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147
147
그러자, 엘라디안 누나는 깃털 화환 중에서 이마에 드리워진 새파란 깃털을 하나 뽑았다.
깃털로 보이지만 사실 화살촉이었다. 그걸 누나가 최초로 아끼던 수사슴의 등골로 만들고, 누나와 내 머리카락을 꼬아 만든 활의 시위에 갖다 대자, 그 깃털은 그대로 화살이 되어 쏘아져 나갔다.
그 화살이 엘라디안 누나의 성역에 다다르자, 성역은 그대로 누나의 화살을 빨아들였고, 화살은 사라졌다.
동시에, 울창하게 들어섰던 나무들이 양옆으로 갈라지면서 돌들이 굴러 나와 징검다리 계단을 만들었다. 그 위로 폭신폭신한 이끼가 융단처럼 펼쳐졌다.
그 위로 기사들과 그들이 무슨 죄인처럼 연행하듯 여태 꼭 붙들고 있던 사도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지만 열렬한 환영을 받고 정신을 차렸다.
“다들 무사했군요!”
“테오파노 님과 엘라디안 여신께서 여기 계십니다!”
그들은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그들도 옥좌를 거쳐 내게 왔고, 나와 엘라디안 누나에게 예를 표했다.
“테오파노 님, 엘라디안 님,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두 분 신의 덕분입니다!”
나는 누나가 옆에서 보건 말건, 그들을 하나하나 끌어안아 주었고, 사도들과 사도들도 서로 열렬히 끌어안았다. 레오파라와 아타울프는 서로에겐 냉정하지만, 다른 신도들에겐 친절했다. 언젠가는 그들도 그들 서로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영혼인지 깨닫고, 기꺼이 끌어안는 날이 오겠지.
“새 사도들을 먼저 치료해야 합니다. 가장 오래 고통받았으니까요.”
프라비타의 말에 일단 그들부터 치료하는데, 물약과 생명력으로 많이 낫긴 했지만, 그래도 하도 오래 굶주린 채 고된 노동에 시달려서 회복까지 시간이 걸릴 터였다.
“너는 왜 이름이 없느냐?”
그러다가 그중 유일하게 이름이 없던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기억이 안 납니다… 잊어버렸습니다.”
역시 그랬구나. 주변 사람들도 그를 불쌍하게 보면서, 지나가던 나그네인데 함께 잡혀 들어왔다고 했다.
“그때도 역시 자기 이름을 모르더군요. 식구들과 헤어졌다면서요.”
“…기억을 잃은 이유가 있겠지요.”
그렇게 말한 필립과 마리는 아마도 그의 식구가 모두 죽고 혼자 살아남는 바람에 기억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네게 내가 이름을 붙여 주마. 그래도 괜찮겠느냐?”
그는 놀라서 나를 넋 놓고 바라보더니, 불쑥 물었다.
“왜요?”
“나는 너를 이름 없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눈동자에 이채가 일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는 테오가 되었다. 내가 한 나라의 수호신이 될 일은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그전에도 내 이름을 따서 지은 사람이 되어, 그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사람들이 알도록.
그가 외롭지 않도록.
“언젠가 네 부모가 지어 준 본래의 이름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 이름을 쓰면 된다.”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는 지친 듯이 혼자 앉아서, 하늘만 바라보았다.
-테오파노 님께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지. 특히 사도라면.
레오파라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렉스가 말했다.
-테오는 계속 테오라고 중얼거리고 있어. 또 잊어버릴까 봐 겁나나 봐.
정령이지만, 자신만의 이름을 바랐던 렉스가, 테오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듯했다. 그 생각이 들자, 테오의 모습이 어딘지 낯익은 듯도 했다.
테오를 비롯해 새 사도들과 기사들을 치료하고 나니, 그제야 사도들의 차례가 왔다.
“하도 발랄하게 떠들어 대서 몰랐더니, 생각보다 많이 다쳤구나.”
역시 사도들이 상처가 컸다. 새 사도들이 당장 낫기 힘든 굶주리고 학대당한 몸이라면, 사도들에겐 파비안의 물약으로도 다 낫지 않은 상처들이 있었다.
“작은 상처는 생기지도 않았고 이 상처들도 아물고 있습니다. 전투 중이라 속도가 느릴 뿐입니다.”
태연하게 말한 레오파라가 나를 보고 걱정스레 말했다.
“테오파노 님이야말로 안색이 좀 창백하십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나야 다친 데도 없는데.”
그러자 마리가 끼어들어,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테오파노 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너희 때문이 아니라 괴물들 때문이지. 고생이 심했으니, 이만 좀 쉬는 게 어떤가?”
나는 웃으며 마리의 말을 막았다.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다 보니 출혈이 좀 있었을 뿐이다. 여기서 신이 약한 모습 보이면 모처럼 좋은 분위기에 모두 걱정만 할 뿐이다.
다행히 마리는 아까 나를 도와줬듯 슬기로운 사람이라, 고개만 숙이고 넘어갔다.
“레오파라, 너도 이제 치료가 끝났으니, 다른 사람들을 도와라.”
“네, 알겠습니다.”
그런 그녀를 돌아보던 레오파라도 정신 차리고, 다른 사도들과 물약을 나눠 주었다. 나도 치료를 계속했다.
다행히 모두 생각보다 일찍 기운을 차렸다.
숲은 생명력이 가득하여 사람들에게 도시보다 훨씬 기운을 북돋는 곳인데, 엘라디안 누나의 성역이 그들을 받아들여 보호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빨리 오느라 다른 곳에 두고 왔던 사도들과 연락을 취하던 누나가, 일을 마무리하고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네 그리폰들은, 지저분하더구나.”
누나는 코를 찡그리며, 이번엔 검은 깃털의 화살촉을 뽑아 들고 쏘아 보냈다.
이번엔 성역 아래쪽에서 돌들이 옆으로 밀려나고, 나무뿌리들이 옭아맨, 커다란 우리가 나타났다.
그 안에 갇힌 그리폰 끈끈이는 이제 상당히 크기가 줄어 있었고, 거대 마석도 온전했다.
미소가 절로 나왔다. 엘라디안 누나의 신전은 정말 대단했다. 물론 누나도 큰 도시마다 대리석 신전이 있었다. 하지만 누나의 참다운 성역은 이렇게 살아 움직였다. 대지에서 생명력의 요람인 숲 그 자체로서.
누나가 가리킨 대로 나무뿌리들까지 달라붙긴 했지만, 굴러 나와서 다시 평지에 안착하자, 거대마석은 왕성히 활동했다.
사도들은 집 나간 보물이라도 되돌아온 듯 기뻐했고, 질 낮은 마석부터 펜나와 드라콘에게 먹였다. 거대 마석은 상당한 양의 마석을 생산했고, 그리폰 떼 자체의 마석도 질과 양 모두 훌륭했다.
“한몫 단단히 잡았습니다!”
아타울프가 기뻐했다.
하지만 오크의 왕에게선 마석이 나오지 않았다. 어쩐지 그럴 것 같다는 직감이 들긴 했었다.
기사들과 새로운 사도들은 이 놀라운 광경에 입만 벌렸다.
“사도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마리가 아타울프에게 묻자, 그는 친절히 대답했다.
“형제라고 부르십시오, 자매님. 테오파노 님께서는 괴물들을 물리치실 뿐 아니라, 괴물들의 힘을 빼앗아 그 힘으로 다시 다른 괴물들을 무찌르십니다.”
“테오파노 신께서는 강하시고도 현명하시나니!”
프라비타가 무슨 시구절이라도 낭독하듯 말하자, 기사들도 새 사도들도 모두 두 손을 모으고 나를 우러러 보았다. 그들은 날 우러러보기도 했지만, 내가 괴물을 잡아서 이득을 본다는 일 자체에 몹시 기뻐했다.
사도들이 칭찬해 주자, 진짜 기분이 좋았다. 믿음이 힘이라면, 신을 향한 찬양은, 음, 역시 힘이기도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잘생겨지는 기분? 지금보다 더? 그것도 거울 앞에서 헤르첼로이데의 꾸중과 간섭을 받아 가며 연회를 위해 꾸미는 귀찮은 과정도 생략하고서?
“너희도 모두 잘 싸웠다. 오늘의 승리는 너희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너희의 믿음이 내게 큰 힘을 주니, 나처럼 행복한 신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나도 칭찬만 받지 않고 해 주려고 말하고 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행복한 신이고, 그래서 행복의 신일 수도 있었다.
이제는 별생각 없이 하는 말마다 진리가 아닌가. 나는 점점 위대한 신이 되어 가고 있었다.
“테오파노 님!”
“테오파노 신이시여!”
“내 사랑스러운 신도들이여!”
나를 보는 신도들의 초롱초롱한 눈에 행복이 깃드니, 다시 행복하고, 그런 내가 그들을 칭찬하여 다시 행복하게 만들고, 또 그래서 내가 행복해지니―
“자, 이제 우리 신도님들은 좀 물러나 쉬시지요. 엘라디안 여신과 테오파노 신께서도 형제자매로서 회포를 푸셔야 하니까요.”
한창 즐겁다가, 레오파라가 조심스럽게 말해서 정신을 차렸다. 앗, 그러고 보니 누나의 성역에 와서 누나를 잠깐 잊어버린 셈이었다.
“엘라디안 누나, 미안해. 내가 그만 정신이 팔렸네.”
하지만 누나는 평소처럼 기분 나쁜 기색이 아니었다.
-아무 일도 안 하고 퍼질러 누워 있느라고 누나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니?
-알면서 왜 물어? 몰라서 묻는 거면 이해하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잖아. 누난,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이런 우리 남매의 흔한 대화는 없었다. 엘라디안 누나는 팔짱을 끼고 나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그새 다 커서 어엿한 신이 됐구나 싶으면, 여전히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네 특유의 애 같은 모습도 간직하고 있고.”
“그 말은 모순이잖아. 상대에 대한 판단이 헷갈리면, 그중 좋은 쪽을 믿으면 돼. 그게 나 테오파노 신의 수사법이야.”
“모순이 아니지, 그 모순을 가능하게 하는 게 너 테오파노 신이니까.”
나는 나르본의 수호자로서 엘라디안 누나를 가르치려 해 보았지만, 누나는 거부했다. 학문의 신도 거부하는 누나니까, 별수 없었다.
하지만 누나는 큰형과 그럴 때처럼 기분 나쁜 기색 없이, 오히려 환히 웃으며 쾌활하게 말했다
“자, 그럼, 괴물을 때려잡았으니, 잔치를 열어 볼까?”
사실 누나도 다른 숲에서 괴물을 때려잡느라 오래 걸린 터였다. 지금 뒤에 남은 누나의 사도들도 그곳의 잔치를 베풀고 있을 터였다.
“사냥하고 나면 잔치를 열어야지!”
누나가 그렇게 말하자, 신전은 연회장으로 변했다.
나무들은 버드나무처럼 휘어지고 구부러져, 편안한 의자가 되었고, 이끼 융단이 폭신폭신하게 깔렸고, 옹달샘이 곳곳에 솟아났다. 샘에 손을 씻고 그 자리에 앉으면, 나무 위에서 내려 온 넝쿨이 만발한 꽃으로 화환을 만들어 머리에 씌워 주었다. 그 화환은 머리 위, 별이 창창한 밤하늘 아래 싱그러운 향을 뿜어냈다. 밤꾀꼬리들이 감미롭게 노래하는 가운데.
곳곳에 모닥불이 타올랐고, 통구이며 솥이 내걸렸다. 숲에서 나는 꿀로 만든 술이, 산양의 뿔로 만든 잔에 향긋하게 차올랐다.
그 고생 끝에 잔치를 즐기게 된 사람들은 입을 벌리고 두리번거리다가, 기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대단한 잔치군요.”
“그렇고말고.”
예로부터 사냥은 농사보다 더 빨리 음식을 제공하여, 더 자주 잔치를 벌이기 좋았다.
“이렇게 숲에서 즐겨 본 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숲에서 열매도 따고 장작도 줍고 올가미로 짐승도 잡고 그랬는데, 요새는 그러면 잡혀 가서 벌 받으니까요.”
반백의 머리를 한, 가장 나이 많은 사도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다른 사도들은 당황해서 고개를 숙였다. 렉스가 놀라서 물었다.
-우리도 지금까지 숲에서 저런 짓 잘만 했잖아?
-테오파노 님이 신이시잖아. 들켜도 문제는 없지만, 우리만 해도 수렵 허가권을 갖고 있었어. 테오파노 님이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실 때를 대비해서.
-숲은 영주의 소유라, 그 안에 나는 거면 밤 한 톨도 영주 것이지. 대체로 영주가 눈감아 주는 곳이 많지만, 안 그런 곳도 있어. 저 신도가 어렸을 때는 영주가 관대했겠지. 또 열매나 장작보다 동물은 더 큰 소유물이라, 돈 안 내고 사냥할 수 있는 건 늑대 정도다.
아타울프와 레오파라가 설명하는 동안, 나는 엘라디안 누나를 살폈다.
사냥의 권리를 귀족들이 독점한 이래, 엘라디안 누나는 평민들을 위한 사냥 잔치의 전통을 이어 가려 애쓰고 있었으니까.
누나는 평민들이 사냥할 권리를 위해 기꺼이 영주들과 싸우려 들었다. 멧돼지가 달려들게 한다거나, 하지만 헬라네스 주신이 금했다.
-너는 숲의 여신만이 아니라 사냥의 여신이기도 하다. 숲이 자연에 속하듯, 사냥은 문명에 속한다. 문명에 속한 것에 관여하겠다면, 문명의 방식대로 하라.
그것은 단순히 사람들만이 아니라, 문명의 다른 분야를 관장하는 다른 신들과 겨루는 일이기도 했다. 모두에게 어려운 과업.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새 사도들은 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동안 몰래몰래 저질렀던 불법이 들통날까 안절부절했다.
기사들은 기사들대로 귀족들이 평민에게 관대하지 않아 엘라디안 여신의 심기를 상하게 했을까 봐 걱정했다.
그리고 모두가 다른 신의 잔치에서 잘못 처신해서, 나를 망신시키고 실망시킬까 봐 제일 많이 걱정했다.
가슴이 뭉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