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111
111
“엄마가 무슨 참견이에요!”
“싫거들랑 알아서 잘살아서 참견할 일이 없게 하든가!”
그 모든 빤한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우리 형제자매 신들 덕에 갈고닦았던, 그런 기술이 없는 내 사도들은 경청해야 했지만.
프라비타는 내가 신도인 자신을 구해 주길 바랐지만, 페룸이 자신도 신도가 되었다고 되받아쳐서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난 성공할 수 있어요, 해낼 수 있다고요!”
프라비타가 저 말을 백 번째 했을 때였다. 가망 없으니 집어치우라는 말을 백 번쯤 했던 페룸이 눈을 번득이며 딸에게 달려들었다. 백 한 번째에 드디어.
-머리채라도 잡고 싶은 심정은 알겠는데, 손이 닿겠나…….
아타울프가 걱정하는 순간, 페룸이 노리던 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딸의 하반신에 달라붙은 페룸이 무언가 잡아당기자, 그게 활짝 드러났다.
두 다리였다.
프라비타는 역할이 몸에 배도록 자나깨나 의상을 입고 생활한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그 의상인 화려한 로브를 입고 있었는데, 그 로브를 걷어 내자 두 다리가 보인 터였다.
“악! 뭐 하는 거예요!”
“아니, 잠깐, 페룸! 아무리 화가 났어도 그럼 안 되지!”
“말려! 말려!”
프라비타와 두 동생들이 소리 지르건 말건 페룸은 그녀야말로 머리채를 잡히면서도 무언가 했다. 뒤의 우리에겐 잘 보이지도 않았고, 다들 눈 돌릴 뿐 보려하지도 않았다.
“보십시오!”
하지만 페룸이 소리쳤다. 반사적으로 눈을 돌리니, 우리 앞에 있는 건─
“저게 뭐야!”
“뭐지? 목마인가? 철로 만든?”
-다리야? 다리 아냐?
사도들이 마구 소리쳤다. 나도 말이 안 나왔다.
“아악! 하지 말라고 진짜!”
프라비타가 의자 위에서 악을 썼다.
그런 그녀가 떨어질까 두 삼촌이 끌어안고 있었다. 그렇게 안긴 프라비타는 난쟁이보다는 크지만 드워프보다는 작았다. 갑자기 작아진 프라비타가 입고 있는 바지는 아래가 헐렁해서 옷자락이 펄럭일 지경이었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아까 봤던 대로 바지를 입고 있는 두 다리가 있었다. 지금은 프라비타와 분리된 다리가.
“이 다리는 철로 만든 인공 다리입니다. 이 다리에 목마처럼 올라타서 몸에 부착하고 바지를 입으면 사람 키와 똑같아지죠. 그 위에 로브라도 걸치면 감쪽같고요.”
페룸의 말에, 우리는 프라비타를 다시 보았다. 프라비타가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이제 만족해요? 내 비밀을 동네방네 폭로해서 만족하냐고요!”
“애초에 네가 비밀로 삼지 않았으면 폭로할 필요도 없었겠지! 왜 네가 드워프라는 걸 비밀로 삼는 거냐?”
페룸도 소리쳤다.
“난쟁이면 안전하지 않으니까 숨긴 거죠!”
“흥, 기어이 사람들의 도시로 가겠다고 난리더니, 안전하지 않아서 그런 비밀 장치로 눈속임을 해야 한다고? 이름까지 우스꽝스러운 가명을 쓰지 않나. 똑바로 말해 봐라, 그건 다 핑계고 드워프인 게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었다고!”
“그러는 엄마야말로 내가 난쟁이가 아니었으면 거뒀겠어요? 내가 어렸을 때, 엄마야말로 내 출신을 비밀로 삼고,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 나까지 속였었잖아!”
“너는 어차피 기억도 못 했고, 슬픔에 젖어 사느니 드워프 마을에서 네가 차별받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네 아버지도 찬성했다!”
“아빠는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찬성했어요! 뭣보다 여기선 내가 난쟁이인 줄 모르지만, 드워프 마을선 모두 내가 드워프가 아니란 걸 알아요! 엄마만 빼고!”
두 모녀가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는 가운데, 사도들과 드워프들은 나만 바라보았다.
날 왜 보는데. 한 식구끼리 싸우면 절대 끼어들지 않고 먼발치에서 구경만 해야 한다는 것도 모르나? 남의 집 식구건 자기 집 식구건?
아, 이미 다들 그러고 있구나. 나만 바라보면서. 하지만 가정의 문제는 모신 피오르델리케 여신이 관장한다.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의 영역을 내가 감히 침범하러 들 것 같아?
…괜히 페룸과 프라비타 둘 다 신도로 삼아 가지고선. 영역 다툼이란 핑계도 댈 수 없다니.
페젠타 영주 부자 때와는 또 달랐다. 최소한 그때는 종족 간 문제가 없었다. 자식이 그들 삶의 터전을 벗어나, 부모의 뜻과 다른 직업을 가지지도 않았고.
“페룸과 프라비타, 내 두 신도는 이제 할 말을 다 하였는가?”
내 말에, 둘 다 흠칫해서 나를 보았다.
둘은 신 앞에서 싸워 젖힌 게 부끄럽긴 한 듯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조아렸으나, 서로를 향한 곱지 않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둘이 서로에게 하고픈 말을 다 하려면 라프트레이 형의 수사학이 다 동원돼도 모자라겠지.
“하고 싶은 말이 남았어도 걱정하지 말라. 신이 너희 대신 말해 주겠노라.”
둘 다 고마워하긴커녕, 놀라서 쳐다보는 게 아무리 신이라도 어떻게 우리 마음을 아느냐는 눈빛이었다.
-사람들은 신이 자기들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다.
어머니 피오르델리케 모신이 말했었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
-네? 그럼 왜 맨날 신전에 와서 기도하는 거죠?
-기도할 때마다 그들의 고통을 다 드러내지만은 않는다. 특히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것일수록. 그들은 그저, 시시콜콜한 사정까지 말하지 않아도 신이 알아주길 바라지.
-신인들 사람들이 말하지 않으면 무슨 수로 알아요?
절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신도가 사도도 아니고. 사도의 마음이라도 계속 들여다보면 서로에게 좋지 않다. 무엇보다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볼 능력이 있다면, 같은 신에게 사용하지, 사람에게 뭐 하러 쓸까.
-말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들의 고통은 숨길 수 없으니까.
어머니는 대답했다.
-그들의 고통을 신이 안다고 느끼는 순간, 그들은 비로소 입을 연다. 입에 담기도 괴로웠던 이야기를 서서히 풀어 나가면서.
그때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정말 멋있게 들렸다. 감동받았고.
지금도 그렇다. 다만 나는 내 신도들에게 어머니처럼은 못 하겠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뿐.
그래도 해야 했다. 내가 어머니처럼 못 하는 신이어도, 이들은 내 신도니까.
“프라비타, 너는 네 어머니와 네 식구를 사랑한다. 너는 드워프 마을도 사랑하고, 드워프인 너 자신도 사랑하며, 대장장이 일도 사랑한다. 또한 친부모도 사랑하고 사람인 너 자신도 사랑하며 연극 일도 사랑하기에 떠나왔을 뿐이다.”
프라비타가 내 말에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페룸이 콧방귀를 뀌었다. 프라비타는 페룸을 노려보았다.
“페룸, 너는 딸을 사랑한다. 너는 드워프인 딸도 사람인 딸도 사랑하며, 대장장이인 딸도 연극배우인 딸도 사랑한다. 그래서 마을을 떠나 이곳까지 딸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프라비타가 콧방귀를 뀌었다. 페룸도 딸을 노려보았고, 드워프들은 내 머리에 꽃이라도 만발한 것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어머니의 계절이 오면 꽃이 만발하긴 하지.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둘 다 내 말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니, 다른 말을 하겠다.”
나는 꿋꿋이 말을 이었다. 신도들이 신이 하는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신 역시 신도들이 그 말을 싫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프라비타는 페룸을 싫어한다. 드워프도 싫어하며 대장장이 일도 싫어한다. 그래서 드워프 마을을 떠나 사람이자 배우로 살고자 아레테로 왔다.”
페룸과 프라비타는 기겁했다. 프라비타는 내게 대들기라도 할 것처럼 보였으나, 그전에 자신을 바라보는 페룸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아무 말도 못 했다.
“페룸은 프라비타를 좋아한다. 하지만 드워프 대장장이인 프라비타만 좋아하고, 사람 연극배우인 프라비타는 싫어한다.”
이번에는 페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둘 다 서로에게서 고개 돌리고 입술만 깨물었다.
“어느 게 사실인가?”
“둘 다 아닙니다!”
“신이라고 저희 마음을 다 아시는 건 아니잖습니까!”
둘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말했다.
“너희도 서로의 마음은 물론, 자신의 마음도 모르리라. 내가 한 말 중 반은 맞고 반은 틀리거나, 혹은 그마저도 아니겠지.”
이 말은 두 모녀도 부인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 마음을 만들어 가라.”
“네?”
“마음이라고요?”
둘 다 날 올려다보는 얼떨떨한 표정이 어찌나 똑같은지 천상 모녀였다. 그만 웃음이 나올 뻔했으나, 내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고 꾹 참았다. 여기서 잘못 말하면 모녀 사이가 어찌 될지 모르니까.
우리 어머니는 왜 하필 이 힘든 걸 영역으로 삼으셨을까. 지상에 갓 내려 온 신에겐 인간관계도 힘든데, 한 집안 내 인간관계라니, 말만 해도 토할 것 같다.
“사랑과 미움이 섞여서 구분이 안 가는 마음이니, 상대를 향한 내 마음부터 제대로 만들어 가라. 그러다 보면 상대의 마음도, 내 마음도 알게 되겠지.”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 봤자 상대가 알아주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맞아요. 저 혼자서 노력해 봤자 소용없으니까요!”
“신인 내가 알아주겠다.”
“네?”
“그야 상대는 모를 수도 있겠지. 아무리 노력해도 억울하게끔. 하지만 내가 알아주겠다. 상대가 몰라도 나만은 그 힘들게 빚어 낸 마음을 알아주겠다. 그리하여 상대에게 전해 주겠다. 신이 마음의 증인이 되어서.”
-하지만 한번 이루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을 주는 인간관계는 없단다.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어떤 면에선 괴물보다 더 상대하기 힘든 이들에게 하는 말을 마쳤다.
“하지만 그 마음은 진심이어야 한다. 신인 내게조차 사랑과 미움이 뒤섞여 알아볼 수 없는 흐릿한 진심이라면, 사람인 상대는 더욱 알아보지 못하리라.”
“…….”
“…….”
둘은 멍한 얼굴로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레오파라가 말했다. 내내 침묵을 지키던 사도들 중에서 처음으로.
“테오파노 님께서 신도들의 마음을 알아주시겠다는 진심을 먼저 보이셨습니다.”
그 한마디에 페룸이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테오파노 님…….”
프라비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 항상 진심이었어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어머니가 모르는 너의 진심을 관객이 알아보겠는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일을 그렇게 마무리하고, 두 모녀가 오붓하게 이야기하도록 자리를 뜨고자 했다.
“테오파노 님이 계신 자리에서 밝히고 싶은 바가 있습니다.”
페룸이 나섰다. 그 동생들은 멍하니 그녀만 바라보았다. 나도 자주 지었던 표정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순간, 불길해졌다.
“저는 정말로 제 딸을 사랑합니다. 자신을 잃고 나서 비통 속에 죽은 친부모의 유산을 이어받고 싶은 딸의 마음도 알겠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돕겠습니다. 제 마음을 빚어내도록 말입니다.”
그래, 드디어 어제 내가 시킨 대로 하는구나. 가만두면 연극이 시작하기도 전에 엎어 버리고 딸과 사생결단 낼 것처럼 굴더니.
“저도 딸과 함께 연극에 출연하겠습니다.”
뭐라고? 뭐가 어째?
“뭐라는 거예요, 지금? 엄마 왜 이래? 테오파노 님 앞에서 이러지 마요, 진짜!”
프라비타가 기겁했다.
“어제 테오파노 님을 비롯해 사도님들께 이야기 다 들었다. 일인극? 그건 잘하는 배우들이나 하는 거지. 무엇보다 잘하는 배우들도 여럿이 나와서 하잖니. 서로 간 호흡이나 이런 것도 중요할 텐데, 잘하지도 못하는 너 혼자 나와서 나무 좀 끌어안고 쓰다듬고 하면, 관객들이 처자느라 무대에 계란도 안 던지고 무시하겠다.”
…확실히 말하는 걸 보면 페룸의 발성이 더 좋았다. 신들이 정한 공용어는 사람이 가장 많이 쓸 뿐, 사람의 말만은 아니니까.
“엄마아아아앗!”
그리고 모녀가 같이 있으면 확실히 프라비타의 표현력도 살아나서, 감정을 잘 전달했다. 하긴 모녀의 호흡이나 조화라면 다른 배우들에게 뒤지지 않겠지.
내가 어제 했던 제안처럼 무대 장치나 소품 제작 같은 건 아니었지만, 페룸의 생각이 더 나아 보였다.
“말도 안 돼요, 드워프라는 정체가 들통나고 싶어요?”
“어차피 드워프를 믿는 사람도 줄어드는 판에 난쟁이인 척하면 되지.”
“안됐지만, 이 대본에 난쟁이는 안 나와요. 인공 다리는 하나뿐이고요. 무엇보다 극단 대표는 나예요.”
프라비타의 단호한 거절에 페룸은 신박한 논리로 대응했다.
“테오파노 신의 첫사랑이라며? 신의 연인이라면 왕족이나 귀족일 텐데, 난쟁이도 하나 없다니? 네 여주인공은 거지니? 불쌍도 해라. 내 마음이 찢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