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165)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165)
중간고사에서 부정행위에 가담한 사람들의 처벌이 결정됐다.
비리를 저지른 교관들의 경우에는 관여한 정도에 따라 퇴직 혹은 정직 및 감봉.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지 못한 채로 도승우의 모략에 간접적으로 가담한 학생들은 정학과 벌점, 교내외 봉사 혹은 그에 준하는 징계가 주어질 예정이었다.
여기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학생들은 부당 이익을 취한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아, 추후에 시험을 재응시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여름방학에는 추가로 보충 수업을 2주 동안 수강해야 했다.
그리고 김씨 세쌍둥이처럼 심하면 강제 전학을 당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상위권이 이런 식으로 빠지면… 이거 어쩌면, 아직 나한테 기회가 있을지도? 좋은데?”
가시덩굴 첨탑 사건으로 인해, 한동안 시험공부를 하지 못해서 반쯤 중간고사 성적을 포기한 민아린은 뜻밖의 행운에 눈을 빛냈다.
하지만 같은 계통에 연하늘이 있는 이상, 그녀가 성적을 올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도승우는.
‘게임의 흐름대로 됐네.’
처음에는 퇴학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아카데미에 파다하게 퍼져, 게임과 다른 조짐을 보였지만.
가문에 오명을 남기고 싶지 않던 할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퇴학을 막고, 강제 전학이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 과정에서 셋째 큰아버지는 가문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상당 부분 잃고 말았고, 반대로 내 아버지는 반사 이익을 누림으로써 더는 차기 가주 경쟁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전체적인 흐름은 유지되는 가운데, 세부적인 흐름이 미묘하게 바뀐 셈이다.
나로서는 과연 이번 일이 가문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전부터 그래 왔듯, 아버지가 만약 가주가 되기를 원한다면 응당 힘을 보탤 생각이다.
한편, 내가 당장 관심을 가지는 사항은 흐름의 미세한 변화가 아니라, 도승우의 근황이었다.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놈이 학창에서 출소했다.
세쌍둥이를 통해 소식을 접한 나는 곧장 놈을 만나러 갔다.
신검 도가의 사람이되, 더는 그 위명을 행사하지 못하게 된 놈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혼자 터덜터덜 학창을 나오는 놈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내 기척을 느낀 놈이 비아냥거리듯 입가를 씰룩였다.
“무슨 볼일이지? 내가 출소했다고 두부나 먹이러 온 건 아닐 테고.”
“당연히 아니지. 널 비웃으려고 보러 왔다면 모를까.”
“도견우….”
“그리고 갚아야 할 빚도 있고.”
“갚아야 할 빚이라고?”
“하늘이를 건든 대가는 치러야지.”
“….”
잊지 않았다. 잊을 수 없었다.
지금도 그날, 연하늘이 다 죽어 가던 얼굴로 고통스러워하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생각만으로도 화가 치미는데, 이대로 도승우를 보낼 수 없었다.
아카데미와 가문에서 놈에게 이미 처분을 내렸다고 한들 관계없다.
나는 내 방식으로 놈과의 악연에 종지부를 찍을 생각이었다.
놈 역시 마음이 같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조용히 노려보던 놈이 입을 열었다.
“설마 내가 가만히 당해 줄 거란 생각은 안 했겠지? 올 테면 와라. 이번에야말로 내가 네놈을 쓰러뜨려 주지. 그렇게 해서 가문에 복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응,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꿈 깨. 따라와.”
길이 탁 트여 있는 곳에서는 너무 눈에 띈다.
자칫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괜한 문제를 만들 수는 없었다.
나는 근처에 있는 숲속으로 놈을 안내했다.
나와 이해관계가 맞았던 놈은 순순히 내 뒤를 따랐다.
이윽고 공터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검을 마주했다.
시작을 알리는 신호는 없었다.
이것은 대련이 아닌 결투였다.
지면을 박찬 나는 자세를 갖춘 놈에게 뛰어들었다.
───!!
“…윽!”
벽뢰는 쓰지 않는다.
쓰지 않더라도 이길 수 있다.
회피 본능으로 공격을 피하며, 하드 스킨으로 공격을 막은 나는 일방적으로 놈을 몰아붙였다.
“수왕류를 써. 오기 부리지 말고.”
“쓸까 보냐!”
내게 경쟁심을 가지는 도승우는 나와 동등한 조건에서 겨루려 했다.
명예도, 사람도 잃은 놈에게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리라.
그러나 놈이 아무리 발악하더라도,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내 속도에 대응할 수 없다.
내가 내리치는 검을 막아 내는 데 급급하기만 할 뿐이다.
“왜! 어째서…!”
시간이 지날수록 드러나는 것은 나와 도승우의 격차다.
더는 풍랑의 브로치도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지 못하며, 왼팔에 장애를 입고, 수왕류를 쓰지 않는 놈의 검은 내게 닿지 않는다.
그 사실은 놈의 평정심을 무너뜨려, 마침내 감정을 앞세워 검을 휘두르게 했다.
형(形)과 식(式)이 존재하지 않는, 검술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검이다.
검사로서의 자부심이 깃들지 않은, 단순히 어린아이의 울분이 담긴 검에 불과하다.
내가 눈먼 검에 맞을 리 없다.
머리카락 한 올 베지 못하며, 옷깃조차 스치지 못한다.
“나는!”
“미안한데, 네 사정에는 관심 없어.”
“도견우…!”
“알 바야?”
검은 사람의 마음을 반추한다.
그러니 검을 휘두르는 밑바닥에는 그 사람의 본질이 숨겨져 있다.
울음을 참듯이 눈을 부릅뜨고, 피가 나오도록 입술을 깨물고, 땀을 흘리고 얼굴을 붉히는 놈은 지금 자신의 밑바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자신과 세상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지독한 열등감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 감정은 오롯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렇구나.’
도승우는 나를 질투한 것이다.
설령 잘못된 길에 들어서더라도 나와 대등해지고, 나를 넘어서고 싶어 했다.
그래서 어렸을 적의 나를 괴롭혔고, 내게 집착하고, 나를 쫓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게임의 도승우가 게임의 도견우를 못살게 굴었던 이유도 어쩌면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머릿속으로 문득 잡념이 지나간다.
하지만 잡념은 그저 잡념일 뿐, 내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한다.
단지 눈앞에 있는 놈에게 집중해 검을 휘둘러, 정신을 맑게 하고, 목적을 달성할 뿐이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변이 없던 결투에 끝을 고했다.
“…컥!”
도승우의 검이 손에서 벗어난다.
그대로 명치를 발로 찬 나는 놈의 균형을 흩트려, 발을 걸었다.
눈이 커진 놈이 옆으로 기울어, 쿵 소리와 함께 쓰러진다.
나는 힘껏 놈을 밟았다.
놈이 입에 모은 침을 뱉었으나, 사전에 회피 본능으로 눈치채 고개를 틀어 피해 냈다.
“나는 왜, 널 이길 수 없는 거냐….”
“그야 네가 나보다 약하니까.”
“….”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겠어? 누구를 탓해, 자신을 탓해야지. 네가 약한 탓이야.”
“도견우….”
“넌 죽어도 날 못 따라올 거다. 평생 내 발밑에서나 기어.”
“닥… 웁…!”
발언은 승자의 권리다.
이야기를 들어 줄 마음은 없다.
도승우의 몸 위에 올라탄 나는 놈의 입에 포켓에서 꺼낸 약병을 들이밀었다.
놈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을 막으려 해도 헛수고였다.
“다른 데 묻히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받아 마셔.”
“우웁!”
힘을 주어 억지로 입을 비집는다.
나는 그 속으로 약병의 내용물을 강제로 쏟아부었다.
“안타깝지만 죽이진 않을 거야. 너 하나 죽이는 것으로는 수지가 안 맞거든.”
이 시기에 도승우가 사망하면 정황상 가문에서 가장 의심받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가문의 사람들은 나를 범인으로 의심할 것이다.
잘못했다가는 앞으로 활동하는 데 적잖은 지장이 생길 수 있다.
놈을 전학 보내기로 결정한 할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게 됨으로써, 눈 밖에 날지도 모른다.
그러니 위험 부담을 짊어질 수 없는 나는 며칠 동안 생각한 끝에 최선을 선택했다.
“지금 네 몸에 들어간 것은 암야 말벌의 독이야. 한별이가 너한테 약탈한 것을 받은 거지.”
“…!”
“물론, 그대로 사용한 건 아니야. 죽지 않도록 약효를 조절하고, 몇 가지 조합을 넣었거든.”
“대체 뭘 넣은 거냐….”
“내가 알려 줄 것 같아?”
재미있어 보인다며 선뜻 응해 준 남유리의 도움으로 조합한 독이다.
약효는 확실할 것이다.
나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드리운 놈에게 말했다.
“그 독은 전신으로 퍼지면서 네 마나 회로를 좀먹을 거야. 네가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상당수의 마나 회로를 쓰지 못하게 되겠지.”
“…뭐?”
“원래는 다시는 검을 잡지 못하게 네 팔을 잘라 불에 태워 버릴까도 생각했는데… 그랬다가는 가문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 같더라고. 어차피 나한테 잘린 그 팔, 전처럼 다루진 못할 거라며. 오른팔이 아니라 아쉽지만, 그걸로 참아야지 어쩌겠어. 그래서 내 나름대로 타협을 봐서….”
“….”
“네 마나 회로에 장애를 일으키기로 한 거야. 이 정도라면 눈감아 주겠지.”
“…미친놈. 네가 날 독살하려 했다고,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주장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냐.”
“할 수 있으면 해 봐.”
“….”
“근데 세상은 누구 편을 들어 줄까? 신검 도가의 이름을 운운하지 못하는 너? 아니면 나?”
“도견우… 그런 식으로 영원히 나를 깔볼 수….”
“독이 서서히 네 몸에 퍼지면, 넌 영원히 나를 넘지 못하겠지. 벽뢰도 더는 사용할 수 없을 거야. 신검 도가의 사람이 벽뢰를 쓸 수 없게 된다니, 그거참 안된 일이네. 언젠가 네가 원래 위치로 복권하더라도 어디 가서 당당히 신검 도가의 사람이란 걸 말하지 못하겠지.”
“…하지 마라. 제발, 하지 마. 벽뢰가 없으면 난….”
“미안해서 어쩌냐. 난 너랑 달리 치료제 같은 건 안 만들었거든. 괜히 마음 흔들리기 싫어서. 그런데 만들어도 됐었을 것 같네. 이래도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도견우!”
“소리 지르지 마. 시끄러워.”
도승우가 발버둥 치려 한다.
나는 놈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체중으로 몸을 짓누르고는, 놈의 심장부로 손을 가져다 댔다.
“마나를 만들어 내는 심장 쪽으로 체내 마나를 불어넣으면 약효가 더 빨리 돈다고 했나.”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했다! 제발, 제발 그것마읍…! 내, 내가 잘못했다! 연하늘에게도 무릎 꿇고 사과할 테니 내게서 벽뢰를 빼윽…!”
“함부로 하늘이 이름 부르지 마. 걸레 같은 입으로 부르면 더럽혀지니까. 아, 다행히 제 역할을 하나 보네. 걱정 안 해도 돼. 많이 아플 거야.”
“끄윽….”
“너 때문에 하늘이가 그 고생을 했어. 너도 그 고통을 느껴 보도록 해.”
손가락 끝으로 마나를 흘려보내, 도승우의 심장을 자극한다.
놈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지르자 준비한 수건을 입에 물린다.
수갑을 채워 팔다리를 봉하고, 약효를 퍼뜨리는 작업을 속행한다.
처음에 내게 애걸복걸하던 놈은 독의 고통에 괴로워하느라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윽고.
“다 됐다.”
약효가 전신에 퍼진 것을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쯤 정신 줄을 놓은 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놈의 배 위로 약병과 수갑을 푸는 열쇠를 던졌다.
“거기 있는 것들은 알아서 치워. 잘 놀았다. 말하면 알지? 쪽팔려서라도 누구한테 말하지 못하겠지만.”
“도, 도견우… 네가 그러고도 신검 도가의 사람이냐….”
“그게 네가 할 말이야?”
“….”
“나는 간다. 아카데미 나가서는 착하게 살기를 바랄게.”
등 뒤에서 도승우가 흐느끼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나는 한 번도 뒤돌아보는 일 없이 자리를 벗어났다.
기분이 후련하냐고 묻는다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진짜 못 할 짓이다….’
차라리 죽이는 게 더 편했을까.
모르겠다.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기만 하다.
한편으로는 도승우를 고문할 때 모종의 쾌감을 느끼던 내가 있었다.
그 감각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간, 내가 아니게 될 것 같았다.
나는 경계하기로 했다.
‘하늘이가 이상하게 생각하겠다. 얼른 돌아가자.’
연하늘에게는 말할 수 없다.
그녀 성격상, 내가 자신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면 슬퍼할 테니까.
그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이유를 대신할 변명을 궁리하며 그녀에게로 향했다.
“견우야, 어디에 다녀온 거야? 전화는 왜 안 되고… 응? 견우야?”
“조금만 이러고 있을게.”
“….”
친구들이 보든, 말든.
연하늘을 꼭 껴안는다.
갑작스럽게 내 품속에 들어온 그녀가 의아해하다 조심스레 내 등을 쓸어 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냥 이러고 싶어서.”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 줘. 알았지? 응?”
“알았어. 그러는 너도 말해 주기야.”
“…응.”
힘을 주면 부서질 것만 같다.
그러니 자칫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연하늘을 감싼다.
허리를 어루만지던 손은 이내 아래로 내려가며….
“꺅! 갑자기 꼬리는 왜 만지니?”
“만지고 싶어서. 안 돼?”
“안 되는 건 아닌데….”
“조금만 만질게.”
“에휴…. 정말 조금만이야?”
“응.”
“아, 흐윽…. 꼬리 늘리지 마아, 창피하니까….”
* * *
사실, 도승우를 퇴학시키는 것은 처음부터 고려치 않았다.
신검 도가에서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의 퇴학을 막으려고 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 영광을 간직한 명가라면, 특히 십가문이라면 반드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신검 도가는 예상대로 움직였다.
그렇다면 아카데미의 이익을 꾀하는 이사장, 소혜율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이용할 뿐이었다.
‘이사진의 기강을 다스리려던 차에 때마침 도승우 그 애가 걸려들다니. 운이 좋았네.’
교무관 최상층, 이사장실.
한동안 자신의 권위에 반발할 만한 사람이 없어져 기분이 좋아진 소혜율은 집무실 책상에 놓인 작은 상자로 손을 뻗었다.
고급 비단으로 된 포장을 벗기고, 나무 상자의 뚜껑을 연다.
상자 속에는 푸른빛을 띠는 열쇠가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예익 오빠가 상심이 크겠네.”
청색 게이트 키는 보유한 것 자체만으로 가문에 영광이 되는 일이다.
청색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병력을 필요로 했으니 그렇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신검 도가는 이번에 뼈아픈 손실을 겪고 만 셈이다.
“차기 가주 승계 시험에 사용된다는 게이트 키를 더 원하기는 했지만…. 하긴, 그걸 달라 하면 염치가 없는 짓이겠지. 들어줄 리도 만무하고.”
그때는 신검 도가와 척을 지고, 되레 자신의 입지가 불리해질 수 있다.
선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행여나 열쇠에 흠집이라도 날까, 조심스러운 손길로 열쇠를 살피며.
소혜율은 덤덤히 중얼거렸다.
이내 열쇠를 넣고 상자를 봉한 그녀는 관심을 옮겼다.
그녀가 경과를 보고하러 찾아온 비서실장 오승아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승아야, 하늘 학생은 어떻게 됐니? 이제 괜찮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몸 상태는 이제 괜찮아진 듯합니다만… 그럼에도 도견우 학생이 극성을 떨며 연하늘 학생을 보살피고 있는 중입니다.”
“하늘 학생이 많이 소중한가 보네. 끔찍이도 챙기는 걸 보면.”
“네.”
“거기에 탄원서 일도 그렇고….”
신검 도가의 래빗 도견우와 칠색의 마녀의 제자인 버니 연하늘.
두 사람이 굉장히 깊은 사이란 것은 아카데미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애틋하게 여기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소혜율은 이번 일을 통해 그것을 조금이나마 엿본 기분이었다.
‘전에 나와 면담을 가졌을 때는 제법 당돌하고, 머리를 굴릴 줄 아는 것 같더니, 그 애 일로는 감정적인 면이 더 우선되는 건가….’
도견우는 마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물이 아닌 모양이다.
때로는, 특히 연하늘과 관련되면,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다.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전형적인 인간의 행동이다.
“….”
그렇기에 인간은 나약하다.
완전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자신 또한 예외가 아니며, 더욱이 도견우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용하기 어렵지는 않겠네.’
소혜율은 생각을 정리했다.
연하늘의 탄원서를 빌미로 넌지시 도견우란 인물의 속내를 들여다본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오승아가 운을 뗀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 이사장님.”
“뭐가 또 있는 거니?”
“조금 전에 입수한 정보입니다. 도승우 학생의 마나 회로가 심각할 정도로 손상됐다고 합니다.”
“…원인은?”
“독극물의 영향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도승우 학생이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정황상 이번 일은….”
“견우 학생이 그랬나 보네.”
“어디까지나 정황에 불과한 터라, 억측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건이 발생한 지점 근처에서 도견우 학생이 카메라에 녹화됐습니다.”
“흠…. 한 번 감정적으로 변하면 앞뒤를 가리지 않나 보네. 아니, 정도껏 욱한 건가? 자신의 일탈이 어디까지 통용될지 가늠하면서….”
소혜율은 노란 눈을 빛내며 흥미를 보였다.
그녀의 입가가 호를 그렸다.
반면 오승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의견을 구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냐니?”
“도승우 학생을 죽일 의도가 있었는지 도견우 학생을 불러들여 추궁을….”
“도승우 학생은 더 이상 우리 아카데미 학생이 아니지 않나?”
“…네, 맞습니다.”
“그럼 우리 아카데미 학생인 도견우 학생을 더 위하는 게 맞지 않을까?”
“…네, 그렇습니다.”
“가슴에 묻어 버리렴. 명확한 증거도 없는데, 괜히 도견우 학생을 건드려서 신검 도가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잖니? 안 그래도 지금 많이 예민한 시기일 텐데…. 예익 오빠가 가만 안 있을걸?”
신검 도가에서 다음 세대의 헌터로 기대받고 있는 도견우와 도시은은 특별하다.
그들이 도승우는 내쳤을지 몰라도, 도견우를 내칠 리는 없었다.
밤하늘의 별을 헤는 마녀로서, 세상을 헤아릴 줄 아는 소혜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아카데미에서는 흔한 일이잖니? 사람이 죽는 거.”
“….”
“이런 일에 일일이 신경 썼다가는 끝이 없어. 가치도 없고.”
여러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모이는 아카데미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암투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소혜율에게 있어, 지극히 당연한 아카데미의 생리였다.
* * *
경쟁은 좋은 일이다.
철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듯, 사자는 경쟁 상황에 몰릴수록 강해지기 마련이다.
신검 도가가 끊임없는 경쟁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가문마다 보다 우수한 인재를 만들기 위한 열망은 천차만별로 다를 테지만, 신검 도가는 특히 경쟁을 통한 성장을 추구한다.
그러나 과열된 경쟁은 때로는 피를 부르는 법이다.
검을 쥐기 시작하는 나이부터 검술을 배우는 사자의 자식들은 겁이 없고, 성정이 거칠다.
자신이 짐승들의 왕이란 것을 의심치 않는다.
하나, 왕이란 유일한 존재일지니, 그들 사이에서 서열 정리는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곧, 피의 상잔이 기다린다.
신검 도가의 유구한 역사에 기록된 비극의 재현을 경계하는 도예익으로서는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에게 도승우가 보인 추태는 무척 실망스럽기만 했다.
“쯧, 어리석은 것….”
이번 일로 적잖은 손해를 보았다.
신검 도가의 명예에 흠이 가고, 피바람이 불 뻔했다.
도예익은 마음 같아서는 도승우를 가문에서 제명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혈육의 정이 결심을 막았다.
한때는 엄격하게 이성을 따랐을 성정이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누그러진 탓이다.
‘나도 이제 늙었군.’
무리를 지배하던 맹수가 언젠가 자신이 노쇠했음을 직감하듯.
도예익은 이번 일을 수습하며 자신이 쇠락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모든 사자들의 위에 군림하는 수왕의 자리를 내줘야 하는 때가 머지않은 것이다.
물론, 그때가 지금 당장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수왕으로 군림하는 한, 마지막까지 정력적으로 가문을 관리할 생각이었다.
사자들의 성장을 지켜볼 것이다.
무엇보다 2대 가주의 기록을 깨뜨리고, 최연소로 벽뢰를 일으킨 도견우의 성장이 기대됐다.
그런 의미에서.
“연하늘이라고 했나….”
칠색의 마녀의 제자, 현재는 버니란 이명으로 불리는 연하늘.
도견우와 각별한 사이라고 하는 그녀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
연하늘의 존재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때는 그저 어린 나이에 사귄 친구 중 1명일 뿐이라고 치부했다.
도견우에게 별다른 의미가 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을 달리해야 할 듯했다.
‘그 애가 그리도 소중한 것이냐.’
도범준이 자존심을 굽히고 찾아가 연하늘에게 탄원서를 써 달라 한 부탁을 제지한 것도 그렇고.
도예익은 이번 사태를 통해 그녀를 위하는 도견우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견우가 그러다니 의외로군.”
도예익은 얼마 전에 받은 소식을 떠올리고 탄식했다.
도승우가 불의의 습격을 받아, 마나 회로에 장애를 입으면서 두 번 다시는 벽뢰를 일으키지 못하는 몸이 됐다고 한다.
필시 도견우의 짓이다.
도승우에게는 적이 많았다고 하나 당시 정황으로는 그밖에 없었다.
5년 전을 기점으로 그를 아끼던 도예익으로서는 실망을 금하지 못했다.
“딱 거기까지다.”
중간고사에서 도견우가 도승우의 팔을 자른 일은 정상 참작으로 넘어가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의 팔을 잘라 검사로서의 삶을 앗아 가려 했다면, 혹은 가주의 결정에 반하여 혈육의 목숨을 끊으려 했다면 대로했으리라.
다행히 도견우는 그나마 자신이 용인할 수 있는 선에서 보복을 감행했다.
신검 도가의 상징이자 자부심인 벽뢰를 그에게서 앗아 감으로써.
어디까지나 그나마였다.
가증스러운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불쾌하다.
도예익은 복잡한 심경으로 생각에 잠겼다.
‘견우가 이 이상 그 아인한테 빠지지 않으면 좋으련만….’
태아 상태에서 마나의 영향을 받아 유전자가 변질돼, 동물의 특징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인.
그들이 차별받는 이유는 특유의 붉은 눈동자가 몬스터를 연상케 한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며, 제 부모와 유전자가 닮지 않았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아인의 아이도 아인으로 태어난다는 점이다.
제 부모를 아예 닮지 않은.
실력과 함께 정통성이 중시되는 명가의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사항이다.
따라서 배우자로 선호되지 않는다.
하룻밤 가지고 놀거나, 불륜에 적합한 장난감으로 선호된다면 모를까.
“….”
신검 도가의 사람으로 들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격이 다르다.
도예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