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109
109
나에 이어 레오파라가 프라비타를 재촉했다.
“정체를 드러내면, 다른 쪽과 관련이 있다는 게 들통날까 봐서요? 아민타스 교라든가.”
프라비타는 집요한 레오파라를 자극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랬으면 테오파노 님 연극을 했겠습니까?”
“그거야 오늘 일이고. 아민타스 신이 오셔서 그분의 인기가 드높으면, 주인공만 갈아 치운 연극을 상연할지도 모르는 일이죠.”
“제가 절 후원하시는 분들을 배신하겠습니까?”
“우리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자를 후원하겠는가?”
내가 되묻자, 그제야 마지못해 이름을 밝혔다.
“제 이름은 프라비타입니다.”
역시. 하지만 본명일 리 없을 텐데. 일단 그가 마음대로 말하게 두었다.
“그럼 가면은?”
아타울프가 가리켜도 프라비타는 망설이면서 벗지 않으려 했다.
“얼굴을 내보이지 않으려는 말 못 할 사정이 있습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얼굴에 상처라도 있는 건가요?”
파비안은 걱정스레 물었지만 레오파라는 밀어붙였다.
“나와 아타울프는 전직 용병이고, 신도의 얼굴에 상처가 있다고 해서 놀라지 않습니다. 우리 교의 신도가 된 지금, 테오파노 님이 도와주실 수 있는 상처일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테오파노 님조차 도와주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신도라면서 믿음이 없나 보군요?”
아타울프가 적절하게 빈정대자, 프라비타는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과 동시에 우리 교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으나, 그는 제 얼굴을 보고도 놀라지 말라, 후원을 취소하지 말라고 애원하고 그러겠다는 약속을 받으며, 또 시간을 끌었다.
“당장 얼굴을 보여. 우리가 나가서 새로운 극단을 찾기 전에.”
레오파라가 마지막 경고를 하자, 프라비타는 또 한숨 쉬며 드디어 가면을 벗었다.
마침내 드러난 얼굴을 보고, 우리는 약속과 달리 깜짝 놀라고 말았다.
-깜짝이야!
“헉!”
렉스와 파비안이 부르짖자, 우리 품에서 잘만 자고 있던 드라콘과 펜나가 얼굴을 찌푸리며 앞발로 귀 뒤를 긁었다. 하지만 우리는 프라비타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얼굴엔 흉터 하나 없었다.
“여자잖아!”
아타울프가 소리쳤다.
“남자입니다, 사도님처럼.”
프라비타가 눈을 부릅뜨고 반박했다.
“배우는 연기로 말합니다. 제가 남자 연기를 하면, 남자인 거죠.”
확실히 프라비타는 키도 체격도 컸다. 나와 레오파라, 아타울프보다는 작았지만, 중키에 마른 몸매인 파비안보다는 컸다. 가면을 쓰고 있으면 남자 같았다.
“지금 모든 극단이 치열한 경쟁 상태라 새로운 배우를 구할 수 없어요. 우리 극단의 유일한 배우인 제가 여자 역을 맡으면 테오파노 님의 연인이 될 텐데, 제가 신의 연인이 될 정도로 절세미인은 아니죠.”
“테오파노 신은 본인의 외모가 하도 빼어난 나머지, 상대의 외모에는 관심 없다. 그보다는 인성이 중하지.”
나는 서둘러 말했지만, 프라비타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신들은 외모도 인성도 훌륭한 연인이 있는데, 테오파노 신만 그렇지 못하면, 체면이 뭐가 됩니까?”
외모도 인성도 훌륭한 존재는 우리 식구 중에도 별로 없건만.
“동의합니다. 테오파노 신의 연인은 다른 신들의 연인에 절대 꿀리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아민타스 신의 연인과 비교해서.”
방금까지 협박했던 레오파라가 프라비타의 말에 즉각 동의했다. 내 연인이야 누구의 연인에게도 당연히 꿀리지 않지! 존재하지 않으니까!
“어차피 가면을 쓰고 테오파노 신을 연기하는데, 똑같이 가면을 쓰고 그 완벽한 연인 역을 연기하지 못할 이유는?”
내가 묻자, 사도들은 일제히 프라비타를 바라보았다. 프라비타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테오파노 신이 주연이니까요. 그분이 여신이 아닌 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신성 모독!
외모나 인성은 변명이고 프라비타는 주연을 맡고 싶어서 남장한 게 분명했다.
솔직히 극단을 살리려면 프라비타는 주연이고 뭐고 연기를 포기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이 극단이건 이 작품이건 살려야 할 필요 있나. 테오파노 신의 사생활 작품은 반드시 망한다는 교훈을 널리 퍼뜨려야 하는데. 감히 다시는 시도할 용기를 내지 못하게. 그러려면 저주받은 작품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우리 프라비타 신도가 가면을 쓰고 테오파노 님을 연기한다면, 신의 연인 역은 누가 맡는 거죠?”
“네, 이미 준비해 놨습니다.”
아타울프의 물음에 씩씩하게 대답한 프라비타가 휘장을 쳐 놓은 구석으로 갔다. 아니, 내 완벽한 연인 역의 여배우가 여태까지 거기 숨어 있었어?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프라비타가 휘장을 걷으며 자신 있게 소개한 내 완벽한 연인 앞에서 우리는 넋을 잃었다.
“저건 나무잖아!”
레오파라가 고함쳤다. 그의 망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드라콘이 놀라서 그를 깨물고, 펜나가 내 품에서 히힝거렸지만, 우리 둘 다 신경 쓸 수 없었다.
-은행나무 같은 거야? 암나무랑 수나무가 따로 있는?
“이건 배경이지, 나무 갖고 연인이라고 하면 말이 돼?”
“완벽한 연인이 중요하다고 해 놓고 지금 장난하나요?”
내 충성스러운 사도들이 벌 떼처럼 항의하고 나섰으나, 프라비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여러분, 기막히고 화나시겠죠. 하지만 일단 제 설명을 들어 보시죠.”
말하는 것 보게. 너야말로 아트리타스의 완벽한 연인이다. 무대 말고 그의 곁으로 가라!
내 사도들이 흉흉한 눈길로 노려보는 가운데, 프라비타가 말을 이었다.
“이 나무는 본래 아름답고 착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테오파노 신의 사랑을 받았죠. 그러나 그녀는 그만 나무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전개가 하도 급해서 관객들이 다 나가떨어지겠네!”
“급한 전개가 아니라 극적인 전개입니다! 말은 똑바로 하세요!”
“미친 소리 마세요!”
프라비타의 궤변에 파비안이 냅다 소리 질렀다. 속이 다 시원했다.
“애초에 왜 여자가 나무로 변하는데?”
레오파라가 따져 물었다. 그리고 프라비타가 대답하려고 입을 열자마자, 흉흉하게 말했다.
“테오파노 신의 구애를 피해 도망가다 그랬다거나, 실수로 살해당해서 죽은 자리에 자라났다거나 하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그렇게 생겨난 식물들이 있긴 했다. 특히 헤르첼로이데는 자신을 사모하다 죽은 이들에게 꽃의 이름을 붙여 주길 좋아했다. 그렇게 개명해 버리면, 본래 있던 꽃이라도 마치 그녀가 만들어 낸 듯이 사람들이 착각했다.
숲과 사냥의 여신 엘라디안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영역에 야금야금 침범한 후 잡아떼는 신들을 가만두지 않았고, 그 신들은 자신들의 성지에 그 식물의 숲을 조성해서 배상해야 했다.
지금 레오파라는 그런 흔한 신의 사랑 줄거리를 거부했고, 프라비타는 잠시 입을 뻐끔거리다가 말했다.
“…물론 아닙니다. 여인은… 살해당했습니다. 질투심 많은 이에게!”
“그 질투심 많은 이가 테오파노 신인가?”
“…당연히 아니죠! 절대 아니죠! 그건 사도님의 생각일 뿐이죠!”
프라비타는 레오파라의 합리적 의혹에 눈을 부릅뜨고 부인했다.
“좋습니다, 신도여. 그렇다면 정리해 봅시다. 여배우는 없고, 나무만 있는데, 지금까지 말한 줄거리를 어떻게 표현하겠단 겁니까?”
“주연이 말하면 됩니다. 전쟁이나 살인 같은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은 직접 보여 주기보다, 배우가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로 전달하는 게 대세니까요.”
“그럼 테오파노 님만 연극에 등장하는 거잖아요?”
파비안이 의문을 제기하자, 프라비타가 얼른 나무를 움직여 보였다.
“보세요, 이 나무는 이렇게 하면 가지가 움직이고 이파리도 펄럭거립니다. 제가 목소리도 낼 겁니다. 저는 남자 목소리도 잘 내지만 여자 목소리도 잘 냅니다. 복화술도 합니다.”
“아니, 그래 봤자 소품인데, 사실상 일인극이죠. 남들은 여러 명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고 할 텐데 우리는 달랑 한 명 무대에 올라가자고? 나무랑?”
아타울프가 가슴을 쳤다. 프라비타가 대답했다.
“본래 연극은 일인극이었습니다. 옛날엔 그렇게 우르르 몰려나와 춤추고 노래하니, 이게 연극인지 춤과 노래 공연인지 알 길 없는 형식이었죠. 그러다가 코러스에서 떨어져 나온 한 사람이 가면을 바꿔 써 가며 연기한 게 지금 우리가 아는 연극이 되었고, 그 사람이 최초의 배우였습니다. 테오파노 님의 연극으로 연극의 원형을 되살려서, 심사 위원들의 감탄을 사는 겁니다!”
사도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저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 듯이.
사실이었다. 경연을 앞두고 극단 간 경쟁이 고조된 지금, 새 배우를 모집할 수도 없는 판에 굳이 연극을 강행하려는 프라비타가 구실로 삼을 뿐.
하지만, 이 기회에 모두가 신의 사생활 연극이 얼마나 바람직하지 못한지 뼈저리게 깨우쳐서 길이길이 관심을 끊어야 했다. 망해라! 프라비타! 망해라!
“대안이 없다면 극단 대표의 말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참느라 힘들었다. 이러다 나야말로 연기력이 늘겠다.
내 말에, 그 대안을 내겠다고 나선 사람은 없었다.
프라비타는 몹시 기뻐하며,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달하늘 극단의 대표가 됐습니까? 본래 이 극단의 배우였습니까?”
안 그래도 과거를 캐 보려고 했는데, 의심 많은 레오파라가 먼저 물었다.
“이 극단은 제 부모님의 극단으로 가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렸을 때, 그만 부모님과 떨어지고 말았지요.”
프라비타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자세하게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슬픔에 젖은 얼굴만 봐도 힘든 일을 겪은 게 분명했다. 프라비타에게 저런 표정을 꾸며 낼 연기력은 없으니까.
“좋은 분들이 절 구출해서 자식처럼 키워 줬지만, 늘 돌아오고 싶었어요. 하지만 충격으로 부모님과 고향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크고 나서야 조금씩 기억해 낸 끝에 겨우 돌아와 보니, 부모님은 평생 저를 찾아 헤매다 돌아가셨고, 그러느라 극단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더군요.”
“그래서 부모님의 유산인 극단을 살리고 싶은 건가?”
“네, 반드시 그렇게 할 겁니다.”
프라비타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지 못해서, 타락하고 말았나. 하지만 그녀가 친부모 곁에 있었어도 좋은 배우가 됐을지 의문이었다. 나도 라스카라사 누나의 동생으로서 재능을 알아보는 눈이 있으니까.
“좋은 꿈이지만, 이루지 못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루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왜죠?”
프라비타가 불안과, 그리고 공격성을 내비치며 물었다.
“네가 해 보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가의 마음가짐을 네가 지니고 있는지는 너만이 알겠지.”
“포기가 예술가의 마음가짐입니까?”
프라비타가 분해서 소리쳤다.
“스스로 택한 분야를 아는 것은 예술가뿐 아니라 모든 이의 마음가짐이다.”
“…저는 해내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해낼 겁니다! 그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서!”
그들 역시 고생했던 사도들이 프라비타를 바라보았다. 저 신념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겠지.
“그렇다면 결과 승복도 해낼 수 있겠는가?”
“왜 자꾸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이제 저도 교단의 일원입니다. 같은 신도에게 격려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프라비타가 억울해하며 대들었다.
파비안을 비롯해 사도들도 공감하는 눈치였다.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뼈저린 경험으로 깨우치게 두려고 마음먹고선 왜 이렇게 묻고 있는지.
“네가 해내려는 게, 좋은 연극인가, 대상 수상인가?”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묻고 말았다.
부모의 유산인 극단을 살리고 싶은 프라비타의 마음을 나 또한 받아들였기에.
“그 두 가지가 무엇이 다릅니까?”
프라비타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역시 너의 선택이다.”
* * *
우리는 프라비타를 떠나 예술의 신전으로 향했다. 저녁 시간이라, 거지들이 나르본에서처럼 줄 지어 구걸하고 있었다. 내 이름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이제는 모두에게 흔한 광경이었다. 라스카라사 누나의 말대로 사람들이 나와 거지들을 연관시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레테는 우리가 지금까지 와 본 제일 큰 도시여서 그런지, 지금까지 본 거지들의 모습도 조금 달랐다.
-난쟁이들이 정말 많군요.
-이상하게 생긴 사람도 많아.
파비안과 렉스의 말대로, 난쟁이나 꼽추, 혹이 난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도 적선을 베풀며, 소통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쟁이들은 늙으면 왕족들이 유랑극단에 버린다고 하지 않았어?
-거기서도 돈을 못 벌면 내쳐지니까.
-난쟁이들은 주눅 들어 있었으나, 다행히 거지들이 따돌리지 않고 보살펴 주는구나.
-테오파노 님의 이름으로 밥 얻어먹는 처지는 같은데, 그럼 되겠습니까. 제 어릴 때와는 달리 굶지는 않으니, 거지들도 남을 돌아 볼 여유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렇게 말하는 레오파라가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너를 좀 더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걸. 너희 모두를.
-테오파노 님이 속상해하시는 건 싫습니다. 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레오파라가 다시 웃었다. 파비안과 아타울프도 상기된 얼굴로 따라 웃었다.
정작 내가 미소가 안 나올 때, 레오파라의 얼굴이 굳었다.
-수상한 자들이 쫓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