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120
120
내, 주신과 모신을 비롯한 모든 신 앞에서 맹세할 수 있나니, 이는 거룩한 희생이다. 너무 당연해서 굳이 맹세할 필요 없을 뿐.
다른 신들도 괴물과 맞서 싸우지만, 내 순결한 사생활을 이딴 하찮은 연극으로 만천하에 공개한 건 나뿐이다. 다른 신들처럼 문란하게 살지도 못했는데. 다른 신들처럼 연인을 자랑하려는 의도도 없었는데, 오로지 전쟁을 막고자, 이렇게까지 하다니!
고로 절대로 창피하지 않았다. 예술의 여신과 술의 신이 그 어떤 대단한 작품을 선보였건, 그 뒤로 내가 후원하고 내 사도들마저 참가한 연극을 보이게 된 일은 전혀 수치스럽지 않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화끈하게 비극으로 갔으면 좋겠다. 헤르첼로이데 때문에 다들 연애라면 죽네 사네 해야 제맛인 줄로 아는데, 그럼 다 죽으면 되잖아? 연인만 죽는 것도 아니고 다 죽으면, 인생무상이라는 철학의 주제도 조명할 수 있다. 얼마나 심오한가. 연극 경연 최고의 화제작도 흉내 낼 수 있고.
테오파노 신이 사랑을 고백하기 직전, 갑자기 불이 나는 거지. 아니면 괴물이 나타나거나.
괴물은 꼭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지금 당장 나타나도 좋다. 두 팔 벌려 환영까진 안 해도, 기꺼이 맞서겠다. 스카텔란 형처럼 산 채로 가죽을 벗겨 버리지도 않고 곱게 보내 줄 테고.
솔직히 신의 첫사랑이라니 그런 걸 누가 보나? 진부하고 시시하다. 신의 활약이 훨씬 낫지.
그러나 검은 머리에 흰 피부, 붉은 입술의 프라비타가 메데커 노부인이 마련해 준 공주 의상을 입으니, 정말 공주처럼 보여서 관객들이 정말 좋아했다. 남장했을 때도 얼굴을 드러내면 미남으로 보였을 텐데, 예지의 꿈에서나 아레테서나 굳이 가면을 썼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이 기대에 찬 눈길로 바라보는 가운데, 프라비타는 힘찬 연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힘차기만 한 연기를.
“아아, 그 젊고 아름다운 떼오빠노 신께서 날 쏴랑하신다!”
프라비타는 테오파노 신 역을 하건 테오파노 신의 첫사랑인 공주 역을 하건, 똑같이 못했다. 옷을 바꿔 입고 다른 배역을 맡은들, 연기 재능이 나보다도 없는 그녀 자신으로 꿋꿋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도 테오파노 신의 위엄이고 뭐고 내팽개친 채, 나무를 끌어안고 웃다가 울다가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 젊고 아름다운 신께서는 날 더 사랑하실걸요. 공주님보다 나이 많은 내가 더 오래 믿었으니까요.”
나무보다 훨씬 뛰어난 상대역이 있었으니까.
공주의 난쟁이를 맡은 페룸이 딴 데 정신 팔린 딸, 아니 공주를 비아냥대면, 프라비타의 눈에 불꽃이 이글거리고 받아치는 말투에 생동감이 넘쳤다. 무엇보다 괜히 힘줘서 과장한 발성이 본래대로 돌아오고.
“네가 뭘 알아? 그분과 나 사이에 함부로 간섭하지 마. 그분이 사랑하는 건 나뿐이야.”
“저도 그분의 신도인데요? 공주님 혼자만 그분의 사랑을 받는다고 하는 것도 저와 그분 사이에 간섭하는 게 아닌가요?”
페룸은 능글맞게 대꾸했다. 그럼 관객들은 과연 공주의 난쟁이답다고 탄복했다. 본래 왕의 광대란 유일하게 왕을 놀려 대는 존재니까.
하지만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왕의 웃음 대신 노염을 사서 얻어맞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무서워하거나 비굴한 표정을 지으면 광대로서 실격이니, 무섭지 않은 척 약 올리는 표정을 잘 지어야 했다. 그래야 왕이 던져 주는 고기 한 점이라도 받아먹으니까.
페룸은 그걸 진짜 잘했다. 갈수록 기가 살아서, 딸과 싸우는데 동네 사람들이 전부 제 편 든 엄마처럼 프라비타를 돌아보며 턱을 내밀었다. 사실과 별반 다르지 않기도 하고.
“용감한 광대도 대단하지만 공주도 착하다. 난쟁이한테 화나서 얼굴이 빨개져도, 한 대도 안 때리다니.”
“착해서 신에게 사랑받나 보네.”
놀랍게도, 관객들은 둘 다 좋아했다. 우리 교가 지긋지긋해하던 모녀 싸움에 웃음을 터뜨리며 흥겨워하면서.
레오파라가 규모를 중시해서 배우를 늘리고, 참신성을 중시하여 내용을 바꾼 게 관객의 기호에 맞아떨어졌다. 과연, 내가 점찍은 장래의 교리서 저자다웠다.
“공주님! 큰일 났습니다!”
그때 파비안이 등장했다.
씩씩하게 첫 대사를 외친 그는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관객 앞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하긴 우리 교에 들어올 때만 해도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그러게, 내 첫사랑 연극을 보고 싶어 하지 말았어야지!
“얼마나 큰일이면 차마 말도 못 하는 거죠? 대체 무슨 일이 난 겁니까?”
다행히 페룸이 그를 구했다.
“그, 그것이…….”
“누가요?”
“와, 왕비님이…….”
“누구를요?”
“고, 공주님을…….”
“왜요?”
“테오파노 신의 사랑을 받는 공주님을 질투하신 나머지 죽이려고 하십니다!” 마침내 페룸의 도움으로 파비안은 말을 더듬지 않고 제 대사를 모두 말했다. 나는 그런 사도가 자랑스러워서 미소 지었다. 마침 파비안도 객석의 나를 바라보았고, 내 미소를 보자, 그도 미소 지었다.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오가는 우리 교.
“네 사도는 나쁜 소식을 전하면서 웃고 있구나.”
갑자기 옆에서 라스카라사 누나가 조용히 말해 왔다.
“왕비 편인가 보죠.”
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대꾸했다. 사실 파비안은 내 편이고, 나는 파비안 편이지만. 물론 내 이복 누나는 그걸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의 여신이 되어서, 동생 신이 후원하는 어중이떠중이 극단의 경연 참가를 금지하지 않았다면, 이런 연기도 참고 볼밖에.
“어머니께서 내게 그러실 수가!”
그때 프라비타가 부르짖었다. 페룸이 장단을 맞췄다.
“친엄마라면서 정말 사악하군요!”
“계모거든!”
둘은 서로 노려봤지만, 이번엔 파비안이 상황을 구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일단 도망가야 합니다.”
그래서 둘은 도망갔다.
둘이 무대에서 사라지자마자, 아타울프가 검을 들고 등장했다. 프라비타가 만든 검을 아타울프는 자랑스럽게 휘두르며, 대사를 하기 전에 잠시 무대에서 칼춤을 추며 한 바퀴 돌았다.
-대사 치라고! 칼 자랑 그만하고 연기하라고! 춤추다 뒤진 귀신이 들렸냐!
그동안 잠잠했던 소통을 통해, 레오파라의 분노가 들려왔다.
-뭐, 어때, 관객이 좋아하잖아!
아타울프의 말대로 관객은 좋아했다. 확실히 너무 심각하거나 무시무시한 연극을 보다가, 내 사도들이 나와서 재롱떠니,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신인 나도 사도들이 귀여운데, 관객들은 오죽할까.
“나는야 멋쟁이 칼잡이! 이 칼로 아름다운 공주를 죽여 버리겠다!”
아타울프는 그렇게 외치더니, 칼로 객석 곳곳을 가리키며 위협했다.
“오, 여기 아름다운 공주가 있군. 안 됐지만 내 칼에 죽어 줘야겠어! 너무 아름다운 죄로!”
그럼 그렇게 살인 위협을 받은 여자 관객은 좋아서 깔깔대고 웃었다. 다른 여자들도 신이 나서 자신을 가리키며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남자들도 선택 받으면 좋아 죽었다. 아타울프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다른 악역들은 욕을 먹는데, 살인 위협으로 관객을 웃게 하는 내 사도가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내가 웃음의 신이 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아타울프였다.
-저기 손 흔드는 할머니 선택해 드려. 그 옆에 수염 난 아저씨, 그 옆의 여자애도! 골고루 선택해. 관객 모두에게 봉사해라! 쉬지 마라, 아타울프! 테오파노 님을 위해 무대 끝에서 끝까지 달려!
물론 관객들의 호응에 발맞추어 빠르게 태세를 전환한 레오파라도 뛰어났다. 라스카라사 누나의 열 타이스 안 부러웠다.
“공주님은 저쪽으로 도망갔습니다!”
마침내, 아타울프가 신들을 제외한 모든 관객을 공주라 불러 주며 살해 위협을 해주고 나자, 파비안이 페룸과 프라비타가 퇴장한 방향과는 반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틀렸어! 여기선 아타울프가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
렉스가 투덜거렸다.
-그러게, 내 대사 마음대로 쳐 내지 마라!
아타울프도 성을 냈다.
“아니, 묻기도 전에 말해 주다니?”
하지만 무대에서는 파비안을 놀리듯 말했다. 파비안은 새빨개진 얼굴로도 똑바로 말했다.
“저는… 충신이니까요!”
아타울프는 어이없어했지만,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파비안이 공주 일행이 도망간 곳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파비안이 왕비의 충신이 아니라 공주의 충신이지만, 왕비가 보낸 암살자를 속이느라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했다.
“그럼 누가 진짜 충신인지 두고 보자!”
아타울프는 그렇게 받아치며 퇴장했고, 파비안도 퇴장했다. 퇴장하면서도 애수에 젖은 얼굴로 한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파비안의 모습은 정말 충신다웠다.
다음 장면은 숲이었다.
정교하게 그린 나무들과 교묘하게 배치한 거울을 통해 나무가 끝도 없이 이어진 숲을 뛰어나게 표현했다. 드워프들의 역작으로, 그들은 무대 모형까지 만들며 무대 미술에 힘을 쏟았다. 그러느라 연기 연습을 소홀히 했지만, 숲 그림자가 미로처럼 길게 드리워진 배경으로 프라비타와 페룸이 길을 잃고 헤매는 개연성을 잘 살려 냈다. 우리 교로선 한 톨이라도 더 챙겨야 하는 개연성.
“여기가 어디지?”
“저만 믿고 따라와요.”
“아까도 그 소리 했잖아!”
프라비타는 헤매는 연기도 어색했지만, 페룸과 한번 싸우기 시작하면 사람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다. 말도 잘하고 표정도 박진감 넘쳤다. 관객들은 그녀가 연기를 못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공주님을 찾았다, 으하하하!”
그리고 아타울프가 등장했다.
프라비타와 페룸은 비명을 질렀다. 비록 페룸은 무서워하는 비명이라기보다 성난 고함 같았지만, 여기까지 연기한 것만도 어디랴 싶었다. 슬슬 본색이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였으니까.
“테오파노 님, 부디 저를 구해 주세요!”
프라비타는 애절하게 외쳤다. 전혀 애절해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날 바라보며 외치는 바람에, 모두 날 바라봤으니까.
이럴 때는 하늘이나 허공을 보며 외쳐야지, 곧이곧대로 날 보고 외치면 어쩌란 말인가. 내가 자리에서 뛰쳐 일어나 무대로 난입하리? 해 보지도 못한 첫사랑 연극 하게 해 줬으면 됐지.
“테오파노 신께서 우리를 보내셨다!”
그때 용맹한 드워프 넷이 등장했다. 날개를 파닥거리는 두 마리도.
-제가 신의 사자로 나가서 악당을 때려잡습니다.
본래는 레오파라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페룸은 그들이 납치됐던 딸을 구할 때의 일을 재현하고 싶어 했다.
-현실에 기반해야 예술도 더 의미 있다고 예술의 여신도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잠깐, 신이 드워프를 왜 보내는데? 드워프여, 내 명하노니, 가서 사람을 구해라, 이러면 너희가 말 들을 거야?
어처구니가 없는 나머지, 내가 직접 페룸을 말려 봐도 소용없었다.
-그러니까 연극이죠!
-그렇지만 이 연극은 테오파노 님을 위한 연극입니다.
레오파라가 반박했다. 아니야, 그거 아니야. 내 첫사랑을 다루면서 날 위할 수는 없어.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다.
-어쨌건 프라비타도 페룸도 이젠 내 신도들이다. 내 신도가 다른 신도를 구한 일인데, 어찌 날 위한 연극에서 기리지 않겠는가.
결국 나도 포기했다. 이 연극을 보는 우리 교 신도들이 서로 구해 주고 그러면, 내 손으로 내 첫사랑 연극을 후원하게 된 울분도 잊을 수 있겠지.
그리하여, 용맹한 드워프 전사 다섯과 드라콘과 펜나, 총 일곱이 아타울프에게 덤벼들었다. 제일 용맹스럽게 돌변한 페룸을 보니, 아까의 외침은 전투 함성이 맞는 듯했다.
아타울프도 잘 싸웠다. 너무 잘 싸웠다.
-아타울프! 적당히 해! 그러다 이기겠다!
레오파라가 적절히 말렸다. 때마침, 드라콘이 아타울프의 등에 업히고, 펜나가 아타울프의 가슴팍에 안기다시피 하며, 드워프들이 아타울프를 공격하니, 아타울프도 얼굴을 감싸고 파닥이는 날개 때문에 앞이 안 보이는 듯 칼을 떨어뜨리기 좋았다.
그가 도망가자, 드워프들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고, 프라비타도 기뻐했다.
“네가 정령을 데리고 다니는 줄은 알지만, 드워프들까지 거느리고 다니는 줄은 몰랐구나.”
이번에는 아민타스 형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웃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때였다. 이상한 조짐이 느껴졌다.
무대가 커지고 있었다. 객석까지 진출하면서.
처음 있는 현상은 아니었다. 라스카라사 누나와 아민타스 형의 연극 때도 그랬다. 하지만 전자야 예술의 여신이고, 후자야 기아스를 실행한 터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권능도 행하지 않았다. 나는 첫사랑을 스스로 연극을 만든 것도 모자라, 기아스까지 행할 정도로 자기애가 넘치지 않는다. 결국 아민타스 형도 영역 도전이라는 사익을 위해 한 일인데, 내 목적은 프라비타라는 악인을 포섭하여 세상을 구하는 공익이니까.
그런데 왜 무대가 확장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