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284)
(284)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자칫 멸망 엔딩의 여지가 있는 에피소드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번번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검은 벼락이나 붉은 눈은 멸망과 관련된 게 아닐까 싶다.
‘조금이라도 계기가 주어지면 어떻게든 멸망으로 이끌려 하는, 무언가 강제력 같은 건가?’
어디까지나 추론에 불과하다지만, 나름 신빙성 있는 가설이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뜬금없거나,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 사유로 세상이 멸망으로 치달은 것도 설명할 수 있겠다.
‘전생에서는 그냥 게임이겠거니 단순하게 여기고 넘겼었는데….’
이런 개복치 같은 세상이라고.
속으로 투덜거린 나는 생각을 환기하기로 했다.
넋두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몬스터로 거듭나 버린 센터장을 상대하는 게 먼저였다.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상실하고, 더는 인간이 아니게 된 그는 이제 척결해야 할 대상이었다.
체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키아아악!
적의 어린 시선을 감추지 않고 우리를 노려보던 센터장이 날아오른다.
세 쌍의 하얀 날개를 퍼덕인 그가 구멍 뚫린 천장을 지나, 밤하늘을 등에 진다.
나는 리사를 불렀다.
“리사.”
“알겠어요.”
구태여 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눈치 좋게 의도를 파악한 리사가 아공간을 만든다.
전투 무대를 바꾼다.
아공간을 통해 지상으로 이동한 우리는 전투 자세를 취하며 밤하늘을 주시했다.
그때, 센터장이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올렸다.
────!!
우리를 표적으로 지정한 듯한 마법진들이 밤하늘에 떠오른다.
센터장이, 놈이 손을 내리자 포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린아, 해석할 수 있겠어?”
“흥, 이 정도는 껌이지.”
“리사, 방어는….”
“네, 저한테 맡기세요.”
“견우견우! 나도 거들게!”
포격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내 지시를 받은 민아린, 리사가 곧장 대응에 나섰다.
[기프트: 현자의 눈>노란 눈을 반짝인 민아린이 기프트를 발현해서는 순식간에 포격의 술식을 해석하고, 간섭한다.
그 결과, 포격은 기세를 잃고 지면에 닿기 전에 사라지거나, 빗겨 떨어지고는 했다.
그러다 미처 손을 쓰지 못한 포격의 경우에는.
화아악!
리사와 성다솜이 막아 냈다.
두 사람이 보호 마법을 펼쳐 돔 형태의 방벽을 만든 것이다.
게다가 남유리가 연금술을 써서 대신 포격을 맞아 줄 돌탑들을 세우기도 했다.
‘우리 실력으로 대응하기에 문제는 없겠어. 그렇다고 해도 공중전은 영 성가신데….’
조금 더 편하게 공략하기 위해.
놈을 지상으로 끌어 내려야겠다.
판단을 내린 나는 입을 열었다.
“하늘아, 은솔이랑 힘을 합쳐서 저놈을 떨어뜨릴 수는….”
“….”
어째 연하늘의 상태가 이상했다.
골똘히 생각에라도 잠긴 듯이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멍하니 놈을 올려다보는 그녀에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얘가 왜 이러지?’
별안간 연하늘이 걸음을 내디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무방비한 상태나 다름없는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다.
“너 지금 뭘 하려는….”
“괜찮아, 나한테 맡겨.”
“….”
연하늘의 확신에 찬 어조에.
나는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그래, 믿자. 불안하기는 해도 내 소꿉친구인데 믿어야지.’
다만 언제든 연하늘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나는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고 계속 그녀를 주시하기로 했다.
* * *
천사든, 악마든.
그들의 마법이 인간의 마법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바로 날개의 유무 때문이다.
날개는 신체 일부로서 자연히 마나 회로의 확장으로 이어지며, 나아가 날개를 기반으로 삼아 가상의 마나 회로를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인간과 달리 날개를 지닌 그들은 마법을 다루는 것에 있어 보다 우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인인 나는?’
인간이되, 마나의 영향을 받아서 동물 귀와 꼬리를 품고 태어난 아인은 어떠할 것인가.
천사와 악마를 참고해, 어쩌면 그들 역시 귀와 꼬리를 통해 마나 회로를 확장할 뿐만 아니라 가상의 마나 회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꼬리는 짧아서 안 되겠지만, 귀라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른다.
처음 날개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연하늘은 문득 그런 발상을 떠올렸다.
그리고 발상은 머릿속을 차지해, 그녀를 탐구심에 빠뜨렸다.
작전을 수행하던 지금까지 내내.
덕분에 그녀는 몬스터로 변모한 센터장의 마법을 눈에 담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대단해. 날개를 이용해서 어떻게 가상의 회로를 만드나 싶었는데, 저런 식으로 날개 끝에서 회로를 연결해 나가는 거구나. 날개 모양대로 촘촘히….’
연하늘은 토끼 귀를 쫑긋했다.
지금 이 순간, 어쩐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하여.
“괜찮아, 나한테 맡겨.”
깨달음의 경지를 눈앞에 두고.
알 수 없는 확신에 찬 연하늘은 토끼 귀에 의식을 집중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자신의 귀에도 마나 회로가 있다.
그동안 인식하고 있지 않다가 처음으로 그것을 인식한 연하늘은 뿌듯한 심정이었다.
이어서.
‘내 귀를 골자로, 날개 모양으로 가상의 회로를 구현하는 거야.’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히.
연하늘은 체내 마나를 발현해, 가상의 마나 회로를 만들어 나갔다.
[버추얼 서킷(Virtual Circuit): 버니 윙스(Bunny Wings)>그 과정에서, 벽을 넘는다.
연하늘의 심장에 자리 잡은 4개의 고리에 새로이 다섯 번째 고리가 걸린다.
[육신이 한계를 돌파했습니다.] [마력이 1 상승했습니다.] [스킬을 얻었습니다.] [5계위 마법 마스터리 Lv 1] [5계위 어둠의 원소 마법….]* * *
광명 성가가 후원하는 보육원에서 비인도적인 인체 실험을 벌인 정황이 포착됐다고 한다.
특수 영재 교육 센터 지하에서 아이들이 감금돼 있었다는 모양이다.
등에 날개가 돋아 있는 채로.
“날개 프로젝트인가. 아직도 그 비원에 매달리고 있었다니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마인회의 수장, 타천.
한때는 광명 성가의 사람이었던 그가 날개 프로젝트에 대해 모를 리 없었다.
첩보를 입수한 그는 어렵지 않게 사정을 파악하고, 혀를 찼다.
“존재의 그릇은 정해져 있건만…. 돼지가 살을 빼도 돼지이듯,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들, 결국 인간을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 봤자 유사 천사나 될까. 진짜 천사에 비해서는 열등한.”
날개 프로젝트를 통한 한계는 아주 명확했다.
인간 중에서는 우수해질지 몰라도, 존재의 격을 따지면 여전히 변함없기만 했다.
그래서 타천은 가문에 실망하고, 자신만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신을 노리는 내게는 무용하다. 그러나… 궁금하기는 하구나.”
추가로 들어온 첩보에 따르면.
보육원 시설에서 폭발이 발생하고, 상공에 천사를 연상케 하는 몬스터가 출몰했다고 한다.
사태가 이 지경으로 알려진 이상, 날개 프로젝트는 실패로 마침표를 찍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광명 성가의 몰락은 확정됐다.
“우향이가 많이 슬프겠구나.”
끌끌.
불구경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타천은 몸소 사태를 구경하고자 공간 이동을 단행했다.
기척을 감추고 밤하늘에 부유한 그는 현장을 둘러보았다.
“쯧, 날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고작 저거라니…. 저래서는 유사 천사라 부를 수도 없겠군.”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여흥은 되겠다.
마침 자리에는 눈여겨보고 있던 학생들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기도 했다.
“또 저 아이들인가…. 신기하구나. 어떻게 알고 이 현장에 뛰어들었을꼬….”
타천은 학생들의 실력이나 엿보기로 했다.
그러던 그때, 한 학생이 눈길을 끌었다.
“호오.”
토끼 귀와 꼬리를 지닌 여학생.
버니, 연하늘로 추정되는 그녀가 자신의 귀를 골자로 삼아 거대한 날개를 만들고 있었다.
타천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래…. 천사에게 날개가 있다면, 아인에게는 귀와 꼬리가 있었지…. 설마 그것을 이용해서 가상의 날개를 만든다는 발상을 떠올릴 줄이야. 대단하구나.”
얄궂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광명 성가의 노력을 부정하는, 날개 프로젝트의 취지에 걸맞은 존재가 바로 저기 있었으니까.
머리 위로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친 연하늘.
밤하늘 아래로 그녀를 내려다보는 타천은 여러 감정이 섞인 웃음을 흘렸다.
“그렇다고 해도 이론과 달리 실현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그만큼 솜씨가 좋다는 뜻이겠구나. 그리고….”
저 아해가 베이스로 삼은 몬스터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가령, 마법이나 비행에 특화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거나.
타천은 추측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 나라에서는 토끼의 귀를 날개로 여기고, 토끼를 새로 취급한다고 했던가. 저렇게 보면 그럴 만도 하군.”
정말이지.
신검 도가의 아해도 그렇고, 저 아해도 그렇고.
다른 아해들도 그렇고.
“다들 탐이 나는구나.”
타천은 입가를 길게 찢었다.
* * *
토끼 귀가 거대한 날개가 됐다.
나와 친구들은 연하늘의 변화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날개 프로젝트로부터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저러면 머리가 무겁지 않나….’
뜬금없는 걱정을 뒤로하며.
나는 연하늘의 상태를 살피러 시야에 메시지를 띄웠다.
‘버추얼 서킷? 버니 윙스? 이게 무슨 스킬이지? 게임에는 없던 스킬인데…. 아니, 그것보다… 5계위가 됐어.’
마법에 정통했다는 평가를 받는 경지가 바로 5계위다.
연하늘은 4계위에 오른 지 불과 1년 만에 그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현재 하늘이 성장 추세로는 내년에나 오를 줄 알았는데…. 그것도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더 빨리 달성할 줄이야….’
내 소꿉친구지만 굉장하다.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연하늘의 성장을 확인한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때, 그녀가 마법을 펼쳤다.
[그라비티 그라운드(Gravity Ground)>지정된 범위에 존재하는 대상을 중력으로 찍어 누르는, 5계위 어둠의 원소 마법.
그런데 연하늘이 발동한 마법은 일반적인 5계위 수준을 넘어 강력한 효과를 자랑했다.
게임에 비해서는 약할지 몰라도, 에피소드 보스나 되는 놈을 밤하늘에서 끌어 내린 것이다.
키아아악!
제대로 저항할 새도 없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추락한 놈이 대자로 뻗은 상태 그대로 지면에 짓눌린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소용없었다.
그럴수록 중력은 더욱 강하게 놈을 처박으려고 했다.
‘…터지지 않는 게 용하네.’
흡사 날벌레를 뭉개는 광경을 보는 기분이다.
그 정도로 땅바닥에서 발버둥 치는 놈에게서는 에피소드 보스다운 위엄이 느껴지지 않았다.
연하늘이 뒤돌아본 것은 그때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환히 미소를 지었다.
“말한 대로 했어. 이거면 될까? 아니면 더 해?”
“…아니야, 잘했어.”
별로 어려울 것도 없다는 듯.
거대한 날개의 뼈대 역할을 하는 토끼 귀를 쫑긋거리는 연하늘.
그러자 날개도 퍼덕거렸다.
‘아니, 파닥거리는 건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날개도 귀여웠고, 연하늘도 귀여웠다.
칭찬해 달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신발 뒤꿈치로 지면을 비비는 천연덕스러운 모습도.
키아아악!
‘쟤 웃는 것 봐. 예쁘네….’
중력이 더 세지기라도 한 걸까?
땅속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던 놈이 조금 전보다 더 거슬리게 비명을 질렀다.
귀가 따가웠다.
한창 연하늘을 감상하던 중에 방해를 받은 나는 미간을 모았다.
놈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시끄럽게 울어 대기나 하고…. 얼른 죽여 달라는 건가?”
키이익….
땅바닥에 얼굴을 맞대고 있던 놈이 나를 올려다본다.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실려 있었다.
나는 놈의 등을 짓밟았다.
“덕분에 쉽게 쉽게 가겠네. 하늘아, 얼마나 붙잡아 둘 수 있어?”
“음… 그냥 계속?”
“정말? 좋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완벽을 기해, 하늘로 날아 도망치지 못하게 날개부터 뽑고 시작할까.”
“듣기 좋은 소리네요. 안 그래도 저도 저 날개가 볼썽사납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아, 물론 하늘 후배 날개를 두고 하는 소리는 아니에요. 아주 예쁘네요.”
“견우견우! 날개 뽑을 거라면 나도 같이 뽑아도 될까!? 내가 이런 건 잘해! 엄청 자신 있다!?”
나, 연하늘, 성다솜, 남유리, 은수혁, 강한별, 리사, 박사군, 고은비, 민아린, 차은솔, 유가을, 함민주, 오준식.
14:1이다.
놈을 둘러싼 채로 내려다보는 우리는 모두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렇게 될 거였으면 나는 따라올 필요가 없었던 거 아니냐.”
“그러게…. 그래도 감사의 의미로 날개를 뽑을 권리는 줄게.”
“견우야, 잘하면 날개를 재료로 아티펙트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놈이 소멸하고 난 후에도 남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게 나, 오준식, 강한별, 남유리, 성다솜, 은수혁이 한 장씩 놈의 날개를 뜯어낸 후.
우리는 손에 쥐고 있던 무기로 계속 놈을 찔러 댔다.
놈이 소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