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29)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29)
할아버지가 가르침을 주겠다는데 거절할 수 있을 리 없다.
적어도 한 수라도 받아야 했다.
그 결과, 내 대련을 참관하러 온 사람들은 졸지에 할아버지와 대련을 벌이게 됐다.
“큭!”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전법이다! 그러나 목적 없이 도망만 다녀서는 포식자에게 쫓기는 피식자의 꼴밖에 더 되겠느냐.”
“…죄송합니다.”
큰아버지, 둘째 큰아버지는 무난히 할아버지의 검을 받고 물러났다.
다음으로 셋째 큰아버지, 도범준.
도승우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창피를 당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귀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다음!”
이내 셋째 큰아버지가 돌아가고.
큰고모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훈련장으로 걸어 나왔다.
할아버지는 얼굴을 찌푸렸다.
“구두를 신고 싸우겠다는 거냐?”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을까요. 저도 알았더라면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오지는 않았겠죠.”
큰아버지들과 달리.
큰고모는 할아버지를 대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덜 어려워했다.
그래서 그런지 대수롭지 않아 하며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한쪽에 가지런히 모았다.
“저는 신발 없이 상대하는 거니까, 그걸 감안해서 봐주셔야 해요.”
“그럴 일은 없다.”
싹싹하게 구는 큰고모.
할아버지는 코웃음을 치는 한편, 마냥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직후 두 사람의 검이 부딪혔다.
‘…대단하네.’
할아버지가 큰고모에게 어느 정도 너그러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큰고모의 검술은 현란했다.
쾌를 토대로, 환(幻)을 섞어 넣은 검술이 할아버지의 움직임을 봉하듯 몰아붙이고 있었다.
첫째 큰아버지도, 둘째 큰아버지도, 셋째 큰아버지도 저만큼 할아버지를 몰아붙이지는 못했었다.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오빠들을 따라잡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나를 이기기에는 아직 멀었다.”
“…!”
할아버지가 검을 크게 휘둘러서는 큰고모의 검을 올려쳤다.
검을 쥔 큰고모의 손이 솟구치며, 빠르게 이어지던 검술이 끊겼다.
환상이 사라졌다.
할아버지의 검은 그 틈에 움직여, 큰고모의 목 언저리에 닿았다.
“무엇이 부족했는지는 알았겠지.”
“…한 수 배웠네요. 감사합니다.”
대련이 끝났다.
큰고모는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구두를 벗어 놓은 곳으로 이동했다.
“와…. 오빠, 나도 큰고모하고 같은 검술을 배우고 싶어! 너무 예쁘다!”
“그러게. 대단하기는 하더라.”
조금 전만 해도 졸린다고 칭얼대던 예은이가 눈을 빛낼 만도 했다.
나도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큰고모의 검술을 보고 환검에 대해 관심이 생길 정도였다.
‘이제 아빠 차례인가.’
그리고 이윽고.
아버지가 할아버지 앞에 섰다.
“아빠! 힘내라, 힘!”
예은이가 큰소리를 내며 응원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피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챙!
대련이 시작됐다.
아버지가 재빨리 달려들었다.
아버지의 검은 고모의 검과 달리 화려함이 없었지만, 깨끗했다.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고, 상황에 즉각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몇 번 합을 주고받고부터는 할아버지에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끝나는가 싶더니….
‘무슨 대화를 주고받는 거지?’
멀리 떨어져서 들리지 않았지만 아버지와 검을 부딪친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듯했다.
직후, 아버지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치링!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검을 이용해, 그 힘을 반동으로 거리를 벌렸다.
그러고는 할아버지에게 뛰어가며,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치링!
아버지의 행동이 과감해졌다.
찌르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품에 깊이 파고들어, 할아버지가 검을 휘두르지 못하게 밀어붙이기까지 했다.
‘아빠가 왜 저러지?’
조금 전, 할아버지가 건넨 말이 무언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일까.
그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휘익!
아버지의 검이 닿기도 전에 할아버지의 검이 먼저 아버지의 목젖에 닿은 것이다.
“…졌습니다.”
“그래도 실력이 녹슬진 않았구나.”
“매일같이 현장에서 구르고 있는 몸이니까요.”
아버지가 패배를 인정했다.
그제야 할아버지는 검을 거두고, 아버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그 후에 자리로 돌아온 아버지는 영 밝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설마 당신이 사람이 변한 것처럼 매섭게 검을 휘두를 줄은 몰랐어.”
“그걸 이제 알았어? 나도 할 때는 하는 사람이라고.”
“아빠! 제가 이기라고 응원했는데, 지면 어떡해요!?”
“어이구, 우리 딸! 그랬어? 아빠가 져서 미안해. 그리고 응원 고맙다.”
어머니하고 예은이가 말을 걸자, 아버지의 얼굴이 누그러지긴 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물었다.
“가주님이 뭐라고 하신 거예요?”
“어?”
“아까 보니 가주님과 무슨 대화를 나누던 것 같던데, 아빠 움직임이 그때부터 달라져서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니야. 애들은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이야. 마저 대련이나 지켜보자.”
내 머리를 대뜸 헤집으며 아버지가 완곡히 말을 돌렸다.
‘그렇게 말하면 캐물을 수 없지.’
나는 엉망이 된 머리를 정리했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했지만, 답하지 않으려는 아버지를 배려해서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은… 시은이구나.”
“네, 가주님. 잘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세대의 차례가 지나가고 그 아랫사람 세대의 차례가 왔다.
할아버지는 훈련장에 등판한 도시은을 보고 입가에 호를 그렸다.
“네가 가진 모든 힘을 선보여 봐라. 어디, 손녀의 벽뢰를 맞고 싶구나.”
“그 전에,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 그래, 말해 보거라.”
“저도 견우가 그랬던 것처럼 가주님의 한 수를 받아 보고 싶습니다.”
“….”
저 누나는 왜 저러는 거지?
담력을 얻으려는 것도 아니고.
나는 도시은을 빤히 쳐다보았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황당하다는 반응을 드러내고 있었다.
“부탁드립니다. 저도 몸으로 직접 깨우치고 싶습니다.”
“호오.”
그럼에도 도시은은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탁했다.
할아버지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래, 좋다. 어디 받아 보거라.”
“네.”
“….”
도시은이 수연검을 쥐었다.
‘도대체 어떻게 움직인 거지?’
들고 있던 검을 목검으로 교체하고 자세를 취하는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의 검을 관찰하고자 사소한 동작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눈을 한 번 깜빡한 사이, 할아버지를 놓치고 말았다.
‘언제….’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던 거리.
할아버지는 한 걸음 만에 좁혀서는 도시은의 눈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마나를 발현한 기색도 없이.
내가 보고, 느끼기에는 그랬다.
그리고 검을 내리쳤다.
기초식 제1형, 사냥의 자세.
단순히 내려치는 동작 한 번으로.
탕! 휘이이익! 쿵!
“윽….”
“….”
조금 전에 내가 그랬듯.
도시은은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할아버지의 검을 받은 그녀가 순간 지면에서 떠올라, 뒤에 있던 벽으로 날아가 처박힌 것이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반면.
“이번에는 제대로 날아갔군. 역시 그건 피했던 건가….”
“….”
할아버지는 벽에 달라붙은 것처럼 주르르 내려오는 도시은을 보면서 영문을 모르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한순간이었지만 할아버지의 시선이 내게 향한 것 같기도 했다.
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시은이 누나도 역시 할아버지는 못 당하는구나.’
한편 나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는 도시은을 걱정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부축을 마다하며, 할아버지에게 걸어갔다.
“한 수, 잘 배웠습니다.”
“그래, 너와 검을 나눌 수 있어 무척 즐거웠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 서포터에게 가서 검사라도 받거라.”
“네.”
“….”
절뚝절뚝.
그렇게 도시은은 가족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안 다쳤으면 좋겠는데. 그 누나가 다칠 사람은 아닐 테지만….”
이따 문자나 보내 볼까.
나는 그녀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다시 다른 사람들의 대련을 지켜보려고 했는데.
“가주님, 가르침을 부탁드….”
“너도 내 검을 받아 보겠느냐.”
“…네?”
“어디 한번 받아 보거라.”
도시은의 뒤를 이은 사람이 별안간 할아버지의 검을 받고 날아갔다.
“다음! 너도 한번 받아 보거라.”
“다음!”
그 후에도, 그 후의 그 후에도….
할아버지는 무슨 바람이 분 것인지 손주들을 벽에 처박아 버렸다.
그렇게 사람들이 검에 맞고 날아가 벽에 처박히던 와중에….
“다음! 그래, 승우구나.”
“자, 잘 부탁….”
“너도 한번 받아 보거라.”
“….”
도승우의 차례가 됐다.
내 입꼬리는 자연히 올라갔다.
‘도승우 저놈도 날아가겠네.’
이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두고두고 보게 간직해야 한다.
나는 도승우의 대련을 영상으로 담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냈다.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누른 그때.
탕! 휘이이이이잉! 쾅!
“…커헉!”
할아버지의 검을 맞은 놈의 발이 지면으로부터 떨어져,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이 그러했듯, 괴상한 소리를 내며 허공을 날아가 벽면에 처박혔다.
“오.”
계속해서 같은 위치에 충격이 전해진 탓일까?
훈련장 벽면이 살짝 패여 있었다.
도승우는 그 부근에 끼어서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도승우의 가족들이 놈을 꺼내기 위해 황급히 달려가야 했을 정도다.
‘잘 나왔는데?’
나는 그 모든 장면을 담았다.
도승우가 날아가는 속도가 빨라서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긴 했지만,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이걸 나만 혼자 볼 수 없지.’
연하늘한테도 보여 줘야겠다.
나는 그녀에게 톡을 보내려 했다.
“아, 맞다.”
그제야 깨달았다.
어제 본가에 도착한 이후로 그녀의 톡을 보지 않고 있었다.
도승우와 싸우랴, 평가전을 치르랴, 할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느라 워낙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날짜가 바뀌어서야 들어간 톡에는 그녀가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연하늘]: 나 지금 정상이다? [연하늘]: (사진). [연하늘]: 자! 인증샷이야연하늘이 사진을 보내 놓았다.
노을이 지는 산의 경관을 배경으로 찍은 셀카였다.
연하늘은 쑥스러워하며 손가락으로 V 자를 만들고 있었다.
“허, 참….”
그러고 보니 내가 인증샷을 찍어서 보내라고 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산 정상을 찍어서 보내라는 뜻이었지, 셀카를 찍어서 보내란 뜻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오해한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음….”
사진이 제법 잘 나오기는 했다.
정상에 오르느라 땀을 흘린 탓인지 하늘색 머리칼이 뺨에 달라붙은 게 보였다.
수줍어하는 토끼 귀가 제법 귀엽기도 했고.
‘…저장해야겠다.’
나는 그 사진을 저장했다.
그러고는 뒤늦게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나]: 미안, 톡 이제 봤어. 본가에서 일이 있다 보니 바빴거든 [나]: 사진 잘 나왔네그때, ‘1’ 표시가 사라졌다.
연하늘이 톡을 읽은 것이다.
[연하늘]: 괜찮아 ^^ [연하늘]: 하루 늦으면 뭐 어때 [연하늘]: 그럴 수도 있지 [연하늘]: 우리가 무슨 사이도 아니고“응? 뭐야?”
메시지가 갑자기 삭제됐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연하늘]: 괜찮아 ^^ [연하늘]: 하루 늦으면 뭐 어때 [연하늘]: 그럴 수도 있지 [연하늘]: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연하늘]: 보육우언 애들이 장난친 거야! [연하늘]: 오해하지 마!굉장히 당황해서 보낸 듯한 톡이었다.
“지금 보육원 애들이랑 놀고 있는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육원 애들이 장난쳤다고 해도, 굳이 삭제할 필요가 있었나?
그냥 연하늘의 생각을 존중하기로 했다.
[나]: 오키 😀 [연하늘]: 어쨌든 나는 보낸 거야 [연하늘]: 그러니까 너도 보내 줘“인증샷? 내가 보낼 게 있나….”
나는 갤러리를 뒤적였다.
그녀가 사진을 보내 주기도 했으니, 나도 보내 줘야 할 것 같았다.
‘아, 이거면 되겠네.’
마침 어제 찍은 사진이 있었다.
나는 갤러리에서 사진을 전송했다.
[나]: (사진). [나]: 자, 인증샷어제 게이트에서, 서로 혀가 묶인 머드 케로들 앞에서 찍은 셀카였다.
[연하늘]: 어디야? 숲 같은데… [연하늘]: 본가에 간 거 아니었어? [나]: 게이트에 들어가 찍은 거야. 본가에 있는 인공 게이트에서 [연하늘]: 와… 이런 건 처음 봤어 [연하늘]: 근데 평범한 건 없어? [나]: 평범한 거? 그게 뭔데? [연하늘]: 음… [연하늘]: 프사로 할 만한 거? [나]: 나는 그런 거 잘 안 찍는데 [연하늘]: 안 찍으면 말구… [나]: 그것보다 이거나 봐 봐 [나]: (동영상). [연하늘]: 이건 뭐야? 누구야? [나]: 내 사촌 놈그 후로도 계속.
나와 연하늘은 톡을 주고받으면서 어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이번 일로 알았다.
도견우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앞으로도 아들은 계속 사고를 칠 것이다.
당장 본가에서 일어난 일만 해도 그랬다.
‘승우한테 대련을 신청하지 않나, 가주님께 당돌하게 말하지 않나…. 애가 변해도 너무 변했어.’
겨우 이틀 동안 벌어진 일이건만.
도견우가 벌인 기행은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그는 가문의 사람들 앞에서 벽뢰를 선보이기까지 했다.
역대 가주 중 최강으로 손꼽히던 2대 가주의 기록을 깨뜨림으로써, 최연소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그로 인해 가문의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고 말았다.
토끼 1마리도 사냥하지 못한다며 래빗이라고 조롱당하던 아들에 대한 평가가 바뀐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돋보일수록 적이 느는 법이야.’
사자에게 조그마한 토끼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대상에 불과하다.
도견우가 가주에게 말했던 것처럼, 사자가 전력을 다해 토끼를 사냥하러 나설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대상이 사자 새끼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사자 새끼가 특출난 모습을 보인다면 더더욱.
자신의 입지를 위협할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그가 그들의 견제를 받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어쩌면 그가 성체가 되기도 전에 처리할 궁리나 세울 놈들이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걸 두고 볼 수는 없지.’
적은 가문의 사람들뿐만 아니다.
앞으로 도견우는 세상으로 나가, 수많은 적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도상준은 아버지로서 자신의 아들이 그들에게 사냥당하지 않게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자신의 힘으로는 급격히 성장하는 도견우를 지키기에 부족했다.
형제들을 상대하기도 버거울진대, 다른 맹수들을 상대할 힘이 있을 리 없었다.
레굴루스 클랜의 지부장이란 직함은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지라도, 가족들을 지키기에 마땅치 않았다.
그들을 지키려면 더 높은 자리가 필요했다.
―네 힘이 이것밖에 안 되는 거냐. 이래서는 견우를 지킬 수 없겠구나.
신검 도가의 가주, 도예익.
도상준의 아버지는 그가 품은 고민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그때, 도상준은 흠칫했다.
―예전에 네가 말했었지. 너는 형제들과 싸우기 싫고, 가족들만 있으면 되니 그 자리에 있는 것에 만족한다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냐.
―….
―네 아들의 유약함은 너한테서 나온 거겠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애는 풀이나 뜯어 먹고 살지 않고 맹수로 살기로 결심한 것 같더구나. 그럼에도 네 생각은 변함이 없느냐.
―저는….
―네가 과연 그 아이를 감당하고, 비호할 수 있을 것 같더냐.
―….
―만약에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그 아이를 내게 맡겨라. 대신 내가 그 아이를 비호하는 방패가 되어, 그 아이에게 모든 것을 전수하겠다.
―…!
거기까지 들었을 때.
그동안 망설임을 보이던 도상준은 마침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듯, 도견우를 위협하는 적들을 쓰러뜨리려는 듯.
그는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그래도 실력이 녹슬진 않았구나.
―…감사합니다.
―지키기 위해서는 뺏어야 한다.
―…네.
도예익은 만족한 듯했다.
도상준은 그가 마지막에 건넨 말을 가슴속에 새겼다.
그러고는 몇 번이고 되뇌었다.
“지키기 위해 뺏어야 한다라….”
“응? 뭐라 그랬어?”
“아무것도 아니야.”
약육강식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온전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말로 그래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육식동물도, 초식동물도 관계없이.
지키기 위해서 뺏어야 하고.
살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설령 상대가 형제들이 될지라도.
“…다들 곤히 자고 있네.”
“애들이 많이 피곤했을 만도 하지.”
본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신호가 걸려 운전을 멈춘 도상준은 뒷좌석을 돌아보았다.
앉아서 조는 도견우와 그의 무릎을 베고 자는 도예은이 눈에 들어왔다.
그 광경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잃고 싶지 않았다.
“당신한테 말할 게 있어. 앞으로는 집에 들어오는 게 늦어질 거야.”
“아까 아버님과 대화한 거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렇지, 뭐.”
눈치도 빠른 아내다.
그는 조수석에서 묻는 한지애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올라갈 수 있는 만큼 올라가려고, 승진 좀 하게.”
“아버님 자리를 노리겠다는 거야?”
“글쎄,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고… 지금보다는 높이 올라갈 거야.”
“그래서 지금 실적을 늘리기 위해 집에 늦게 들어온다는 거구나.”
“그렇지, 뭐. 다행히 내가 지금까지 한 게 있으니까, 서브 로드 자리를 올해 안으로 얻을 수 있을 거야.”
“응원할게. 나도 당신 뒷바라지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노력해야겠네.”
“당신은 그러지 않아도….”
“당신만 자식을 지켜야만 한다는 법이 어디 있어? 엄마도 부모인데 안 지키나? 싫어, 나도 싸울 거야.”
“…그래, 그럼 뒷바라지 부탁할게.”
“안 그래도 언제 갈까 고민했는데, 이따 가서 머리나 잘라야겠다.”
“저, 지애야.”
“왜요, 상준 오빠?”
“…정말 자를 거야?”
“왜? 싫어?”
“아니, 당신이 하면 뭐든 다 좋지. 이제 곧 여름이기도 하니 괜찮네. 시원하겠어. 단발 좋지, 응….”
신호가 바뀌었다.
끝끝내 본심을 말하지 못한 채로 쓴웃음을 지으며.
도상준은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