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260)
(260)
곳곳에 아무 짝에나 흩어져 있는 범퍼카, 회전목마, 바이킹 등등의 놀이 기구 잔해에….
저 멀리, 아직 기능하는 것처럼 천천히 회전하고 있는 대관람차.
내가 주위를 둘러본 바로는, 이곳은 하트랜드가 틀림없었다.
‘대체 이 세상은 뭐인 거지? 여기는 또 왜 이렇고….’
폐허가 된 하트랜드.
문득 이 광경으로부터 떠오르는 게임의 장면이 하나 있었다.
‘…스토리 최종 에피소드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었지.’
게임의 전개에 따르면.
강한별 일행은 하트랜드를 무대로 타천과 최종 결전을 벌인다.
이때 전투에서 패배할 경우, 플레이어는 지금처럼 폐허로 변한 하트랜드를 볼 수 있었다.
‘그 후, 배드 엔딩으로 전환됐고. 여기는 그럼 배드 엔딩 직전의 세계란 건가.’
잘 모르겠다. 의문만 싹튼다.
난데없이 이 세상에서 눈을 뜬 나는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목적지는 별빛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 아래에서 회전하고 있는 대관람차였다.
‘주위가 이렇게 황량한 마당에 어디 갈 데도 없고…. 어쩐지 저기서 날 부르고 있는 것 같아.’
대관람차로 걸음을 옮긴다.
가는 길에는 전쟁이라도 벌인 듯 몸이 성치 않게 죽어 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헌터와 빌런들인 것 같았다.
잠시 그들에게 시선이 갔던 나는 기억을 돌이켰다.
‘신장에서 빛이 나는가 싶더니, 정신이 들었을 때는 여기 있었지. 즉, 내가 여기 있다는 뜻은 정황상 신장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건데…. 무슨 속셈인 거지?’
명색이 세계수의 신기인 만큼, 악의로 저질렀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만약 의도가 있다면 호의가 아닐까 싶다.
가령, 나를 이 세상으로 끌어들인 이유는 무언가를 알려 주기 위해서라거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인 거지? 뭐라고 정의해야 하는 거야? 게임 속 세상?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
내가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것은 머지않아서였다.
어느덧 대관람차에 가까워진 나는 걸음을 멈췄다.
“….”
전투의 흔적이 역력한 일대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강한별, 고은비, 민아린, 용해랑….
홍예나, 유노을, 수호국….
각기 다른 제복을 입고 있는 권보람, 도시은, 은수혁….
아직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않은 1년 후배 유가을, 함민주….
그리고 2년 후배 은수로, 성시완….
모두 아는 얼굴이었다.
다만 연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다, 죽었어…. 나 때문이야….”
“….”
나, 도견우.
유일하게 살아남은 듯한 그는 주먹으로 땅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피와 땀, 그을음으로 얼룩진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우왕좌왕하지만 않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빨랐다면 이렇게 끝나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도견우는 자책하고 있었다.
그의 몸이 격정으로 떨렸다.
이내 눈이 마주친 나는 직감했다.
‘하늘이가 안 보이기도 하고, 미래의 나는 아니야.’
그렇다고 게임 속 세상도 아니다.
게임의 스토리 최종 에피소드에서 강한별 일행은 모두 죽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니까.
그렇다면 이곳은….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그래, 네 검이 조금이라도 빨리 내게 도달하였다면, 어쩌면 이렇게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너희가 이겼을 수도 있겠구나.”
이제 보니 이 세상의 도견우는 내가 아닌, 내 뒤편에 있는 상대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대관람차의 곤돌라 위에 서 있는 마인회의 수장, 타천에게로.
내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듯한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했다.
피가 튄 하얀 정장을 입고, 깨진 선글라스를 쓴 타천이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낄낄거렸다.
“하지만 가정한다고 한들, 대관절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너를 제외한 아해들은 모두 죽었고, 나는 버젓이 살아 있는데. 이곳에 더 이상 나를 막을 자는 없고, 이제 곧 비원은 이루어진다. 그러니 너희는 졌다. 철저하게 패배했다.”
“타천….”
“그런데도 계속 싸울 생각인 것이냐? 하물며 그런 몸으로? 신검 도가의 아해야, 포기하거라. 내게 덤비는 것은 개죽음에 불과하니까.”
몸을 가누기 쉽지 않을 텐데도.
바닥에 떨어진 군청검을 손에 쥔 이 세상의 도견우가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중단세를 취하는 그의 눈은 적의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타천은 그런 그가 기껍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기분이다. 신검 도가의 아해야, 검사로서 네 자질은 수왕에 필적한다. 아니, 어쩌면 신검 도가의 역사상 최강으로 평가되는 2대 수왕에 버금갈지도 모르지. 어린 투귀의 자질도 우수했지만, 검사로서 네 자질은 더욱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
“그런 자질을 지닌 너까지 저 아해들처럼 죽이는 것은 매우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세상에 이롭지 않아. 우리처럼 우수한 존재는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수한 존재로서 태어난 우리의 숙명이고, 의무며, 권리다. 그러니 제안하마.”
대관람차의 곤돌라에서 뛰어내린 타천이 바닥에 착지한다.
그가 선심을 쓴다는 듯이 이 세상의 도견우에게 손을 내민다.
“내 밑으로 들어와라, 아해야. 내 발끝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라. 그러면 살려 주겠다. 어디 살려만 줄 뿐일까? 네게 세계의 일부를 떼어 주겠다. 그 세계에서 넌 신과 같은 존재로서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죽은 아해들을 되살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너는 그 세계에서 그들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자, 어떠…!”
…냐.
타천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이 세상의 도견우가 부지불식간에 지면을 박차고 달려든 탓이다.
반사적으로 그의 공격을 막은 타천은 입가를 길게 찢었다.
“그래, 이것이 네 대답인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구나. 그렇다면 너 역시 죽어라.”
타천이 살벌한 기운을 풍기는 마법을 전개한다.
빛과 폭발로 이루어진 화마가 이 세상의 도견우를 덮친다.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 * *
“견우야! 도견우!”
“아….”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연하늘이 다급히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연신 눈을 깜빡였다.
시야에 내 두 손을 붙잡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그녀가 들어왔다.
주위에 있던 친구들도 모두 비슷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정신이 들어? 괜찮아? 아까부터 불러도 아무 반응도 없길래 다들 걱정했어.”
“맞아. 처음에는 신장을 구경하는 줄 알았는데, 상태가 좀 이상하더라고. 꼭 의식이 다른 데로 간 사람처럼….”
“어쩌면 워프 게이트로 인한 후유증일 수도 있어요. 오늘처럼 국가 간 이동은 처음이잖아요. 저도 학원도시에 처음 갈 때 비슷한 증상을 느꼈는데…. 아무래도 견우는 오늘 무리하지 말고 푹 쉬는 게 좋겠어요. 오늘 일정도 간소화하고요.”
연하늘, 강한별, 리사를 비롯한 사람들이 내 상태를 살핀다.
나는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그들의 걱정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최대한 씩씩한 티를 냈다.
“미안, 리사 말대로 잠깐 게이트 멀미라도 났었나 봐.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 한 번 겪고 나서 싹 가신 것 같은걸?”
“정말이지, 괜찮은 거? 힘들면 숙소로 돌아가서 쉬어. 나도 같이 따라갈 테니까.”
“맞아요, 견우. 오늘은 편히 숙소에서 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여행은 내일부터 다니고요.”
“아니야, 그러지 않아도 돼. 내 몸은 내가 더 잘 아니까. 지금은 이상도 없잖아?”
“….”
연하늘과 리사, 친구들을 달랜다.
그제야 그들은 마지못해하면서도 더는 강요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꼭 말해 줘야 해, 알았지?”
“알았어. 그러니까 얼굴 풀어.”
나는 연하늘의 불안을 쓸어내리듯 그녀의 팔을 쓰다듬었다.
차츰 그녀가 얼굴을 누그러뜨렸다.
‘하늘이가 많이 놀란 듯한데, 나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야.’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한편으로 생각은 조금 전에 본, 폐허가 된 하트랜드로 빠졌다.
‘그 세상은 뭐였던 거지?’
굉장히 기묘하게도.
내게는 직접 겪기라도 한 듯 실감이 들던 세상이었다.
무엇보다 친구들을 잃었음에도 굴하지 않고 타천에 대적하던 도견우의 심정이 전해질 정도로.
‘그냥 감정 이입이 아니야. 내가 그 세상의 도견우라도 된 것처럼 아직도 감정이 선명해….’
친구들을 잃은 슬픔과 자책, 자신에 대한 한심함과 후회, 타천에 대한 분노와 증오 등.
나는 지금도 기억을 돌이키다 그 세상의 도견우가 품은 애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궁금했다.
‘신장은 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 세상을 보여 준 거지?’
친구들과 함께 신당을 나서며 슬쩍 신장 – 엔들리스 플래티나를 뒤돌아본다.
조금 전에 내게 빛을 번쩍인 신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상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상해.’
강한별을 본뜬 존재도 그렇고, 배드 엔딩과 관련 있는 듯한 붉은 눈도 그렇고.
또한 이번에 신장이 보여 준 폐허가 된 하트랜드도 그렇고.
게임에서는 언급된 적 없던, 내 행보에 개입하려는 듯한 요소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이쯤 되니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단순 우연이라 치부하며 깊이 파고들지 않으려 했건만.
혹시….
‘내 환생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목적이라도 있는 건가?’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 왔듯,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이다.
시원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 나는 신장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 * *
신당을 나선 나와 친구들은 마저 세계수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를 감상했다.
‘슬슬 이때쯤일 텐데….’
게임의 전개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에피소드가 발생할 시기다.
나는 전망을 즐기는 척, 하늘을 주시했다.
아직 공략되지 않은 게이트가 군데군데 떠 있는 하늘은 화창한 날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시작됐다.’
점점 하늘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대기 마나가 의식하지 않아도 눈에 보일 정도로 가시화됐다.
부지불식간이었다.
사람들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푸른 마나가 제도를 뒤덮은 상황에 경악을 금하지 못했다.
“아무 징조도 없었잖아. 그런데 갑자기 왜….”
“마나 흐름이 비상식적이야. 자칫 이대로 가다가는….”
“….”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다.
사람들이 흘리는 목소리에는 불안이 깃들어 있었다.
세상이 진동한 것은 그때였다.
쿵!
“….”
흐린 하늘이 크게 흔들렸다.
마나가 편재하기 시작한 허공에 크게 금이 간 것이다.
균열이었다.
어느새 제도의 하늘 곳곳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직후.
쩌적!
가장 크고, 가장 먼저 발생한 균열에서 하늘이 조각처럼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조각이 떨어져 나간 공간에서는 거대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
제도의 건물에 육박하는 몬스터.
나는 놈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5랭크, 리비드 에퀼리어스(livid Equuleus).
허무 공간에서 붉은 안광을 발한 놈이 세상으로 얼굴을 내뺐다.
다시 세상이 운 것은 그때였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훨씬 컸다.
부르르, 쾅!
그 순간, 균열이 인 하늘 조각이 와장창 깨져 나갔다.
놈이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허무 공간에서 발을 찬 것이다.
그렇게 완전히 출몰하고 말았다.
직후.
────!!!!
말을 연상케 하는 머리를 한 갑옷 거인이 괴성을 질렀다.
그 순간, 마치 놈에게 호응하듯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균열에서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아무런 전조 없이 일어나는, 돌발적인 몬스터 웨이브였다.
공습경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이 예시카의 안내에 따라 다급히 피신하기 시작했다.
“여러분도 얼른 이리로 오세요!”
예시카가 우리를 불렀다.
우리도 얼른 피하기로 했다.
몬스터 군단의 습격을 받는 제도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리사가 중얼거린 것은 그때였다.
“…지켜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엘레나 님한테 면목이 없어요.”
포켓에서 디바이스를 꺼낸 리사가 시동어를 읊조린다.
이윽고 석장을 손에 쥔 그녀가 우리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저 사람들을 따라 근처 방공호로 대피하도록 해요. 저는 이 나라의 황녀로서 사태를 수습하도록 할게요.”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리사. 너도 애들을 데리고 피하도록 해라. 수습은 내가 맡을 테니까.”
“아니요, 오라버니. 저는 황녀예요. 황족인 제가 제도 한복판에 발생한 웨이브를 모른 척하고 몸을 숨길 수는 없어요. 게다가 엘레나 님이 목숨을 바쳐 지킨 제도인걸요.”
“몸을 숨기란 소리가 아니다. 대피소에서 불안에 떨고 있을 제국민들을 다독이고 있으란 거지. 그것 또한 황족으로서의 역할이다. 그리고 네 친구들인데, 네가 책임지고 대피를 도와야지.”
“하지만 오라버니….”
리사가 사태 수습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게임의 전개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등장하지 않던 미하일 형이 리사를 걱정해 실랑이를 벌이는 것만 빼면.’
자칫 미하일이 리사의 뜻을 꺾어, 전개에 변화를 줄 여지가 있었다.
그랬다가는 사태 수습에 실패해서 배드 엔딩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심지어 그레이스 제국을 시작으로, 세상이 몬스터 군락지로 전락해 멸망하는 엔딩으로.
나는 최악의 경우를 막기 위해서라도 두 사람을 중재하기로 했다.
“지금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