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46)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46)
등정로
신검 도가의 도견우.
그에 대한 소문은 무성하기만 하고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세상에 나가기에는 나이가 어려서 그동안 신검 도가에서만 활동하고,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데 소문에는 일관성이 존재하고, 그 흐름을 통해 어느 정도 본질을 파악할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도견우를 둘러싼 소문은 어느 것 하나 일관성을 지니지 않아 본질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누구지? 칠색의 마녀님의 제자랑 꽤 친해 보이는 것 같은데.”
“아, 그럼 혹시 그 애 아닐까요? 칠색의 마녀님 제자랑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다는 아이요. 그러니까….”
“신검 도가의 그 아이? 이름이….”
“1532번은… 도견우라는군요.”
“신검 도가의 아이였군.”
“그러면 저 애가 그 애인가 보지? 신검 도가의 수재라는….”
“걔는 다른 애입니다. 이름이 아마 도승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 수험 번호 2368번이네요.”
“그 애의 수험표 색은?”
“청색입니다.”
“그럼 저 애의 수험표 색은?”
“보이는 것처럼… 흑색이죠.”
“신검 도가에서 수재라 부를 정도면 그 세대 중에서 가장 준수한 실력을 지닌 인재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그 수재보다 도견우란 애의 성적이 더 좋다고?”“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옛날에는 수재로 통했을지 몰라도 자라면서 뒤처질 수도 있는 거고, 노력해서 일취월장한 사람에게 보통 수재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거기에 재능이 더해지면 천재가 되는 거고. 수재가 특별한 존재인 건 아니죠.”
“그리고 실력은 준수한 편이지만 특색이랄 게 없어 부를 말이 없는 애들한테 수재라고 하기도 하니까. 2368번도 그런 경우였나 보지.”
“정말로 우수한 재능을 지녔다면 같은 가문의 도시은처럼 특색 있는 이명으로 불렸겠죠, 벼락꽃 같은.”
“수재 이야기는 그쯤에서 끝내고. 그래서 흑색 수험표를 단 수험생은 뭐라고 불리고 있다는 건가?”
“래빗이요.”
“사자 새끼요.”
“자네, 지금 나한테 욕하나?”
“아닙니다! 신검 도가에서 저 애를 사자 새끼라고 부른답니다.”
“무슨 소리야? 래빗이지.”
“사자 새끼라니까?”
“…그래서 어느 쪽인가.”
“래빗이요.”
“사자 새끼요.”
“….”
교관들의 답변이 엇갈린 것처럼.
혹자는 도견우를 래빗이라 부르며, 그가 신검 도가의 경쟁에서 뒤처진 겁쟁이라고 말했으며.
다른 혹자는 그 소문을 부정하며, 신검 도가의 가주에게 인정을 받아 사자 새끼로 불리고 있다고 말했다.
거기서 또 다른 혹자는 그 이명이 비하하는 표현이란 주장을 펼쳤고, 또 또 다른 혹자는 칭찬하는 것이란 반박에 나서고는 했다.
그렇다 보니….
“래빗이라니까?”
“사자 새끼라니까요?”
“새끼 사자라고! 사자 새끼는 너무 욕처럼 들리잖아.”
“제가 아는 연줄을 통해 들었는데, 신검 도가의 가주는 사자 새끼라고 불렀다던데요?”
“…정신 사납군.”
도견우에 대한 소문은 극단적이고, 혼란스럽게 나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자리에 있는 교관들은 모두 그의 재능과 실력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이제 문을 열려고 하나 봅니다.”
“….”
그렇기에 교관들은 무성하기만 한 소문의 진위를 확실히 밝히기 위해 도견우에게 주목했다.
철문을 열어젖히는 시험을 통해서 일부분이라도 알아낼 수 있으리라.
그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잠시 후.
“…네 번째까지 열었네요.”
“그러게요. 이 정도면 준수한데요? 의협 용가의 용해랑도 네 번째까지 철문을 열기도 했고, 신검 도가는 검술명가잖아요.”
“체내 마나량이 많으면 좋다지만, 어차피 검술명가라서 마나 소모가 큰 기술은 펼치지 않을 테니….”
“기초는 잘 다져져 있는 것 같군. 근육이 반응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나 보네.”
도견우는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이 네 번째 철문을 열어젖혔다.
그의 기량을 엿본 교관들은 누구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그때였다.
[쿠구구….]“….”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철문이 별안간 들썩이기 시작했다.
다른 수험생들을 지켜보려고 하던 교관들은 깜짝 놀라 도견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움직였어?”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모든 철문이 움직이고 있었다.
교관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게 어떻게 움직인 거지?”
“체내 마나량이 많았던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걸세.”
“체내 마나량이 많았으면 처음부터 다섯 번째 철문이 반응했겠죠.”
“그럼 대체 어떻게….”
체내 마나량이 받쳐 줘야 열리도록 설계된 다섯 번째 철문.
교관들은 그것을 부정하는 광경에 해명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
그렇기에 교관들의 시선은 자연히 칠색의 마녀 홍예나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제자의 소꿉친구에 대해서 아는 게 있으리라고 여긴 것이다.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건가요?”
“홍예나 교관은 저 아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없는 건가? 그래도 제자하고 절친한 관계라던데.”
“그러고 보니 교관님이 도견우에게 마법을 가르쳐 줬다고 하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조금 전보다 더 집요하게 교관들이 홍예나에게 질문했다.
시험을 관리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구석에서 조용히 견학하던 그녀는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연하늘에 대해 말했을 때와 사뭇 반대되는 얼굴이었다.
“…제가 하늘이 소꿉친구랑 별로 친하지 않아 잘 모르겠네요. 마법도 아주 조금만 가르쳐 준 정도라서요.”
“….”
홍예나는 모르쇠로 일관하려 했다.
되도록 그와 얽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교관들의 눈은 그녀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뭐라고 해명해 보라는 눈치였다.
‘후, 어쩔 수 없네.’
결국 그녀는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나름의 해석을 내놓아야 했다.
“그래도 어떻게 다섯 번째 철문을 열 수 있었는지는 알 것 같네요.”
“그 이유가 뭔가?”
“조금 전에 불똥이 튄 걸 보셨죠? 그건 반발하는 성질을 지닌 마나가 상충하면서 일어난 현상이에요.”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었네요. 그런데 왜 상충한 걸까요? 저기에 상충할 요소가 없었을 텐데.”
“제가 쟤를 잠깐 가르쳐서 아는데, 저 아이의 마나는 빛 속성에 대해 높은 친화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걸 이렇게 말해 줘도 되나요?”
“기밀로 해야 할 정보도 아닌걸요.”
“그렇기는 하지. 계속 말해 보게.”
“네, 계속할게요. 그리고 제 제자는 어둠 속성에 친화력을 가졌어요. 그런데 앞에서 하늘이가 밀도 높은 체내 마나를 발현하면서, 그 잔재가 대기에 녹아들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던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상충했다는 건가? 그런데 그거랑 다섯 번째 철문을 연 것과 무슨 상관인 거지?”
“여기서부터는 제 추측인데….”
홍예나는 일부러 말을 끌었다.
어느 부분은 말해도 되고, 어느 부분은 말하면 안 될 것인지 생각하기 위해서였다.
말을 잘 골라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도견우 쟤 때문에 하늘이가 휘말릴 수도 있어.’
다섯 번째 철문을 열기 위해서는 일정 기준에 달하는 체내 마나량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 철문이 열렸다는 것은 체내 마나량의 기준이 내려갔거나, 도견우의 체내 마나량이 단기간에 기준을 채울 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체내 마나량은 늘리기 어려운 만큼 당연히 후자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기준이 내려갔다는 건데, 그 말인즉슨….
‘하늘이의 체내 마나가 어쩌다가 철문에 오작동을 야기했을 수 있어.’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괜히 잘못하면 연하늘과 도견우가 부정행위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부정행위는 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번거로운 일이 많을 것이다.
오해가 낙인이 될 수도 있고.
‘앞날이 창창한 애한테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는 꼬리표가 붙게 해서는 안 돼.’
내심 도견우를 변호해야만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홍예나는 연하늘을 지키기 위해서 교관들의 의문을 풀어 줘야 했다.
“아마도 상충으로 일어난 폭발로 추진력을 더한 게 아닐까요?”
“….”
빛과 어둠이 충돌하면서 그것으로 태초에 우주가 탄생한 것과 유사한 빅뱅의 성질이….
홍예나는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현학적인 단어로 포장하며 교관들의 혼을 빼 놓았다.
‘어? 근데 말이 안 되지는 않잖아?’
그러다 영감이 떠오르기도 했으나, 당장 처한 상황을 얼버무리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녀의 노력이 먹혔다.
“흠, 그렇다는 거군.”
“일리는 있네.”
“빛과 어둠의 충돌… 혼돈, 카오스…. 이거 논문으로 내실 건가요? 아니면 제가 연구해 보고 싶은데….”
“어둠 속의 빛, 빛 속의 어둠….”
“루미너스.”
“가장 밝은 빛은 가장 어두운 곳에 존재하기 마련이라….”
몇몇 교관들이 무언가 깨달은 듯이 그녀가 한 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몇몇은 수긍하는 듯하면서 시험에 이의를 제기했다.
“순수하게 마력을 보는 시험에서 외부 요인을 이용해도 되는 건가요? 규칙에 어긋나는 것 같은데….”
“손으로 철문을 밀기만 하면 되는 시험이었으니 규칙을 어겼다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저 아이가 도핑을 한 것도 아니고요. 저것도 어떻게 보면 실력이죠, 실력.”시험의 참관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홍예나는 즉각 반박했다.
그러자 교관들이 편을 들어 주거나, 반대 의견을 펼치기 시작했다.
교관들끼리 토론이 벌어졌다.
“거기까지만 하지.”
“….”
그때, 최고 감독관이 입을 열었다.
교관들은 그 말을 거스르지 않고, 최고 감독관의 판정을 기다렸다.
“홍예나 교관의 말처럼 수험생이 규칙을 어겼다고 보기에는 어렵지. 하지만 그렇게 판단을 내리기 전에 먼저 혹시 철문에 이상은 없는 건지 확인하는 게 좋지 않겠나?”근엄한 어조로 묻는 최고 감독관.
홍예나는 그가 내린 판단을 듣고는 속으로 긴장했다.
“누가 가서 철문을 확인해 주게나.”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최고 감독관이 한 교관을 시켰다.
결과는 오래 기다릴 필요 없었다.
[철문에는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그런가.”
철문의 상태를 확인하러 간 교관이 화면을 통해 결과를 알려 줬으니까.
홍예나는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한편 머릿속에서는 의문이 돌았다.
‘철문이 고장 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연 거지?’
한순간에 체내 마나량이, 하다못해 마나 효율이나 밀도 등이 증가해서 철문을 열었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두뇌에 걸린 리미트가 풀리게 되며 초인적인 힘이 솟은 것도 아니고.
설마…!
그래서 자신의 몸을 위험 속으로 냅다 던진 것이란 말인가.
그렇게 되기를 믿고?
“진짜….”
그녀는 도견우를 보며 혀를 찼다.
“저거 완전 또라이 아니야?”
5년을 알고 지냈는데도 모르겠다.
도견우 때문에 늙는 기분이다.
이제 좀 편히 살고 싶다.
지금이라도 교관 자리에서 물러나, 여행이나 다니는 게 어쩌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었다.
* * *
철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벽이 있었을 뿐이다.
그 벽면에서 몸을 돌린 나는 이내 무수히 많은 시선을 마주했다.
‘하늘이 기분이 이해되기는 하네.’
“….”
내가 넘어온 철문 저편에서.
사람들이 다 같이 약속이나 한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눈만 크게 뜬 채로 나를 보는 시선이 불편하기만 했다.
‘그만 좀 쳐다보지.’
내 기분 탓일까.
어쩐지 연하늘이 받은 시선보다도 더 많은 시선이 쏠리는 것 같았다.
“….”
나는 다시 철문 너머를 지나면서 얼른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이대로 시험장에 머무르고 있으면 시선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평가관으로부터 합격 판정을 받아야 했다.
“평가관님.”
“아… 네, 수험생.”
“저 합격인 건가요?”
“…잊고 있었군요. 1532번 수험생, 5개, 합격. 그런데 괜찮은 겁니까? 아까 폭발에 휘말린 건….”
“보시다시피 멀쩡한 것 같은데요?”
“그래도 혹시 몸에 이상이 있으면 의무실에 가서 치료를 받아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다친 곳은 없었다.
옷에 폭발의 흔적이 묻긴 했지만, 그조차 세정 마법으로 없앨 수 있는 수준이었다.
평가관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 나는 연하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대뜸 걱정부터 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는 거지? 아까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아니, 철문이 안 열리면 거기서 그만하지 왜 더 하려고 그래? 만약 잘못해서 마나 폭주를 일으켰으면 어쩌려고.”
“그 정도까지 할 생각은 없었고, 감당할 자신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중간에 그만뒀으면 다섯 번째까지 열지 못했을걸?”
“그래도 그렇게 무리할 필요 없이 네 번째까지만 열었어도 합격에는 지장이 없지 않았을까?”
“대신 입학하고 나서 받는 코인이 그만큼 줄어들지도 모르지.”
“으이구, 얼마나 차이가 나겠다고.”
“그래도 많을수록 좋잖아.”
금강 아카데미는 물론, 학원도시와 학원도시의 거의 모든 아카데미는 코인이라는 독자적인 화폐를 발행해 그것을 여러 수단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금강 아카데미에서는 코인으로 아카데미 내에서 판매하는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고, 시설을 예약하거나, 수강 신청에서 우선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코인을 받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받는 게 좋았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코인을 쉽게 얻을 수 있겠어.’
그동안 내가 되도록 높은 성적으로 입학하려던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하늘아, 잘 생각해 봐.”
“응? 뭘?”
“다섯 번째 철문을 연 너 다음으로 내가 철문을 네 번째까지만 연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우와, 쟤 대단하다?”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그렇겠지. 그런데 너랑 비교 안 당하겠어?”
“어, 음, 그러니까….”
“’도견우가 네 번째까지는 열었지만 그래도 연하늘보다는 못하네.’ 하는 소리나 듣지 않았을까?”
“저 사람들한테 얕보이기 싫어서 위험한 짓을 벌였다는 거야?”
“어, 맞아.”
“….”
연하늘이 잘 이해했다.
나는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의 눈이 짜게 식었다.
“너는 안 그런 것 같으면서 은근히 애 같은 면이 있단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이 너 쳐다보니까 좋아?”
“얕보이는 것보다는 좋은데?”
“으이구….”
연하늘은 어처구니없는 듯했지만, 내게는 중대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여기에 있는 놈들한테 사자 새끼니 새끼 사자니, 욕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는 소리나 듣는데 그냥 넘어가라고? 절대 안 되지.’
우습게 보이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그럴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으름장을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찾아오자 덥석 잡은 것이다.
“어쨌든 1차 시험은 합격했으니까 2차 시험이 시작될 때까지 어디서 쉬고 있자.”
“좋은 생각이야. 나도 얼른 여기를 떠나고 싶었는걸.”
더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연하늘을 데리고, 시험장을 나가기로 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도견우! 견우야!”
“….”
쟤가 왜 나를 부르는 거지?
멀리 있는 인파 속에서 용해랑이 나를 부르며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눈빛이 뜨거운 그를 보고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시험 치르는 거 재밌게 잘 봤다! 네 소꿉친구도 내 마음에 들었지만, 역시 나는 네가 더… 어?”
“하늘아, 튀어.”
“거봐. 너도 부담스러운 거지?”
“야! 어디 가! 밥이나 같이 먹으며 대화나 나누는 게 어때!?”
미안하지만 못 들었다.
나는 용해랑이 쫓아오기 전에 냉큼 연하늘과 함께 시험장을 나섰다.
* * *
“2차 시험은 2시에 있을 예정이니 그때까지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정해진 장소로 오면 됩니다.”
“어디로 가면 되는 건가요?”
“이 시험장에서 합격한 수험생들은 모두 차원관 105호로 오면 됩니다. 인공 게이트에서 시험을 치를 거니, 사전에 이것들을 착용해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시험장 밖에서 대기하던 보조관은 우리에게 2차 실기 시험에 대해서 공지해 주었다.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우리는 다른 보조관들이 나눠 주는 것들을 받아 챙겼다.
금강 아카데미에서 준비한 점심과 게이트에서 사용하는 아티펙트였다.
‘게이트 워치랑 스크린 초커네.’
아티펙트를 사용하는 방법은 따로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신검 도가에서 평가전을 치를 때면 곧잘 사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티펙트들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만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몸을 돌렸다.
“어디서 먹을까?”
“그러게. 어디 조용하고 한적해서 점심을 먹기 좋은 데 없으려나…. 아, 세쌍둥이는 어디 있대?”
“자기들끼리 먼저 먹고 있을 테니 2차 시험장에서 보자고 하더라고.”
“음료수 셔틀 하기 싫어서 튀었네.”
“아, 그러네. 내 딸기 우유….”
“도중에 자판기나 매점이 보이면 거기서 사 가자.”
“응!”
“아, 저기 자판기 있다.”
도시락과 물만으로는 섭섭하다.
나와 연하늘은 가는 길에 보이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았다.
그러고는 적당한 곳을 찾아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저기 괜찮지 않아?”
“마침 벤치도 비었네.”
1차 실기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어디를 가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자리를 찾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하나가 비었다.
우리는 얼른 그 자리로 뛰어가서 다른 사람들이 선점하지 못하도록 얼른 엉덩이를 붙였다.
“와, 예쁘다.”
“그러게.”
호수가 눈에 들어오는 명당이었다.
벤치에 앉은 우리는 호수 전경을 가만히 감상했다.
‘진짜 대단하기는 하네.’
이만한 규모의 호수가 부지 내에 2개나 더 자리하고 있었다.
금강 아카데미의 광대함을 자각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배도 고프니 밥이나 먹자.”
“자, 여기 네 거. 젓가락도 여기.”
“고마워. 아, 휴지를 안 챙겼네.”
“괜찮아. 내 가방 안에 있어.”
우리는 도시락을 개봉했다.
보존 마법이 걸려 있는 도시락은 만들어진 지 시간이 지났을 텐데도 여전히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 고기가 많네?”
“너는 고기만 찾는구나.”
“당근이지. 이게 밥심의 근간인데.”
“음… 뭐, 인정.”
식단 구성은 푸짐하고, 탄탄했다.
따로 무언가를 챙겨 먹지 않아도 속이 든든한 채로 2차 실기 시험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그대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렇게 맛있어?”
“내 입에 딱 맞는데?”
“내 고기도 먹을래?”
“아니야, 괜찮아. 너도 그거 먹고 힘을 내야 할 거 아니야.”
“그래도 내 거 먹고 싶으면 말해. 아, 나 젤리 가져왔는데.”
“밥 먹고 먹으면 되겠네.”
“여기 자판기, 딸기 우유 잘하네?”
“…밥이랑 그게 같이 넘어가?”
“얘는. 한 입 먹고 마시는 거거든?”
“밥 먹으면서 군것질이라니….”
“딸기 우유는 안 군것질이야.”
“그럼 뭔데.”
“…고기?”
“차라리 당근이라 해라.”
“사실 당근이야. 내 주식.”
호수 전경을 감상하며 먹다 보니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웠다.
우리는 그대로 점심을 먹고 나서도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2차 시험이 시작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슬슬 아티펙트나 차자.”
보조관에게서 받은 게이트 워치와 스크린 초커를 꺼냈다.
나는 그것들을 착용했다.
그런데 연하늘은 난항을 겪었다.
게이트 워치까지는 손목에 찼는데, 스크린 초커를 목에 채우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한 것이다.
연하늘이 눈살을 찌푸렸다.
“으…. 자꾸 머리카락까지 걸려서 다시 채워야 하잖아.”
어쩔 수 없다.
나는 연하늘을 도와주기로 했다.
“줘 봐. 내가 채워 줄게.”
“아… 그럼 부탁 좀 할게.”
“머리 좀 들어 봐.”
“머리가 아니라 머, 리, 카, 락.”
“어쨌든.”
내게 스크린 초커를 넘긴 연하늘.
그녀가 두 손으로 긴 머리를 잡고, 목덜미가 보이도록 들어 올렸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나는 자연히 목덜미에 난 잔털을 볼 수 있었다.
그것에 묘하게 눈길이 갔다.
“….”
“뭐 해, 안 하고?”
“아, 맞다.”
“…지금 무슨 생각한 거야?”
“이따 볼 시험 생각.”
“거짓말. 이상한 생각 했지?”
“그냥. 목선이 예뻐서.”
“….”
“초커 채울게. 가만히 있어.”
“으, 응….”
내 손이 연하늘의 목덜미에 닿자, 순간 그녀가 흠칫했다.
그녀의 떨림이 멎기를 기다린 나는 뒤에서 조심스럽게 새하얀 목덜미에 초커를 채웠다.
“길이 맞아? 안 조여?”
“조금 더… 조여도 될 것 같아.”
“이 정도는 어때?”
“…조금 끼어.”
“그럼 이 정도는?”
“응, 괜찮은 것 같아. 고마워.”
“이거 채우니까 몽실이 생각난다.”
“…갑자기?”
“내가 몽실이 목줄 채워 줬었는데, 너무 세게 조이지는 않았으려나…. 괜히 미안해지네.”
“저기, 꼭 나 목줄 채워 주는 듯이 말하지 말아 줄래? 기분이… 기분이 뭔가 좋다가 이상해지잖아.”
“몽실이가 너처럼 말이라도 했다면 꽉 조이면 조인다고 말했겠지?”
“나 토끼 아니거든!?”
“거기에다 이름이라도 적어 줄까? 연하늘이라고. 뒤에는 내 이름이랑 주소도 적고.”
“자꾸 장난칠래? 나 화낸다?”
“알았어, 장난 그만 칠게. 그러니까 마나 좀 거둬. 내가 미안해.”
연하늘이 체내 마나를 발현하자, 머리칼이 거꾸로 솟구치려 했다.
나는 즉각 목덜미에서 손을 뗐다.
“진짜… 혼날래?”
“대신 내 초커라도 채울래?”
“뭐? 흠… 나쁘지 않은 제안이네.”
“진짜 하게?”
“왜? 네가 먼저 하라며. 등 돌려.”
“그래, 마음대로 해라.”
“꽉 조여야겠다. 숨도 못 쉬도록,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하게. 다시는 나 놀리지 않게.”
“…나 죽으라는 소리야?”
“그러게 나한테 잘했어야지.”
“너한테 잘했어. 야, 너무 조였….”
“자, 나 따라 해 봐.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하늘아.”
“네 입으로 말하면 안 부끄럽…!”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하늘아.”
“예쁘고귀엽고사랑스러운….”
“말에 성의가 없잖아. 다시.”
“예쁘고… 귀엽고….”
…회피 본능이 발동할 것 같다.
발동해 줬으면 좋겠다.
“아! 나 뭔가 눈뜰 것 같아.”
“나는… 눈 감을 것 같아….”
그렇게 한참.
우리는 호숫가에서 시간을 보내다 2차 실기 시험을 보러 갔다.
[게이트에 입장했습니다.] [회색: 안개산 등정로 I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