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254)
(254)
기습적인 [삽화]
순환 차가에서 일어난 사건이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든 말든.
괜한 의심을 사고 싶지 않던 우리는 세상사에 무관심한 척, 최대한 담을 쌓고 지냈다.
마침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적당한 구실이 있기도 했다.
‘나와 한별이를 따로 불러내서 가볍게 언질을 준 것을 보면 이사장님은 눈치챈 것 같지만.’
다행히 예상했던 대로 소혜율은 이번 사건에서 우리의 개입을 문제로 삼지 않았다.
대신에 나와 강한별에게 은근히 뒤치다꺼리를 도맡았노라고 생색을 내기나 했다.
―그러니까 저한테 미안하다면 아카데미 생활에 힘쓰도록 해요. 우수한 헌터가 돼서 나중에 이 아카데미의 명예를 빛내 주면 돼요. 빌런으로 전향하지도 말고요. 그리고… 마지막 의뢰도 잘 완수해 주세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소혜율은 여러 득실을 고려해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었을 뿐이다.
그것을 모를 리 없던 나는 그녀의 친절에 속지 않았다.
한편, 순환 차가의 가주가 새로 취임한 것과 더불어, 전대 가주 차태인이 잔인하게 살해됐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그러던 중이었다.
듣기로, 순환 차가와 헌터 협회는 최초의 정령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최초의 정령을 찾을 수는 없어서 추정 중이라고 표현한 거겠지만, 아마 맞겠지.’
최초의 정령은 순환 차가에, 특히 순환 차가의 가주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 가주를 살해할 만한 동기는 충분했다.
실제로 게임에서 최초의 정령은 차은솔의 몸을 강탈하자마자 바로 차태인을 죽였었다.
‘그렇다고 쳐도 사람을 아예 갈기갈기 찢어 죽였을 줄이야….’
가문에서 제명된 차은솔과 달리, 순환 차가의 사람으로 있는 차은서를 통해 자세한 정보를 파악한 나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최초의 정령이 악령이라도 된 것 아니냐며 두려움에 떨 만도 했다.
하지만 이 소식은 아카데미에서 떠들썩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이때쯤 기말고사가 시작된 데다, 교관들의 단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장님이 조치를 취한 거겠지.’
사실, 순환 차가의 비밀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차은솔과 차은서를 비롯해서 순환 차가의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냉대와 배척을 받아야 했다.
나와 친구들, 학생회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개선하려 나섰지만 효과는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교관들이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하자 조금이나마 형편이 나아졌다.
덕분에 우리는 걱정을 한시름 놓고 기말고사에 임할 수 있었다.
“얌얌. 역시 시험 끝나고 먹는 밥이 제일 맛있는 것 같아.”
“뻥 치네. 공부나 하고 말하지? 그리고 너는 언제 먹든 간에 무엇이든 다 맛있어하잖아.”
“나 이번에는 열심히 했는데….”
기말고사 2일 차.
오후 수업의 시험을 마친 우리는 쪽빛 호수가 보이는 카페테리아에서 저녁을 먹었다.
나란히 자리에 앉은 민아린, 차은솔은 별것도 아닌 화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광경에 익숙해진 우리는 키득 웃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나는 차은솔에게 투덜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벌써 몇 그릇째나 되는 국수를 후루룩 삼키는 것도 모자라, 야무지게 메밀전병도 먹고 있었으니까.
“너 같은 코끼리도 없을 거다…. 이거 먹고 커피도 마실 거지? 디저트도?”
“얌? 당연한 소리 묻지 마. 밥 먹고 나서는 단 음식으로 입가심하는 게 국룰이야.”
“너는 입가심하는 게 아니잖아.”
순환 차가에서 제명된 차은솔은 현재 내 후원을 받고 있었다.
그녀를 신검 도가에서 후원했다간 자칫 순환 차가의 심기를 건드릴 여지가 있었던 탓이다.
그래서 그녀는 내 계좌와 연동된 카드로 생활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돈 씀씀이가 너무 큰 거 아니냐?’
차은솔은 돈 먹는 하마… 아니지, 코끼리가 따로 없었다.
제발 후원금조차 아끼려 하는 연하늘을 본받았으면 할 따름이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먹고 다니지 못했을 거야. 감사히 여겨.”
“은비가 그거 가스라이팅이래. 그래도 고마운 건 알고 있어. 그래서 싫지만 수업도 잘 듣고, 공부랑 훈련도 열심히 하고 있는 거잖아.”
“그건 원래 학생이 해야 할 일이거든?”
“그런 소리 하지 마. 약해 보이잖아.”
“….”
“저번에 은비가 알려 줬어. 얌. 내가 메밀전병 하나 줄게.”
“그래, 고맙다. 잘 먹을게. 내 돈 주고 내가 먹는 꼴이지만.”
차은솔의 자금줄을 잡고 있다는 것은 그녀를 마음대로 부려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녀가 건넨 메밀전병을 받은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옆에서 시선이 느껴진 것은 그때였다.
“왜 그래?”
“아니, 그냥.”
연하늘이 불만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중얼거렸다.
“요새 은솔이랑 많이 친한 것 같아서.”
“…설마 너보다 친하겠어?”
“하긴, 그건 그렇지?”
연하늘의 질투가 귀엽기만 하다.
어깨를 으쓱인 나는 그녀의 접시에 반으로 나눈 메밀전병을 올렸다.
그러자 그녀가 금세 얼굴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이후로 우리는 카페로 장소를 옮겨 시험공부에 매진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남지 않았네. 이번 주 토요일이었지?’
1학년 2학기에 해결해야 할 이벤트가 아직 하나 남아 있었다.
남유리의 빌런 전향 이벤트.
대비는 진즉 마쳐 놓은 상태였다.
* * *
기말고사 6일 차.
토요일까지 이어지는 시험을 마친 남유리는 빌런들과 접선하기 위해 채비하기로 했다.
그녀는 옷장을 열었다.
“서랑 언니가 눈에 띄지 않게 어두운 옷으로 입고 오라고 했지…. 음, 뭘 입지? 은비까비한테 추천이라도 받을 걸 그랬나?”
옷장은 친구들과 함께 고른 옷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디자인이 같은 새하얀 원피스와 교복만 있었던 시절과 비교하면 무척 뚜렷한 변화였다.
그때가 입학 초였음을 기억하는 남유리는 괜히 입가가 올라갔다.
‘이번 일이 끝나면 은비까비랑 다른 애들한테 옷 사러 가자고 할까? 방학이 시작되면 한동안 보지 못할 테니까….’
앞으로도 친구들과 같이 산 옷들로 옷장을, 아니, 방을 가득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
차곡차곡 추억을 쌓듯이.
남유리는 속으로 바랐다.
이내 옷장을 뒤지던 그녀는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아냈다.
“응, 이거면 되겠다!”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야밤에 순환 차가의 선산에 침입할 때 정체를 숨기려 입었던 옷.
그때 당시를 생생히 떠올린 남유리는 킥킥 웃음을 흘리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 나서 시간에 늦지 않게 약속 장소로 향했다.
“서랑 언니, 안녕?”
“유리 왔구나. 혹시나 오면서 뒤를 따라붙는 기척은 없었지?”
“응응! 당연하지! 내가 누구인데? 아무도 모르게 움직였지!”
객원 교관으로 위장했던 빌런들과 전향을 결심한 학생들.
그들은 워프 게이트 터미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화물 창고에서 만남을 가졌다.
창고에 들어와, 제일 먼저 길서랑과 인사한 남유리는 은연중 그들을 살폈다.
‘많네.’
빌런들은 금강 아카데미만 아니라, 학원도시 여러 아카데미에 잠입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다양한 곳에서 온 듯했다.
다른 아카데미의 제복을 입은 빌런들과 학생들을 흘깃한 남유리는 생각에 잠겼다.
‘서랑 언니 말로는, 접선지가 여기 말고도 더 있다고 했지…. 그것까지 감안하면 조직적이네. 보통 빌런들은 단독으로 행동한다던데, 헌터들보다도 자기주장이 강해서.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집단적인 면모를 보인다는 건 그만큼 리더를 따른다는 건가. 마인회가 빌런 사회를 통합했다는 소문은 정말 거짓이 아니었던 거구나.’
그에 비해 헌터들은 어떠한가.
클랜이나 가문에 속한다면 모를까, 헌터 그 자체에 대한 단합력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정령술 명가에서 잡음이 발생하기도 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헌터들과 빌런들이 전면전을 벌인다면….
‘헌터들이 이길 수 있을까? 사람들을 지키면서?’
남유리는 회의적이었다.
길서랑이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누가 있나 궁금한지는 알겠는데, 너무 쳐다보지는 말도록 해.”
“….”
“다들 시선에 예민하거든.”
뒤에서 조용히 귀띔하는 길서랑.
순간 그녀의 기척에 흠칫한 남유리는 동요를 드러내지 않으려 짧게 “응.” 하고 답했다.
다행히 뒤에서 다가온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서랑 언니는 첩보 계통이었지. 갑자기 나타나서 반응할 뻔했어.’
당연하게도 현재의 자신으로서는 이기지 못할 빌런들도 자리에 있는 상황이었다.
남유리는 괜히 그들의 의심을 자극해 작전이 꼬이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모인 것 같군. 반갑다.”
“….”
조잡하게 만든 연단에 올라간 누군가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인파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남유리는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그룹을 이끄는 리더야. 이명은 독두꺼비라고, 들어 봤니?”
“아니. 근데 뭐 하는 사람일지는 알 것 같아. 두꺼비 독을 잘 사용하나 봐?”
“맞아. 그래서 독두꺼비라고 불리지. 얼굴도 꼭 그렇게 생겼고. 이명의 유래는….”
곁에 선 길서랑이 귓가에 속삭인다.
남유리는 그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독두꺼비의 연설을 경청했다.
“그동안 세상의 억압 속에서 사느라 죽을 듯이 괴로웠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과 존재를 부정하는 생각도 해 보았겠지. 나는 다르다, 평범하지 않다, 너희처럼 살아갈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했겠지.”
“….”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기뻐해라. 그분이 너희를 자유롭게 할 테니까.”
만약 친구들과 어울리기 전의 남유리였다면.
그녀는 독두꺼비의 연설에 공감해 빌런으로 전향했을 것이다.
그만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세상에 불만이 많았다.
다 부숴 버리고 싶었을 정도로.
지금도 그 마음이 아예 없다고 부인할 수는 없겠다.
그렇다고 해도….
‘애들을 떠나고 싶지는 않은걸.’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은 즐거웠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무언가를 죽여야 했던 남유리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 순간 살아 있음을 실감했고, 우습게도 세상에 감사했다.
그렇기에.
“서랑 언니, 미안.”
“뭐? 뜬금없이 사과는 왜….”
남유리는 독두꺼비의 연설을 듣고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계획이 무르익었음을 확인한 그녀는 사전에 챙긴 아티펙트로 도견우 일행에게 연락을 취했다.
[지금이야.]길서랑이 반응했을 때는 늦었다.
남유리가 아티펙트를 발동한 순간, 그녀를 지키는 보호 마법이 발동했다.
나아가 아티펙트를 좌표로 삼아….
[기프트: 백은의 은총>허공에 아공간이 열렸다.
그곳에서 도견우 일행과 교관들,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내는 순식간에 전장으로 변했다.
* * *
급습 작전은 성공했다.
사전에 남유리의 정보를 통해 빌런들의 접선 장소를 파악해,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리는 그녀가 보낸 신호를 수신하자마자 움직였다.
침입은 어렵지 않았다.
편하게 리사의 기프트로 만든 아공간을 넘으면 될 뿐이었으니까.
‘어쩐지 요새 한별이랑 리사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기분 탓이겠지.’
강한별과 리사에게 별명을 붙인다면 한별 택시와 리사 셔틀이 좋지 않을까.
이왕 생뚱맞은 김에 사족을 더하건대, 두 사람은 돈으로 고용해서라도 평생 곁에 두고 싶다.
내가 가족이랑 하늘이 다음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든 존재는 두 사람이 처음일 것이다.
‘집안은 하늘이가 관리하게 하고, 운전기사는 한별이한테 맡기고, 리사는 급할 때 애용하고…. 황녀를 셔틀로 쓰면 결례가 되려나? 뭐, 어때. 여기는 제국이 아니라 한국인데. 그리고 식충이 차은솔은 마당에서 길러야겠다.’
즉석에서 상상한 조감도치고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절로 흐뭇한 감상에 휩싸였다.
여하간, 일단 전투에 집중해야겠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이미 주위는 소드와 실드가 포위하고 있다!”
“큭! 네놈들이 이곳을 어떻게…. 헌터들이다! 다 쳐 버려!”
현재 창고 안은 피아가 뒤섞여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곳곳에서 욕설과 고성이 오갔다.
사람들은 모두 흥분한 상태였다.
나와 친구들, 도시은과 학생회는 자칫 흐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침착하게 보조를 맞췄다.
그중에는 학생회 인수인계를 받고 있는 성다솜과 은수혁도 있었다.
“감히 당신 같은 범죄자들이 저의 아카데미에 잠입하다뇨. 내년 학생회장으로서 용서 못 해요.”
“성다솜, 너무 앞으로 나서지 마라. 전위는 내가 맡을 테니까 기본적으로 너는 뒤에서… 하… 말은 더럽게도 안 들어 먹는군.”
성다솜이 과감하게 빌런들 속으로 뛰어든다.
두통이라도 이는 듯 얼굴을 찡그린 은수혁이 마지못해 그녀를 뒤따라간다.
나는 서로를 보완하며 싸우는 두 사람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다솜 선배랑 수혁 선배는 뭐… 안 도와줘도 되겠네.”
역날검으로 전환한 군청검으로 어느 빌런을 혼절에 이르게 한 나는 다른 친구들을 살폈다.
그들도 적들에게 밀리지 않는 실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어?’
남유리에게 시선이 갔을 때였다.
나는 혼란스러운 전장을 틈타서 은밀하게 그녀에게 접근하는 여성을 포착했다.
여성은 그녀에게 전향을 권유한 길서랑이었다.
‘위험해.’
남유리는 다른 적들에게 집중하느라 길서랑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나는 황급히 그녀의 존재를 알리려 목소리를 높였다.
“남유리!”
“…!”
젠장, 늦었다.
그때쯤 지척까지 거리를 좁힌 길서랑이 검을 쥐고 달려들었다.
눈앞에 있는 적에게 낫을 휘두른 남유리는 그제야 그녀를 발견하고 당황한 듯했다.
그녀의 회색 눈이 크게 떠졌다.
이윽고 끝내….
“네가 꼰질렀지! 나쁜 년!”
푹!
“내가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정확히 심장이 있어야 할 위치로.
길서랑이 남유리를 찔렀다.
나는 물론이고, 우리는 깜짝 놀라 얼른 몸이 기울어지는 그녀에게 뛰어갔다.
바로 그때.
“괜찮아.”
우리를 다독이듯.
우리에게 시선을 향한 남유리가 피를 토했다.
그녀가 해맑게 웃었다.
“내 심장은 거기에 없거든.”
“…!”
거대한 사이드를 회수한 남유리가 쓰러지는 와중에 몸을 튼다.
한 발을 축으로 회전한 그녀가 힘껏 사이드를 휘둘렀다.
직후, 길서랑의 머리가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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