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182)
(182)
반 대항전
반 대항전이 막을 올렸다.
이날, 교학관의 거의 모든 학급은 이른 아침부터 등교한 학생들로 만원을 이뤘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반 대항전에 임하려고 했다.
강한별이 속한 12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반 대항전 준비로 고생이 많았다. 너희 모두 이번에 서로 합을 맞춰 보는 과정에서 각기 깨달은 바가 있을 것이다. 너희가 그것을 잊지 않고 잘 갈무리할 수 있길 바라마.”
“….”
“오늘부터 다음 주 금요일까지, 오전 수업은 반 대항전으로 대신한다. 물론, 경기에서 탈락한 반에 한해서는 오전 수업이 실시될 예정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수업을 덜 듣고 싶다면 최대한 많이 경기에서 이기도록 해라. 너희가 그동안 갈고닦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보여 주도록.”
곧 있으면 경기가 시작된다.
처음으로 승자조와 패자조를 가리는, 사실상 우승 여부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는 경기인 만큼, 학생들은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수호국은 조례 시간을 이용해 그런 그들을 격려했다.
그들이 노력한 바를 모르지 않는 그에게서는 자랑스러워하는 감정이 묻어났다.
“마지막으로 너무 무리해서 다치지 말고. 컨디션 관리도 헌터로서의 기본 소양임을 기억해라. 이상으로 조례를 마친다. 지금부터 경기장으로 이동하겠다. 대표랑 부대표는 인솔을 부탁한다.”
“네, 교관님.”
이 이상 덕담을 늘어놓는 것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사족이다.
학생들이 불쾌하게 느끼지 않도록 적당히 거리를 조절한 수호국은 짧게 조회를 끝냈다.
뻣뻣이 굳어 있던 학생들에게서 유의미한 변화가 이는 것을 보고 흡족할 따름이었다.
그러고는 리사와 박사군을 시켜, 학생들의 인솔을 맡겼다.
“이제 경기장으로 이동할게요.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주세요.”
“갈 때 두고 가는 물건은 없는지 꼼꼼히 챙기도록 해. 파티장들은 이따 나한테 구성원 현황에 문제가 없는지 보고해 주고.”
반 대항전은 게이트에서 진행된다.
시간에 맞춰 인공 게이트가 있는 차원관으로 향하기로 한 리사와 박사군은 학생들을 이끌었다.
그들은 군말을 표하는 일 없이 두 사람의 지시에 따랐다.
“한별도 일어나요. 이제 가야죠.”
“어, 그래야지. 지금 갈게!”
리사에게 이름이 불린 강한별도 다른 학생들처럼 짐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속패 상태로 있던 루시드를 본래의 모습으로 환원해 허리에 찬 그는 강의실을 나섰다.
발걸음이 무척 힘찼다.
‘얼마나 강하려나….’
자신의 사부와 인연이 있는 흑마 오가.
그 가문의 사람과 싸우게 된 강한별은 한껏 기대에 부풀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반 대항전에서 만나는 상대는 흑마 오가의 오준식만이 아니다.
연성 남가의 남유리, 의협 용가의 용해랑, 마도 민가의 민아린, 순환 차가의 차은솔 등….
친구들은 물론, 여러 실력자들과 자웅을 겨룰 수도 있었다.
일전에 자신이 이기지 못한 도견우에게 재차 승부를 걸 기회이기도 했다.
‘서로 계속 이겨 나가다 보면 언젠가 견우랑도 맞붙게 되겠지.’
상상만으로도 의욕이 샘솟는다.
도견우도 자신과 벌일 전투를 고대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오준식에 관한 정보를 넘겨주었을 리 없다.
애초 리사가 전하지 않았던가.
―견우가 그러더라고요. 정보를 준 이유는 한별하고 싸우고 싶기 때문이라고요.
―아, 진짜? 견우가 리사 너한테 그렇게 말했다는 거지?
그때 그 말을 들은 강한별은 도견우와 생각이 통한 듯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자신이 그의 맞수로서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
물론, 자신의 실력이 못 미더워 정보를 제공한 게 아닌가 하고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자신을 배려하듯 리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했으니….
내심 자존심이 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부의 가르침을 떠올리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자존심이 대수냐. 밥 먹여 주냐.
―….
―그래, 사실 대수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자존심이란 결국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이니까. 그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살고, 다른 사람을 지키려 들겠느냐. 자존심이 강한 것은 별로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어서는 곤란하지. 하지만 전투에서는 대수가 아니다.
―생사가 오가니까요?
―맞다. 생사가 오가는 전투에서 가장 우선돼야 하는 것은 바로 내 목숨이다. 일단 살아남아야 뭐라도 할 수 있는 법이니까. 자존심은 그 후에 챙겨도 늦지 않아. 한별아, 내가 이기는 사람은 뭐라고 했더냐.
―비겁한 사람이요, 사부님!
―잘 기억하고 있구나. 명심해라.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때로는 비겁해지고 비굴해질 줄도 알아야 한다. 만약 적이 네게 자비를 베풀었다? 그때는 고마워해라. 자존심 상할 필요가 전혀 없다. 굴욕으로 여기지 않아도 된다. 비겁한 사람이 이기는 전투에서 비겁해지기를 포기한 그 적은 더는 네 적수가 되지 못할 테니까. 다음에 본때를 보여 주면 된다. 그리고 그때, 그 적은 네게 자비를 베푼 걸 반드시 후회하게 되겠지.
사부의 가르침에 따르면, 도견우는 비겁해지기를 포기한 셈이다.
자신에게 방심했다.
그 방심은 언젠가 자신에게 지는 미래로 이어질 것이다.
그때는 후회해도 늦는다.
‘두고 봐, 견우야.’
반드시 도견우를 넘어설 정도로 강해지고 말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먼저 오준식을 이겨야 한다.
마음속으로 다짐한 강한별은 반 학생들과 함께 인공 게이트로 발을 들였다.
시야가 일순 회색빛으로 물들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주위에 숲이 펼쳐져 있었다.
[게이트에 입장했습니다.] [회색: 에르윈 영지 북쪽 숲 II] [이미 공략된 게이트입니다.]“에르윈 영지?”
“에르윈이라면… 제국에 속했던 영지예요. 먼 옛날에요….”
강한별은 떠오른 메시지를 통해 게이트의 이름을 확인했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메시지를 받은 리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약 200년 전, 대격변 시기에 그레이스 제국은 멸망을 피해 세계수와 함께 이 세계로 넘어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넘어오지 못한 제국의 영역도 상당수 존재했다.
에르윈 영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즉, 이곳은 멸망을 면하지 못하고 게이트에 복속된 세계인 것이다.
“역사에 마지막으로 적힌 바로는 기근이 심해져 불모지가 됐다던데, 녹음이 무성하네요….”
“….”
자신이 태어나기 훨씬 전인, 200년을 넘는 과거라고 하나, 마냥 무심하게 여길 수는 없다.
리사를 비롯해 그레이스 제국을 모국으로 하는 학생들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강한별, 박사군과 다른 학생들은 괜히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말을 삼갔다.
한편, 그들이 소환된 숲속에는 반 대항전의 상대가 되는 25반 학생들도 있었다.
흑마 오가의 오준식이 경기 전에 인사를 나누러 강한별을 찾았다.
“한별아, 안녕? 오늘 잘 싸워 보자. 져도 서로 원망하지 말기로 하고.”
“나도 바라던 바야. 그런데 오늘은 안 가져왔나 보네? 음료수.”
“아… 혹시 그거 마셨어?”
“아니? 안에 뭘 탄 것 같아서 마시지 않았거든.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 건데, 대체 뭘 탄 거야?”
“별거 아니야. 단순한 수면제였어. 훈련하느라 피곤할 텐데 푹 쉬라고. 원래는 변비약을 넣을까 했는데, 효과를 크게 보지 못할 것 같았거든. 그날 당일에 대항전을 봤다면 모를까…. 어차피 잘 지내 보자는 뜻에서 건넨 거였으니 네 반감을 사고 싶지는 않았고 말이야.”
“뭐야, 그냥 수면제였던 거구나. 역시 독은 아니었네.”
“그랬다가는 역으로 살인 미수로 네게 반격을 당했겠지. 가문의 이름에 누를 끼칠 수도 없고.”
웃으며 대화할 내용이 아닌데도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털털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아쉽네. 만약 이번에도 음료수를 가져왔으면 네 입에 부어 버릴 생각이었는데.”
“혹시 몰라 준비하기는 했는데, 꺼내지 않아서 다행이네. 기대해. 그것보다 더 비겁한 짓거리를 경기에서 보여 줄 테니까.”
“전투는 원래 그래야지. 얼마든지 비겁하게 덤벼 보도록 해. 나도 비겁하게 싸워 줄 테니까.”
서로 붙잡은 손에 힘을 주며, 두 사람은 입가를 끌어 올렸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됐다.
* * *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는 그간의 노력을 증명할 때다.
반 대항전 첫 번째 경기를 앞둔 우리는 저마다 마음을 추슬렀다.
교탁에 선 홍예나는 그런 우리에게 훈시를 늘어놓았다.
“헌터의 세계에서 이 말은 유명하지. 노력은 배신해도, 재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 하지만 오늘만은 그 말이 틀렸으면 좋겠네. 그동안 너희가 반 대항전을 위해 얼마나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었는지 아니까.”
“….”
“그리고 재능이 더 중요하다 해도, 절대 노력을 부정하고 폄훼하는 건 아니야. 재능 하나로는 이 업계에서 최고가 될 수 없어. 재능이란 그저 가능성일 뿐, 거기에 노력이 더해져야 빛을….”
사전에 대사를 외운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유창하게 떠드는 홍예나.
평소에도 언행에서 은연중 “내가 학식이 깊은 사람이야. 일곱 원소 마법의 대가라고 평가되는 칠색의 마녀가 바로 나라고.” 하는 기미가 있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잘난 척하는 그녀였다.
정작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며칠 동안 구르고 구른 쪽은 우리였는데 말이다.
우리는 평소답지 않게 희망적으로 청춘과 열정을 구가하는 그녀의 가르침을 들어야 했다.
그때, 민아린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야, 언제 말할 거야?”
“…꼭 내가 대표로 말해야겠어? 그냥 다 같이 말하면 되잖아.”
“이런 건 대표가 말해야지.”
“넌 대표 아니야? 따지고 보면 대표는 너고, 나는 부대표구만….”
“같은 대표끼리 이러기야? 그리고 알아 온 것도 너고, 우리 중에서 네가 예나 교관님이랑 제일 친하잖아. 혼나도 덜 혼나겠지.”
“혼나도 똑같이 혼나는데 무슨….”
작은 목소리로 속닥이며 자꾸만 폭탄을 터뜨리라고 부추기는 민아린.
그녀를 포함해, 최근 같이 훈련하며 부쩍 친해진 반 학생들의 눈총을 받은 나는 한숨을 쉬어야 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들이 강하게 바라는 대로 폭탄을 터뜨리기로 했다.
“마녀님.”
“갑자기 뭐니?”
홍예나가 계속 연설하는 가운데, 도중에 손을 들어 끼어든 나는 입을 열었다.
아니, 해명을 요구했다.
“그래서 왜 하필 이 시기에 하늘이의 계위 승계를 도와준 거죠?”
“….”
“다른 반 교관님들은 애들이 밤늦게까지 훈련한다면서 야식도 사 주고 그랬다던데, 마녀님은 코빼기 한 번 안 비치고…. 그러면서 하늘이, 아니, 상대 반 학생이 계위를 승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나 하고…. 마녀님,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그 애의 스승이잖니. 스승으로서 그 정도는….”
“저희는 마녀님 학생 아니에요? 따지고 보면 우리도 제자 아닌가?”
“….”
“저나 아린이처럼 저희 중에도 마녀님이 조금만 도와주면 승계할 수 있는 애들이 여럿 있는데, 이러면 서운하거든요? 마녀님이 툭하면 바쁘다고 해서 그동안 마녀님 눈치나 보고 있던 저희가 바보처럼 느껴지네요.”
“윽….”
“마녀님, 저희가 지길 바라세요?”
설마 공개 석상에서 대놓고 지적을 당할 줄은 몰랐는지 홍예나가 크게 주춤한다.
내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 그녀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평소 보여 주던 도도하고 시니컬한 얼굴과는 사뭇 대조되는 얼굴이었다.
“너희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닌데, 일단 내 얘기 좀 들어 줄래? 그건 있지….”
“저희는 교관님 학생 아닌가요!?”
“저희가 훈련할 때 교관님은 대체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건가요!?”
“혹시 연애하는 거 아니죠? 절대 연애하지 마세요!”
“우리에게도 관심을 달라!”
“해명하세요! 교관님은 각성하라!”
“….”
그렇게 내가 터뜨린 폭탄으로 홍예나를 규탄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민아린과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냅다 울분을 쏟아 냈다.
그중에는 가끔 우리 훈련을 참관해 조언을 주던 유노을도 있었다.
“교관님! 다른 교관님들이 그러던데 태어나서 한 번도 연애를 안 해 봤다는 게 사실인가요!? 술자리에서 욱하고 ‘나는 마법과 결혼했다.’라며 평생 독신 선언을 했다던데 정말인가요?”
“그, 그걸 어떻게….”
“….”
사람을 놀리는 것을 좋아하는 유노을은 홍예나를 찌르는 데에도 조금의 주저함이 없었다.
그렇더라도 저런 장난은 좀….
나는 한순간이지만 입이 떡 벌어진 홍예나를 동정했다.
여하간 그녀의 편승으로 분위기는 더 활기를 띠게 됐다.
결국 홍예나는 백기를 들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제발 이제 그만해. 이렇게 떠들면 다른 반에도 들릴 거 아니야.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너희 사정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아. 사과할게. 그래서 내가 너희한테 어쩌면 좋겠니?”
몇 분 사이에 초췌해진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는 홍예나.
그녀의 항복 선언을 노리고 있던 우리는 쾌재를 불렀다.
그러고는 원하는 바를 요구했다.
“저희도 다른 반처럼 먹을 거 사 주세요! 아주 비싼 거로요!”
“스테이크! 스테이크 먹고 싶어요!”
“우리 뷔페 가요! 그냥 뷔페 말고 호텔 뷔페로요!”
“교관님! 저도 4계위 승계 좀 도와주세요!”
“저는 3계위요, 마녀님.”
곳곳에서 학생들의 간청이 쏟아졌다.
홍예나는 혀를 내둘러 난처해하면서도 끝내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후…. 그래, 알았어. 반 대항전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뒤풀이 자리를 마련하도록 할게. 추후에 대표랑 부대표가 애들이 먹고 싶어 하는 메뉴를 정리해 오도록 하고…. 그리고 계위를 올릴 사람도 딱 한 번만 내가 호법을 서 주도록 할게. 아린이랑 견우 말고는 더 없니?”
그러지 않아도 다음 학기에는 3계위 마법을 배울 생각이었는데 잘됐다.
조만간에 날짜를 잡아서 홍예나에게 계위 승계 보조를 부탁해야겠다.
다음 계위에 올라도 될 수준에 이른 나와 민아린은 박수를 쳤다.
* * *
차원관으로 가는 길이 혼잡하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반 대항전이 예정돼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아마 모든 학년의 학생이 참가하는 오늘이 제일 붐비는 날일 것이다.
덕분에 반 학생들을 인솔하게 된 나와 민아린은 죽을 맛이었다.
그러다 강한별의 톡을 확인한 것은 인공 게이트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강한별]: 꼭 이기고 올게! [강한별]: 반 대항전에서 보자!! [강한별]: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 ㅋㅋㅋ보낸 지 몇 분은 된 톡이었다.
나는 오준식과 전투에 임할 강한별을 응원하러 답장을 보냈다.
[나]: 그래, 꼭 이기도록 해 [나]: 힘내라‘근데 뭘 후회하지 말란 거지?’
잘 모르겠다.
의미가 짐작이 가지 않아서 강한별이 톡을 읽으면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읽음 표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게이트에 들어간 듯했다.
‘느낌상 장난으로 한 말 같으니 나중에 생각나면 물어보자.’
강한별의 답장이 오는 것을 계속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로 한 나는 반 학생들과 함께 게이트로 발을 들였다.
[게이트에 입장했습니다.] [회색: 에르윈 영지 북쪽 숲 I] [이미 공략된 게이트입니다.]떠오르는 메시지를 손으로 치우고.
게이트의 세계에 소환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별달리 특기할 만한 것은 없는 한적한 숲속이었다.
굳이 언급할 게 있다면 저 멀리 성곽이 보인다는 것 정도일까.
‘저 너머에는 뭐가 있으려나.’
게이트의 이름으로 추측할 때, 에르윈 영지란 게 있지 않을까 싶다.
혹은 지금 우리가 있는 숲이 에르윈 영지에 속해 있고, 성곽 너머는 영지 밖인지도….
어차피 생각해도 무의미했다.
성곽 너머가 희뿌연 것으로 보아, 이 게이트에 저장된 세상은 거기까지인 것 같으니까.
게임으로 치면 맵의 경계선인 성곽을 넘어갈 수 없는 것이다.
‘넘어가더라도 아무것도 없겠지.’
일반적으로 맵 바깥의 구역은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공간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다.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관심을 가질 것은….
‘아, 저기 있다.’
게이트에 소환된 학생들 중에는 다른 반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 속에서 토끼 귀를 발견한 나는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러고는 연하늘의 뒤에 서서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가렸다.
“누구게?”
“어?”
손바닥에 연하늘의 눈꺼풀과 부드러운 피부가 닿는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연하늘의 토끼 귀가 움찔한다.
이내 그녀의 입가가 배시시 올라가며, 목소리에서 반가워하는 기색이 묻어났다.
“그러게. 누구세요?”
이미 다 아는 주제에.
살며시 내 손을 잡은 연하늘이 모르는 척하며 키득거린다.
나도 그녀를 따라 웃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누구기는. 오늘 싸울 소꿉친구지.”
“아, 모야. 그럼 적인 거네? 쇠망치로 때려야겠다.”
“경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나랑 그렇게 싸우고 싶어?”
“음, 어떻게 할까….”
“그전까지는 친하게 있고 싶은데. 너는 싫어?”
“아니, 좋아.”
연하늘이 즐거워하며 호응한다.
이내 나는 그녀의 눈을 가린 손을 거뒀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만 젖혀서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웃음을 짓는 그녀의 입술이 반들반들 반짝이고 있었다.
“언제 왔어?”
“방금 왔지. 들어오니까 하늘이 네가 확 띄더라고.”
“또 내 귀 때문에?”
“그것도 있고… 눈 감고 있어도 이상하게 너는 보이더라. 어디에 있든 그냥 눈이 가.”
“뭐어? 웃겨….”
“정말인데.”
“그럼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찾을 수 있겠네?”
“당근이지.”
“흥, 그래? 이따 두고 볼게.”
혹시라도 연하늘이 뒤로 쓰러지지 않게, 조심스레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러자 내 몸에 등을 기댄 그녀가 장난스럽게 나를 흘겨보았다.
조금 있으면 적으로 만날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서로 건투를 빌었다.
“다치지 말고 힘내, 알았지?”
“하늘이 너도. 이따 보자.”
잠시 후,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