너희도 같이 싸워 주면 살지.”
“와…. 오기 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많아도 너무 많은데? 그보다 하늘이 상태는? 괜찮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인데… 방금 내가 해독제를 가져왔으니 나을 수 있을 거야.”
“견우견우, 암야 말벌의 독은 두 가지의 해독제를 사용해서 치료하는 거 알지?”
“…뭐?”
“음, 지금 반응을 보니까 아무래도 하나만 가져온 모양이네.”
“….”
“하나만으로는 극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어.”
남유리가 나긋나긋한 어조로 설명했다.
나로서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도승우 이 개자식….’
분명, 놈은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알려 준 것이었으리라.
생각만으로도 머리에 핏줄이 돋고, 화가 치솟았다.
어쩔 수 없다.
나는 고은비와 남유리에게 일을 맡기고, 도승우를 찾으러 가려 했다.
남유리가 킥킥 웃음을 흘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제 보니 그런 얼굴도 할 수 있구나? 신선해! 재밌어! 그 보답으로 내가 도와줄게. 어차피 그럴 가능성을 두고 여기에 온 거고, 은비까비가 친구끼리는 서로 돕는 거라고 했고.”
“…뭘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건데?”
“한 가지 해독제의 정보만 파악하면, 다른 한 가지 해독제의 정보를 유추하는 것은 나한테는 간단한 일이야. 조금 시간이 걸리기도 하겠지만, 내가 만들어 볼게.”
“…그러고 보니 넌 연성 남가였지.”
“응! 약학에는 해박해!”
“정말 고마워.”
이 시기에 남유리와 인연을 터 둬서 정말 다행이다.
나는 그녀에게 깊이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친구끼리인데 당연하지! 앞으로도 부탁할 일이 있으면 말해 줘!”
“어… 그래.”
명령이나 부탁을 받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남유리다.
그런 그녀가 이런 말을 하다니 굉장히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의 곁에서 딴청을 피우는 고은비를 쳐다보았다.
“아하하….”
“….”
오는 길에 고은비가 어떻게 남유리를 꼬드긴 게 아닐까 싶다.
그녀의 수완이 무척 궁금했지만, 대화는 나중에 해야겠다.
“그럼 유리 너는 하늘이한테 가 줘. 거기서 아린이랑 은솔이한테 얘기해서, 이쪽으로 와 달라고 하고.”
“알았어! 그렇게 할게!”
손을 번쩍 들어 큰소리로 답한 남유리가 곧장 동굴로 향했다.
잠시 후, 민아린과 차은솔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뭐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지 가세를 마다하지 않았다.
“얼마 쉬지도 못했는데 이게 뭐야.”
민아린이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린다.
주위로 마법진들을 생성한 그녀가 포격을 준비했다.
“칼로리를 많이 소모하게 되겠지만, 어쩔 수 없네.”
얌, 하고 차은솔이 초코바를 깨물었다.
이내 오도독오도독 초코바를 씹던 그녀의 눈이 녹색 빛을 번뜩였다.
그녀의 주위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이!
그르릉.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머리칼을 휘날리는 차은솔의 머리 위로 거대한 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녹색 털을 지닌 새가 날개를 퍼덕이자, 주위로 크고 작은 새들이 생겨났다.
바람의 정령들이었다.
한편, 지상에서는 푸른빛을 띠는 표범이 포효했다.
표범의 주위로 물방울처럼 생긴 물의 정령들이 모여 군집을 이뤘다.
그리고 붉은 여우에, 노란 쥐, 새하얀 순록 등.
수많은 정령들이 현현했다.
이로써 정령들의 군단을 등에 진 나는 입가를 끌어 올렸다.
“물량에는 물량이지. 이제 좀 할 만하겠네.”
* * *
강한별과 도승우는 제각기 핸디캡을 짊어지고 있었다.
강한별은 지속적인 전투로 인해 체력과 마나를 소모한 상태였으며, 도승우는 응급조치로 붙인 왼팔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그렇기에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강한별에게는 위기에 처하면 자동으로 발동하는 스킬이 하나 있기는 했다.
[호승지심 Lv 1 → 2]◆ 스킬 분류
―조건 발동형
◆ 상세 효과
―Hp가 20% 이하로 하락했을 때, 모든 신체 능력이 5 → 6% 상승한다.
이론적으로 호승지심의 효과를 더하면 강한별의 신체 능력치는 가뿐히 도승우를 능가했다.
그럼에도 그가 도승우와 합을 나누며 유효타를 주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도승우의 아티펙트 때문이다.
[풍랑의 가호>‘또냐. 저것만 없으면 좋을 텐데….’ 신검 도가에서 관리하는 아티펙트인 풍랑의 브로치.
도승우는 위험한 순간이 올 때면 브로치에 내장된 마법을 발동해서 공격을 막아 냈다.
그때마다 모처럼 허를 찌른 강한별은 혀를 차야 했다.
바람의 방벽이 너무나 두꺼웠다.
더군다나 그는 수시로 서포터들에게 치료와 버프를 받고는 했다.
“왜?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마음대로 욕해라. 이번 일에 많은 게 걸려 있는 이상, 더는 앞뒤를 가리지 않을 생각이니까. 진흙탕 싸움도 기꺼이 받아들이지.”
이로 인해 서로의 전력은 거의 비등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그것도 잠시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는 강한별이었으니까.
도승우는 그런 그를 조롱하듯, 한편으로는 신검 도가의 가훈을 저버린 자신을 비난하듯 이죽거렸다.
반면 강한별은 초조함을 느끼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가 오히려 도발하듯 대꾸했다.
“아니. 원래 전투는 비겁한 건데? 당연한 걸 욕할 필요가 있나? 내 입장에서는 짜증 나지만 원래 상대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게 전투인데, 뭘.”
“…이제 보니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지껄이는 얼굴이 그놈이랑 같구나. 처음 봤을 때부터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를 알겠다.”
“원래 친구끼리는 닮는 법이라잖아.”
“그렇게 웃는 걸 보니 더 불쾌하군.”
전투에서 허세는 중요하다.
상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지 않는다면 상대는 살기 위해 집요하게 그곳을 물어뜯을 것이다.
약육강식이 자연의 법칙으로 깔린 야생의 세계와 다를 바 없는 게 곧 전투다.
그러니 그 야생에 군림하는 사자, 수왕을 자처하는 신검 도가의 사람은 필히 조심해야 했다.
사부, 서정진의 가르침을 떠올린 강한별은 바람이 멎는 순간을 기다려 도승우에게 달려들었다.
───!!
금속음이 찌르르 울린다.
두 사람은 어떻게든 허를 찌르러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고, 부딪쳤다.
그때, 도승우의 검이 번쩍였다.
파직!
푸른 전격이 피어오른다.
틈을 찾으러 도승우의 주위를 돌던 강한별은 그 현상을 면밀히 관찰했다.
언젠가 사부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기억을 스쳤다.
―신검 도가의 검술은 수왕류다. 백수의 왕의 이름을 딴 것에서 알 수 있듯, 자신들의 검술이 모든 검술 중에서 으뜸을 차지한다고 자부하는 오만을 엿볼 수 있지. 하지만 그들이 수왕류란 이름을 붙인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다른 이유가 뭔가요, 사부님?
―놈들의 검은 잡식이다.
―잡식…이요?
―그래, 근간이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지. 기본적으로 쾌를 토대로 펼치는 수왕류는 변, 강, 환, 유, 폭(爆), 패, 첨 등 다양한 묘리를 섞는 것으로 효과를 발휘한다. 거기에 벽뢰가 더해져서 한층 검술을 보강하지.
―….
―동물로 비교하면… ‘때로는 치타처럼 빠르게, 때로는 코끼리처럼 강하게, 때로는 독수리처럼 날카롭게.’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그 모든 동물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무엇이겠느냐.
―…사자요?
―그래, 백수의 왕 사자다. 그렇기에 놈들은 수왕류라고 부르는 것이다. 모든 검술의 묘리를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자유분방하고, 변화무쌍한 검술이라는 의미에서.
실제로 도견우의 검술을 경험한바, 수왕류를 확실하게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말할 수 있는 점은 수왕류는 임기응변에 능하고, 다양하다는 것.
상대하기에는 골치 아픈 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파훼법이 없는 검술이라고도 불리는 거지. 하지만 인간이 만든 모든 것에는 ‘절대’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파훼법이 있는 건가요!? 뭔데요?
―놈들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에 주목해라.
―현상이요?
―놈들은 수왕류를 펼칠 때는 주위로 벽뢰를 발현한다. 그러니 벽뢰의 세기를 관찰함으로써 검술의 진척도와 완성도 그리고 위력을 유추할 수 있지.
―…그게 본다고 보일까요?
―당연히 내 제자라면 가능해야지.
문득 입가가 올라간다.
과연 자신이 볼 수 있을 것인가.
굽이굽이 치솟는 벽뢰 줄기를 눈에 담은 강한별은 때를 가늠했다.
‘이번 일격에 승패를 거는 거야.’
생각은 도승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와 눈을 마주친 강한별은 곧장 지면을 박찼다.
직후, 그가 검을 휘둘렀다.
‘저건….’
수왕류 공격식 제2형, 사자 조흔.
일전에 도견우와 벌인 대련을 답습한 강한별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즉시 도승우의 품으로 파고든다.
왼쪽 시야에서 칼날이 접근한다.
그는 곧장 팔등을 세워, 날아드는 칼날을 막는 자세를 취했다.
[투귀류 무술의 장 제1형>철갑(鐵甲).
강한별은 방벽을 두른 팔등으로 공격을 방어했다.
자연히 도승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하지만 그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스스로 제 목을 조른 꼴이군. 내가 방금 암야 말벌의 독을 검에 발랐다는 것도 모르고.’
얼마 남지 않은 독을 사용한 도승우는 승리를 확신했다.
사자 조흔은 직접적인 타격에서 강력한 위력을 지닌다.
강한별이 팔등으로 막으려 해도 인간적으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결국 자신의 칼날이 그의 방벽에 균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작은 생채기라도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독은 상처 부위에 스며들어 그를 죽음으로 내몰 것이다.
하나….
‘뭐라고? 어째서…!’
사고로 인해 왼팔을 잃은 강한별은 머신아츠를 착용하고 있었다.
팔에 생채기가 나더라도 독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걸려들었다.’
강한별이 신체 결손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여차할 때 상대의 의표를 찌르기 위해.
독의 존재는 고려치 않았다지만, 계획대로 원하는 상황을 설계한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직후.
“잘 받아 갈게, 네 브로치.”
“…!”
강한별은 루시드를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