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287)
(287)
그랜드 랭킹전
세계수 아래에서 고백한 날을 1일로 삼기로 하고.
연하늘과 사귀기로 했다.
‘내가? 하늘이랑?’
두 번 강조하건대.
연하늘과 사귀기로 했다.
꿈도, 거짓도, 착각도 아니다.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하늘이가 이제 소꿉친구가 아니라니…. 내 여자친구라니….’
우습게도.
내가 먼저 고백한 것이건만, 처음에는 새로 정립한 관계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얼떨떨하고, 낯설기만 했다.
대관절 연인 사이는 평소에 어떻게 지내면 되는 거지?
연애는 어떻게 하는 거지?
내내 고민이 떠나지 않았다.
오죽하면 너무 의식한 탓에.
―안녕…. …잘 잤어?
―응…. …너는?
―나도 잘 잤지, 뭐….
―그렇구나….
―….
나는 한동안 연하늘을 대할 때 어색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해 쑥스러워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시선을 피해 간질거리는 심정으로 그녀를 쫓고, 온종일 그녀를 떠올렸다.
하루하루가 설렜다.
사정은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은 그런 우리를 두고 학을 떼듯 혀를 내둘렀더랬다.
―아니, 이제 와서 그런다고? 하하…. 당황스럽네.
―너희하고 1년을 알고 지내며 어느 정도 적응된다 싶었더니, 알고 보니 산 넘어 산이었군. 설마 더 있었을 줄이야…. 너희 때문에 주화입마에 빠지겠다.
―이런 말 하기는 싫었지만, 진짜…. 극혐이네요.
―악! 악! 악! 내 눈! 마이 아이즈! 눈꼴셔! 못 보겠어! 하늘이랑 연애라니 부러워 죽겠어! 근데 그래서… 둘이 어디까지 나갔어? 했어? 응? 궁금해! 알려 줘!
―얌…. 맛없어.
―견우견우! 하늘하늘! 왜 그렇게 서로 눈치를 보고 있어!? 어색하면 이제 사귀는 사이니까 진도나 팍팍 나가도록 해! 번식….
―유리 선배, 공개적인 장소에서 수위는 지키셔야죠. 민주도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그러니 그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천천히 나누는 게 어떨까요? 네? 그게 좋겠죠? 견우 선배, 하늘 선배. 저도 음담패설 좋아하거든요, 엄청.
강한별, 용해랑, 리사, 고은비, 차은솔, 남유리, 유가을 등.
친구들이나 선후배들, 지인들은 대체로 그렇게 반응하고는 했다.
그로 인해 나와 연하늘은 축하보다 제발 염장을 지르지 말라거나,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냐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차차 시간이 지나며….
우리 두 사람은 새로운 관계를 안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사귀고 보니까 별거 없네.’
연하늘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기준에서는 사귀기 전이나 사귄 후나 큰 차이가 없었다.
아침에 만나 인사하고, 등교하고, 시간이 되면 같이 식사하고, 산책하고, 놀러 다니고….
때로는 스킨십도 즐기고….
단순히 우리의 관계를 정의하던 소꿉친구에서 ‘소꿉’이 빠지고, 내게는 ‘여자’가, 그녀에게는 ‘남자’란 단어가 추가됐을 뿐이다.
물론, 연인 관계로 발전하면서 실감하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예를 들면, 이제는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스킨십을 벌인다거나.
“왜 계속 나만 봐?”
“너 오물거리는 게 보기 좋아서. 이것도 먹어 봐. 맛있을 거야.”
지금처럼 애정을 표현한다거나.
점심시간이었다.
연하늘의 옆자리를 차지한 나는 주위에 친구들이 있든 말든, 흐뭇하게 그녀를 지켜보았다.
손으로는 머리칼을 넘겨 주면서.
그러다 간간이 그녀가 좋아할 법한 음식을 입에 물려 주기도 했다.
“나만 보지 말고, 너도 먹어야지. 이따 수호국 교관님 수업이라 많이 먹어 둬야 한다면서.”
“너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른데? 이것도 먹어. 물 마실래?”
“얘는. 자꾸 이러면 혼낼 거야.”
“정 내가 먹는 걸 보고 싶으면 직접 먹여 주는 게 어때? 나는 입 벌리고 있을게.”
“…이걸 노리고 있었던 거구나?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알았어.”
연하늘이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내 입속으로 집어넣는다.
나는 눈으로는 그녀를 보며, 입으로는 반찬을 우물거렸다.
연하늘의 맛이 났다.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 웃었다.
그러자.
“진짜 가지가지 한다. 나날이 염장 레벨을 갱신하는구만.”
“앞으로는 쟤네랑 따로 먹을까? 쟤네 때문에 밥을 못 먹겠어.”
“안 사귈 때도 짜증 났었는데, 사귀니까 더 짜증 나네. 우웩.”
세쌍둥이가 대뜸 눈살을 찌푸리며 헛구역질하는 시늉을 했다.
다른 친구들도 심정은 비슷한지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쯤에서 그만해야겠네.’
연애에 빠져, 우정에 소홀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히 균형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와 연하늘의 의사는 일치했다.
시선을 교환한 우리는 이후로 눈치껏 애정 행각을 줄였다.
그러던 그때.
“나는 먼저 일어나 볼게.”
대화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끄트머리에 앉아 점심을 먹던 민아린이 의자를 끌며 일어났다.
나로서는 의아하기만 했다.
“왜? 아직 시간 남지 않았어? 다음 수업까지 카페에 가서 마저 시간이나 때우지.”
“먼저 가서 예습이나 하고 있게.”
“그것도 카페에서….”
“너희랑 있으면 떠들고 노느라 제대로 공부도 못 할 거 아니야.”
“….”
여지를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 딱 잘라 대꾸하는 민아린.
그녀는 그대로 우리를 뒤로하고 식당을 나섰다.
나는 떠나가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쟤가 요즘 왜 저러지….’
기분 탓이 아니다.
최근 들어 민아린은 우리에게 쌀쌀맞은 태도를 비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나한테.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있으면 말이라도 해 주지….’
혼자 속으로 꽁해 있다가 그만 멸망 엔딩으로 이어질 뻔한 사달을 낸 민아린이다.
나로서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속앓이를 하는 듯한 그녀가 걱정됐다.
‘저러다 저번처럼 터지기 전에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따라가 볼까.
오해가 있으면 깨끗하게 풀고,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는 게 상책이다.
그렇게 판단한 내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돌연 연하늘이 내 팔을 잡았다.
“가지 마.”
“….”
“그냥 여기 있어. 네가 가면 괜히 더 괴로워할 거야.”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 연하늘.
그녀의 손길에 이끌린 나는 도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리사가 동의하듯 첨언하기도 했다.
“맞아요. 견우는 모르는 척 가만히 있어요. 괜히 아린한테 신경 쓰려 하지 말고요. 안타깝지만 이건 아린 혼자 정리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알았어.”
어느새 분위기가 숙연해진 가운데.
리사가 쓸쓸히 눈꺼풀을 내린다.
주위 친구들의 기색을 살핀 나는 결국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그때, 차은솔이 운을 뗐다.
“아린이는 내가 가서 챙길게. 마침 점심도 다 먹었으니까.”
웬일로 식판에 남은 음식에는 미련을 보이지 않고.
차은솔이 테이블을 짚고 일어선다.
나는 그녀에게 맡기기로 하며, 의문에 잠겼다.
‘왜 나를 피하는 거지….’
혹시, 어쩌면.
불현듯 그동안 자의식이라 여기며 외면하고 있던 생각이 스친다.
* * *
학원도시의 아카데미 학생들이 헌터로서 자웅을 겨루기 위해 해마다 개최되는 그랜드 랭킹전.
중간고사가 끝난 후로, 아카데미에서는 그 대회에 참가할 학생들을 선발하는 중이었다.
선발 조건은 정해진 기한 안에 교내 랭킹 99위 이내로, 즉, 더블 넘버에 진입할 것.
우리 중에서는 나와 연하늘, 강한별, 용해랑, 민아린, 남유리가 조건을 충족했다.
‘어떻게든 그랜드 랭킹전 에피소드에 개입하겠다고, 틈날 때마다 랭킹을 올리느라 힘들었지…. 이사장님과 손을 잡고 나서는 다 부질없어졌지만.’
게임의 전개에 따르면.
이맘때까지 강한별이 더블 넘버를 달성할 경우, 그랜드 랭킹전 에피소드가 개방된다.
대회가 배틀 아레나에서 개최되기에 배틀 아레나 에피소드라고도 불렸다.
아무튼 해당 에피소드에서.
강한별은 다른 아카데미 학생들과 싸울 수 있다는 의욕에 차서 그랜드 랭킹전에 출전한다.
이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부상이 바로….
‘유대의 알이지.’
태어나기 전까지는 무엇이 태어날지 알 수 없으나, 주인의 영혼에 반응해 가장 어울리는 환수가 태어나는 것으로 알려진 유대의 알.
부르는 게 값이라 할 정도로 희소성이 높은 그 알이야말로 이번 에피소드의 핵심 소재였다.
강한별은 게임의 주인공에 걸맞게, 그랜드 랭킹전에 우승해서 그 알을 차지하게 되는데….
멸망 엔딩의 여부를 결정하는 사건은 이때 발생했다.
그가 유대의 알을 얻기 직전, 은밀히 기회를 엿보고 있던 빌런 연합에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그중에는 하필 마인회에 속한 육마도 있었다.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귀축 아씨, 심지은.
철룡, 탁원호.
이번 에피소드 보스로 등장하는 두 마인은 본거지로 귀환하는 워프 마법이 작동하기 전까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하며 시간을 벌기로 한다.
따라서 게임에서 강한별 일행은 제한 시간이 있는 전투에서 그들로부터 승리해야 했다.
만약 패하거나 비겼을 경우에는….
‘유대의 알이 타천에게 넘어가고, 타천의 힘을 대폭 강화하는 환수가 태어나고 말지.’
물론, 그랜드 랭킹전 에피소드가 개방되지 않았을 때도 타천이 유대의 알을 손에 넣기는 한다.
하지만 그때와 이때 태어나는 환수는 각기 달랐다.
그때 태어나는 환수는 원숭이로, 단순히 그를 강화하는 선에서 그치는 수준이라면.
이때 태어나는 환수는 맥(貘)으로, 그의 비원을 앞당겨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어 버린다.
인류가 깨어날 수 없는 악몽에 빠져, 타천에게 마나를 공급하는 신세로 전락함으로써.
‘참고로 맥은 개미핥기처럼 생긴, 환상 속의 동물이라지. 사군이라면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 텐데….’
반대로 승리할 경우.
강한별은 유대의 알을 되찾고, 두 마인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난다.
결과, 향후 마인회와 연관된 에피소드 공략 난이도가 낮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놈들한테 뺏기지 않도록 유대의 알을 사수해야 해.’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능하다면 역습도 가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어서 와요, 견우 학생.”
소혜율의 협력을 구하기 위해 나는 이사장실을 찾았다.
사전에 연락을 받은 그녀는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소식은 들었어요. 요새 연애한다면서요? 그런데 아닌 척하면서 염장을 지르다 이제는 수위를 높여서 대놓고 한다던데…. 드디어 하늘 학생과 사귀면서 들뜬 기분은 알겠지만, 그래도 공공장소에서는 주의하도록 해요. 금강 아카데미의 품위를 떨어뜨려서는 안 되잖아요? 아무튼 사귀게 된 것은 축하해요. 둘이서 예쁘게 지내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충고는 새겨들을게요. 그래서 말인데요. 요즘 연애하기도 좋은 날씨인데, 이참에 우리 통수나 치지 않을래요?”
“네? 통수라뇨? 연애하는 거랑 통수랑 뜬금없이 무슨 상관인지…. 이번에는 또 누구를 치려고….”
내가 난데없이 꺼낸 발언에.
소파에 앉아 다과를 즐기던 소혜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다음 말을 듣고는….
“빌런 연합이요. 특히 육마 둘.”
“….”
“잘하면 대어를 낚을 뿐 아니라, 놈들 세력에 큰 피해를 줄 수도 있어요.”
눈빛을 달리했다.
소혜율이 흥미가 인다는 듯, 짧게 콧소리를 낸다.
커피를 마시고, 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일단 이야기나 들어 보도록 할까요.”
그리하여.
나와 소혜율은 계책을 세웠다.
입가를 길게 찢으면서.
“통쾌하네요. 재미있겠어요.”
“그렇죠?”
* * *
유대의 알이 탐나지 않냐 하면, 탐나지 않을 리 없다.
마음 같아서는 가지고 싶다.
하지만 엄연히 강한별의 기연이다.
다른 부상에는 관심도 없겠다, 친구의 기연을 훔치고 싶지 않던 나는 그랜드 랭킹전에 출전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마찬가지로 출전하지 않는 친구들과 관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문제는 그랜드 랭킹전이 워낙 인기가 많은 행사인 탓에 티켓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인데…. 특히 결승전 티켓은 더더욱.’
사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나와 친구들의 가문을 통해 티켓을 구하면 될 뿐이었으니까.
소혜율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
덕분에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랜드 랭킹전에 참석할 수 있게 됐다.
2주 내내, 출석을 인정받으면서.
‘너무 좋은데? 거의 방학이잖아?’
빌런 연합이 개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마지막 날이니만큼, 그때까지는 놀아도 되는 셈이다.
순순히 그랜드 랭킹전을 즐기고, 출전하는 친구들이나 응원해야겠다.
거대한 돔 형태를 이루는, 학원도시 제24구의 배틀 아레나.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선 우리는 모두 흥겹지 않을 수 없었다.
“개막식까지 시간도 남았겠다, 주위에 뭐가 있는지 둘러볼래? 돌아오면서 간식거리나 사고.”
“응, 나는 좋아.”
“얌얌. 나도 찬성이야.”
그랜드 랭킹전에 출전하는 강한별, 용해랑, 남유리, 민아린은 개막식을 준비해야 하는 관계로 도중에 헤어진 상태였다.
나는 나머지 친구들과 함께 배틀 아레나를 구경하러 나섰다.
휘검 백가의 눈요정, 백지민.
그녀를 만난 것은 그러던 중이었다.
“도오겨어언우우우….”
“어?”
의도적으로 길게 늘어뜨려서는 내 이름을 부르는 백지민.
그녀가 심기가 불편하다는 양, 한쪽 눈을 파들거리고 있었다.
직후, 툭 내쏘았다.
“야, 이 배신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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