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162)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162)
처벌
몬스터들의 습격을 막아 냈다고 해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마나를 탐하는 본능을 지닌 놈들이 완전히 물러날 리 없는 것이다.
실제로 놈들은 주위를 배회하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몸을 회복 중인 연하늘을 지키는 우리로서는 교대로 보초를 서며,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야 했다.
적어도 밤이 지고, 해가 뜨기 전까지는 편히 눈을 붙일 수 없었다.
“…바람이 차네. 그러지 않아도 기온이 떨어진 밤에 동굴에 있느라 추울 텐데…. 하늘이 얘는 괜찮으려나.”
밤이 지배하는 시간도 머지않았다.
동녘 하늘에 어스름한 빛이 번지고 있었다.
경계를 서며 그 광경을 눈에 담은 나는 여전히 연하늘에 대한 걱정을 지우지 못했다.
‘걔가 추위에 많이 약한데…. 지금도 아픈 애가 감기라도 걸려 봐. 그럼 위험한데….’
감기가 심하면 폐렴으로 도진다.
리사가 연하늘을 간호하고 있다지만, 안심이 되지 않는다.
초조함에 속으로 끙끙 앓는 나는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때, 나와 함께 새벽하늘을 구경하던 노효원이 말을 걸어왔다.
“하늘이가 걱정되나 보지?”
“당연하지. 걔가 얼마나 병약한데.”
“병약…하다고?”
“너는 하늘이랑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르겠지만, 걔가 은근히 자주 아프고 그래.”
“아인은 신체 특성상 우리보다 더 건강하고, 잔병치레가 없는 걸로 아는데….”
“토끼는 안 그래. 의외로 토끼는 각력이 발달한 것치고는, 뼈가 많이 약하거든. 그러다 보니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가 뼈가 부러지는 일이 허다하다고 해. 신경이 예민해서 스트레스 노출에 취약하기도 하고.”
“…하늘이 얘기하는 게 맞는 건가? 토끼 얘기하는 게 아니라.”
“하늘이도 토끼형 아인이니까 나름 비슷한 면이 많다는 소리야.”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래, 소꿉친구인 네가 그렇다니까 그런 거겠지.”
이번 일로 알았다.
역시 토끼는 집에서만 키워야 된다.
괜히 하늘이를 바깥에 풀어놓았다가 도승우 같은 못돼 처먹은 고양이 새끼에게 당할 수 있다.
참고로, 도승우를 비하하기 위해서지 고양이를 비하할 생각은 없다.
고양이, 귀엽다.
토끼가 더 귀엽지만.
“정 걱정이 되면 보러 가지 그래. 경계는 내가 맡고 있을 테니까.”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쯧쯧 찬 노효원이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있으면 당번을 교체할 텐데 그때까지만 참아야지. 너도 밤새도록 애들 이끌며 싸우느라 피곤할 텐데, 나만 쏙 빠질 수는 없잖아.”
“네가 그렇다면야, 뭐… 마음대로 해. 대신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만.”
“나는 낑낑댄 적 없는데?”
“당사자라서 모르는 거겠지. 아까부터 네가 침울해하는 소리 때문에 얼마나 신경 쓰였는지 아냐?”
“…그보다 다른 애들도 많이 피곤하겠네. 나중에 뭐라도 보답해야겠어. 효원이 네가 쟤네한테 내가 고마워한다고 전해 줘. 그리고… 시험 끝나고 조만간에 뒤풀이 자리나 잡자.”
“말 돌리기는. 너한테 감사를 들으면 다들 기뻐할 거다. 창창한 미래를 약속받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네 눈에 띄려고 안달이 난 애들이니까.”
노효원이 피식 웃는다.
그녀를 따라 웃음을 흘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원래라면 시험을 치르고 있어야 했을 검술 계통의 학생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나는 사실상 시험을 포기하고 우리를 도와준 것이나 다름없는 그들을 기억하기로 했다.
물론, 시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등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었다.
“몬스터들에게서 나온 전리품을 분배하면 넉넉히 가점을 안겨 줄 수 있겠지?”
“도승우 패거리를 정복하며 얻은 점수도 꽤 짭짤할 거다. 게다가 놈들에게서 이정표의 위치와 포인트를 얻기 좋은 목이 어디인지 듣기도 했고. 그것만 있어도 무난히 중간은 가겠지.”
“거기에 이것도 가져가도록 해.”
“이게 뭐지?”
나는 블레이저 재킷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노효원에게 건넸다.
유노을이 나와 거래하는 대가로 넘긴, 가산점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적힌 쪽지였다.
“노을 교관님 말로는 이번 일로 시험에 형평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추가로 득점을 얻을 수 있는 문제를 만들었다더라고.”
“그걸 너한테 제공했다는 건데… 이래도 되는 건가? 이것 역시 시험에 형평성이 떨어지는 건….”
“최악보다 차악을 선택하겠다는 거겠지.”
“모르는 사람이 알면 박탈감이 장난이 아니겠군.”
“그러니 다른 사람한테는 알리지 말고, 저 애들이 알게 모르게 포인트를 얻을 수 있게 도와줘. 증거가 남지 않게 쪽지는 태우고.”
“네 말대로 따르도록 할게. 그런데 너는 괜찮은 건가? 이 정보를 우리한테 주면, 너한테는 아무것도 남지 않…. 그건 아니겠군.”
“나도 따로 받은 정보가 있어. 그게 더 좋은 정보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도록 해.”
노효원에게 건네준 알짜배기 정보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정보를 가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윽고 다음 당번이 나타나며 내 역할은 끝이 났다.
* * *
연하늘의 상태를 확인하러 동굴로 향하니, 안에서 강한별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경계 근무를 교대하러 가는 듯한 그가 손을 흔들며 알은체했다.
“하늘이 보러 온 거야? 그리고 보초 서느라 힘들었지? 이제 좀 쉬어.”
“어, 그러는 너도 교대해 주느라 고생하겠네. 하늘이는 어때? 괜찮아?”
“조금 전에 막 눈을 뜬 참인데 많이 나아진 것 같더라고. 지금 애들이랑 아침 먹고 있어.”
“그래? 뭐라도 먹고 있다니 다행이네. 먹어야 기운이 나니까.”
절로 기분이 풀리는 소식이다.
나는 연하늘에 대한 걱정을 그나마 덜 수 있었다.
한편, 내 눈에는 강한별이 교복에 단 브로치가 눈에 들어왔다.
중심부에 녹빛을 품은 보석이 박힌 브로치는 도승우가 소유했던 것으로, 신검 도가에서 보물로 다뤄지고 있는 아티펙트였다.
[풍랑의 브로치]◆ 장비 분류
―장신구(브로치).
◆ 상세 설명
―신검 도가의 보물.
―적색 게이트 ‘풍랑족의 고원 III’의 보스 몬스터 북풍왕(北風王)의 힘이 깃든 브로치.
―어린 투귀 강한별이 박탈당한 수재 도승우에게서 약탈했다.
◆ 상세 효과
―내구 +1, 민첩 +1
―바람의 정령과 관련된 스킬의 습득 효율 10% 상승
―스킬 「풍랑의 가호」
‘게임의 흐름대로 풍랑의 브로치를 손에 넣었구나. 잘됐네.’
게임에서 당장 얻을 수 있는 아티펙트 중, 데미지를 경감하거나 회피하는 것에 효과가 탁월한 아티펙트는 풍랑의 브로치밖에 없었다.
내장된 마법인 풍랑의 가호는 앞으로 강한별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닌 이 세상에서, 목숨은 결코 가볍지 않다.
주인공 강한별이 사망하게 될 경우, 향후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따라서 그가 자칫해서라도 죽지 않게 최대한 방비를 굳혀 놓아야 했다.
풍랑의 브로치는 그 방비의 일환이라 할 수 있었다.
‘나야 회피 본능이 있기도 하고, 하드 스킨도 있으니까.’
목숨이 오갈 정도로 험한 전투는 강한별의 몫이다.
내 역할은 스토리를 이끌어 가며 그를 보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가끔, 내가 더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은 기분 탓에 불과하다.
원래 자신이 제일 힘든 법이다.
응….
‘어라?’
강한별이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 것은 그때였다.
별안간 내게서 몸을 튼 그가 손으로 브로치가 보이지 않도록 가렸다.
“혹시 브로치를 돌려달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 이게 너희 가문의 보물이란 것은 알겠는데, 미안하지만 이제 이건 내 거야. 내가 도승우를 쓰러뜨려서 얻은 훈장이라고.”
“….”
강한별이 눈에 힘을 주며 으르렁거렸다.
꼭 입에 문 뼈다귀를 뺏기지 않으려 위협하는 들개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풍랑의 브로치를 뺏을 생각이 없던 나는 어이가 없어 혀를 내둘렀다.
“내가 돌려달라고 할 것 같아? 말했잖아, 도승우 그놈한테서 얻는 건 네가 알아서 하라고. 나중에 가문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어.”
“정말이지? 역시 견우 넌 좋은 사람이야.”
“내가 착하고 좋은 사람이긴 하지. 어쨌든 경계 잘 서고. 나는 이제 하늘이 보러 간다.”
“그래, 안녕!”
전생을 깨달았을 때도 다짐했었는데, 되도록 주요 캐릭터들이 얻게 되는 기연을 뺏을 생각은 없다.
나는 그제야 경계심을 풀고 웃는 강한별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지나쳤다.
동굴로 들어가니, 벽에 기대앉아 죽을 먹고 있는 연하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발소리를 듣고 토끼 귀를 쫑긋거린 그녀가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견우야, 왔어?”
“어, 왔어. 이제 괜찮은 거야?”
리사, 고은비가 비켜 준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나는 찬찬히 연하늘을 살폈다.
확실히 상태가 호전된 것 같기는 했다.
몇 시간 전에 비해,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가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애가 얼굴이 반쪽이 됐네.’
독에 고통받는 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연하늘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 생각할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아니, 그녀에 대해서라면 제일 잘 아는 내 생각이 맞을 터였다.
“식욕이 없더라도 많이 먹도록 해. 죽으로는 식단이 빈약해 보이는데, 내가 간이 상점에 가서 뭐라도 사 올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단백질도 같이 섭취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견우, 하늘은 환자예요. 독으로 속이 엉망진창이 됐을 텐데, 고기나 소화가 잘되지 않는 다른 음식을 먹으면 몸에 좋지 않을 수 있어요.”
“그래, 맞아. 아프면 죽을 먹어야지. 견우가 하늘이 걱정을 많이 했구나? 하긴, 하늘이 잘 때도 옆에서 극진히 보살폈을 정도니까. 하늘이는 좋겠네?”
리사와 고은비가 우려를 표했다.
듣고 보니 두 사람의 말이 맞았다.
마음 같아서는 연하늘을 위해 열량이 높은 음식을 먹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상태가 조금 더 나아진 후에 시도해야 할 듯했다.
“애들 말대로, 다른 음식은 아직 위에 부담이 될 것 같으니까 죽을 먹을게. 이게 목 넘김이 편하기도 하고. 그래도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러냐. 그럼 죽이라도 많이 먹어. 지금 먹고 있는 거로는 턱도 없으니까, 하나 더….”
“견우, 저게 정량이에요. 죽이라도 과식하면 안 좋아요.”
“저게… 정량이라고?”
“….”
세 사람이 이상하게 침묵하는 가운데.
나는 연하늘이 손에 든 그릇을 보고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되지도 않아 보이는 양이 정량이란 게 충격적이기만 했다.
“견우, 그릇을 은비한테 줘 보세요. 그럼 알 수 있을 거예요.”
“응? 리사야, 왜 가만히 있는 나를 걸고넘어지는 건데!?”
“…그러네. 정량인가 보네.”
“그렇죠?”
“견우야, 이건 좀 병 아니니!?”
“으으…. 우리 견우가 미안해….”
“아, 하늘이 부끄러워한다! 좋아서 웃는다!”
연하늘에게서 고은비에게 넘어간 그릇은 착시 현상으로 느껴질 정도로 큼지막하게 보였다.
그릇에 마법이라도 걸려 있던 걸까?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내 감상에, 세 사람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여 주었다.
리사는 무어가 그리 웃긴지 키득거렸고, 고은비는 기가 차서 황당해했으며, 연하늘은 푹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내 나도 멋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고은비가 들고 있던 그릇을 받았다.
“하늘이 네 성격상 얼마 안 먹고 남길 것 같은데, 내가 먹여 줄게.”
“아, 안 그래도 되는데…. 애들이 다 보고 있잖아….”
“보면 뭐가 어때서? 입이나 벌려. 아―.”
“…응. 아―.”
리사와 고은비의 눈치를 살피며 얼굴을 붉히던 연하늘.
그녀가 곧 작게 입을 벌려서는, 내가 주는 죽을 받아먹었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도록 해. 잘못해서 탈 나지 않게.”
“응, 그럴게.”
혹여나 흘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나는 그릇이 바닥을 비울 때까지 연하늘에게 죽을 먹였다.
* * *
시험에 가산점이 반영되기 위해서는 먼저 30개의 이정표를 모으는 게 전제되어야 했다.
간밤에 습격한 몬스터들로부터 다수에게 나누어 줘도 될 정도로 많은 전리품을 얻었다고 한들, 전제 조건을 완수하지 않고서는 가치가 없었다.
내가 유노을과 거래로 교환한 정보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이정표를 다 모으지 못한 사람들은 날이 밝자마자 마저 시험을 볼 채비를 꾸렸다.
“다른 애들도 모두 떠나보냈으니, 우리도 그만 가 보도록 할게. 다들 밖에 나가서 보도록 하고, 하늘이는 얼른 나았으면 좋겠네.”
“그래, 남은 시험 잘 치르길 빌게. 수고했고, 밖에서 보자. 신검 도가의 사람으로서 맹세하건대, 오늘 너희한테 입은 은혜는 잊지 않을게.”
“그렇게 말해 주니 널 따르기로 한 보람이 있군. 아마 다른 애들도 같은 생각일 거다. 어쨌든, 이번에 1학년 대표로 완전히 입지를 굳히게 된 거 축하한다. 검술 계통의 애들은 더는 네 말에 거역하지 못할 거다.”
우리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도승우 패거리에게서 얻어 낸 정보를 취합해 지도를 만들었다.
노효원은 이정표를 찾아 나서려는 학생들에게 그 지도를 쥐여 보냈다.
그러고는 내게 상황을 보고한 뒤, 그녀 또한 자신의 파티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우리도 슬슬 움직이자.”
이제 자리에는 나와 연하늘과 친구들만 남아 있었다.
동선이 겹치는 사람들끼리 파티를 짠 우리는 헤어지기 전에 덕담을 주고받았다.
“도견우! 연하늘! 우리 간다! 밖에서 보고, 시험 잘 쳐!”
“도견우! 하늘이 잘 챙겨!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어련히 잘하겠지만!”
“다들 고생 많았어!”
요란스럽게 떠든 세쌍둥이가 제일 먼저 등을 돌려 떠나갔다.
다음으로 떠난 사람은 리사와 강한별이었다.
“저희도 그만 가 볼게요. 견우는 하늘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요. 여차하면 제가 준 포션을 사용하도록 해요.”
“다들 나가서 보고, 파이팅이야!”
그다음은 박사군과 용해랑.
“우리도 갈게. 찾아야 하는 이정표가 꽤 많아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을 것 같거든. 해랑아, 나만 믿고 잘 따라와야 해?”
“그래! 길은 부탁한다! 연하늘! 시험이 끝나면 가문에서 보내 준 강장제를 선물하마! 그걸 먹으면 원기가 회복될 거다!”
그다음은 고은비와 남유리.
“하늘아! 아플 것 같으면 언제든 견우한테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 견우는 하늘이 잘 살피고! 둘 다 밖에서 봐!”
“오늘 정말 재밌었어! 하늘하늘은 얼른 낫기를 빌게!”
그다음은 민아린과 차은솔.
“너희 둘, 오늘 빚은 내가 기억하고 톡톡히 받아 낼 테니까 그런 줄 알아. 내가 너희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리고 연하늘! 너는 쾌차하기나 하고. 네가 그런 상태여서야, 너한테 경쟁에서 이기더라도 이겼다고 할 수 없잖아?”
“하늘아, 건강해. 나도 갈게.”
다들 연하늘을 걱정하는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했다.
나는 떠나간 사람들을 배웅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내 마지막으로 남은 우리도 이정표를 찾으러 가기로 했다.
“하늘아, 우리도 그만 가자.”
“응. 근데 나 정말 내 발로 걸을 수 있는데….”
“환자잖아. 환자는 얌전히 내 말이나 들어.”
“나 안 무거워? 괜찮아?”
“무겁기는, 깃털처럼 가벼운데?”
“킥, 농담도 잘해.”
“농담 아니라 진담인데?”
“네, 네, 그래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도견우 어린이. 그럼 신세 좀 질게.”
치마 속에 반바지를 입었다지만, 그래도 불안하다며 내 블레이저 재킷을 허리에 두른 연하늘.
그녀를 등에 업은 나는 방향을 잡으며 말했다.
“뛸 거니까 꽉 껴안도록 해.”
“응…. 저기, 클린을 사용해서 아마 냄새가 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땀 냄새가 나도 이해해 줘.”
“냄새 안 나니까 걱정 마. 오히려 땀 냄새는 나한테서 날걸?”
“음… 너한테서도 안 나는데? 그냥… 네 냄새가 나.”
“내 냄새가 뭔데?”
“그런 게 있어.”
조심스럽게.
연하늘이 내 목을 감은 팔에 힘을 준다.
그녀의 가슴이 내 등에 밀착해, 넓게 퍼지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손에는 엉덩이가 꽉 잡힌다.
귓가에서는 그녀의 숨소리가 들린다.
나는 애써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등에 업힌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간다?”
“응.”
그길로 우리는 가장 가까이 위치한 이정표를 향해 이동했다.
연하늘이 불쑥 말을 꺼낸 것은 그러던 중이었다.
“저기, 견우야.”
“왜?”
“있지…. 나, 버리지 마.”
“….”
“나 버리면 안 돼….”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다.
나는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은 연하늘을 당장에라도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나무 위를 뛰고 있는 상황에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얘가 왜 이러지….’
이번 일로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인 것일까.
아니면 도승우에게 무슨 말이라도 들은 것일까.
모르겠다.
다만 내가 연하늘에게 해 줄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안 버려. 내가 널 왜 버리겠어? 너야말로 나 버리지 마.”
하늘이 얘는 아직도 모르나 보다.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고, 내게 얼마나 과분한 존재인지.
* * *
중간고사가 종료되었다.
피바람이 몰아친 아카데미는 직업윤리를 저버린 교관들을 처벌하기 위해 징계 위원회를 열었으며, 도승우와 그 패거리는 학창에 들어갔다.
그리고 며칠 후, 그들의 처벌이 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