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264)
(264)
1년 후배
1월 말.
겨울방학이 한 달 남은 가운데, 나와 연하늘은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나는 소혜율의 의뢰에 따라 시간의 사원을 공략하기 위해서였고.
연하늘은 학생회 임원으로서 입학시험을 보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잘 잤어? 그리고 여기 핫팩. 날씨 추운 것 같아서 미리 따뜻하게 데워 놨어.”
“…고마워, 잘 쓸게. 안 그래도 많이 쌀쌀하다 생각하고 있었거든. 너는 잘 잤어?”
입학시험이 시작되는 이튿날.
해가 뜨지 않은 꼭두새벽부터 기숙사를 나선 나와 연하늘은 교학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는 목적지가 같은 듯한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주머니 속에서 손을 잡은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작년 생각난다. 너랑 나랑 흑색 수험표 만드느라 고생했잖아. 그렇게 해서 수험장을 알아내서 문을 여는 시험을 보고….”
“그러게. 그때 너랑 호텔에서 일주일 동안 지냈었잖아. 그립네.”
“으으… 그건 잊어….”
“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인데? 너는 아니야?”
“…아니. 나한테도 기억에 남을 추억이기는 해. 그런데, 음….”
“그런데?”
“그때 그렇게 될 줄 알았으면 예쁜 옷들로 챙… 아니야. 이 대화는 여기에서 끝내자.”
“갑자기 뭐야? 수상하게….”
크흠 하고 헛기침한 연하늘이 일방적으로 화제를 끊는다.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린 나는 별수 없이 다른 화제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러다 우리는 교학관에 도착했다.
“나는 이제 들어가 보도록 할게. 새벽에 일어나느라 피곤했을 텐데, 배웅하러 와 줘서 고마워. 기숙사로 돌아가면 마저 자도록 해.”
입구 현관을 등지고 선 연하늘이 내게 감사를 표한다.
부드럽게 짓는 미소가 예쁘다.
피로가 싹 날아가는 기분을 느낀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내 소꿉친구가 캄캄한 시간에 혼자 밖에 나간다는데 당연히 따라가 줘야지. 하늘이 너야말로 피곤할 텐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일하도록 해.”
“킥, 그럴게. 잘 가.”
“고생하고. 이따 끝날 때 연락해. 마중 나갈 테니까.”
“응!”
이후, 누가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아 상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느냐로 실랑이를 벌인 끝에.
연하늘에게 지고 만 나는 먼저 등을 돌려야 했다.
‘하늘이가 안에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싶었는데.’
슬쩍 뒤를 돌아본다.
연하늘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얼른 가!”
붉은 눈에 힘을 주는 연하늘.
그래, 그래, 알았다.
그녀에게 혼이 나고 싶지 않은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돌려야 했다.
다음에는 꼭 이겨야겠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하지?’
나는 왔던 길을 돌아가며 고민했다.
처음에는 마저 잠을 잘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조금 전, 연하늘의 미소로 인해 잠기운이 가신 탓이다.
찬바람을 쐐서 잠이 깨기도 했고.
더군다나….
‘이대로 돌아가기도 영 섭섭한데….’
안 되겠다.
한 달 만에 아카데미를 찾은 겸, 부지를 둘러보러 산책이나 해야겠다.
도중에 근처 편의점에 들러서 신상품이 나왔는지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러고 나서 기숙사로 돌아가면 아침 먹기 적당한 시간이 돼 있겠지. 잠은 그 후에 자야겠다. 응, 그게 좋겠어.’
포만감을 만끽하며 잠을 잔다.
살이 찌고, 건강에 좋지는 않겠지만 가끔은 무슨 상관인가 싶다.
‘방학에는 그래도 돼.’
완벽한 계획이다.
마침 앞으로 해야 할 일로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있었다.
며칠 후로 예정된 시간의 사원 공략이나, 2학년 때 일어날 에피소드나.
‘아니면 올해 1학년으로 입학할 한별이의 파티원들에 대해서나….’
결정을 내린 나는 방향을 틀어 부지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이윽고 하늘이 차츰 밝아질 때쯤.
‘…수험생들인가 보네.’
나는 입학시험을 치르러 온 듯한 학생들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후배가 될지도 모르는 그들을 보는 나로서는 기분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 죄송한데 혹시 교학관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
마치 푸른 나비를 연상케 하듯, 리본으로 옆머리를 뒤로 묶은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인 여학생.
잠영(潛影) 유가의 밤나비, 유가을.
그녀는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로, 강한별이 2학년 때 영입하는 파티원이었다.
‘설마 얘를 여기서 볼 줄이야….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길 잘했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다.
유가을과 친분을 맺어야겠다.
* * *
게임의 스토리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강한별의 파티에 들어오는 1년 후배는 두 명.
그중 1명인 잠영 유가의 밤나비, 유가을은 첩보 계통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게임에서는 전공을 살려 전개에 필요하거나, 이벤트와 관련된 정보를 구해 오고는 했다.
‘어찌 보면 은비랑 역할이 겹쳤지.’
다만 고은비와 유가을의 역할에 차이가 없지는 않았다.
고은비의 정보 수집 능력이 주로 아카데미 생활에서 발생하는 흥미성 위주 뉴스에 집중됐다면.
유가을의 정보 수집 능력은 주로 헌터와 빌런 사회에 연관된 정세에 집중됐다.
이를테면 학원도시 어딘가에서 빌런들이 무언가 음모를 꾸미는 정황이 포착됐다든가 하는….
덕분에 플레이어는 그들을 통해 가볍고 무거운 사건들을 두루두루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니 게임에서 유가을의 등장으로 은비 비중이 줄어들지는 않았는데…. 줄어든 쪽은 오히려 가뜩이나 비중이 공기화되던 사군이였지.’
박사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초반에야 플레이어나 강한별이 세계관에 적응할 수 있도록 그의 역할이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어느 정도 적응한 후에는 굳이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곧잘 명가와 마인회에 얽혔기 때문이기도 했다.
명가 태생이 아닌 그와는 거의 인연이 없는.
‘더군다나 가디언 계통 포지션은 철옹 권가의 보람 선배가 차지하고 있기도 했으니….’
강한별의 동료로 취급되는 만큼, 박사군의 자질은 괜찮은 편이었다.
문제는 권보람이나 용해랑, 스토리 전개와 별개로 얻을 수 있는 서브 캐릭터들 등.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이들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질 만한 특색이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게임에서 사군이 비중은 플레이어들의 취향을 탔다고 할까….’
이왕 말이 나온 겸 솔직해지자면….
사실, 전생에서 나는 박사군보다 권보람과 용해랑을 더 선호했었다.
‘사군아, 미안. 그래도 이 세상에서는 내가 나름 신경 써 주고 있잖아. 하늘이보다는 아니지만.’
박사군에게는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우리는 영원한 친구다.
한편, 화제를 잠영 유가로 돌아와서.
게임을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의문이 들 법도 하리라.
아무리 게임이라 해도 그렇지, 어떻게 일개 아카데미 학생에 지나지 않는 유가을이 웬만해서는 알기 힘든 사정을 알 수 있느냐고.
이유는 그녀가 첩보 계통에서 우수한 자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잠영 유가의 사람이니까.’
잠길 잠(潛)에, 그림자 영(影).
그림자를 감춘다는 의미의 가호(家號)를 내건 잠영 유가는 첩보 계통에서 제일가는 명가였다.
어디 그뿐일까.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았을 뿐, 비공식적으로는 십가문과 동격으로 대우되고 있었다.
오죽하면 잠영 유가를 포함해서 십가문이 아닌 십일가문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실제로 십가문의 가주들이 모여 세상을 새롭게 개편하기로 했을 때, 잠영 유가의 가주 또한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니까 십일가문이라 칭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야. 그만큼 첩보 계통이 주요 10개 계통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고….’
다만 비밀리에 활동해야 하는 첩보 계통의 특성상, 공개적으로 존재를 드러낼 수 없는 법이다.
그로 인해 잠영 유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첩보 명가들은 음지에서 세상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들을 존중했다.
또한 두려워했다.
자칫 자신의 정보가 그들을 통해 적에게 넘어갈 수 있는 위험도 염두에 두어야 했으니까.
여하간.
‘파티로 영입할 첩보 계통 중에서 유가을만 한 인물은 없어. 얘랑은 친해져야 해.’
나는 유가을의 호감을 사기 위해 친절히 길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상념에서 깬 나는 입을 열었다.
“교학관 말이지? 교학관이라면 저쪽으로 쭉 가면 돼. 중간에 갈림길이 나오면 거기서….”
“아, 그런가요? 저쪽으로 쭉 가서 왼쪽으로 틀어야 하는구나…. 거기서 또….”
“복잡하지? 부지가 워낙 넓거든. 그래도 모를 때는 근처에 있는 표지판을 찾아 보면 될 거야.”
“아… 제가 지도 보는 건 영 서툴러서요…. 혹시 괜찮으면 직접 안내해 주실 수 없을까요?”
“….”
“잘못해서 길을 잃으면 큰일이잖아요.”
미안하다는 듯이 손을 모으며 내게 부탁하는 유가을.
나는 내심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첩보 계통이 지도를 못 본다고? 말도 안 돼….’
나로서는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길만 알려 주고 이대로 헤어지는 것보다는 조금 더 유가을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데려다줄게. 따라와.”
“네! 감사합니다!”
유가을의 얼굴이 환히 밝아진다.
손뼉을 치며 기뻐하는 그녀로부터 등을 돌린 나는 교학관으로 앞장을 섰다.
그녀는 내 곁을 졸졸 쫓아왔다.
“입학시험 치러 가는 거지?”
“맞아요. 이번에 첩보 계통으로 지원했어요. 선배님은 몇 학년인가요?”
“나는 1학년.”
“와아, 한 학년 선배인 거네요?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요.”
우리는 두런두런 대화하며 걸었다.
유가을의 사교성이 좋았던 덕에, 화제가 뚝 끊기고 어색해지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덧 교학관에 다다랐다.
“저기가 교학관이야. 그럼 이제 나는 가 보도록 할게. 시험 잘 보고. 다음에 입학하고 만나면 밥이나 먹자.”
“네, 선배님! 여기까지 데려다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밥 먹는 거 좋아요. 그런데 그때는 선배님이 사 주시는 거겠죠?”
“그래, 먹고 싶은 거로 사 줄게.”
유가을의 번호라도 물을까 싶지만 단념한다.
괜히 그녀의 경계를 살 수도 있을뿐더러, 어차피 다시 만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적당한 선을 유지한 나는 그녀와 작별 인사를 주고받는 대로 교학관을 떠났다.
뒤에서 그녀가 나를 부른 것은 그러던 중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도견우 선배! 다음에 만나요! 맛있는 거 기대할게요!”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유가을이 크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녀가 홱 몸을 돌려 교학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게임에서처럼 서글서글하네. 은비랑 닮았어. 인싸는 다 그런가?”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깨달았다.
‘내가 이름을 말한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돌이켜 보니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는 통성명을 교환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유가을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뜻은….
‘처음부터 나에 대해서 알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거구나. 어쩐지….’
내가 그랬듯, 유가을 역시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있던 것이다.
나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게임에서처럼 교묘하게 짓궂은 기질이 있어. 은비랑 다르게.”
그래서 전생에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유가을을 소악마로 표현하기도 했다.
* * *
1차 실기 시험 시간이 됐다.
시험을 감독하는 교관인 수호국은 수험생들에게 말했다.
“시험 내용은 간단하다. 보다시피 수험장 바닥에는 영역을 나누는 선이 그어져 있다. 영역은 너희가 서 있는 곳부터 강단 앞까지 총 7개.”
“….”
“너희는 정해진 시간 안에 최소 2개 이상의 영역을 걸어서 건너면 된다.”
물론, 단순히 걷기만 하면 되는 시험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자신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학생들에게 말을 덧붙인 수호국은 입가를 끌어 올렸다.
“각 영역에는 척력이 작용하는 마법이 걸려 있다. 만약 너희가 영역을 지나려 발을 들인다면, 마법은 문 쪽으로 밀어내려 할 것이다. 강단에 가까워질수록 더 강하게.”
따라서 수험생은 척력에 대응해 영역을 나아가야 했다.
이때, 체내 마나는 발현하되, 마법은 사용하지 않는 조건에서 자유롭게 대응할 수 있다.
그렇게 설명을 끝낸 수호국은 큰소리로 외쳤다.
“그럼 지금부터 시험을 시작하겠다! 1번 그룹은 앞으로 나오도록!”
첫 번째 순서가 된 수험생들이 밟고 있던 선을 넘었다.
이어서 제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차례로 수험생들이 시험에 임했다.
‘현재로서는 6번 영역에 도달한 수험생들이 최고 성적인 건가.’
보조관을 맡은 연하늘의 역할은 수험생들의 성적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그때.
‘저 애는….’
이번 시험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모든 영역을 통과한 수험생이 나왔다.
연하늘은 자연히 그 상대에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예쁜 애네.’
푸른 리본을 묶고 있는 여학생.
수험 번호를 살핀 연하늘은 이내 그녀의 실력을 납득할 수 있었다.
‘저 애가 잠영 유가의 직계구나.’
잠영 유가의 밤나비, 유가을.
학생회에서 입학시험에 지원한 수험생 중 눈여겨보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녀에 이어 두 번째로, 지금 막 모든 영역을 건넌 수험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진녹색 머리라면….’
단정하게 머리를 묶어 올린, 레인저 차림의 여학생.
연하늘은 굳이 수험 번호를 통해 그녀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지 않아도,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십가문 중 하나에 속하는 탄궁 함가의 직계.
늑대 공주, 함민주.
“쟤네는 무조건 합격하겠네.”
그리고 어쩐지 교류하게 될 것 같다.
연하늘은 묘한 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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