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137
137
“안 됩니다, 왕자님!”
“지금은 아무도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시종장과 헬라네스 교의 신관들이 막아섰다.
시종장은 그래도 좀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신관들은 엄격한 표정으로 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있었다. 본래 대신관이 죽음을 앞둔 사람과 있으면, 그 신의 신관들이 그 의식을 수호하는 법이라서. 만일 발라흐의 국왕이 테오파노 교의 신도였다면, 지금 이렇게 막아섰을 이들은 우리 사도들이었을 터였다.
“테오파노 교의 대신관님이 오셨습니다.”
마리우스 왕자의 뒤에서 한 기사가 헐레벌떡 나와 말했다.
그러더니 두 팔을 벌려, 비장한 몸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러자 다른 기사들도 모두 그렇게 했다. 무슨 춤 동작 같아서, 그 가운데 서 있자니 기분이 썩 괜찮았다.
-아니, 테오파노 님이 정말 대신관이라고 해도 호위는 같은 사도들이 하는 건데, 우리 역할을 뺏어가네.
-호위가 아니라 밀어내는 거다, 테오파노 님을 방패 삼아 앞으로 밀어내는 거라고!
-그럼 어떡해? 우리가 저 풍차 날개 같은 팔들을 밀어내나? 내가 쟤들 얼굴에 물 좀 뿌리면 어푸푸 하느라 저러고 못 있을 텐데. 사도가 신도에게 그럼 안 되겠지?
사도들의 의견이 분분할 때였다.
“아, 테오파노 교에서 오셨다고요.”
아버지 헬라네스 신의 신관들이 내게 엄숙한 눈길을 돌렸다.
“대신관님이십니다!”
“테오파노 교의 첫 번째 대신관님이십니다!”
“테오파노 신이 총애하시는 대신관님이십니다!”
기사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지금까지 새 신도들을 잘 돌봐 온 사도들이 그들을 노려보았다. 나는 나대로 ‘내게 총애받는다’는 말이 웃겨서 웃음이 나오려 했다.
“대신관님이시라고 하셨습니까? 테오파노 교의 대신관님은 처음 뵙습니다.”
헬라네스 교의 신관 중 가장 연장자가 정중하게 절하며 말했다. 다른 신관들도 일제히.
하지만 우리 사도들이 답례할 새도 없었다. 고개 든 신관은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미처 몰라본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우리 헬라네스 교는 테오파노 교에 대신관님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차.
주신이 그냥 주신이 아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만 말하고 뛰쳐나간 막내자식 따위 돌아보지 않을 수도 있다. 대체 어딜 쏘다니며 뭘 하는지 등등.
하지만 내가 그냥 놀러 다니는 게 아니라 신으로서 종교를 세우면, 그때부터 주신의 명부에 기록이 남는다.
예를 들어, 내가 레오파라를 첫 사도로 삼았던 순간이나, 첫 성지가 생겼을 때, 주신의 명부에 있는 테오파노 교의 기록에 남는다. 심지어 우리 교의 교리서 저자가 운명을 거부하여 아직 기록 작성을 하지 않고 있어도, 주신의 명부에 저절로 기록이 된다.
그래서 초기에는 바빠서 기록을 남길 새가 없는 여러 교에게 좋기도 하지만, 또한 감시기도 하다. 신들의 종교 싸움이 격화하거나, 신전의 비리가 심해져서 사람들이 신들을 원망하게 되면, 주신이 직접 나선다. 그때 이 모든 기록은 조작이 불가능한 증거가 된다.
그래서 헬라네스 교의 신관들은 어느 종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 신의 명령 없이는, 굳이 말하지 않을 뿐.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헬라네스 신관들이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대신관을 소개한다면?
그들도 가만있을 수 없게 된다. 감히 우리를 속여?
신관이 아닌 사도들이 이 사실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레오파라의 낯빛이 희게 질렸다. 라스카라사 교의 신관들과 잘 어울리더니, 여러 정보를 얻은 듯했다.
“네,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도 처음 뵈었습니다.”
눈치 없는 기사 한 명이 소리쳤다. 레오파라가 이를 악물고 기사 무리를 뒤로 밀어내며 앞으로 나섰다.
마리우스 왕자의 눈길이 내게 와 닿았다. 그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눈치챈 게 분명했다. 각 신전의 최고 후원자들인 왕족들은 신전이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그런 사실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으니까.
나를 사기꾼이라고 여기겠네.
실제로 왕자는 내게 멸시하는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럴 줄 알았다면서 분노를 터뜨리지는 않았다.
“아니, 주신께서 모르시는 대신관도 다 있단 말입니까?”
그 대신 론다 공작이 뒤에서 소리쳤다. 하긴 왕비의 오빠라면 알 법도 했다.
기사들은 어리둥절해서 어쩔 줄 몰랐고, 사도들도 마찬가지고, 헬라네스 신관들은 우리를 강한 적개심을 담아 노려보았다.
“이는 필시 라프레아 왕비의 소생인 마리우스 왕자님을 능멸한 사기─”
레오파라는 다시 떠들기 시작한 론다 공작의 말을 더 큰 목소리로 끊으며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테오파노 교의 첫 번째 사도 레오파라라고 합니다.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그때였다. 신관들이며 공작은 물론, 모두의 주의가 레오파라에게 쏠렸을 때, 마리우스 왕자는 돌연 움직였다.
그는 그대로 사람들의 틈새를 비집고, 또한 힘주어 밀어내면서, 침실 문을 손수 벌컥 열었다. 따개비처럼 달라붙고 촉새처럼 지껄이는 론다 공작도 무시하고 전진해 온 마리우스 왕자다웠다.
“아니, 저, 저런!”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사방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지만, 이미 늦었다.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던 나만, 바로 뒤따라갔다.
“아니, 어찌 자식이 되어 죽어 가는 아버지에게 저럴 수가!”
론다 공작이 뒤에서 소리 지르는 가운데. 왕자가 춤추고 론다가 노래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비록 가사는 망했지만.
그리고 문이 열린 침실에서는 뜻밖의 장면이 우리를 맞이했다.
황제의 침대 주변으로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다. 왕비, 왕자, 대신관, 그리고 귀족들.
마리우스 왕자만 빠진 그림이었다. 대신관이 침대에 누운 황제의 손을 잡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막내 왕자에게 인도하는 가운데, 옆에서 왕비가 가슴에 손을 모으고 선 구도가 하도 완벽해서, 마리우스의 등장이 그 구도를 얼마나 산산조각 냈는지, 확 와 닿았다. 론다 공작이며 시종장이 마리우스를 기를 쓰고 막으려 했던 이유.
“왕자님!”
“형님!”
“왕자, 이 무슨 짓이오!”
대신관과 막내 왕자와 왕비가 차례로 소리쳤다. 뒤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수군거렸다.
“마리우스 왕자다, 마리우스 왕자가 왔다!”
하지만 그 모든 소리를 단번에 압도한 자가 있었다.
“이 불효막심한 놈!”
침대에 시체처럼 누워 있던 왕이 왕자를 보고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어딜 쏘다니다 이제야 오느냐! 아비가 죽든 말든 상관도 없단 말이냐? 진작 오지 않고 뭘 하느라 이리 늦었어!
-위중하신 분이 성량 하난 좋네요, 부럽다.
프라비타가 중얼거렸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누가 무슨 말을 하건, 귓등으로 쳐 버리며 직진 하나로 왕궁을 누볐던 마리우스 왕자의 무표정이 마침내 깨졌다. 왕자는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왕은 더 화내며 침대에 누워 있던 몸을 안간힘을 다해 일으켰다. 대신관이 부축하여 상반신을 조금 일으키자마자, 왕자에게 다시 소리쳤고.
그제야 왕의 얼굴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아니, 그런데… 저 얼굴은! 세상에, 왜 미처 생각 못 했었지?
“어딜 갔다 이제야 오는, 쿨럭, 쿨럭…….”
“아버님, 저는─”
하지만 두 부자의 상봉은 거기서 끝났다.
“막내야!”
내가 소리쳤기 때문에. 침대로 달려가며.
“막내야! 어찌 이리 폭삭 늙었느냐! 몰라보겠구나!”
순간, 정적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실로 오랜만에 보는 막내동생의 얼굴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만났던 반신의 이복 혈육들 중에서도 가장 어렸던 라비크. 아버지 헬라네스 신의 사생아. 발라흐의 건국 왕.
반신들이야 다들 나보다 늙어 보이긴 했어도, 그래도 막내 정도면 동생이라고 불러 줄 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만났던 적도 너무나 오래 전의 일이었다. 성장이 많이 느렸던 내가 아직도 어렸던 시절.
그때는 둘이 같이 잘 놀았으나, 나도 너무 어릴 때 일이고, 간간이 생각난들 다시 만나지도 못하니 잊고 말았었다. 더군다나 지상에 내려와서는 그에게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예지의 꿈에서는 전쟁 전에 이미 죽었던 그였고,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을 기억하기만도 바빠서. 특히 그 꿈에서 내가 그토록 감탄했었던 마리우스 왕자는 지금도 그의 몰랐던 모습이 적응 안 되는 판이었다. 내가 동경하던 영웅이, 옛날 단 한 번 만났었던 배다른 동생의 자식이라는 생각은 꿈에서도 들지 않았었다.
무엇보다 신들은 대체로 반신을 인정하지 않았고, 아버지 헬라네스 주신은, 사생아라고 한들 친자라고 인정해 줄 뿐이지 혜택을 주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도 그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대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들 사람들에게는 주신의 인정만으로도 크게 이로워서, 아버지의 자식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슬프지만 다시 만날 일도 없을 테고, 지상에 내려가지 않을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잊는 편이 낫다고 여겼었다. 실제로 그의 기억은 꿈의 기억에 묻히다시피 해서.
하지만 아무리 그랬다 해도, 한때 그토록 정력적이었던 남자가, 이제 머리는 새하얗게 세고, 얼굴은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되어 죽어 가는 모습을 막상 보자, 도저히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혈육이 아닌 척할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대체 무슨 소릴 들은 거야?”
“어디서 감히 미친 소리를!”
“마리우스 왕자가 광인을 데려왔다!”
“아니다, 저자는 사기꾼이다! 대신관이라고 왕자를 속였다!”
“당장 끌어내지 않고 뭣들 하느냐! 이 무슨 무도한 짓이더냐!”
그때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다들 놀라서 얼어붙었다가, 겨우 정신 차리고서.
라비크만 여전히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눈이 멀었나, 가슴이 죄여 왔다.
실수했다. 동생은 그 옛날 만난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나 혼자 들떠서 안 그래도 위중한 사람의 심기를 어지럽히다니. 형 노릇도 안 해 놓고서 이제 와 무슨 도움이 되겠다고. 나라고 죽어 가는 사람까지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깨에 마리우스 왕자의 손이 닿더니, 거세게 틀어쥐었다. 왕자가 직접 나를 끌어내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왕에게도 왕자에게도 미안했다. 죽어 가는 동생에게, 형이라고 해 준 것도 없는데, 소란만 일으키고. 아, 심지어 나는 왕자에겐 큰아버지구나…내가 영웅의 큰아버지라니…….
“그 손 놓으십시오!”
“당장 놓으라잖습니까!”
그러나 이번엔 레오파라를 비롯한 내 사도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기사들은 무엇들 하느냐!”
“마리우스 왕자와 그 기사들이 사기꾼 광인을 데려와서 국왕 폐하를 능멸하였다!”
“다 끌어내라! 다 끌어내!”
그 위에 왕비파까지 합세하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동생 보기 부끄러웠다. 정체를 드러낼 생각도 들지 않고, 후회만 되었다.
혼란의 와중에서 마리우스 왕자는 나를 끌어내려 했고, 나는 저항하지 않았지만, 레오파라가 왕자의 멱살을 잡고, 이에 기겁하는 왕자의 기사들을 아타울프와 프라비타가 막아섰다. 그뿐만 아니라 방 안 공기가 갑자기 축축해지고, 창문으로는 아까 말들과 함께 시종들에게 맡겼던 펜나와 드라콘의 날갯짓 소리가 창문을 때려 부술 듯 들려왔다.
다들 진정하고, 당장 그만두라고 말하려고 했을 때였다.
“…혀, 형님?”
환자에게 너무 충격을 준 게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라비크는 이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하고 있었다.
“형님… 테오파노 형님…….”
“그래, 막내야. 날 알아보겠느냐? 너무나 오랜만이구나…….”
나는 그만 마리우스 왕자를 뿌리치고 라비크에게 달려가 꼭 끌어안았다. 아, 내 품에 안긴 동생이 얼마나 연약한지! 생명력조차 아주 조금씩 흘려보내 주어야 했다.
“이 목소리, 이 눈빛… 정말 형님이시군요…….”
막내의 주름진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를… 잊으신 줄로만 알았습니다… 다들… 모두가 저를 잊고… 제가 그토록 바라던 식구는 다 허상이었고… 형님도 다시는 보지 못할 줄로만… 흐흐흑…….”
“미안하다, 막내야. 미안하다… 이 형을 용서해라.”
나는 동생을 품에 끌어안고 그 새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사방이 조용해진 가운데, 동생이 흐느끼는 소리만 들려왔다. 등도 어루만져 주었는데, 정말 뼈와 가죽뿐이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도, 동생? 혀, 형님?”
“…우리 폐하에게 형제가 있었나? 없었잖아!”
“그게… 있다면 바로 그…….”
“서, 설마… 그냥 건국 설화 아니었나?”
“그, 그러게, 왕들이야 다들 주신의 후손이라고 하지…….”
“아니야, 아니어야 해…….”
서서히, 술렁이는 목소리들이 커져 갔다. 동생에게 방해가 되니 물러나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사기다! 국왕을 홀리는 사기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