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77)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77)
좀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법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체내 마나가 바닥이 나 버린 데다가, 마나 회로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그대로 억지로 마법을 펼쳤다가는 회로에 영구적인 손상을 야기하거나 마나 폭주를 일으킬 여지가 있었다.
지면에 처박힌 민아린은 처연하게 하늘이나 올려다보면서 어느 정도 힘이 회복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제법 시간을 까먹었다.
“씨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민아린이 구덩이에서 나왔을 때는 어느새 해가 지고, 하늘은 검푸르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반나절이 넘도록 땅속에 파묻혀 누워 있던 셈이다.
그녀로서는 침통하기만 했다.
시험은 20시간도 남지 않게 됐고, 자신은 수험표를 몽땅 잃고 말았다.
아카데미 입학 수석은 둘째 치고, 입학이나 할 수가 있느냐는 상황에 봉착하고 만 것이다.
한시가 급했다.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어떻게든 200점이라도 모아야 했다.
“괜찮아, 나 민아린이야. 200점? 흥, 내가 그것도 못 모으겠어?”
구덩이 속에서 한바탕 울었던 터라 더 이상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울어서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으며, 끝나기 전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하는 마법에 포기란 상상력을 제한할 뿐이다.
민아린은 당차게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는 수험생들을 찾기로 했다.
마침 3시간마다 알림음을 울리는 게이트 워치가 그녀의 주위에 있는 수험표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21:00:00] [반경 500m 내에 위치한 수험표를 모두 표시합니다.]“…여기로 가 보면 되겠네.”
시험이 내일이면 끝나기 때문인지 수험생들이 한곳에 몰리고 있었다.
민아린으로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녀는 욱신거리는 몸을 움직여, 수험표들이 밀집한 곳으로 향했다.
“진짜 많이도 모였네. 좋은데?”
감지망을 펼치니 곳곳에 자리 잡은 수험생들을 포착할 수 있었다.
민아린은 붉은 머리칼을 넘기면서 노란 눈을 빛냈다.
그녀의 입가에 자신감이 걸렸다.
저들의 수험표를 얻으면 200점은 거뜬히 넘길 수 있으리라.
“뭐, 뭐야!?”
“너희 수험표, 잘 가져갈게.”
그러나 자신은 마법사고, 혼자였다.
저들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다.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는 숲속에서 밤에 움직이는 건 위험하기도 했다.
민아린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숲속 외곽을 돌아다니며 인원이 적고, 다른 집단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수험생들을 기습했다.
‘꼭 좀도둑이라도 된 것 같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상황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프라이드가 상하고, 수치스럽고, 굴욕적이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살고 봐야 한다.
체면은 그다음이다.
민아린은 애써 생각을 뒤로하며, 수험표를 모으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잠도 자지 않고 쉼 없이 숲속을 돌아다닌 끝에 200점을 모을 수 있었다.
“거봐, 내가 누군데. 나 민아린이라니까?”
어찌 보면 민아린은 단순했다.
그녀는 그동안 겪은 수모는 잊고 자랑스러워하며 콧대를 세웠다.
그러고는 성적을 위해서 더 많은 수험표를 모으려고 했는데.
“이놈들이 갑자기 왜….”
숲속에 있는 몬스터들이 습격했다.
수험생들이 혼비백산하는 상황에 민아린도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수험표나 뺏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빠르게 결단을 내린 그녀는 뒤에서 기습을 가한 놈을 쓰러뜨렸다.
“….”
노란 눈이 슥 전장을 훑었다.
구해야 하는 수험생은 2명.
주위에 있는 몬스터는 5마리.
하이에나와 유사한 외형을 지닌 몬스터들이 자신을 포위하고 있었다.
[몬스터를 조우했습니다.] [그늘에나(Rank. 01) x 5]낮에는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밤이 되면 활동하는 몬스터였다.
“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한 민아린은 코웃음을 쳤다.
그녀가 한 손으로 붉은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너희 따위가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누군데….”
민아린이 손가락을 튕겼다.
화륵 하고.
그녀의 뒤에서 불길이 일었다.
갑작스럽게 인 불길에 놀란 놈들이 거리를 벌렸다.
불길을 등에 진 그녀는 놈들에게 지팡이를 겨눴다.
“날 무시하지 마.”
* * *
수험생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이가현은 본래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또한 그녀의 영혼은 완전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이가현과 칼부림을 벌이면서 그녀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개인 정보]이름: 박지희(이가현) (여자·17세).
이명: 이가현의 영혼 인형
소속: 미양 중학교
[보유 기프트]유연성
[신체 능력]체력: 35 → ?7
근력: 31 → 52
내구: 30 → 5?
민첩: 33 → ?4
마력: 27 → ??
행운: 12 → 27
잔여 포인트: 0
역시나.
능력치가 이가현의 영혼에 맞춰서 상승해 있었다.
아쉽게도 일부 숫자가 깨져 있어, 완전히 확인할 수는 없었다.
나와 이가현 사이에 격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적어도 나와 대등하다고 보는 게 나을 거야.’
실제로 이가현은 어려워하지 않고 내 공격에 대응하고 있었다.
쉴 새 없이 휘두르는 공격 앞에서 당황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고 있기까지 했다.
그녀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자꾸 어디를 보고 있는 거니? 나랑 있을 때는 나한테만 집중해야지. 이러면 서운한데?”
“큭!”
잠깐 상태창에 눈길이 간 사이.
이가현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서 곧장 허를 찔러 왔다.
그녀의 공격 궤도가 돌연 바뀌고, 나는 반사적으로 검을 쳐 냈다.
그때 다른 손으로 쥐고 있던 검이 시야 바깥에서 들어온 것이다.
파직!
다행히 회피 본능이 발동했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칼날을 스치며 반격을 가하려고 했다.
“반사 신경은 말도 안 되게 좋네. 너처럼 잘 피하는 애는 처음 봐.”
하지만 이가현이 더 빨랐다.
발을 뻗어 회전을 멈춘 내가 미처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그녀가 대뜸 품속으로 달려든 것이다.
시야에 자세를 낮춰 접근한 그녀가 혀로 날름 입술을 핥는 게 보이고, 등 뒤로 뻗은 두 팔이 채찍처럼 움직이는 게 보였다.
“너희 검술은 말이야, 정말 강해. 그리고 빠르지. 검술명가 중에서는 으뜸이란 평가를 받을 만해.”
“…!”
“하지만 말이야.”
오른쪽에서 칼날이 솟구친다.
나는 검을 휘둘러 막아 냈다.
이어서 왼쪽에서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오른쪽.
이가현은 조금 전에 내가 그랬듯 쉴 새 없이 쌍검을 휘두르며 나를 몰아붙였다.
나는 그녀의 검을 막는 데 급급해 공격식을 펼칠 수 없었다.
“휘두를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니? 특히 너희가 자부심을 가진 벽뢰는 올곧은 동작과 균형적인 힘의 조절로 일어나는 거 아니니?”그래서 수왕류에는 공격식 외에 방어식, 고유식, 특식이 있는 것이다.
나는 키득거리는 그녀를 무시하며, 소용돌이를 그리듯 걸음을 물렸다.
[수왕류 방어식 제5형>사자 윤무(獅子 輪舞).
처음에는 반보에 불과했던 보폭이 천천히 늘어났다.
그만큼 회전 범위도 조금씩 커졌다.
나를 몰아붙이는 것에 집중한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게 무슨…. 어느새…!”
“수왕류에는 쾌와 강뿐만 아니라, 환과 유(流)도 있는 법이거든? 우리 검술을 멋대로 단정 지으면 곤란하지.”
이가현이 내 의도에 넘어가 둘이서 소용돌이를 그리듯 춤을 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상황이 역전된 뒤였다.
소용돌이 중심에서 공격을 막던 나는 소용돌이 밖으로 나와 있었고, 반면에 소용돌이 밖에 있던 그녀는 소용돌이 중심에 서 있었다.
나한테 공격을 유도당하는 사이에 서로의 위치가 뒤바뀌게 된 것이다.
이제 그녀는 공격을 몰아붙이는 게 아닌, 공격을 막는 위치에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런 한편.
파직!
나와 이가현이 만든 소용돌이 주위로 푸른 전류가 튀고 있었다.
벽뢰다.
사자 윤무의 보법을 펼치게 되면서 생겨난 것이다.
그 전류는 소용돌이의 흐름을 따라 그녀가 선 위치로 흐르고 있었다.
“크윽!”
이가현이 무언가 위험을 감지하고 소용돌이의 흐름에서 벗어나려 해도 소용없었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흐르던 벽뢰는 이미 그녀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가 어디로 도망을 치든….
[수왕류 공격식 제1형>사자 열참
수왕류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사자 윤무로 인해 생겨난 벽뢰는 다른 벽뢰를 불러들이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내 수준으로 한 번이 한계였지만.
내가 이가현이 사라진 방향으로 참격을 날리자, 참격은 알아서 움직여 그녀에게로 날아갔다.
“…!”
이가현이 당황하며 참격을 막았다.
그녀가 그 힘을 이겨 내지 못하고 뒤에 있던 나무 기둥에 부딪쳤다.
그리고 그때.
피융!
그동안 현란하게 검을 섞던 우리를 보고 있던 고은비가 화살을 쏘았다.
그녀에게 경계심을 품고 있지 않던 이가현은 뜻밖의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화살이 왼팔에 박혔다.
거리를 벌리고 힐끗 팔에 박힌 화살을 살핀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끼어드는 건 싫은데….”
이가현이 화살을 뽑아 뒤로 던졌다.
그녀가 체내 마나를 발현하자, 상처는 금세 아물었다.
그녀의 시선이 내 뒤에 있는 고은비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향했다.
“너희도 방해니까 꺼져 줄래?”
이가현이 꺼낸 말에 숲이 요동쳤다.
몬스터들이 짖는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굳이 기감을 넓히지 않아도 주위에 있던 몬스터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견우야! 어서 도망….”
고은비의 말은 도중에 끊겼다.
근처 수풀에서 하이에나처럼 생긴 몬스터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몬스터를 조우했습니다.] [그늘에나(Rank. 01) x 4]그놈들을 시작으로 몬스터들이 잇달아 나타나 우리를 포위했다.
이가현은 포위망 밖에서 흥겹다는 듯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렴. 얘네가 너한테는 아무 해도 끼치지 않을 테니까.”
“….”
“그런데 쟤네들은 모르겠네?”
아무래도 이가현은 놈들을 부려서 내 일행을 견제하려는 듯했다.
그들을 지키며 싸워야 하는 내게는 불리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나는 과감하게 결단했다.
“은비야, 애들 데리고 도망쳐.”
“뭐?”
“괜히 여기에 발이 묶여 있다가는 몬스터들이 더 몰려들기나 할 거야. 그러니 너희는 피해.”
“너는 어떻게 하고!”
“쟤가 말했잖아. 몬스터는 내가 아니라 너희를 노리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너희 안위를 최우선으로 삼도록 해.”
“하지만….”
“그리고 그냥 도망치란 것도 아니야. 아까 너한테 한 말 기억하지? 부탁할게.”
“…알았어. 따를게.”
내 예상보다 이가현이 더 강하거나,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해서 일행을 지킬 수 없는 경우를 가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그럴 경우에 대비해 사전에 고은비에게 일러두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반대하려던 그녀가 체념하듯 수긍했다.
“내가 길을 열어 줄 테니 너희는 그 틈에 피하도록 해!”
나는 포위망이 가장 약한 곳으로 질주하듯 나아갔다.
군청검이 푸른빛을 발했다.
[수왕류 공격식 제5형>사자 맹공
길을 뚫는 데 이만한 검술은 없다.
번개 모양의 궤적으로 움직인 나는 몬스터들을 소멸시켰다.
주위에 있던 놈들이 소스라치면서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포위망에 구멍이 뚫렸다.
“지금이야!”
“얘들아, 가자! 견우야! 혹시라도 무리하지 마!”
내가 뚫어 준 길로 고은비가 일행을 이끌고 달렸다.
그녀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고, 내 검을 피해 달아난 놈들이 얼른 그들을 뒤쫓았다.
이내 나는 그들이 사라진 방향에서 눈을 돌렸다.
이가현이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제 우리 둘밖에 남지 않았네?”
“잘된 일이지. 이제 마음 편히 널 죽일 수 있을 테니까.”
“어머,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니? 내 수험표를 빼앗겠다는 것도 아니고 죽이겠다니….”
“진짜 죽일 건데?”
“….”
“죽이지 말란 법도 없잖아? 그냥 죽이고 나서 수험표를 뺏지, 뭐.”
“이상하다? 신검 도가의 사람은 되도록 살생을 지양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너는 유별나구나?”
“무분별한 살생을 지양하기는 하지. 그런데 너는 무분별한 살생에 포함되지 않을 것 같다만.”
“그게… 무슨 소리일까?”
“마인회의 마인은 척결 대상이지.”
“….”
“그게 육마라면 더더욱. 안 그래? 인형귀녀 이가현.”
이가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으며, 올라갔던 입꼬리가 내려갔다.
“…어떻게 알았니.”
스산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눈앞에 있는 그녀가 눈매를 좁히며 위협하듯 물었다.
그녀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어떻게 알았기는. 그게 궁금해?”
“….”
“궁금하면 덤벼. 간이라도 보듯이 내 실력을 평가하려고 하지 말고. 그러다가 도중에 도망칠 생각인 걸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그럼 안 되지, 나한테서 도망치면.”이 상황에서 이가현을 놓쳐 버리면 다시는 찾을 수 없다.
그러니 그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그녀를 자리에 붙들어 놓을 미끼를 던져야 했다.
그 미끼가 바로 그녀의 정체였다.
“후회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도망치지나 마시지.”
이가현의 눈이 붉게 빛난다.
그녀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세로 바짝 거리를 좁혀 온다.
나는 그녀를 쫓아 검을 휘둘렀다.
[프레셔에 노출됐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8% 감소합니다.] [스킬 ‘담력 Lv 5’가 발동합니다.] [프레셔에 의해서 하락한 능력치를 13%까지 보전합니다.] [감소한 능력치가 복구됩니다.] [스킬 ‘담력 Lv 5’에 의해 집중력, 회피율이 13% 상승합니다.]* * *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종도, 성향도, 생태도 다른 놈들이 서로 충돌하는 일 없이 수험생들을 습격하고 있는 상황이 꺼림칙하다.
‘이건 대체….’
숲에서 자신은 알지 못하는 무언가 이변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
도견우의 소식을 따라 이곳까지 온 연하늘은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토끼 귀가 연신 쫑긋거리며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를 포착했다.
도견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몬스터의 수가 너무 많다.
혼림섬에 있는 몬스터들이 전부 다 이곳으로 몰리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몬스터는 마나에 이끌린다.
본능이다.
그러니 수험생들이 무의식적으로 흘리는 마나는, 그들의 감정 기복이 심해지며 격렬히 발산되는 마나는, 그들이 마법을 전개하고 대기에 잔류하게 되는 마나는 놈들의 본능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놈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말도 마냥 과언이 아닌 것이다.
‘주위에 있는 기척이 너무 많아서 감지망으로도 찾을 수 없어.’
그러자니 연하늘은 어딘가에 있을 도견우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속으로 조바심을 느끼면서,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보이는 족족
쇠망치로 내리찍었다.
“하늘! 정말 여기에 있는 걸까요!? 혹시 견우가 피신한 건….”
“아니야, 그럴 리는 없어. 견우는 아직 이 숲에 있을 거야.”
놈들이 단체로 덮쳐 온다.
리사는 재빨리 전방에 방벽을 펼쳐 놈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그사이 방벽 속에서 마법을 영창한 연하늘이 놈들을 단숨에 불살라 버렸다.
그들은 곧장 어둠 속을 달렸다.
“괜히 억지로 따라오지 않아도 돼.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어.”
“…아니에요. 하늘의 말대로 정말 이 숲에 견우가 있다면 도와야죠. 하늘 혼자 보내기도 위험하고요.”
도견우는 분명 이곳에 있다.
소꿉친구로서 5년을 알고 지낸 연하늘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 해도, 견우가 수험생 전체를 적으로 돌리며 수험표를 뺏으려 할 리는 없어.’
연하늘이 알기에.
도견우는 섣불리 상대를 도발하는 인물이 절대 아니다.
만약 그가 누군가를 도발했다면, 그 행위 이면에는 다분히 계산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가 수험생들을 도발하며 수험표 쟁탈전을 벌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
‘뭘 노리고 있는 거지?’
연하늘은 생각에 잠겼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그는 수험생들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소문을 들은 수험생들이 그의 주위를 포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을 달리 뒤집으면 그는 자신이 표적이 된 것으로 그들을 끌어들였다고도 할 수 있다.
‘누군가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그녀는 한 가지 생각을 도출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왜 끌어들이려는 거지? 그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도견우의 인간관계라면 알고 있다.
그가 수험생들 중에서 인연이 있는 애는 얼마 되지 않는다.
자신이나 세쌍둥이, 고은비, 리사, 용해랑, 도견우의 사촌 도승우 등.
그런데 굳이 그들을 끌어들이려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끌어들일 방법이라면 다양하다.
이런 방법을 취했다는 것은 상대와 친분이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리라.
‘그럼 친분이 없는 사람을 뭐 때문에 끌어들이려고 한 거지?’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 상대와 싸우기 위해서다.
‘왜? 뭐 때문에?’
생각을 정리하자면.
도견우에게는 친분도 없는 상대와 싸워야 할 이유가 존재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
하지만 그는 이따금 그랬다.
이해할 것 같다가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소꿉친구 도견우였다.
그와 알고 지낸 5년 동안.
그는 이따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벌이고는 했었다.
이번 일도 그런 것일 수 있다.
처음만 해도 그에게 의문을 품다, 이제는 그러려니 받아들이게 된 그녀는 기억을 돌아보았다.
‘그럼 내가 해야 할 일은….’
연하늘은 거기에서부터 추론했다.
무언가 비밀을 품고 있는 도견우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 이상, 다만 자신은 자신 나름대로 판단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윽고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
“허를 찔러야겠네.”
“네? 지금 뭐라고 했나요?”
“견우를 찾더라도 다가가지 말고 일단 지켜보도록 하자. 아마 견우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이 소동과도 관계가 있을 거야.”
“하늘, 그게 무슨….”
“아마 얕볼 수 없는 상대일 거야. 그러니 우리는 허를 찌르자.”
붉은 눈에 힘을 주며.
연하늘은 어둠 속을 들여다보았다.
* * *
한편, 수험생들이 움직이는 흐름을 거스르고 있는 것은 리사와 연하늘,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연성 남가의 남유리.
도견우에게 수험표를 빼앗긴 그녀 역시 숲속에 있었다.
“와아! 몬스터 반, 수험표 반이다!”
딱히 자신의 수험표를 되찾기 위해 도견우를 찾아온 것은 아니다.
그가 몸에 덕지덕지 달고 있다는 수험표를 빼앗기 위함도 아니다.
다만 그녀는 그에게 꼬이고 있는 수험생들을 사냥하러 왔을 뿐이다.
덕분에 단기간에 많은 양의 수험표를 모을 수 있었다.
시험에 합격하는 데 필요한 점수는 다 모으고도 충분히 남았다.
그때 숲속에 살고 있던 몬스터들이 습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얘네들이 왜 이러지? 모르겠네!”
남유리는 의아해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몬스터를 망설임 없이 죽일 수 있어 좋을 따름이었다.
살아 있다는 자극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도망치는 수험생들과 달리 희희낙락하며 닥치는 대로 놈들을 죽여 댔다.
놈들에게서 튄 피가 회색 머리칼에, 하얀 원피스에 묻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 뜬금없는 생각에 도달했다.
“혹시 견우견우 때문에 몰려든 건가? 견우견우의 주위에 있으면 정말 재미있는 일이 끊이지 않는구나!”
아하하, 아하하.
살아 있다는 자극에 취한 남유리는 미친 듯이 웃으며 숲속을 뛰었다.
그녀는 수험생들의 흐름을 거슬러 숲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씨…. 이러다 수험표는 못 모으고 몬스터만 사냥하게 생겼네.”
마도 민가의 민아린.
“도견우! 조금만 기다려라!”
의협 용가의 용해랑.
“내가 견우를 도와야 해.”
‘자칭’ 아싸, 고은비.
“하늘! 2랭크예요! 조심하세요!”
이세계 제국의 황녀.
리사 그레이스.
“괜찮아, 혼자서도 죽일 수 있어. 금방 끝날 거야.”
칠색의 마녀의 제자, 연하늘.
“아하하!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면 뭐가 나오려나?”
연성 남가의 남유리.
어쩌다 보니 게임 주요 캐릭터들이 도견우에게로 집결하고 있었다.
“시끄러….”
순환 차가의 차은솔.
그녀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