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238)
(238)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절대 놈들을 보내지 마라!”
“이곳이 우리의 무덤이 될지라도, 우리의 가족을 위해 싸워라!”
“베로니카 성녀님이 마지막까지 함께하실 거다!”
검은 하늘이 꿈틀거린다.
사람과 몬스터의 소리가 섞여 전장에 울려 퍼진다.
‘….’
또다.
며칠째 반복되는 꿈에 익숙해진 리사는 처음처럼 당황하지 않고, 요새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세요.”
머지않아 병사들이 성녀라 부르는 베로니카가 하얀 옷자락을 바람에 펄럭이며 나타났다.
그녀가 석장으로 마법을 펼쳐서 그들을 지원하고, 독려했다.
리사의 예상대로였다.
그렇다면 이후에 일어날 전개도 예상할 수 있었다.
‘저분이 갑자기 절 돌아보며 운명에 저항할 수 있냐고 묻겠죠. 제가 무슨 뜻인지 물으려 하면 꿈에서 깨어나고요.’
하지만 세상은 리사의 예견을 부정하듯, 전혀 다른 흐름으로 나아갔다.
베로니카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검은 하늘에 파문이 일었고.
‘….’
파문 속에서 붉은 눈이 떠졌다.
하늘에서 세상을 내다보는 붉은 눈을 인지한 리사는 넋이 나가 제대로 사고할 수 없었다.
전장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건, 대체….’
몬스터?
아니, 몬스터는 아니다.
언어로는 어찌 정의할 수 없고,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존재였다.
몇몇이 존재의 기운을 견디지 못해 혼절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만약 자신 또한 실체를 가지고 전장에 서 있었다면 그들처럼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것 같았다.
그만큼 붉은 눈을 마주한 리사는 인간으로서 항거할 수 없는 무력감과 공포를 느꼈다.
화아악!
베로니카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백금의 빛을 발한 것은 그때였다.
리사는 그녀가 퍼뜨린 빛을 보며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떨쳐 내고 안도할 수 있었다.
한편, 그녀는 번번이 꿈에서 물었듯, 리사에게 질문했다.
“그대는 운명에 저항할 수 있나요? 세상을 짊어질 각오가 있나요?”
이제는 베로니카와 병사들이 무엇과 싸우는지, 그녀가 언급한 운명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자신들을 한낱 미물 보듯이, 초월적 존재인 양 내려다보고 있는 바로 저 붉은 눈이다.
원초적인 공포 자체다.
‘저는….’
모르겠다.
선뜻 결심이 서지 않은 리사는 주저하듯 말을 흐렸다.
베로니카는 그런 그녀에게 간청했다.
“다음에는 대답해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리사는 꿈에서 깨어났다.
* * *
나와 강한별이 리사의 이복 오빠, 미하일 그레이스와 오색전 점수로 내기한 후로.
우리 청 팀은 준수하게 성적을 내서, 금강제가 폐막하는 날에 이르러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만약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도 이대로 추이를 유지하기만 한다면 우승할 수도 있을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마음을 놓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미하일이 소속된 홍 팀이 2등으로 바짝 쫓아오는 중이었으니까.
잘못했다가는 그들에게 추월당해 역전극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게임에서는 따라붙는 입장이었는데, 이 세상에서는 반대가 됐네.’
그래도 포괄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게임의 전개와 달라진 부분은 없었다.
결국 금강제 에피소드의 결말은 현재 남아 있는 경기 중 제일 점수 당락이 큰, 오후에 있을 피구 경기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청 팀이 오색전에서 우승하고, 홍 팀을 확고히 따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겨야 했다.
이에 경기를 앞둔 나와 강한별, 세쌍둥이는 서로 의지를 다졌다.
자리에는 마침 시간이 맞아서 같이 점심을 먹게 된 연하늘과 차은솔도 있었다.
흑 팀에 속한 두 사람은 직전에 황 팀에게 승리한 차였다.
“이따 힘내. 지면 안 되는 거 알지? 그 사람한테 꼭 이겨야 해.”
“나도 알고 있어. 열심히 할 거야.”
리사의 자퇴 여부를 건 내기는 어느새 전교 학생들뿐 아니라, 금강제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도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필시 미하일의 소행이리라.
세간의 여론을 이용해, 최악의 경우에 우리가 판을 엎으려고 해도 함부로 물릴 수 없게 하려는 속셈일 게 뻔했다.
재차 연하늘의 당부를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피구라….’
게임에서 피구 경기는 구색일 뿐, 실상은 강한별, 리사와 미하일의 전투에 지나지 않았다.
게임의 표현에 한계가 있던 탓이다.
하지만 자유도가 높은 현실에서는 착실히 취지에 맞게 피구 경기가 진행될 터였다.
자칫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있으니 괜찮겠지.’
피구의 요점은 공을 맞지 않고 살아남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내게는 상당히 유리한 경기였다.
내 기프트는 회피 본능이었으니까.
사람을 잘 맞출 수 없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공에 맞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나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연하늘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래도 넌 잘 피하니까 다행이야. 피구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진 적이 없잖아.”
“맞아, 나만 믿어.”
연하늘이 굳은 얼굴을 푼다.
피식 웃은 나는 도시락을 먹는 대로 가볍게 몸이라도 풀기로 했다.
차은솔이 웬일로 내 도시락에 새우튀김을 얹어 준 것은 그때였다.
“자, 너 줄게. 맛있게 먹어.”
“…너 어디 아파?”
차은솔이 내게 음식을 나눠 주다니, 말도 안 된다.
세상이 멸망할 만한 일이다.
나는 평소답지 않은 그녀의 행동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녀 왈.
“리사가 자퇴하게 두지 말라고 응원하는 의미에서 주는 거야. 얌얌.”
“너도 리사 걱정은 하는구나….”
“당연하지. 친구인걸?”
차은솔이 입술 옆에 붙은 밥풀을 떼어먹는다.
오늘따라 그녀가 대견하게 느껴진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고는 새우튀김을 먹으려 했는데….
“아, 머리랑 꼬리는 내가 먹을게. 그래도 되지?”
“…그래, 너 먹어라.”
원래부터 머리와 꼬리는 빼고, 몸통만 먹을 생각이기는 했는데 어쩐지 줬다 뺏기는 기분이다.
몸통을 넘긴 게 어디냐 싶지만, 대견했던 감정이 금세 식는다.
차은솔은 차은솔이었다.
쓴웃음을 지은 나는 요청에 따라 그녀에게 새우튀김 잔해를 넘겼다.
그때, 강한별이 운을 뗐다.
“그런데 리사는 왜 안 오는 거지? 마실 걸 사러 간 것치고는 꽤 늦는 것 같은데….”
강한별의 말대로, 리사가 떠난 지 제법 시간이 지나기는 했다.
우리로서는 돌아오지 않는 그녀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나는 그녀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게임의 전개에 따르면….
‘미하일과 전투를 벌이기 전에 리사가 사라져서 찾아 나서는 스토리가 있기는 했었지.’
지금쯤 그녀는 자신이 과연 미하일에게 이길 수 있을지, 헌터로서 살아갈 수 있을지 여러모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녀를 다독이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바로 주인공 강한별이었다.
따라서 나는 그의 등을 밀어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유도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찾으러 가는 게 좋을 것 같네. 한별아, 나랑 같이 가자. 너희는 자리 좀 지켜 줘.”
리사가 어디에 숨어 있을지는 짐작이 간다.
인적이 드문 장소에 놓인 자판기 사이에 끼어서 쭈그리고 앉아 있을 것이다.
강한별을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곧장 걸음을 옮겼다.
[‘허공답보의 법석’을 체득 완료했습니다.] [스킬을 얻었습니다.] [허공답보 Lv 1]그동안 고대하고 있던 메시지가 시야에 나타난 것은 직후였다.
마침내 허공답보를 획득했다.
나는 입가를 끌어 올렸다.
* * *
제23황녀, 리사 그레이스.
제국의 황궁에서 그녀의 존재는 황제의 많고 많은 자식 중 1명에 지나지 않았다.
황위 계승 서열이 낮고, 하물며 황제의 하룻밤 상대였을 뿐인 궁녀를 모친으로 둔 그녀에게는 황족으로서 태어났다는 것 외에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기껏해야 정략결혼의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정도?
혹은 명예직으로 지방에 파견해 민심을 안정하는 데 쓰이는 정도?
고작 그것밖에 되지 못했다.
그래서 황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업신여기지는 않더라도, 우러러 떠받들지도 않았다.
―제23황녀님을 뵙습니다.
―네, 오늘도 안녕하세요.
황궁에서 나고 자란 리사 또한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신분을 앞세워 황궁 사람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조용한 삶을 보냈다.
어머니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저는 어마마마만 있으면 좋아요. 어마마마랑 계속 같이 살고 싶어요.
궁중 모략이 암약하는 황궁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며, 어리광을 부릴 수 있던 어머니.
리사는 그녀만 곁에 있다면 황궁 생활이 외롭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는 몹시 슬펐다.
―….
그때, 리사는 세상이 끝난 것만 같은 심정에 몇 날 며칠을 울었다.
지독한 외로움이 찾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바로….
―안녕? 리사도 산책을 나왔구나. 하긴,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바깥에 나와서 바람도 쐐야지. 요즘에는 잘 지내고 있니?
이복 오빠 미하일의 어머니, 제3황비 엘레나였다.
그녀는 곧잘 안부를 물으며 세심하게 신경을 써 주고는 했다.
―아… 제3황비님을 뵙습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
―흠… 얼굴을 보면 아닌 것 같은데?
―아니에요, 그렇지 않….
―혹시 이후에 일정이라도 있니?
―…아니요.
―그럼 나랑 같이 산책하고, 다과회나 즐기지 않을래? 우리 아들은 워낙에 부끄러움이 많고, 공부하느라 바빠서 나랑 놀아 주려고 하지 않거든.
―네, 저라도 괜찮다면….
그런 식으로.
엘레나는 당시 경계심이 많던 리사의 마음에 차근차근 파고들었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리사에게 있어 어머니와 다름없는 존재가 됐다.
―엘레나 님! 안녕하세요!
―제3황비님이란 호칭도 있건만, 누가 어마마마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라고 했지? 무례하구나. 하다못해 뒤에 황비님이라고 붙여라.
―아, 미하일 오라버니도 계셨군요. 안녕하세요? 그리고 호칭은 엘레나 님께서 불러도 된다고 허락한 거랍니다.
―…어마마마, 정말입니까?
덩달아 리사는 미하일과도 친해졌다.
엘레나를 좋아하는 두 사람은 틈만 나면 그녀를 독점하기 위해 다투고는 했다.
그때마다 엘레나는 흐뭇한 미소로 그들의 실랑이를 지켜보았다.
―맞아, 내가 부르라고 허락했어. 우리 사이에 편하게 부르는 게 뭐 어떠니?
―하지만 황궁 사람들이 자칫 어마마마를 얕보지는 않을지….
―그때는 또 칼춤 좀 춰야겠지?
―….
제3황비가 되기 전의 엘레나는 제국의 귀족이자, 헌터였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행보는 무척이나 호기로웠다.
황궁에 몬스터들이 출몰했을 때는 몸소 검을 쥐고, 병사들을 부려 소탕전을 지휘했을 정도다.
이외에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 서슴없이 뛰어들고는 했다.
그만큼 그녀의 평판은 호와 불호로 극명하게 갈렸다.
물론, 리사에게는 호로 다가왔다.
―엘레나 님 칼춤을 볼 수 있다면 저는 좋아요! 기뻐요! 언제 추시면 저한테 꼭 말씀해 주세요! 엘레나 님은 하고 싶은 거 다 하셔도 돼요!
―정말? 그렇지? 고마워. 어떻게 내가 배 아파서 낳은 아들보다 리사 네가 더 날 위하는구나. 미하일, 보고 배우려무나.
―리사한테 배울 것은 없습니다. 어마마마, 그건 모욕입니다.
엘레나와 미하일과 친해진 후로, 리사는 황궁 생활이 즐겁기만 했다.
그러니 이 시간이 영원하면 좋겠다고 바랐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리사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시점으로부터 5년 전, 제도에 동시다발적으로 균열이 발생했다.
하필 그날 나들이를 나갔던 세 사람은 몬스터들이 초래한 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너희는 뒤돌아보지 말고 뛰렴. 미하일, 우리가 타고 온 마차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지? 네가 오빠니까 리사를 잘 챙겨야 한다? 만약 마차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근처에 있을 병사들에게 황족의 신분을 밝혀서 도움을 요청하렴.
―그럼 엘레나 님은요!?
―나는 제국의 황비로서 사람들을 지켜야 하지 않겠니? 내 걱정은 하지 말렴. 너도 알잖니, 내가 얼마나 강한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괜찮아. 이따 보자. 미하일, 얼른 가렴. 이대로 지체했다가는 또 길이 막히고 말 거야.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꼭 살아 돌아오세요, 어마마마.
―그래.
제도 전역에 몬스터들이 들끓었다.
리사와 미하일을 지키기 위해 놈들을 유인한 엘레나는 그길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러 제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군단장과 동귀어진함으로써 인세에 펼쳐지려던 지옥을 막아 냈다.
제국민들은 그녀를 영웅으로 추앙하며 그녀의 죽음을 기렸다.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 거짓말쟁이….
―편안히 가세요, 어마마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엘레나를 잃은 리사와 미하일은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마음을 추스른 두 사람은 다짐했다.
―이 나라를 지킬 수 있도록 강해지겠습니다.
막연히 차기 황제를 노리고 있던 미하일은 확실하게 결심을 굳혔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욱 황위 계승 경쟁에 힘쓰고, 헌터가 되려 학원도시로 향했다.
제국이 이 세계에 자리 잡은 후로, 제국의 황제에게는 세상을 넓게 볼 줄 아는 경험과 유사시 제국민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요구됐으니까.
―저도 엘레나 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한편, 엘레나를 동경했던 리사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던 그녀처럼 헌터가 되기로 했다.
그리하여 목표가 생긴 두 사람은 이때를 기점으로 접점이 줄어들고, 서먹해질 수밖에 없었다.
리사가 미하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지원했을 때는, 관계가 크게 틀어지고 말았다.
* * *
조금 있으면 경기가 시작된다.
음료수를 사러 간다는 핑계로, 복잡한 심경을 정리하기 위해 혼자 보낼 시간을 마련한 리사는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자판기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리사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 있기만 했다.
어쩌다 보니 자퇴를 걸고 미하일과 내기하게 된 그녀는 좀처럼 기운을 차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의심하게 됐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엘레나에 대한 동경을 좇아서 헌터가 되겠다는 열망을 품었으나, 막상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헌터가 되기 위한 과정은 생각보다 혹독하고, 험난했다.
피로가 한계까지 쌓인 어느 날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제국으로 돌아가, 황녀로서 편안하게 살고 싶어질 정도로 힘들고 괴로웠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버틸 때마다 엘레나는 어떻게 견딘 것인지 대단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한편으로는 자각하고 만다.
자신이 그녀처럼 강인하지 않다는 것을.
‘어쩌면 저는 오라버니 말처럼 헌터하고는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르겠네요.’
자신은 지금 이루지도 못할 꿈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단호하게 부정할 수 없던 리사는 덜컥 겁이 났다.
곧 있을 경기에서 미하일을 만나, 그에게 실력을 증명하는 게 두렵기만 했다.
이길 자신이 없었으니까.
“….”
상대가 제5황자 미하일 그레이스였다.
그는 현재 황제의 자식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자질을 타고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황족이란 신분 외에 특출난 것 없는 자신과는 비교되지 않았다.
무릎 속으로 얼굴을 파묻은 리사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시간이 영원히 멈춰 버리길 소망했다.
자신이 헌터가 될 수 있다는,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보며 계속 착각에 빠져 있기를 바랐다.
머리 위에서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찾았다.”
“네 말대로 정말 여기 있었네? 이런 곳에서 뭐 하고 있었던 거야?”
“…견우, 한별.”
자신이 이곳에 숨어 있던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고개를 들자 도견우와 강한별이 웃는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리사는 눈을 깜빡였다.
그때, 도견우가 손을 내밀었다.
“걱정되는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거기서 계속 토끼굴이나 파고 있을 거야? 곧 경기 시간인데 늦지 않게 얼른 가자.”
“맞아, 이번 경기에서만 이기면 오색전 우승은 확정인데, 우물거릴 시간이 어디 있어? 그리고 나랑 견우가 있는데 질 생각 같은 건 하지 마. 우리가 이기게 해 줄 테니까.”
“제 동의 없이 내기를 제안한 사람들이 누구인데요….”
자신은 근심으로 끙끙 앓고 있건만, 두 사람은 해맑게 키득거리고 있다.
괜히 얄미운 마음이 든 리사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러고는 도견우의 손에 끌려 자판기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만약에라도 지게 된다면 견우랑 한별도 가만히 두지 않을 거예요. 그때는 물귀신이 돼서라도 같이 자퇴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요.”
“한별아, 얘가 뭐라는 거야?”
“그러게. 지면 네 책임이지, 우리 책임이 아니라.”
“와, 진짜… 그러기예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살 사람은 살아야지.”
“맞아, 나도 동의해.”
“두 사람한테 실망이에요.”
“실망은 나중에 가서 하도록 해. 어차피 이기면 되는 거잖아?”
“그렇지? 이기면 된 거지, 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염두에 둬?”
“아니이… 에휴, 알았어요. 이기면 되는 게 맞죠. 그런데 만에 하나라도 지기만 해 봐요….”
도견우, 강한별과 대화를 나누자니 고민이 부질없어진다.
리사는 어처구니가 없는 한편으로, 자신과 달리 승리를 확신하는 두 사람을 보자니 저도 몰래 안심이 됐다.
“진짜 이기게 해 줄 거죠?”
이내 표정을 고친 리사의 물음에, 도견우와 강한별은 주저하지 않고 쾌활하게 대답했다.
“암, 당근이지.”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리는 지는 싸움은 안 해.”
“네, 믿을게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장담이건만.
그런데도 마음이 가벼워진 리사는 쿡쿡 웃음을 흘렸다.
한편, 그녀의 팬던트에 달려 있던 마녀의 결정은 어느새 손톱 크기로 줄어들어 있었다.
[‘마녀의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