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10
10
위에서 거대한 폭포를 터뜨린 듯한 어마어마한 효과에 큰불은 당장 꺼졌다.
그렇지만 잿더미는 그 위에 서 있기만 해도 신발 밑이 타들어 갈 정도로 뜨거웠고, 불티가 사방으로 날렸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얼마 못 가 또 불이 날 수 있었다.
뭐가 문제인지는 알겠는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름다운 힘을 한번 발현했으면 마무리도 아름답게 하고 싶었다. 그 마법이 일어날 때는 정말 멋있었지만 얼마 후 다시 불이 났다, 이런 마무리 말고.
나는 흘끗 레오파라를 돌아보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샘에 엎드려 얼굴을 씻고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몹시 불편한 자세였다.
왜 저러나 했더니, 샘의 크기가 확 줄어 있었다. 크지도 않은 샘에서 너무 한꺼번에 많은 물을 빼다 썼던 모양이다.
그럼 다시 저기서 물을 빼서 같은 마법을 쓰기도 힘들 텐데.
그런데 생각을 좀 하려도 땀이 날 정도로 더워서 집중하기 힘들었다. 숲의 밤은 모닥불을 피워도 추울 때가 종종 있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불이 꺼져도 연기가 엄청나고, 잿더미에서 열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으니까.
그때, 여름의 여신이자 바다의 여신인 파스투란이 한 말이 생각났다.
-여름에는 손가락 까닥 안 하고 비를 뿌리기 좋지.
고모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땅에 덥고 습한 바람이 불면서, 위의 찬 공기와 만나면 그것만으로도 소나기가 내리니까.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땅은 뜨겁고 축축하잖아? 그러면서 밤공기는 여전히 서늘하고? 연기도 모락모락 위로 올라가고 있지.
그렇다면 일은 쉬웠다. 레오파라에게 불어 넣어줬던 검기를 활용하면 되었다. 그것처럼 바람과 닮은 게 없으니까. 오히려 레오파라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불어 넣느라 제어할 필요도 없어서 좋았다.
나는 막 힘을 쓰려고 했다. 확실히 물의 마법을 마치고 나니 조금 힘들긴 했다.
그러다가 멈추었다. 견디기 힘들다기보다 아까 발견한 새로운 원리를 또 써 보고 싶어서.
뿌듯하기도 하지만, 참으로 자유롭던 그 충만한 해방감. 그렇게 내 마음속에 다시 한번 원을 그렸다.
이번에 원은 더 뚜렷하게 반응했다. 마법이라는 큰 법칙 내 작은 법칙… 마치 공식처럼.
라프트레이 형이 사랑하는 공식, 무언가 대입하면 해답이 나온다. 불을 질렀을 때보다 더 큰 힘을 쓰지 않았는데도 그 불을 끌 물을 터뜨릴 수 있었듯.
놀라운 효율이었다. 결국 그 공식도 힘이니까. 앎으로서의 힘.
그 기쁨에 나는 노래했다.
“내 안의 흐름이 우주의 흐름에 눈을 뜬다. 두려움에 흘렸던 눈물이 숲을 살리는 비가 되기를.”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처럼 좋지는 않았다. 음유시인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중얼거렸을 뿐.
하지만 그 짧은 노래에는 내 진심이 실려 있었다.
불과 물 때문에 시달렸지만, 결국 마법을 벼려 낸 마음의 담금질이.
내 안에서 원의 공식이 발동했다.
뭉게뭉게 일어나던 희고 독한 연기가 갑자기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본래도 재가 날리느라 검은 연기도 피어올랐지만, 전부 빠른 속도로 위로 올라가자 순식간에 검은 비구름이 일었다. 하늘 전체는 아니고, 이 부근 위의 하늘만 그래서 더 신기했다.
우르릉 콰쾅!
천둥이 쳤다.
“테오파노 님?”
레오파라가 소리쳤다.
“와아아아아!”
사람들이 탄성을 올렸다.
“하하하하!”
나는 신이 나서 웃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콰쾅! 답변하듯 한 번 더 천둥이 치더니, 쏴아아, 하고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옵니다!”
지쳐 있던 레오파라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 내가-”
“테오파노 님이 내리게 했군요!”
레오파라가 기쁨에 차서 소리쳤다.
내가 했다고 말도 하기 전에 바로 믿다니. 나도 아직 안 믿기는데.
신이 사람을 이끌듯, 사람도 신을 이끄는구나.
“정말 신이셨군요!”
“신이 괴물을 무찌르고 산불을 껐다!”
“신이 비를 내리게 했다!”
사람들도 마구 소리쳤다. 그들이 위로 쳐든 얼굴을 타고 빗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눈물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모두 크게 웃고 있었다.
“테오파노 님이 비를 내려 주셨다!”
레오파라가 소리쳤다.
“테오파노 님이 비를 내려 주셨다!”
촌장이 따라 소리치자, 다른 사람들도 같이 소리쳤다. 마치 레오파라가 선창하자 모두 따라 후렴을 부르는 듯했다.
“테오파노 님, 만세!”
“테오파노 님, 만세!”
레오파라가 두 팔을 번쩍 들고 내 이름을 외치자 역시 모두 따라 했다. 역시 레오파라는 춤과 노래에도 재능이 있었다. 내 눈은 정확하지.
“우리 모두가 내리게 한 거야.”
내가 말했다. 기분이 끝내줬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니까.
“우리가 말입니까?”
촌장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가 물의 마법을 쓸 때까지 모두 불과 싸웠잖아.”
마법을 발동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 주면서.
“모두가 아니었으면 나 혼자선 못했다.”
레오파라가 고개를 저었다.
“테오파노 님이라면 반드시 불을 끌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저희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도 처음 써 보는 마법이었는걸? 내가 해낼 수 있을지 나도 몰랐다.”
레오파라가 씩 웃었다.
“테오파노 님도 제가 큰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었잖아요.”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하긴, 용병이 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과 신이 산불을 끄는 것 중 뭐가 더 쉬울까.
“…맞는 말이네.”
“그렇고말고요.”
“되게 멋있는 말이기도 해. 노래로 들었으면 좋겠어.”
“하하하하!”
레오파라가 웃었다. 사람들도 모두 웃었다. 다들 머리카락이며 옷이 그을렸는데, 비까지 맞아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함께 웃는 얼굴은 더없이 편안했다.
나처럼 오물이 범접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 오물조차 그들 내면의 웃음을 범접할 수 없는 듯이.
* * *
“와아아아!”
“테오파노 신이 괴물을 무찌르셨다!”
다음 날 사람들이 환호했다.
어제는 너무 지쳐서 마을로 돌아와 다들 눈부터 붙였다.
날이 밝자 사람들은 부랴부랴 잔치 준비를 했다. 산짐승도 잡고, 불길이 번지지 않은 반대편 숲에서 아이들이 꽃을 따왔다.
“아, 뭐, 이렇게까지 해 주지 않아도 되는데?”
기분이 좋긴 했다. 그렇다고 이런 가난한 마을을 벗겨 먹을 생각은 아니었다. 금화를 주긴 했지만 마을이 그동안 입은 타격을 만회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솔직히 조금 아쉽기도 했고.
신을 맞이하는 잔치는 보통 도시나 국가 단위로 한다. 화려하게 장식한 신상이 탄 수레를 온 도시가 맞이한다. 사치스러운 의상을 차려입은 신관들이 꽃을 뿌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형들이나 누나들은 다들 큰 도시에서 어마어마한 행렬을 이루면서 신으로서 첫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지역으로 진출할 때도 그렇고.
그런데 나는 이런 조그마한 마을에서 시작하다니. 사양하고 떠날까 싶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도 잔치 준비를 안 해도 되니 서로 좋지 않나.
하지만 그들이 너무너무 행복한 표정으로 알아서들 준비하고 있어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테오파노 님은 춤과 노래를 좋아합니다. 꼭 곁들이세요.”
레오파라도 열성을 다해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다.
“무슨 노래? 가르쳐 주세요.”
그런 노래나 춤도 다 예술가가 진작 준비해서 전문 공연자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다른 신을 믿는 이들도 이때는 예술의 여신을 찾는 판이고.
“모릅니다. 나는 음악가가 아닙니다.”
“우리도 아닌데요.”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민요가 있었다.
“여기다 노랫말만 새로 붙여서 부르면 되겠군요!”
“그렇게까지 열심히 안 해도 돼. 아니, 애초에 잔치 자체를-”
“아닙니다! 테오파노 님도 포기하지 않고 그 어려운 마법을 성공하셨는데, 테오파노 님을 믿는 우리가 어렵다고 포기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들어 잔치 준비를 하는데, 그 백발 노인이 촌장과 함께 찾아왔다.
그러고는 내게 칼 한 자루를 내밀었다.
“이 사람은 한때 유명한 대장장이였습니다.”
촌장이 말했다.
“그런데 전쟁에 끌려간 자식이 죽고 말았죠. 그는 도시의 대장간을 접고 우리 마을로 아내와 함께 들어왔어요. 다시는 무기를 만들고 싶지 않다더군요.”
“말편자니 도끼니 냄비니, 그런 걸 만들어 봐야 기사의 무구나 칼보단 돈이 안 되는데도요.”
촌장의 아내도 입을 열었다.
“가난해져도 맘 편하다며 잘 지냈는데, 그만 그의 아내가 숲에서 버섯을 따다 괴물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그 후로 말을 잃더니, 그만 실성했지요. 테오파노 님한테 실례를 저지르긴 했지만 본래는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노인이 바친 칼은 난생처음 보는 종류였다. 우리가 죽인 그 괴물의 엄니로 만든 칼이었으니까.
새하얗게 빛나는 괴물의 이빨이 세공이 정교한 칼자루에 꽂혀 있었다. 각도를 절묘하게도 맞춰 놓아, 칼자루서부터 한 송이 백합이 피어나듯 칼날이 서서히 휘어지는 모양새였다.
물론 꽃이 아니라 칼이었지만, 꽃이 연상될 정도의 예리한 아름다움이 오히려 간담이 서늘해지는 인상을 주었다.
칼자루 가운데는 푸른 보석이 박혀 있었다.
“이런 비싼 보석을 바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장장이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마을 사람들이 수레로 실어 온 괴물의 시체를 가리켰다.
“저 괴물에서 나온 돌입니다.”
촌장이 대신 말했다.
“괴물에서 돌이 나왔다고?”
“저도 봤습니다. 우리 마을 대장장이로서 테오파노 님과 레오파라 님께 검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해서 저도 거들었지요. 그 엄니를 뽑아 낼 때, 그 엄니와 연결된 두개골에 저 돌이 박혀 있었습니다.
너무 신기했다. 나도 돌머리란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머리에 정말 돌이 박힌 생물이라니.
나더러 그 말을 해 댄 형제자매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두 분이 처치한 괴물에서 나온 돌이니 당연히 두 분의 것인데, 마침 엄니로 검을 만들고 있던지라 그대로 칼자루에 박더군요. 하기야 귀하신 분들이 쓰는 무기니 장식이 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촌장의 말에 따르면 밤을 꼬박 새워 이 칼을 만들었다는 백발 노인은 몹시 지쳐 보였다. 그러면서도 두 눈은 맑게 빛났다.
이 칼을 만든 일이 그의 상처에 조금이라도 치유가 되었기를.
“자, 레오파라. 이 검을 네게 내린다.”
나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칼을 레오파라에게 주었다. 레오파라가 사양했다.
“이건 테오파노 님께 바친 겁니다.”
“내가 가져 봤자 돼지 목에 칼일 테니까.”
“네?”
레오파라가 알아듣지 못해서 내가 더 놀랐다. 전쟁의 신이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한 소린데.
“무예에 능하지 못한 자가 무기를 들면 자신을 해친다는 뜻이야. 돼지가 제 멱을 따듯. 스카텔란 형의 격언이지.”
“아, 네…….”
전쟁의 신을 들먹이니까 레오파라도 더 사양하지 않았다.
휙휙! 레오파라가 바로 칼을 쥐고 휘둘러 보았다. 그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도 않게 빠른데, 그 칼날이 번득이는 선은 공중에라도 그은 듯이 뚜렷했다.
스카텔란 형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검술은 신도에게 시키면 신이 직접 안 해도 된다고 말해 주면서.
마법을 일으켜 주자 레오파라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에 푸른 기운이 일렁거렸다.
푸른 기운은 검을 휘두를 때 이는 바람 같은 마법을 가시화한 느낌이었다. 그 바람에 저 신비로운 돌의 색깔이 스며든 것처럼.
“아름답다! 신비로워!”
사람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됐다, 됐어. 라스카라사 누나의 화려한 공연이 없어도, 저 칼이 내는 특별한 효과 한 방이면 다 된다.
레오파라가 더 휘두르자, 푸른 기운이 더 강해졌다. 그냥 일렁거리던 정도가 뚜렷해지면서, 칼날처럼 예리해진 순간, 레오파라가 나무를 내리쳤다.
휙.
돌풍 소리라기보다 깔끔할 정도로 예리한 소리가 나더니, 쿵 하고 나무가 쓰러졌다. 그 절단면조차 깔끔했다.
“아아아아!”
사람들이 소리 지르다 못해 애들이 뛰어오르고 난리가 났다.
세상에, 그냥 예쁜 칼이 아니었다. 내 마법을 더 강화한 위력을 뽐내다니.
우리 모두 흥분했는데, 홀로 침착한 얼굴에 눈만 번득이는 레오파라가 입을 열었다.
“테오파노 님, 마법을 거둬 주십시오. 마법 없이 칼의 위력을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