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149
149
“라비크가 마음에 들기도 했고, 나도 한 번은 자식을 가져 보고도 싶었지. 내가 하고 싶어 한 일이고, 그래서 좋았어. 신과 사람의 경계가 뚜렷하더라도.”
사실, 누나가 마리우스의 어머니로 나서고 싶었어도 그럴 수 없었을 터였다.
라비크는 아버지의 사생아로서 그의 혈통에 정통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숲의 여신과의 일이 밝혀지면, 그 정통성이 흔들린다. 왕이 여신과의 사이에서 반신 왕자를 얻는 일은 인기 많은 건국 신화지만, 발라흐의 사례에선, 아들의 신화가 아버지의 신화를 위협하게 된다.
침묵이 이는 가운데, 내가 꿀술을 더 따랐다. 엘라디안 누나는 천천히 마시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조사한 건 아버지의 사생아들만이 아니었단다. 나는 괴물들도 조사했지. 사실 숲은 사람들의 개간뿐 아니라, 괴물들 때문에도 위협 받고 있어.”
누나의 숲은 괴물과의 전쟁에서 최전선이었다.
“아무리 죽여도 괴물들은 끝없이 태어나지.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태어나는 걸까?”
“자연의 심장부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겠어?”
“신들 역시 그랬지.”
내가 반박했다.
“아니지. 자연을 만든 건 신들이야. 태초의 주신과 모신, 그리고 사계의 신들이 만들었지.”
태초에는 지금의 주신과 모신과는 다른 하늘의 신, 대지의 여신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을 창조한 후, 세상의 바탕이 되었다. 다시 말해, 하늘의 신은 하늘이 되었고, 대지의 여신은 대지 그 자체가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주신과 모신이 필요했고.
“우리의 부모 신은, 태초 창조신들의 직계로, 세상의 창조에 참여해서 세상을 지금과 같은 형태로 다듬었지. 우리를 낳아서 세상을 발전시키게 했고. 누나의 말대로 우리는 세상의 정수에서 태어났지만, 괴물들은 세상을 창조하면서 생겨난 부산물, 여러 찌꺼기에서 태어났지.”
“그래, 괴물들의 존재는 세상이 완전히 정화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내 말을 마무리한 엘라디안 누나가 되물었다.
“그 창조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아니?”
“창조의 마법은 직접 관여하는 신들이 아니면―”
“답은 하나야, 결합.”
“뭐라고?”
우리 누나가, 연금술사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합일을 외쳐 대던 아트리타스와, 따라 종알대던 렉스의 목소리까지 떠올랐다.
“태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창조를 시작하자 무는 혼돈이 되었지. 혼돈이 자연을 낳자, 자연은 혼돈과 결합해, 하늘과 대지를 낳았지. 그리고 자연은 하늘과 결합하여 어둠과 빛을 낳았고, 대지는 하늘과 결합하여 대기와 물을 낳았지. 다시 대지와 자연이 결합하여, 하계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누나?”
숲의 여신이 창조 신화를 왜 곡해하는데?
“누나 말대로라면, 아버지와 딸이 결합하고, 거기서 낳은 자식과 그 딸이 또 결합하고, 거기서 낳은 자식과 또 결합했다는 반복의 반복이잖아. 혹은 그 자식들끼리 이어지거나. 말이 돼?”
우리의 조상신들을 모욕하느냐는 말은 간신히 눌러 담았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
엘라디안 누나는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혼돈이 끝내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했다면, 무로 남았겠지. 자연을 낳았기 때문에 혼돈은 혼돈일 수도 있었으니까. 또한 그 자연은 곧 결합이야. 혼돈이건, 그 사이의 자식이건, 끝없이 결합할 뿐, 그러지 않으면 무로 되돌아가 버릴 테니까. 결국 혼돈도 자연도 창조라는 점에서 같아. 그러니 그 둘을 아버지와 딸이라고만은 볼 수 없어. 자신과 자신의 결합이기도 하니까. 자신의 이면이건, 또 다른 자신이건.”
숲과 사냥의 여신은 결론 내렸다.
“창조는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아. 결합할 게 더는 남아나지 않을 때까지. 창조가 시작이자 끝인 이유지.”
그렇게 말한 엘라디안 누나는 나를 흘긋 보았다.
“물론 내 가설에 불과하지. 그래서 넌 어떻게 생각하니?”
다 듣고 나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우리 누나 멋있다.”
“…뭐라고?”
“놀라운 생각이잖아! 라프트레이 형이라면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학문의 근간이 되기 부족하지 않은 이론이라고 했을 거야. 누나는 평소 학문은 나보다도 거들떠보지 않았었지만, 한번 탐구할 문제가 생기자, 누나의 사냥개처럼 물고 늘어져서, 그런 대단한 결론에 도달한 거라고!”
엘라디안 누나는 잠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모르겠어? 누나? 이건 엄청난 생각이라고. 누나가 대단한 발견을 해낸 거라고! 모두에게 알리면, 다들 깜짝 놀랄걸! 누나가 얼마나 슬기로운지, 발트라하 누나도, 라프트레이 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거야!”
“하하하!”
엘라디안 누나는 목을 젖히고 시원스레 웃었다.
“넌 정말…….”
그러더니 말을 못 찾고 머뭇거려서 내가 도와줬다. 위대한 발견을 해낸 직후라 머리가 아플지도 모르니까.
“똑똑한 동생이지. 그러니까 누나의 발견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알아보잖아.”
“하하하하! …그래, 난 너만 알아주면 돼.”
“하지만, 누나, 난 학문의 신도 지혜의 여신도 아닌데?”
“그들이 아니면 어떻다는 거야? 내 똑똑한 동생이 알아주면 됐지.”
“지혜의 여신이나 학문의 신에게 인정받을 기회를 그렇게 날려 버려도 되는 거야? …근데 그것도 좀 멋있다. 나같으면 누나처럼 못 해.”
나 같으면 두 신들에게 종이에 써서, 서명한 후 다른 신들 앞에서 낭독하라고 요구했을 테니까.
엘라디안 누나는 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내 머리칼을 마구 헤집어 놓았다. 어엿한 신을 애 취급하는 거야말로 애 같은 행동이었지만, 누나니까 봐줬다.
“그럼, 무로 돌아가는 순간, 시작도 끝도 없겠네? 그게 무니까.”
“그렇지. 그래서 창조는 끝없이 일어나지. 끝을 창조해 낼 때까지. 그 끝이 또 다른 시작이 아니라면 무에의 회귀일 테고.”
“누나, 진짜 심오하게 들려. 다시 브론테제 숙부님과 수사법을 겨루면 이번엔 누나가 이길 거야.”
“절대 그럴 일 다신 없어.”
누나는 단호히 고개 저었다. 그러고는 꿀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처럼 하지 않기로 결심했어.”
누나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아민타스나 발트라하를 봐. 아버지는 번식력이 가장 강한 신이 되고 싶어 해. 설령 어머니와 다투더라도, 강한 아들을 낳을 여자를 유혹해서라도, 혼자 자식을 낳더라도.”
아민타스 형의 태생은 신비에 싸여 있었다. 형의 어머니는 반신이지만, 그조차 사실이 아니라는 소리도 있었다. 진실은 아버지만이 알고, 형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반면, 발트라하 누나의 출생은 모두가 알았다. 누나는 아버지의 머리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오로지 아버지만을 부모로 두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누나를 제일 총애한다고도 하였다.
“아버지는 마치 자연과 겨루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여. 자연이 얼마든지 괴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나도 얼마든지 영웅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그런 아버지의 전략이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지. 라비크도 라비크지만 마리우스를 봐.”
“하지만 나는 내 마음에 드는 남자라서 라비크를 선택했지, 아버지처럼 영웅을 낳을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를 고른 게 아니야. 그리고 나는 우리의 관계가 결혼 전의 일이긴 해도, 그의 첫 번째 아내가 내 아들을 자신의 친자로 속여야 해서, 결국 이혼으로 끝나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엘라디안 누나는 씁쓸하게 말했다.
“앞으로도 그럴 테고. 그리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약하다고 볼 거야. 자신처럼 못하니까.”
내가 누나의 그런 생각을 부인할 수 없었을 때, 누나는 내게 충고했다.
“너는 아버지한테 질문을 던지지 마라. 그런 질문을 던진 게 나만은 아닐 거야. 모두 강해지려고 하고, 그 정점은 아버지니까. 아버지는 우리에게 자신의 방식을 답변으로 되돌려 주고, 우리가 과연 해낼 수 있는지 지켜보지.
“…아버지가 정말 후계자를 바라는 걸까?”
“그건 아무도 몰라. 하지만 우리들이 아버지의 방식을 물려받기를 바라는 건 분명하지. 그거야말로 아버지가 우리에게 바라는 경쟁이야. 누가 아버지처럼 강해질 수 있는가.”
“하지만, 누나는 아버지처럼 강해지고 싶어 했잖아.”
나도 그렇지 않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지금 자연은, 우리가 더는 말하지 않는 그 신은, 괴물을 낳고 있어.”
숲과 사냥의 여신은,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 같은 힘줄이 솟아 있는 팔을 들어, 자신의 성역을 가리켰다.
“난 그걸 느낄 수 있다. 그냥 괴물들을 감지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내 영역의 심장부에서 태어나는 걸 느낄 수 있어. 나무들이며 동물들이 태어나는 것과 똑같이. 숲의 고향이 또한 괴물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나는 몸을 떨었다. 엘라디안 누나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어서.
“창조가 극한에 다다라 파괴가 되어 버렸지. 창조의 자식들끼리 서로 파괴하는.”
“…그것이 누나가 괴물의 본거지마다 성역을 이동시키는 이유구나.”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숲과 사냥의 여신은 다른 신들처럼 가장 좋아하는 곳을 영구적인 성역으로 삼을 수도 있었다. 괴물들도 차마 범접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곳으로.
하지만 누나는 자신의 성역을 괴물이 나타나는 곳마다 이동하게 했다. 신전을 괴물을 막아서는 요새로 삼아서.
“누나는 보호를 창조하고 있어.”
무심코 불쑥 나온 말은, 누나의 말에 상반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엘라디안 누나는, 다시 웃었다. 날아 들어와 누나의 어깨에 앉은 밤꾀꼬리의 소리처럼 청아한 웃음소리를.
그 소리에, 문득 나 자신의 창조가 떠올랐다.
* * *
“내 권능과 네 마법을 결합하고 싶다고?”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아직 쉬는 동안, 나와 누나는 누나의 신전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로 그거야. 난 늘 누나의 이동 신전이 멋지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직접 보니 상상을 초월하지 뭐야.”
“고맙지만, 신성과 신성의 융합은 상성이 맞지 않아.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들인 공만 못한 결과가 대부분이지. 영역 자체가 다르니 상성도 다를 수밖에.”
“마법은 신성만이 아니야. 누나의 신성도 지상에서 사람들의 믿음으로 더 강해지듯. 무엇보다 마법은 내가 창조한 힘이고, 마법에 대한 내 영감은 틀린 적이 없어. 라스카라사 누나만 해도 영감은 창조와 한 몸이라고 했지.”
“라스카라사가 뭐라 하건 내가 신경 쓸 것 같니?”
“신경 써야지. 막내가 형제자매 신들의 상반한 가르침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신성한 순간인데. 형들이며 누나들이 저마다 다른 소리를 해 대니, 헷갈려 살 수가 있나.”
“우리가 너한테 뭘 그렇게 가르쳤다는 거니? 속마음을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조차 아직 못 가르쳤는걸.”
엘라디안 누나는 투덜거렸지만, 결국 동의했다. 누나는 내게, 본래 있는 숲에서 신전을 어떻게 일으키는지 설명했다.
“그러니까, 누나가 이곳에 이동하는 순간, 숲과의 융합이 일어난다는 거지? 누나가 신성을 일으키면, 숲이 반응해서, 누나 주변으로 신전을 쌓아 올리는?”
“그렇지. 각 지역의 숲마다 다른 신전이 만들어지는 이유야. 신전이 이동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는 곳에 신전이 생겨나는 거야.”
“그런 듯했어. 그래서 내가 새로운 마법의 영감을 얻은 거야.”
숲은, 많이 개간됐지만 여전히 여러 나라들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생명력을 감지하고 첫 마법에 이용했던 곳이기도 하고.
“자, 지금 아주 작은… 신전을 만들어 봐. 실험 삼아 하는 거야.”
엘라디안 누나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이었다.
“신전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다. 한 장소에 같은 신전이 둘 있을 수는 없다. 너라는 놈은, 신이면서 그것도 모르니?”
“아, 맞아. 깜박했어. 하지만 마법은 신으로서만 생각해선 창조할 수 없는 거라고.”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엘라디안 누나는 툴툴댔지만, 그래도 내가 조른 대로 땅에서 돌과 흙으로 작은 형상을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