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40)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40)
수험표
“불편을 일으켜 정말 죄송합니다. 사전에 전산 시스템을 살피지 못한 저희 측의 명백한 잘못입니다.”
데스크 직원으로부터 소식을 접한 호텔 지배인이 우리를 찾아와서는 정중히 사과했다.
그 뒤로 데스크 직원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래….’
졸지에 그들의 정수리를 보게 된 나는 혀를 내둘렀다.
예약한 방이 중복됐다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다.
참 황당하기만 했다.
학원도시가 시험을 치르러 오는 사람들로 붐비는 이 시기에는 숙박 예약이 쇄도하면서 이따금 전산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는 했다.
명색이 과학과 마법을 선도한다는 학원도시에서 그런 일은 없으리라고 우스갯소리로 여기고 있었건만.
설마 우스갯소리로 여기던 그 일이 내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내가 시설이 좋지 않은 곳을 고른 것도 아니고, 23구에서 이름 있는 곳을 골랐는데도 전산 오류가 발생했다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바로 학원도시이기도 했다.
학원도시 특유의 대기 마나 상태와 차원의 불안정성이 어우러지게 되며 이따금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쩌면 전산 오류도 그러한 연유로 일어나게 됐는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 수가 있을까.
‘내가 행운이 낮아서 그런가?’
그러다 보니 괜한 생각도 든다.
현재 내 행운 수치는 32.
연하늘은 나보다 더 낮았다.
그러니 나와 연하늘의 낮은 행운이 얽히고설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늘아,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 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장난이야.”
물론, 정말 짐작이 맞는다고 해서 연하늘과 멀어질 생각은 없었다.
차라리 불행을 짊어지겠다.
나는 같은 방을 쓰게 된 상황에 넋이 나간 연하늘을 대신해 호텔 지배인과 대화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 주실 건데요?”
“…두 분께서 결제한 숙박 대금은 즉시 환불 처리를 해 드리고, 무상으로 저희 호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또한 23구의 상업 시설에서 이용할 수 있는 할인 쿠폰도 같이….”
“방은 지금 하나밖에 없는 건가요? 추가 요금을 더 지불해서라도 방을 잡을 용의가 있는데 다른 방이라도 잡을 수 없을까요?”
“죄송합니다. 예약한 객실 외에는 만실인 상황이다 보니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호텔 지배인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수험을 치르러 온 사람들이 많아서 평소와 달리 여분의 객실을 마련해 놓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방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와서 방을 구하려 하더라도 어디나 만실이겠지.’
뻔히 예상이 가는 일이었다.
운이 좋게 비는 방이 있을지라도 찾느라 꽤 고생해야 할 것이다.
하나 남은 방에 투숙하는 것만큼 더 나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때, 지배인이 말을 추가했다.
“다행히 저희 호텔은 침대가 넓어 두 분이서 잠을 자기에도 충분히 여유가 될 겁니다. 그리고 침대는 여유분이 있어서, 원하시면 사이즈를 변경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
다행이라면 그나마 다행인가.
생각 끝에 결정을 내린 나는 이내 연하늘의 의향을 묻기로 했다.
“하늘아, 어떻게 생각해?”
“뭐, 뭘 어떻게 생각해야?”
“같이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으으….”
우물우물.
연하늘은 당황함이 여실한 얼굴로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다 끝끝내 입을 열었다.
“응….”
* * *
원룸인 것 치고는 방이 꽤 넓었다.
둘이서 일주일 동안 생활하기에는 문제가 없을 듯했다.
“침대도 이 정도면 적당하겠고… 굳이 침대 사이즈를 늘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서는 짐을 둘 공간만 줄어들 테니까.”
나는 적당한 곳에 캐리어를 두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고 방으로 들어오는 연하늘을 눈에 담았다.
연하늘은….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아니, 나랑 엘리베이터를 타고부터 상태가 더욱 심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다 큰 성인 남녀가 한방에서 잘 수 있어? 하루도 아니고 그것도 일주일씩이나.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저기, 우리 아직 성인 아니거든? 뭐, 고등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법적으로 준성인으로서 인정받기는 하는데….”
“이게 무슨 드라마 같은 일이야. 아니, 요즘 드라마도 이런 식으로는 전개 안 한단 말이야!”
“요즘에는 어떻게 전개하는데?”
“일단 확 덮치고…! 너, 설마….”
“뭐야, 그 눈은?”
“…아니야. 네가 그럴 리 없지.”
“….”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더니.
연하늘이 별안간 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뭐지? 지금 무시당한 것 같은데.’
그 시선이 묘하게 사람의 자존심을 긁는 것 같았다.
괘씸해서 응징을 가해 주기로 했다.
“아야!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설마, 너 진짜…. 나, 난 준비….”
“무슨 망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좀 하지그래.”
나는 토끼 귀를 세게 쥐었다.
그러자 그녀가 강한 자극에 놀라, 내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나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침대 위로 쓰러질 때까지 계속 괴롭혀 댔다.
“너어 진짜아….”
“뭐, 진짜.”
“어머님한테 이를 거야.”
“그래? 그럼 한 번 더….”
“미안, 안 이를게.”
“후, 처음부터 그렇게 나왔어야지. …많이 아팠어?”
“흥, 몰라!”
한바탕 몸싸움을 벌이니 진정됐다.
침대에서 고개를 든 그녀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조금 전과 달리 조심스럽게 그녀의 귀를 만져 주었다.
그녀는 가만히 내 손길을 받았다.
“어릴 때는 같이 자기도 했으면서 뭘 새삼스럽게 여기고 그래?”
“그때는 초등학생이었잖아. 그때랑 지금이랑 같니? 그리고 그때 예은이도 같이 잤었고.”
“헌터가 되면 길바닥에서 자거나, 다른 성별끼리 지내는 일도 왕왕 있을 텐데, 뭘.”
“으… 그건 그렇기는 한데….”
“그렇게 나랑 자는 게 싫어?”
“어?”
“뭐, 네가 싫다 하면 어쩔 수 없고. 정 그러면 나는 다른 데서 잘게.”
“다른 데? 다른 데 어디?”
“사우나에서 지내도 되고, 똘마니들이랑 같이 묵어도 되고. 지낼 데야 많으니까.”
불편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겠지만 그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었다.
나는 연하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차라리 그렇게 지낼까도 생각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싫은 건 아니야….”
“….”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때.
연하늘이 내 옷깃을 꽉 붙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이내 기어들어 가듯 말했다.
“싫은 건 아닌데… 진짜, 진짜, 진짜 싫은 건 아닌데….”
내 팔뚝에 툭 머리를 박는 연하늘.
옅은 하늘색 머리카락 아래로 간간이 그녀의 붉어진 얼굴이 드러났다.
‘지금 내가 갈까 봐 이러는 건가?’
그런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나는 왠지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그럼 좋은 거야?”
“뭐? 아니, 좋은 건….”
“좋은 건 아니야? 그럼 싫어?”
“아니이, 좋은 건 맞는데… 음? 오, 아, 이게 좋다는 뜻이 그런 게 아니라….”
“음, 오, 아, 예에.”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응.”
“너어는 지인짜….”
바로 조금 전에는 울먹거리더니.
어느새 연하늘이 뾰로통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 옷깃을 붙잡던 그녀의 손은 이제 내 팔을 꼬집고 있었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키득거렸다.
“그럼 나랑 자고 싶다는 거지?”
“뭐?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그냥 너랑 자는 게 싫은 게 아니고, 같이 자도 된다고….”
“그게 그거지.”
“뭐가 그게 그거야. 전혀….”
“아니면 정말 똘마니들한테 간다? 방은 너 혼자 쓰고, 나중에 시험장에서 보기로 하자.”
“….”
“그럼 된 거지?”
“…하나도 안 됐거든?”
“그래?”
“걔네랑 같이 쓰면 좁을 거야.”
“그러겠지.”
“그리고 걔네 방 엄청 더러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걔네 성격 보면 알잖아.”
“방을 안 치울 것 같기는 하지.”
“보나 마나 환기도 안 할 거야. 빨래도 신경 안 쓸 것 같고….”
“그래서?”
“그에 비해서 이 방은 많이 넓어. 나 혼자 쓰고도 남을 정도로.”
“원룸인데?”
“…그냥 걔네한테 가 버리든 말든, 너 마음대로 해. 나도 이제 몰라.”
“그래? 그럼 여기 계속 있지, 뭐.”
“….”
“내가 여기 말고 어디를 가겠어. 나도 너랑 방 같이 쓰는 게 좋지, 똘마니들보다. 안 그래?”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야, 근데 하늘아, 나 지금 아픈데 그만 좀 꼬집으면 안 돼?”
“엄살 부리는 거 다 알거든?”
장난을 친 것에 대한 복수란 듯이.
그녀가 팔을 꼬집는 것도 모자라, 그대로 뱅뱅 돌리기까지 했다.
이제는 옆구리로도 손이 들어온다.
“너 지금 마나 사용…!”
“흥, 내가 언제?”
비겁하다.
나도 체내 마나를 끌어올려서까지 토끼 귀를 건드리진 않았는데.
나는 매서운 손길을 떼어 내기 위해 몸을 꿈틀거렸다.
그러다 보니 다음에 연하늘이 작게 중얼거린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예쁜 옷도 챙겨왔을 텐데…. 시험만 생각하고 괜히 칙칙한 것만 챙겼네.”
* * *
“나 씻을 거야! 훔쳐보기만 해 봐.”
“안 훔쳐봐.”
캐리어에 든 짐을 풀고.
연하늘은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겨 후다닥 욕실로 들어갔다.
이내 안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며 내게 거듭 강조했다.
“훔쳐보기만 해 봐, 훔쳐보기만 해 봐, 훔쳐보기만 해 봐….”
붉은 눈에 힘을 주는 연하늘.
쏘아보는 시선이 꽂히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반응에 혀를 찼다.
“안 봐, 안 본다고, 안 본다니까?”
“진짜, 진짜, 진짜 안 볼 거지?”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하면 홧김에 욕실에 들어가는 수가 있어.”
“어디 그러기만 해 봐….”
으름장을 놓듯 말하고 있었지만, 정작 흠칫한 기색이 역력했다.
연하늘은 앙다문 얼굴을 끝으로 욕실 문을 닫았다.
이에 나는 그녀가 들어간 욕실에서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돌리려고 했는데.
그만 시선이 멎고 말았다.
“….”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상태에서 정면에 위치한 욕실.
그 욕실 벽면이 하필이면 반투명한 유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안에 들어간 연하늘이 흐릿한 실루엣으로….
‘하늘아, 미안.’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
간신히 구분될 정도로 어렴풋한 실루엣만 봤을 뿐이다.
아니, 실루엣도 못 봤다.
나는 욕실을 눈에 담지 않기 위해 황급히 몸을 돌렸다.
쏴아아.
잠시 후, 물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묘하게도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계속 나도 모르게 의식하게 되네….’
나는 끙 소리를 냈다.
그동안 내색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녀와 같은 방을 써야 하는 상황에 당혹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티를 내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나까지 부끄러워해 버렸다가는 연하늘이 더 부끄러워할 테니까.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그녀를 대하고 있었건만, 난데없이 기습을 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겨우 이런 걸로 당황해서는 안 돼. 당장에 아카데미 학생이 되더라도 노숙이나 혼숙하는 일이 많을 텐데, 이런 일로 당황해서는….’
그래도 웬만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같은 침대를 쓰는 일은 없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쳐 버린 나는 얼굴을 구겼다.
어떻게든 의식을 돌려야 했다.
‘하늘이가 씻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이거나 풀어야겠다.’
그때 마침 가슴에 부착하고 있던 수험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수험표를 떼어 냈다.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었나.”
나는 ‘금강’이라 적힌 부분 하단에 체내 마나를 흘려 넣었다.
그러자 하단에서 내가 흘린 마나가 반투명한 조각이 되어 떠올랐다.
“….”
수험표에서 일정 범위를 유지하며.
조각으로 변한 마나가 떠다녔다.
그 수가 수십 개는 되는 듯했다.
‘이 조각들을 맞추라는 건가.’
문제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수험생 본인이 직접 문제를 보고 유추하라는 것이리라.
나는 떠다니는 조각들을 살피고, 그 형태에 주목했다.
어떤 조각과 어떤 조각의 형태는 자연스럽게 합쳐질 것 같았다.
입체 퍼즐이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조각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퍼즐이 맞아.’
2개의 조각이 합쳐졌다.
조각은 처음부터 하나였다는 듯이 이음새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길로 조각들을 맞춰 나갔다.
손가락 마디처럼 작았던 조각들이 점점 크기가 커졌다.
수십이 넘는 조각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 같았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형태가 같은 조각이 너무 많아.’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조각끼리 미세한 차이가 없었다.
혹시나 하고 겹쳐서 확인해 보니 완벽히 일치한 것이다.
‘그냥 무시해도 되는 건가.’
똑같은 A, B, C 조각이 있다.
그리고 세 조각과 합쳐질 수 있는 D, E, F 조각이 있다.
이때, 아무 조합으로 맞추더라도 퍼즐을 완성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었다.
‘시험이 이렇게 쉬울 리 없어.’
나는 생각을 환기하기로 했다.
다른 접근 방식이 있을 것이다.
육안으로 의지하지 않고….
“아.”
내가 왜 육안으로만 보고 있었지.
불현듯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즉시 나는 체내 마나를 발현해, 시력을 향상시켰다.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마나적 현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내 생각이 맞았어.’
겉보기에는 단순한 조각이었으나, 내부에 마나 회로를 품고 있었다.
형태가 같은 조각일지라도 해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마나 회로가 제각기 달랐다.
이중 퍼즐이었던 셈이다.
‘육안과 마나적 시야를 활용해서 푸는 문제였던 거구나.’
그렇다면 더는 거리낄 게 없다.
형태가 다른 조각은 육안으로, 형태가 같은 조각은 마나 회로로 보고 맞추면 되는 것이다.
물론, 마나 회로만 보는 것으로도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흩어져 있는 조각을 통해 마나 회로의 전체적인 양상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굳이 어렵게 갈 필요는 없어.’
애초 자격을 묻는 시험이다.
필시 금강 아카데미가 그런 의도로 문제를 출제하지는 않았으리라.
기본 능력만 보이면 된다.
이윽고 머지않아.
“…됐다.”
나는 입체 퍼즐을 완성했다.
수험표 위 허공에서 단면이 많은 형체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꼭 다이아몬드를 연상케 했다.
아니, 다이아몬드가 맞으리라.
“….”
금강 아카데미의 상징석이 바로 다이아몬드였으니까.
나는 내부의 술식이 활성화돼서, 푸른빛을 발하게 된 다이아몬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 마나가 저 안에 깃들어 있다니, 무언가 기분이 감개무량했다.
공백으로 있던 수험표 하단부에 수험 번호가 떠올랐다.
나는 수험 번호를 확인했다.
“문제 푼 거 축하해.”
“아, 하늘아.”
그때, 어느새 나온 것인지.
연하늘이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하얀 가운을 입은 그녀에게서는 은은한 향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언제 나왔어?”
“나온 지는 꽤 됐지. 그런데 네가 문제를 푸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던 거야.”
“아, 그랬구나.”
나는 수험표에 흘려 넣은 마나를 체내로 환원했다.
푸른빛을 반짝이던 다이아몬드는 마나의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그러자 연하늘이 아쉬워했다.
“아, 조금 더 두지. 예뻤는데.”
“은근히 마나 소모가 심하더라고. 그리고 나도 이제 씻어야지.”
“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지. 네가 씻고 있는 동안 나도 문제나 풀고 있어야겠다.”
“그래, 그러고 있어.”
“1시간 안에 씻고 나와야 해. 이제 계속 수험표를 부착해야 하잖아.”
“알고 있어.”
이제 보니 둘이서 같은 방을 써서 좋은 점이 있기는 했다.
1명이 몸을 씻고 있는 사이에, 다른 1명이 수험표를 도둑맞지 않도록 지킬 수 있으니까.
연하늘에게 수험표를 맡긴 나는 몸을 씻으러 가기로 했다.
“아, 하늘아.”
“왜 그래?”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욕실에서 반쯤 몸을 내민 나는 침대에 걸터앉은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훔쳐보지 마.”
“안 훔쳐볼 거거든!”
“진짜지? 믿는다.”
“내가 훔쳐볼 일 같은 건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씻기나… 와아….”
쏴아아.
음, 오, 아, 예에.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