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Childhood Friend of the Middle Boss RAW novel - Chapter (90)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90)
감람석 기숙사.
강한별은 카드에 적힌 숫자와 같은 호실을 찾아갔다.
카드를 문고리에 있는 센서에 대자 녹색 불이 들어오는 한편, 안쪽에서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딸칵.
이 방이 맞는 모양이다.
강한별은 살며시 문고리를 당겨서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우와, 좋은데?”
어깨에 멘 가방을 바닥에 내리고, 캐리어에서 손을 놓은 그는 감탄사를 흘렸다.
태백산에서 생활한 집과 비교하면 방은 많이 비좁은 편이었다.
한쪽 벽면에는 옷장과 책걸상이, 반대편 벽면에는 2층 침대가 있어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협소했다.
폭으로 따지면 성인 남성 2명이 나란히 누울 수 있을 정도일까.
그럼에도 강한별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방 안의 설비가 그동안 살던 집보다 훨씬 좋았으니까.
쏴아아.
“오…. 물도 잘 나오네.”
그는 그동안 산속에서 살았던 탓에 수도 시설로 문제를 겪고는 했었다.
물줄기가 세지 않아서 어느 때는 졸졸 떨어지는 물로 씻어야 했고, 설거지를 하다 물이 나오지 않아 도중에 냇가로 나가서 씻어야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문제였다.
화장실이 막히는 일이 부지기수라, 그럴 때마다 번번이 뚫어야 했다.
당연히 사부가 나설 리 없었으니, 그 모든 일은 강한별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화장실도 잘 내려가는 걸 보면… 웬만해서는 막힐 일은 없겠지.’
어느 정도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인간의 자연적인 생리 현상도 마나로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은 장기적으로 사용하면 신체 기관에 악영향을 끼칠 뿐이고, 나아가 인간이라는 존재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먹고, 자고, 싸는 것이 생명체의 욕구라고 할 수 있다.
감정과 이성을 겸비하고 사고하는 인간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욕구를 거세한다는 것은 곧 자신이 자신이기를 포기했다는 말과 진배없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된다.
극단적으로는 인간의 욕구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셈이다.
사부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제나 자신이 인간이란 사실을 잊지 말거라. 마나의 신비에 매몰된 사람의 말로는 좋지 않을 뿐이니까.
사부, 서정진의 가르침이었다.
강한별은 그 가르침을 따랐다.
애초 마법은 상상력에서 기인하고, 다양한 상상력은 감정에서 비롯됐다.
욕구를 거세하고, 감정을 잃고 만 인간에게서는 다양한 상상력을 기대할 수 없었다.
마법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정도를 지킬 줄 알아야 했다.
만족스럽게 화장실을 둘러본 그는 짐을 둔 곳으로 돌아왔다.
‘나랑 같이 방을 쓰는 애는 어디 나가 있나 보네.’
2층 침대로 시선을 향했다.
아래층에 옷가지가 놓여 있었다.
근처에 캐리어도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과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는 먼저 도착한 것 같았다.
방 안에서는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밖에 나가 있는 모양이다.
인사는 나중에 해야 할 듯싶었다.
그렇게 판단한 강한별은 슬슬 짐을 풀기로 했다.
‘아래층 침대를 쓰고 싶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위층이나 쓰자.’
안타깝게도 아래층 침대는 이미 룸메이트가 차지하고 있었다.
강한별은 아쉬워하며 위층 침대를 사용하기로 했다.
위층 침대에 오른 그는 벽에 설치된 선반에 개인용품을 놓았다.
그중에는 가장 최근에 사부와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며 다짐했다.
“두고 보세요. 제가 꼭 사부님보다 강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증명할 테니까요.”
십가문의 수장들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지고 있는 투귀 서정진.
그의 제자인 강한별은 최강이 되어 세간의 인식을 바꾸는 것을 꿈꿨다.
이윽고 침대에서 내려온 강한별은 마저 짐을 정리했다.
가지고 온 짐이 많지 않다 보니 정리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할 일이 없어진 그는 베란다로 나가 밤바람을 쐤다.
‘여기서 3년을 보내는 거구나.’
어둠 속에서 불빛들이 보였다.
다른 기숙사에서 켜진 불빛이었다.
강한별은 멍하니 경치를 구경했다.
문이 열린 것은 그러던 중이었다.
“아, 네가 내 룸메구나. 안녕?”
테가 가는 안경을 쓴 남학생이었다.
양손에 묵직해 보이는 봉지를 든 그가 강한별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교성이 좋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안녕! 한 학기 동안 잘 지내보자! 나는 강한별이라고 해.”
“박사군이야. 계통은 방패술이고. 나야말로 잘 지내보자.”
“방패술이면 가디언 지망인 거지?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아.”
“그렇게 말해 주다니 고마워. 너는 어느 계통으로 입학하는데? 느낌상 검술 같은데….”
“맞아, 일단은 검술 계통이야.”
“일단은?”
“나한테 더 잘 맞는 계통이 있으면 계통을 바꿀 생각도 있거든.”
“중등아카데미라면 모를까, 되도록 한 계통으로 쭉 밀고 나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니면 복수 계통을 전공해도 되고. 아, 미안. 초면에 너무 참견한 것 같네.”
“그런 것은 신경 안 쓰니까 괜찮아. 편하게 팍팍 말해 줘. 나도 그럴 테니까.”
2층 침대 앞에 서서 악수하며.
두 사람은 통성명을 주고받았다.
가디언을 지망하고 있다는 것답게 박사군은 강한별보다도 키가 크고, 어깨도 넓어서 듬직해 보였다.
다만 체격은 우락부락하지 않고, 다소 마른 편에 속했다.
안경을 쓴 얼굴은 지적인 분위기를 주고 있었다.
전형적인 가디언으로 알려져 있는 인상과는 달랐다.
반전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때, 그가 안경테를 치켰다.
“그런데 이름이 강한별이라 했지? 내 기억으로는 투귀님의 제자도 너랑 같은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혹시….”
“맞아, 내 사부님이셔.”
“…역시 본인이 맞았구나. 세상에, 내 룸메가 투귀님의 제자일 줄이야….”
빛나는 안경에 눈이 가려진 채로.
강한별의 정체를 파악한 박사군이 호기심을 보이듯 입가를 끌어 올렸다.
그가 대놓고 호의를 표했다.
“내가 운이 좋은 모양이네. 이렇게 만나게 된 거 서로 친하게 지내보자고. 그나저나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아직 장은 보지 않았겠네.”
“장?”
“집에서 쓰는 물건들을 기숙사로 다 보낼 수는 없으니, 생필품 같은 것은 따로 사야 하잖아. 그래서 시내로 나가 자취하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오는 길인데…. 너도 뭐 사야 하는 게 있지 않아?”
“음, 그런가.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안 그래도 내일 또 시내로 나가서 오늘 못 산 물건을 사려고 하는데 시간 되면 같이 안 갈래? 내가 길 안내를 해 줄 수 있는데.”
“응? 그래? 그래 주면 나야 좋지.”
박사군이 살갑게 권유했다.
마침 학원도시를 구경하고 싶었던 강한별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선뜻 받아들였다.
“그러면 내일 아침 먹고 출발할까. 혹시 뭐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봐.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한데, 내가 좀 잡다하게 아는 게 많거든. 학원도시나 금강 아카데미에 대해서나, 올해 입학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나. 내가 아는 범위에서 알려 줄게.”
“정말? 그럼 금강 아카데미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아?”
강한별은 학원도시란 세상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박사군이 꺼낸 말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한편, 박사군은 즐겁게 반겼다.
그가 워낙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라면 이사장님밖에 없지. 별의 마녀라는 이명을 지닌 소혜율 이사장님은….”
“학생 중에서는?”
“전체 학년에서라면 올해 취임한 도시은 학생회장이지. 신검 도가의 벼락꽃. 대외적 명성도 그렇고, 실력도 그렇고 이견을 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같은 학년에 있는 십가문의 사람들도 도시은 학생회장에게는 한 수 접는다는 모양이더라고. 애초 랭킹 1위이니 굳이 말할 필요가 없지.”
“랭킹 1위란 게… 이 아카데미에서 제일 강하다는 거지?”
“맞아. 거기서 조금 과장을 보태면 학원도시에 있는 아카데미 학생들 중에서 1위라고 할 수도 있지. 학원도시에서 제일가는 아카데미의 랭킹 1위니까.”
“그럼 1학년들 중에서는?”
“음…. 1학년은 아직 정보가 없어서 확실하게 판단할 수 없어. 그래도 입학시험 결과로 본다면 현재로서는 수석과 차석이 유력한 후보야. 그다음은 10계통 수석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수석과 차석이 누구인데?”
“수석은 마법 계통의 연하늘이야. 칠색의 마녀님의 제자로서 유명하지.”
“마법 계통인가…. 검술 계통은 없어? 차석은?”
“차석이 검술 계통이야. 이쪽도 도시은 학생회장처럼 신검 도가의 사람이야.”
“이름이 뭔데?”
서정진은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십가문의 가주들과 비교되고는 했다.
그때마다 그는 주로 맞수 내지 아랫수로 여겨졌지만.
그러다 보니 제자인 강한별로서는 그들에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신검 도가의 가주에게는 특히나.
―생사가 오가는 전투를 벌일 때, 가장 조심해야 할 상대를 뽑으라면 나는 도예익 그놈을 뽑을 것 같구나. 현재 신검 도가의 가주 말이다. 워낙 변화무쌍한 놈이니까.
―사부님보다도요?
―당연히 내가 더 변화무쌍하지! 하지만 내가 온갖 잡기로 그렇다면, 그놈은 검술 하나만으로 해결해 버리거든. 이 세상에서 검술로 그 녀석을 따라갈 자는 아마 없을 거다.
서정진이 그렇게 말했을 정도로, 그는 신검 도가의 가주 도예익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강한별은 자신과 같은 세대를 살아갈 신검 도가의 사람에게 호승심을 느꼈다.
강한별은 박사군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에 귀를 기울였다.
“도견우라고 해. 입학시험 전까지는 래빗이니 사자 새끼니 하는 이명으로 조롱받기도 했었지만 이번에 차석으로 입학하면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증명한 사람이야. 내 생각으로는… 장래성은 도시은 학생회장에게 버금가지 않을까 싶어. 아니면 그보다 더하거나.”
“…도견우라고 하는구나.”
도시은 그리고 도견우.
강한별은 잊지 않기 위해서 속으로 두 사람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들을 만나는 순간이 기다려졌다.
* * *
입학식 아침이 밝았다.
나는 연하늘의 모닝콜을 받고서는 잠에서 깨야 했다.
내 목소리는 착 잠겨 있었다.
“여보세요….”
[잘 잤어?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그만 일어나.]“…하늘이구나. 지금 몇 시야?”
[지금이 몇 시냐면….]“나 10분만 더 잘게…. 그러니까 10분 있다가 깨워 줘….”
[에휴…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딱 10분만이야?]“응….”
간밤에 용해랑이 들이닥쳤었다.
내일이 입학식이라 기대가 된다며 잠이 오지 않는다던 그는… 아니, 그놈은 나를 헬스장으로 끌고 갔다.
졸지에 나는 그놈이랑 새벽까지 땀을 흘리며 운동해야 했다.
그렇게 열심히 몸을 움직였으니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몽롱한 정신으로 연하늘에게 사정한 나는 곧장 의식이 떨어졌다.
그대로 10분 동안 푹 자려고 했건만, 10분은 너무나도 짧았다.
다시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으으….”
[10분 지났어. 이제 일어나.]“나 5분만 더….”
[안 돼. 지금도 많이 늦었어.]“….”
[지금 자는 거 아니지? 자면 안 돼. 자지 마. 일어나. 견우야? 학교 가야지.]“우리 이제 학교 안 다니잖아….”
[일어나, 견우야. 아카데미 가야지.]“얼른 졸업하고 싶다….”
[우리 아직 입학도 안 했어.]“후….”
[착하지. 견우 어린이, 일어나야죠. 계속 자면 맴매할 거예요?]“…하늘아.”
[응? 일어났어? 왜?]“너 목소리 예쁘다.”
[…응? 아, 아침부터 무슨 소리야! 깜짝 놀랐잖아!]“귓가에서 들리니까 자장가 같아….”
[안 돼! 자지 마! 눈 떠!]“입학식 선서는 너한테 맡길게….”
[아니야. 안 돼…. 도견우 어린이, 제발 그러면 안 돼요. 일어나세요….]“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일어났나 보네. 장난칠래?]“너랑 대화하다 보니까 잠이 깨네. 잘 잤어?”
[치이. 응.]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바꾸며.
나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커튼을 치니 입학식에 어울리는 화창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오늘 날씨 좋네.”
[날도 춥지 않아 좋은 것 같아. 씻어, 얼른.]“그래야겠네. 어디서 만날까?”
[엘리베이터 앞에서. 너 나올 때쯤에 맞춰서 기다리고 있을게.]“알았어. 이따 봐.”
[교복 입는 거 잊지 말고.]“응, 끊을게.”
[응.]하나, 둘, 셋….
나는 여운을 남기듯이 마음속으로 10초를 세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전화를 바로 끊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끊으면 대놓고 따지지는 않더라도 삐치거나 뾰로통해했다.
‘반대로 10초를 세고 끊으면 그날은 나한테 조금 더 잘해 주지.’
연하늘과 5년을 알고 지냈다 보니 이런 면도 발견하게 됐다.
그녀의 심리에는 도가 텄다.
연하늘 심리학이란 게 존재한다면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지 않을까.
가볍게 키득거린 나는 화장실에서 깨끗이 몸을 씻었다.
머리를 말리고, 몸을 닦고 난 후에는 바디 스프레이를 뿌렸다.
연하늘, 고은비, 리사가 권유해서 사게 된 바디 스프레이였다.
‘향기가 좋기는 하네.’
누가 골라 준 향인지는 모르겠다.
쓰기 전에는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몸에서 향이 나니 산뜻했다.
비싼 만큼 돈값은 하는 것 같다.
이내 나는 교복을 갈아입었다.
“흠…. 괜찮네.”
전신 거울 앞에 선 나는 찬찬히 옷차림을 확인했다.
하얀 와이셔츠와 붉은 넥타이.
그 위에 베이지색 조끼.
겉옷으로는 회색 블레이저 재킷.
하의로는 군청색 슬렉스.
게임의 고인물이었던 사람으로서 게임에 나오는 교복을 입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이윽고 거울에서 몸을 돌린 나는 검은 부츠를 신고 나갔다.
[여보세요?]“하늘아, 나 지금 나왔어.”
[알았어. 그럼 나도 나갈게.]연하늘에게 전화를 걸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1층으로 가는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바로 아래층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고, 연하늘이 서 있었다.
“….”
“왜 그래?”
“아니…. 교복이 잘 어울려서.”
“그래? 고마워.”
“응, 예쁘네.”
“…처음 보는 것도 아니지 않아? 저번에 같이 교복 맞출 때도 봤으면서….”
“그때 보는 거랑 지금 보는 거랑 다른 거지. 그리고 그때는 수선도 안 했었잖아.”
여학생의 경우, 본인 선택에 따라 바지나 치마를 입을 수 있었다.
바지는 내가 입은 바지와 같았고, 치마는 연하늘이 입고 있는 것처럼 화사한 연분홍색이었다.
아래로는 검은 스타킹이었고.
한편 그녀는 붉은 넥타이가 아닌 붉은 리본을 목에 걸고 있었다.
나는 한참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나를 뚫어져라 보았다.
붉은 눈이 나를 스캔하는 것처럼 위에서부터 아래로 이동했다.
“넥타이가 헐렁하잖아. 잘 매야지.”
“목이 답답해서 이렇게 맨 거야.”
“이따 입학식에서 선서해야 하는데 그러고 있으면 보기 그렇잖아.”
“그럼 그때 가서 다시 조….”
“…응, 됐다. 단정해서 보기 좋네. 그리고 바디 스프레이 뿌렸구나? 향기 좋네.”
“그래?”
내가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가까이 다가온 연하늘이 손을 뻗어 내 넥타이를 바짝 조였다.
그녀가 다시 내 상태를 확인하고는 만족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까이 다가와 냄새를 맡고 나서는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래도 좀 답답한데….”
“오늘만이라도 그러고 있어.”
나는 연하늘의 온기가 남아 있는 목덜미를 문질렀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눈치가 보여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우리는 1층 식당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이 없어서 좋네.”
“1시간 일찍 나왔으니까.”
수석, 차석으로 입학하는 우리는 입학식 예행연습을 치러야 했다.
그러다 보니 1시간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온 것이다.
우리는 한산한 식당을 둘러보며, 식판을 집어 음식을 퍼 갔다.
아침은 두 종류였다.
계란프라이, 소시지볶음, 김치, 국, 밥 등이 있는 전형적인 한국 식단.
스크램블 에그, 식빵, 모닝빵, 우유 시리얼, 베이컨, 각종 잼이 있는 서양 식단.
두 종류와 별개로 구석에 컵라면도 종류별로 있기는 했다.
물론, 아침부터 컵라면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한국 식단을, 연하늘은 서양 식단을 선택하고 자리를 잡았다.
“입학식 선서라니…. 하기 싫어….”
“아직도 그 소리야? 이제 받아들여. 가서 연습하면 나아지겠지.”
“정말 그럴까? 그러겠지?”
“일단 밥이나 먹자.”
“긴장돼서 밥도 안 들어가.”
“나 그럼 모닝빵 먹어도 돼?”
“…너는 아침부터 잘 먹는구나.”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니까.”
드링크바도 있었다.
나는 아침을 먹다 도중에 일어나서 연하늘이 마실 음료까지 가져왔다.
“자, 이거라도 마셔.”
“고마워. 차가 따뜻해서 좋다.”
“앉아 있다 시간 되면 일어나자.”
“응.”
어느새 아침을 다 먹었다.
우리는 창가를 보고 음료를 마시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바로 예행연습을 하러 가지 않는 이유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기도 했지만, 이제 곧 발표될 반 배정 때문이었다.
“이제 3분 있으면 발표네.”
“으…. 같은 반이 됐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으면 좋긴 하겠는데….”
연하늘은 나와 같은 반이 되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안타깝게도 가능성은 희박했다.
반 개수가 50개를 넘어갔으니까.
‘한 반의 인원이 50명이니까….’
1학년 전체 인원이 최소로 잡아도 2,500명 이상이었다.
그중에 우리가 같은 반이 되기란 기적에 가깝다고 해야 했다.
“그래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반이었잖아.”
“뭐… 그건 그렇지. 근데 하늘아, 이번에는….”
“자꾸 초 칠래? 아니면 나랑 같은 반이 되고 싶지 않은 거야?”
“…아니. 나야 당연히 너랑 같은 반이 되고 싶지.”
연하늘이 째릿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그녀를 달랬다.
“이번에도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기적이 일어나기를 빌자.”
“응. 제발… 기적아, 일어나라….”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연하늘이 두 손을 모은다.
그 모습이 귀여웠다.
나는 눈을 감고 기도하는 그녀를 몰래 사진으로 찍었다.
드디어 반 배정 결과가 발표되는 시간이 됐다.
우리는 금강 아카데미 홈페이지에 들어가, 반 배정 공지를 찾았다.
‘결과 확인’ 버튼을 눌렀다.
정보 입력란이 나타났다.
[성명]: [생년월일(8자리)]: [결과 조회]성명과 생년월일을 입력했다.
이제 결과 조회만 누르면 됐다.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확인하는 거야. 알았지?”
“알았어. 그런다고 결과는….”
“스읍.”
“기적이 일어나길 빌면서 누르자.”
“좋은 생각이야.”
연하늘이 심호흡을 한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두고, 머리를 맞대다시피 고개를 숙였다.
이내 그녀가 신호했다.
“기적아, 제발 일어나라. 하나.”
“기적아, 일어나라….”
“두울. 제발 제발 기적아….”
“….”
“세엣! 기적아, 제발!”
거의 동시에.
우리는 결과 조회 버튼을 눌렀다.
다른 사람들도 반을 확인하느라고 서버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화면이 하얗게 물든 채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적이 일어나 줘….”
“….”
연하늘은 그사이에도 기도했다.
그리고 잠시 후, 화면이 바뀌고 반 배정 결과가 떠올랐다.
우리는 얼른 반을 확인했다.
[당신의 한 해를 응원합니다. 도견우 학생은 1학년 17반에 배정되었습니다.] [당신의 한 해를 응원합니다. 연하늘 학생은 1학년 8반에 배정되었습니다.]“….”
정적이 일었다.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연하늘을 살폈다.
“기저기… 일어나지 않았어….”
연하늘이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저귀… 필요해….”
토끼 귀가 축 처지며.
연하늘이 울먹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