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253)
(253)
제 어미를 죽이고 태어난 아이.
부친은 직접 표현하지 않았지만, 차은솔을 그런 존재로 여기며 구태여 정을 주려 하지 않았다.
가급적 멀리하려 했다.
그러다 하루는 술에 취해 홧김에 그녀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말았다.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태어나서는 안 됐다고.
―….
―너만 없었으면, 그 사람은….
집안의 고용인들이 말리든 말든.
술기운에 몸도 가누지 못하던 부친은 잠이 깨서 물을 마시러 나온 차은솔에게 삿대질했다.
당시 6세에 지나지 않던 그녀는 묵묵히 그의 원망을 들었다.
그러고는 운을 뗐다.
―이해해요.
―뭐?
―아버지 마음 이해해요.
―….
모친의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세상을 지각한 차은솔이었다.
나이에 비해 사고가 성숙했던 그녀는 부친의 매정한 태도를 헤아릴 줄 알았다.
―태어나서 죄송해요.
그래서 멋대로 배려했다.
부친의 울분을 받아들인 것이다.
태어나서 죄송해요.
차은솔은 그가 바라던 대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말을 입에 담았다.
―…너 지금, 뭐라고….
부친의 얼굴은 크게 일그러졌다.
사실, 그는 아내의 사망 원인은 차은솔 때문이 아니란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다만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서는 감정을 삭일 수 없었을 뿐이다.
어른스럽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사과를 받은 그는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추하고, 한심하며, 창피하게 느껴졌다.
더욱이 그녀의 초록 눈 앞에서는 영혼이 발가벗겨지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의 얼굴로 지껄이지 마라. 썩 꺼져. 제발 내 눈에 띄지 마.
―…네. 안녕히 주무세요.
당시 관계를 개선할 여지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차은솔도, 그녀의 부친도 서로에게 서툴렀다.
결국 부녀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족처럼 지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동안 키워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차은솔은 딱히 순환 차가에 애착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순순히 가문의 제명을 받아들인 그녀는 개인 소유의 짐을 챙기러 충주시의 집에 들렀다.
그러고는 학원도시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부친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집무실에서 등을 진 채로 앉은 부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전에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익숙했다.
부친의 답변을 기대하지 않은 차은솔은 그만 집무실을 나서려 몸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방은 그대로 두고 있겠다.”
“….”
“오고 싶을 때는 와라.”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차은솔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부친은 여전히 등을 지고 있었다.
“네, 그럴게요.”
부친의 의도를 모르겠다.
차은솔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짧게 화답한 그녀는 짐을 끌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서 차은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 끝났어? 짐은 더 없는 거지?”
“응. 이걸로 끝이야.”
“다행이네. 짐이 얼마 안 돼서. 옮기느라 고생은 덜하겠어.”
“얌…. 대부분 가문 소유였으니까.”
차은솔의 제명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의 짐 정리를 돕기 위해 당장에 따라온 차은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금이나마 그녀를 다시 보게 된 차은서는 바닥에 둔 캐리어를 들었다.
다른 하나는 계단을 내려오는 그녀에게 건넸다.
“자, 이건 네가 들어.”
“…왜 나는 2개야?”
“이게 네 짐이지, 내 짐이니? 당연히 네가 나보다 하나 더 들어야 하지 않겠어?”
“전에는 안 그랬으면서….”
“전에는 가문의 명으로 어쩔 수 없었던 거였고. 근데 이제 너는 가문의 사람이 아니잖아? 내가 거들어 주러 온 것도 고마워해야 할 처지라고, 알았어? 자, 받아.”
“이러면 먹을 손이 없는데…. 너무해.”
“응, 안 너무해. 이게 정상이야.”
차은솔의 입꼬리가 아래로 휜다.
얼굴에 낙심한 기색이 가득한 그녀는 별수 없이 양손으로 캐리어를 끌어야 했다.
피식 웃은 차은서는 뒤를 따랐다.
“이제부터는 수업 잘 들어야 해. 누가 너 대신 들어 주지도 않을 거고, 출석도, 과제도, 학점도 관리해 주지 않을 거야. 올곧이 네가 알아서 해야 해.”
“이참에 자퇴할까….”
“자퇴하면 뭐 먹고 살려고? 헌터 자격증은 얻지 못할 텐데, 달리 먹고살 길은 있어?”
“…아니.”
“그럼 얌전히 졸업할 때까지 아카데미를 다녀야겠네.”
“응….”
“그나저나 앞으로 생활도 문제겠는데…. 너, 돈도 얼마 없을 거 아니야.”
“그러게. 가문 이름으로 된 카드는 본가를 나올 때 빼앗겨서… 이 카드랑 지갑에 있는 돈이 전 재산이야.”
“식비에, 학비에, 각종 생활비에…. 다 감안하면 허리띠를 졸라매도 얼마 못 버틸 것 같은데…. 브릴리언트 카페의 의뢰 게시판에서 의뢰라도 받든가,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 아니면 새로 후원처를 찾는다든가.”
“일하기는 싫은데.”
“일 안 하고 어떻게 살게?”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너 생각은 있는 거니?”
“아니.”
“에휴…. 그럴 줄 알았다.”
서로 보폭을 맞춰 걷는다.
전과 달리 상호 작용이 매끄러워진 두 사람은 그대로 워프 게이트 터미널로 이동했다.
이후, 차은솔은….
“그렇게 됐으니까 잘 부탁할게.”
“뭘 잘 부탁한다는 거야?”
“따지고 보면 내가 너 때문에 가문을 나오게 된 거잖아. 얌…. 돈도 궁해진 거고.”
“거기에 내 지분도 있겠지만, 네 지분도 분명 있을 텐데…. 그래, 일단 그렇다고 쳐. 그래서?”
“그러니까 나 책임지라고. 얌얌. 애완 돼지를 키운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될 거야.”
“…애완 돼지가 아니라 코끼리겠지. 네 식비가 얼마나 많이 들겠냐고.”
“너무해.”
“네가 더 너무하다.”
다짜고짜 도견우를 찾아가서는 후원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는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끝내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 * *
순환 차가가 200여 년에 걸쳐 최초의 정령을 착취했다고 한들,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정령은 인간이 만든 법에서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구태여 죄를 매긴다면.
‘진실을 날조해 세상을 속인 기만죄, 괘씸죄 정도겠지.’
하지만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법만이 아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명예와 도덕성.
순환 차가는 이번 일로 인해 사회적 위치 유지에 필요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최근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정령술 명가들이 반발하고 있다니, 적어도 한 세대 동안은 십가문에 속하지 못하겠네. 거기에 최초의 정령이 축복을 거두어 가고, 다수의 정령이 돌아섰다니…. 어쩌면 이전과 같은 영광을 다시는 재현하지 못할 수도 있겠고.’
순환 차가가 애써 부정하더라도, 그들의 몰락은 기정사실이었다.
이로 인해 정령술 명가의 세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터였다.
‘십가문 투표가… 내후년인가? 다음 정령술 계통은 누가 되려나.’
십가문은 한국 사회, 특히나 헌터의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아카데미 이사장으로 재임해 있는 소혜율로서는 향후의 정세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장 신경 써야 할 사항은 아카데미 분위기였다.
“그래? 그렇다는 말이지.”
“네.”
비서실장 오승아의 보고에 따르면, 학생들이 순환 차가의 학생들을 핍박하고 있다는 듯했다.
소혜율은 한숨을 쉬었다.
“참 난감하네. 범죄자의 자식은 범죄자가 아니라지만, 이번 건은 궤가 다르니…. 몰랐다고 해도 가문 전체가 최초의 정령의 축복을 누린 것은 사실이니까. 무작정 그 학생들을 감싸려 했다간 순환 차가를 옹호한다는 오해를 살지도 몰라.”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학생을 보호해야 하는 아카데미가 방관할 수는 없고…. 면학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범죄에 준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대처해야겠네. 순환 차가의 학생들을 담당하는 교관들에게는 당분간 관심 있게 지켜보라고 하고.”
대강 가닥을 잡은 소혜율은 오늘 중으로 공문을 돌리기로 했다.
한편, 생각은 다른 곳으로 빠졌다.
‘그나저나 사고를 잘 치고 다니네.’
세간에서 최초의 정령을 해방한 사람은 차은솔로 추정 중이었다.
순환 차가는 밝히지 않았지만, 정황상 이번 사건 이후 그녀가 가문에서 제명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혜율은 그녀 이외에 다른 사람들도 관여돼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강한별, 도견우, 연하늘, 고은비, 용해랑, 리사 그레이스, 남유리, 민아린, 차은서, 세쌍둥이.
독자적인 인맥으로 사건 시기와 그들이 워프 게이트를 이용한 정보를 손에 넣은 것이다.
“그 나이에는 원래 그런다지만, 너무 겁이 없지 않나 싶은데. 자칫 가문 간의 문제로 불거지면 어쨌으려고…. 아카데미에 불똥이 튈 수도 있었겠고.”
본래 금강 아카데미 학생은 수업일에 학원도시를 벗어날 때 사전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번에 도견우 일행이 벌인 일탈은 규칙 위반인 셈이다.
“그렇다고 문제로 삼아 버리면 그 학생들의 개입을 암시하는 꼴일 테지.”
아카데미의 학생 부실 관리로 욕먹을 수도 있었다.
결국 소혜율은 도견우 일행의 존재를 은폐하고, 워프 게이트 터미널의 기록을 지워야 했다.
그렇게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한 그녀는 쓴웃음을 흘렸다.
“나중에 생색이라도 내야겠네.”
시간의 말뚝을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소혜율은 얼른 2학기가 끝나, 그때가 오길 고대했다.
* * *
정령술 명가의 총의가 흔들리고,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으니 누군가는 책임지는 수밖에 없다.
순환 차가의 가주, 차태인은 끝내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다 끝났군.”
충청북도 충주시, 순환 차가에서 본가를 대신해 임시로 마련한 거처.
장남에게 가주 자리를 내놓기로 공문을 작성한 차태인은 허망하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로서는 자신의 대에서 가문의 영광이 저물고 말았다는 사실이 치욕스럽기 그지없었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차은솔….”
차태인은 빠득 이를 갈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 상황의 원흉인 손녀, 차은솔을 죽여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순환 차가에서 제명한 것으로는 전혀 성이 차지 않았다.
하지만 세간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그녀를 건드려서는 안 됐다.
“….”
적어도 한동안은.
차은솔에게 보복을 가하기 위해서는 여론이 식을 때를 기다려야 했다.
쉽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차태인은 곧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생각을 전환했다.
‘아니, 꼭 죽일 필요는 없다.’
초대 가주 이상으로 버금가는 정령사의 자질을 지닌 차은솔.
최초의 정령의 축복을 빼앗겨 가문 사람들이 힘을 잃은 가운데, 그녀의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
필시 그녀는 이용하기에 따라서 가문에 큰 이익이 될 터였다.
가령.
“어쩌면 그 애가 낳는 아이는 더 우수한 자질을 타고날지도 모르지. 아니면 그 애를 실험체로 여러 연구를 한다든가…. 장기 이식도 있겠군. 그 애의 눈을 이식한다면….”
최초의 정령을 잃고 만 이상, 순환 차가는 가문의 미래를 위해 대체제를 마련해야 했다.
차은솔은 그것으로 삼기에 적격이었다.
차태인은 문득 떠올린 발상에 입가를 끌어 올렸다.
‘평생 가문의 풍족한 환경에서 게으름이나 피우며 자란 아이다. 그런 애가 홀로 설 순 없겠지. 살다 보면 분명 풍파에 찌들어 가문의 사람으로 있던 때를 그리워하게 될 거다. 그때를 가늠해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가문으로 돌아오도록 권한다면… 다시는 가문을 배신하지도 못할 테고, 가문의 뜻을 거스르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차은솔을 납치하면 될 뿐이니까.
그 경우에는 그녀를 실험체로서 서슴없이 대할 작정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차태인은 새로운 가주로 취임한 장남에게 귀띔하러….
기척을 느낀 것은 그때였다.
“내가 떠났으니, 그것을 대신해 이번에는 그 아이를 이용할 속셈이구나.”
“….”
“정녕 너희가 전 계약자의 피를 이었는지 의심이 드는구나. 너희는 썩었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커튼이 펄럭이는 창가.
그곳에 수수한 옷을 입은 여성이 걸터앉아 있었다.
검고 긴 머리에, 초록 눈.
차은솔을 연상케 하는 존재였다.
다만 그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성의 머리에 사슴 같은 큰 뿔이 돋아나 있었다는 것이다.
“최초의 정령인가.”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창틀에서 내려와 다가오는 여성.
그녀의 정체를 알아본 차태인은 언제든 위협에 대응할 수 있도록 힘을 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정령들은 응답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군주에게 거역할 마음이 없었다.
결국 체념한 그는 숨을 가다듬었다.
“날 죽이러 온 것인가.”
“그래. 힘을 추스른 대로 곧장 네놈을 죽이러 온 참이다. 그런데 그 아이 이야기가 들리더군.”
“그 아이에게 관심이 있나 보군.”
“계약자로 삼고 싶을 정도로. 비록 너희 대다수는 썩었지만, 그 아이는 꽤 마음에 들더구나. 지금은 이르겠지만 그 아이라면 언젠가 나와 계약을 맺을 정도로 성장할 테니까.”
“…그런가. 아쉽군. 만약 우리가 널 그렇게 가두지 않았다면… 가문에서 너와 계약한 정령사가 새로 나왔을지도 모르겠군.”
“그랬을지도 모르지. 나와 너희는 지금과 다른 관계로 지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최초의 정령이 해방된 이상, 저항은 무의미했다.
차태인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그녀가 펼친 손을 바라보았다.
“나를 죽인 후에는 가문의 사람들도 다 죽일 것인가.”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었지. 하지만 여전히 너희를 좋아하는 정령들도 존재하더구나. 그래서 너희에게 축복을 거두고, 너를 포함한 역대 가주들의 영혼을 소멸시키는 것으로 끝내기로 했다. 아직 세상을 떠도는 영혼은 잘게 씹어 먹어 줄 것이고, 만일 환생한 놈이 있다면 찾아서 전생의 기억이 떠오르게 한 다음 죽일 것이다.”
“…그런가. 자비에 감사하지.”
“두려운가.”
최초의 정령이 근엄하게 묻는다.
차태인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나와 역대 가주들의 영혼을 대가로 가문이 건재하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참으로 가문에 미친 놈들이구나. 어째서 그렇게 대를 잇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없군.”
“자식을 낳지 않고 순환하는 너희 정령들은 모르겠지.”
“그런 면에서 우리와 너희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구나.”
최초의 정령이 기세를 드러낸다.
그녀가 입술을 움직였다.
“너는 고통스럽게 소멸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있느냐.”
“….”
찰나, 자신의 인생을 돌이킨 차태인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그가 대답했다.
“순환 차가에 영광이 있기를.”
“미친놈.”
콰직!
그날, 차태인은 사망했다.
피와 살점이 낭자한 현장을 본 순환 차가의 사람들은 모두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이 사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