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243)
(243)
성다솜은 성미가 급한 탓에 일 처리에 실수가 잦을지 몰라도, 실행력은 뛰어난 인물이다.
그 증거로, 내 도발에 걸려든 그녀는 그날 바로 은수혁을 찾아가 그의 확답을 받아 왔다.
“수혁도 동의하기로 했어요. 누가 학생회장으로 당선되든, 선거에서 패배한 사람은 군말 없이 부회장으로 취임하기로요. 그리고 도견우 후배의 지지를 걸고 대련으로 승부를 내기로 했어요. 마침 조만간 선거에 출마하는 입후보자들이 실력을 선보이는 자리가 마련될 예정이에요. 날짜는 그때로 잡기로 했어요.”
“겸사겸사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누가 더 강한지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겠네요.”
“네, 맞아요. 이변이 없다면 대련에서 이긴 사람이 거의 확정적으로 학생회장으로 당선되겠죠. 그래서 도견우 후배 속셈대로 판이 만들어지니 기분이 좋나요?”
성다솜이 감정적인 성격이라고 한들, 모르고 내게 속아 넘어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본의 아니게 은수혁과 사실상 학생회장을 정하는 대련을 치르게 된 그녀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나는 자칫 그녀의 심기를 건드려 상황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너스레를 떨었다.
“서로 헐뜯고 싸우기보다는 깔끔하게 결판을 내는 게 좋잖아요? 그리고 저만 아니라 학생들도 선배랑 은수혁 선배 둘이서 공동으로 학생회를 운영하길 바랄 거예요. 선배도 그렇지 않나요?”
“…수혁이 그가 고지식하고 꽉 막힌 부분이 있기는 해도 일 하나는 믿고 맡길 수 있긴 해요. 성별을 고려해서 제가 학생회장이 되면, 부회장은 남자로 고려할 생각도… 뭔가요? 왜 그렇게 실실거리고 있는 거죠?”
“아니요, 은수혁 선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을 정도로 악연이 깊기는 하죠.”
“저와 하늘이 사이라는 거네요. 소꿉친구요.”
“두 사람처럼 연인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끈끈한 사이는 아니거든요? 그래도… 나름대로 긴밀하기는 해요.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아마….”
“글쎄요? 은수혁 선배도 아마 선배처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요?”
나와 하늘이처럼 하고 싶은 말은 가리지 않고 시원하게 토로하면 좋으련만.
성다솜과 은수혁은 그러지 못해 서로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티격태격하는 사이가 된 것이리라.
‘그래도 지지고 볶는 관계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긴 한데….’
아무쪼록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두 사람이 게임과 다른 미래로 나아가길 바라는 심정이었다.
내년에도 여러 사건이 발생할 텐데, 두 사람이 아카데미에 있다면 무척 도움이 될 것이다.
성다솜이 운을 뗀 것은 그때였다.
“어쨌든 저는 할 만큼 했어요. 이제는 견우 후배 차례예요.”
“제 차례라뇨?”
어느새 성다솜의 입에서 나오던 호칭이 도견우 후배에서 견우 후배로 변경됐다.
아무래도 내가 편해진 모양이다.
그녀와 원만하게 지내고 싶던 나는 개의치 않고 받아들였다.
이내 그녀가 입술을 삐죽이며 내뱉었다.
“저희가 제안을 승낙한 이유는 견우 후배의 지지를 받는다면, 견우 후배 친구들의 지지도 함께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저희한테 그들의 지지를 대리한다는 것을 약조해 주면 좋겠어요.”
“어떻게 약조하면 될까요?”
“저 말고 수혁도 알아야 하니, 그들이 견우 후배의 뜻을 따르겠다는 녹음을 가져오세요. 문서라도 좋고요.”
원래라면 강한별에게 주어졌어야 할 의뢰였다.
어쩌다 보니 그를 대신하게 된 나는 내 신세를 한탄했다.
“알겠어요. 확답을 받아 올게요.”
* * *
게임에서 강한별은 친구들의 지지를 대리하기 위해 그들의 자질구레한 부탁을 들어준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를 대신해 주인공의 역할을 맡게 된 나는 고생을 사서 해야 했다.
‘좀 억울하네. 게임의 나는 아무 대가 없이 순순히 강한별의 요청에 따랐는데….’
하지만 이해득실을 따지는 강한별이 무보수로 응할 리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사정을 들은 그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으래? 견우야, 근데 내가 공짜는 안 좋아하는 거 알지? 흠, 너한테 뭘 받는 게 좋으려나…. 군청검은 안 되겠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많이 탐이 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음… 하늘이로….”
“한별아, 죽을래?”
“미안, 농담이야.”
장난으로 해도 될 말이 있고, 하면 안 될 말이 있다.
연하늘의 이름을 들은 순간,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강한별의 목덜미에 검을 들이밀었다.
그제야 그는 태세를 전환해서는 항복하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슬쩍 내 검을 치우며 말을 꺼냈다.
“사실 너한테 부탁할 게 있었는데 잘됐네. 나 데이트 코스 좀 알려 주라. 학원도시에 구경할 게 뭐가 있는지, 맛집은 어디 있는지 등 알려 줬으면 좋겠어. 하늘이랑 많이 다녀 봤을 거 아니야.”
“서라 누나한테 써먹게?”
“응, 이번 주말에 놀기로 했거든. 그래서 참고하게.”
신예의 마에스트로, 신서라.
현재 그녀는 학원도시에 있는 레굴루스 클랜 산하 공방에 의탁해, 인형귀녀의 영혼석을 재료로 아티펙트를 제작하고 있었다.
그녀를 좋아하는 강한별에게는 그녀가 학원도시에 머무르는 이때가 기회로 여겨질 만도 했다.
꿍꿍이를 알아차린 나는 피식 입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지금까지 하늘이랑 어디 어디 다녔는지 정리해서 톡으로 보내 줄게.”
“견우야, 진짜 고마워! 내 표는 너한테 맡기도록 할게!”
“나중에 잘되면 밥 사기다?”
“…별로 진전이 없는 나보다는 네가 더 빨리 잘되지 않을까? 애초 그래야 하고….”
여하간 강한별의 부탁은 해결했다.
이후로도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지지를 받으러 다녔다.
다행히 그들은 어려운 수준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연하늘의 경우에는….
“딱히 바라는 건 없는데…. 아, 이번 주말에 공포 영화가 개봉한다던데. 우리 그거 보러 가자.”
“여름도 다 지나간 마당에 공포 영화가 개봉한다고? 뭐 하는 영화길래…. 꼭 봐야겠어?”
“싫어?”
“…아니야. 그래, 보러 가자.”
분명 공포 영화를 보고 움찔할 내 반응을 즐길 속셈이다.
무서우면 자신 곁에 꼭 붙어 있으라는 둥, 귀신이 없어지면 눈을 떠도 된다고 말하겠다는 둥 어린애 취급을 할 게 뻔했다.
그럼에도 나는 빤히 올려다보는 연하늘의 시선에 못 이겨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한편, 민아린의 경우에는.
“뭐? 내 이름이 필요하다고? 내가 왜? 투표란 건 말이야, 자신이 직접 판단해서 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나는 두 선배의 공약이 어떤지 찬찬히 비교한 다음에 투표할 테니 포기해.”
“그러냐. 어떻게 안 되겠어?”
“뭐… 네가 정 그렇게 부탁하면 안 될 건 없기는 한데….”
“나한테 필요한 게 있으면 말만 해.”
“크흠! 이번 주말에… 시간 돼? 너 이번 주 일요일에는 실드 활동이 없다고 했지?”
“이번 주 일요일? 실드는 없는데, 그날 하늘이랑 공포 영화 보러 가기로 했는데.”
“…진짜 너는 나가 죽어야 해. 꼴도 보기 싫어 죽겠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민아린은 내게 악담을 퍼부었다.
그래도 다행히 그녀를 달래서, 평일에 도서관 봉사를 도와주는 것으로 타협했다.
한편, 용해랑의 경우에는.
“선거에서 누구를 뽑을 거냐고? 나는 강한 사람을 뽑을 거다.”
“그래? 나랑 생각이 일치하네. 나도 다솜 선배랑 은수혁 선배 중 누가 대련에서 이길지 보고 결정할 생각이었거든. 그럼 해랑아, 훈련 잘….”
“기다려라, 도견우.”
“….”
“내가 소식을 몰랐을 것 같냐.”
“…어떻게 알았지.”
“고은비가 단톡방에 뿌렸더군. 네가 찾아오기 직전에.”
“고은비…. 내가 말하지 말라고 분명 이야기했을 텐데….”
“고은비에게 말한 게 잘못이란 생각은 안 하냐?”
“나도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걔가 우연히 알게 된 거거든? 내가 햄버거까지 사 줬구만….”
“그런가. 참 안타깝게 됐다. 하지만 내 부탁은 들어줘야겠다.”
“어차피 너는 강한 사람한테 투표할 거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진 사람한테 투표할 생각이다.”
“…원하는 게 뭐야?”
“말이 통해서 좋군. 내가 원하는 건….”
“….”
“이따 저녁에 시간 되냐?”
“대련하자고? 그거라면야, 뭐….”
“대련은 당연히 해야 하고. 끝나고 나랑 목욕이나 하자. 나 등 좀 밀어 줘라.”
“알았다, 알았어.”
결국 그날, 나는 용해랑과 한바탕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난 뒤, 기숙사 대욕탕에 들어갔다.
어쩌다 보니 기숙사가 다른 강한별, 박사군도 놀러 와서 같이 몸을 씻게 됐다.
“덥다. 해랑아, 그만 일어나자. 등이나 밀어 줄게.”
“알았다. 그런데 도견우, 너….”
“왜?”
“얼굴과 다르게 의외로….”
“그러게. 견우야, 너….”
“안경에 김이 껴서 어렴풋이 윤곽만 보이는데, 꽤….”
빠르게 화제를 돌려, 차은솔의 경우에는.
“얌…. 원하는 거? 그러고 보니 이제 곧 배달이 오기로 했는데….”
“어디로 온다는데? 내가 나가서 얼른 받아 오도록 할게.”
“응, 앞으로 일주일만 그래 주면 네가 말하는 사람한테 투표할게.”
“….”
다소 자존심이 상하긴 했으나, 배달 음식을 받아 오는 것으로 끝을 냈다.
그리고 남유리의 경우에는.
“견우견우! 요즘 좀이 쑤시는데, 우리 게이트에 들어가서 놀자! 지금까지 전기 분해를 얼마나 이해했는지 보여 줘! 아, 게이트 대여 비용은 견우견우가 지불해야 한다는 것 알지? 금강 코인, 어차피 많이 있잖아!”
게임의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남유리와 함께 인공 게이트를 전전해야 했다.
덕분에 사자 신성을 비롯해, 전기 분해를 응용한 기술들을 제법 연습할 수 있었다.
한편, 1학기 반 대항전에서 친해진 흑마 오가의 오준식의 경우에는.
“내가 바라는 건 별거 아니야. 너희끼리 놀지 말고 가끔은 나도 불러 주고, 무슨 일이 생기면 나한테도 알려 주면 좋겠어. 나도 너희가 일으키고 다니는 사건에 한 발 걸치고 싶거든.”
“우리를 도와주고 싶다는 거지? 나야 고마운데, 그래도 돼?”
“너도 알겠지만, 준수 형 일로 흑마 오가의 위상이 크게 떨어졌거든. 일각에서는 흑마 오가가 너희를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인식도 있고. 그런데 내가 너희랑 친하게 지내면 인식도 무마하고, 아카데미 내에서 내 체면이 살지 않겠냐. 게다가 툭하면 사건을 몰고 다니는 너희를 돕다 보면 명성을 얻게 될지도 모르니까.”
“흠… 일리가 있기는 하네. 나야 좋지. 잘 부탁할게. 마침 조만간에 술자리를 가지려고 했는데 그때 너도 부르도록 할게.”
“잊지 마라.”
뻔뻔하게 나를 이용해 먹으려는 친구들보다 오준식이야말로 진짜 친구가 아닐까 싶다.
게임에서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던 그의 진면모를 알게 된 나는 기분 좋게 악수했다.
마지막으로 그레이스 제국 학생들의 총의를 지닌 리사의 경우에는.
“견우, 저는요….”
“응, 너는 필요 없어.”
“네에?”
나는 잔뜩 기대에 차 있던 리사를 아쉬워하지 않고 무시했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대응에 완전히 당황한 눈치였다.
“이거, 지금 흥정하려는 거죠? 제가 견우 속을 모를 줄 알아요?”
“나는 흥정하는 거 아닌데? 정말 네 총의는 필요 없어서 그래.”
“그게 무슨…. 견우, 아카데미에 제국의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 학생들의 총의가 올곧이 너한테 향하는 건 아니잖아?”
“…설마.”
“3학년에 미하일 형이 있잖아. 내년에 졸업하기는 해도 영향력은 아직 충분하지 않겠어?”
“아….”
리사가 망연자실해하는 가운데, 나는 키득거렸다.
지난번, 오색전 경기에서 패배한 미하일 그레이스는 내기에 따라 무조건 내 말을 따라야 했다.
이때를 노리고 있던 나는 곧장 그녀를 뒤로하고, 그를 만나러 갔다.
그는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내 방문을 거부하지 못했다.
“미하일 형, 잘 지냈어?”
“내가 반말을 허용한다고 했지만, 형이라고 부르라고 한 적은 없을 텐데? 미하일 형이 아니라 미하일 선배라고 불러라. 애초 그레이스 제국에서 형이니 누나니, 오빠니 언니니 하는 호칭은 혈연관계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여기가 그레이스 제국이야? 한국이지. 쩨쩨하게 그러지 말지? 리사도 시은 누나한테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는구만….”
“…뭐라고? 리사가?”
미하일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리사가 도시은한테 ‘시은 언니’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니다. 그래, 문화에 맞춰서 그렇게 부를 수도 있지. 실제로 그런 학생들도 있고…. 그래서 날 찾은 용건이 뭐냐.”
“곧 있을 학생회장 선거에서 내 거수기가 돼 줘.”
“거수기라고?”
“한국어라서 모르나? 거수기가 뭐냐면….”
“거수기가 뭔지는 나도 안다. 그게 아니라… 사람을 배려해서 말해 주면 좋겠군. 거수기라니, 그게 제국의 황자한테 할 소리냐.”
“어쨌든 해 줄 거지?”
“….”
이리하여.
나는 그레이스 제국 학생들의 총의까지 손에 넣었다.
* * *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의 공개 연설이 다가오는 가운데.
내가 설창 은가의 북풍(北風), 은수혁을 조우하게 된 것은 이날 연마관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예약한 훈련실을 찾아 복도를 걷던 나는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그를 발견했다.
‘다솜 선배의 평가처럼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고, 모범적인 선배가 미래에는 빌런으로 전향해 마인회의 육마 중 1명이 될 수 있다니…. 의외는 의외야.’
가문의 위상과 영광을 나타내는 설창(雪槍)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설창 은가의 사람은 체내 마나를 눈과 얼음으로 변환해 싸우는 특수한 창술을 사용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들의 창술은 눈이 오는 겨울 풍경을 연상케 한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 가문에서 북풍이라 불리며 가장 주목을 받는 유망주가 바로 은수혁이었다.
체내 마나의 영향에 의해 변질된 푸른 머리칼에 푸른 눈.
그에 대비되듯 눈처럼 새하얀,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
전반적으로 차가운 인상을 지닌 그는 강한별을 반전시킨 듯한 미남에 속했다.
‘한별이가 태양 같은 미남이라면, 저 선배는 달 같은 미남이라 할까. …그럼 나는 뭐지?’
모르겠다.
쓸데없는 생각을 중단한 나는 거리가 가까워진 은수혁에게 목례했다.
“안녕하세요, 선배.”
나와 은수혁은 초면이 아니었다.
오늘처럼 연마관을 이용할 때면 종종 마주치는 일이 있고는 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하며 스쳐 지나가고는 했는데….
“도견우.”
“네?”
오늘은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인지.
돌연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춘 은수혁이 나를 불렀다.
“얼마 전에 다솜이에게 듣기로는, 네가 공동으로 학생회를 운영하라 권유했다던데.”
“네, 그랬죠.”
“고맙다, 그 애를 설득해 줘서. 내가 그 말을 꺼냈다가는 다솜이 성격상 자존심이 상해 분명 노발대발했을 게 뻔하거든.”
“….”
“또 네가 다솜이를 지지했다면 선거는 거기에서 끝났을 텐데도, 다솜이와 나의 대련을 주선해 내게도 기회를 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그래야 나중에 누가 학생회장이 돼도 불화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감정을 잘 비치지 않는 사람답게 은수혁의 목소리는 무뚝뚝했다.
풍기는 분위기도 부드럽지 못하고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이래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설창 은가의 냉혈한이라고 부르는 것이리라.
‘다솜 선배가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답답해하는 원인이기도 하겠고….’
일전에 성다솜이 하소연한 기억을 떠올린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은수혁의 눈빛이 매섭게 벼려진 것은 그때였다.
“하지만 말이다.”
그가 눈에 힘을 주며 으르렁거렸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다솜이를 이용하려 한다면.”
“….”
“그때는 내가 가만있지 않을 거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저도 선배랑 척지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다. 믿으마.”
용건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인 은수혁이 나를 지나친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돌아본 나는 한숨을 쉬었다.
‘다솜 선배가 그렇게 소중하면 나한테 경고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찾아가서 표현할 것이지…. 저러니까 둘 사이가 틀어지는 거 아니야.’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겠다.
하늘이한테 예쁘면 예쁘다고, 소중하면 소중하다고 말해야겠다.
안 그래도 내가 말하지 않으면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소꿉친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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