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175
175
“그들이 너를 원했다.”
지혜의 여신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리우트프란 왕자는 네가 공공연히 조카라 부르며 왕위 계승전의 적을 물리쳐 준 발라흐의 마리우스를 질투했고, 비앙카 역시 마리우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통치권을 다지는 데 네 도움을 받고 싶어 했지. 이사벨은 거지들과 난쟁이들처럼 무력한 사회 최하층민들을 데리고도 그토록 큰 성공을 일으킨 네 기적을 직접 보았으니, 네가 왕자라는 최상류층을 데리고 일으킨 성공에도 제일 놀라지 않았고. 정리하자면, 너는, 지금 가장 인기 많은 수호신이란다.”
아, 그렇군. 솔직히 기분 좋았다. 물론 내 비위를 맞추면서 제 의지를 관철하려는 지혜의 여신이 구사하는 수사법에 넘어가면 안 되지만…….
“그러니, 헤르첼로이데가 너를 연애결혼의 수호신으로 삼고 싶어 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고맙습니다, 어머니. 잠시 우쭐댔지만, 정신이 번쩍 드네요.
“그건 사랑의 여신 혼자 바라는 바죠. 저와는 관계없습니다.”
“내가 그걸 몰라서 여기 왔겠니, 내 아들 테오파노?”
하마터면, 왜 오셨느냐고 물을 뻔했다.
“나는 내 아들을 보러 왔단다. 그런 내게, 지혜의 여신이 동행을 청했을 뿐.”
“자비로우신 모신께서는 제가 반드시 보답하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시니까요.”
발트라하 누나가 장단 맞추었다.
“내 아들은 스스로 원하여 지상에 내려와, 그토록 짧은 시간 내에 그토록 대단한 위업을 세웠다. 그러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어미를 보러 오지 않으니, 내가 직접 보러 올밖에.”
“죄송합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동안 방문했던 도시마다 어머니의 신전이 있으니, 잠시 들렀으면 어머니는 내 앞에 현현하셨을 터다.
그러나 어머니를 보면, 예지의 꿈을 말하고 싶어질까 두려웠다.
그 꿈의 내용이 아니더라도,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슬펐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모두 털어놓고 싶어서. 그 꿈에서 더 힘들고 슬펐을 어머니에게.
“내 아들은 물론 괴물과 싸우느라 여념이 없었으리라.”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는 나 대신 입을 열었다.
“그러나 지금, 발트라하 여신의 신도이자 네 신도들은 서로를 고발하며, 너를 증인으로 내세운다. 물론 내 아들은 무고하다. 다만, 내가 모신이자 테오파노 신의 어머니로서 알고 싶은 바는, 어찌하여 내 아들이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그 이유다.”
어쩌다가, 사랑의 여신이 벌인 모략에 휘말려 들었느냐고 어머니는 묻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아니 어머니의 소생이 아닌 다른 신이라면, 헤르첼로이데를 문제 삼았을 어머니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자식은 그런 수법에 걸려들어선 안 된다. 만일 어머니가 내가 그러리라 믿었다면, 내가 지상에 내려가는 일을 허락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오직 어머니만이 이 자애로우면서도 엄격한 눈길을 보낼 수 있었다. 한 번에 한쪽만 하는 아버지와 달랐고, 그래서 어머니가 가끔 더 무섭기도 했다…….
“내 도움이 필요하니, 내 아들?”
어머니가 물었다.
나는 어머니의 봄꽃처럼 피어난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내게 실망했더라도, 그래서 나를 기꺼이 도울 나의 어머니…….
“아닙니다, 어머니.”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도움을 거절했다.
“사랑의 여신은 제게 의도를 품고 접근한 게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목적을 위해 그 접근을 허용했습니다.”
어머니는 지그시 나를 바라보는데, 지혜의 여신이 겉으로는 가벼운 말투로 물어 왔다.
“저런, 난 미처 눈치채지 못했구나. 네 그런 깊은 속내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 뭐니?”
허, 지혜의 여신 수사법이 참 가증스럽네…….
“그렇죠. 가끔 무지를 겪어 보면 지혜도 더 깊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되받아치자, 누나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평소, 눈썹 하나 까닥 안 하던 분의 표정 변화는 참 보기 좋았다.
“그래서, 네 목적은?”
“신들이 서로 연합해서 사람들을 이끄는 겁니다.”
“이 상황에서?”
“이 상황이니까, 영역 다툼보다 그편이 더 이득이지요.”
“과연 그런지 무지한 내게 설명해 주겠니?”
지혜의 여신이 또 무식한 척했다. 겸허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신 중에선 나뿐이겠지.
나는 계획을 설명했다. 어머니의 눈을 들여다보며 떠올린 계획을.
즉흥적이지만, 결국 내가 지상에 내려온 이래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 만났던 사람들, 새삼스러웠던 과거의 가르침들, 그 모든 결실 그 자체인 계획을.
이번에는 어머니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발트라하 누나의 얼굴은 싸늘해졌고.
“내가 그런 일을 허용하리라 생각하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누님께 왜 말했을까요? 미리 내 계획을 눈치채고, 방해할 수 있게 말입니까?”
나는 대담하게 말했다.
사실 허세였다. 어차피 내가 영영 말하지 않더라도, 지혜의 여신은 곧 눈치챘을 터였다. 그렇다면, 미리 말해 놓고 허를 찌르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지혜의 여신 스스로, 내 진짜 의도를 그 놀라운 지성으로 마음껏 추적하도록.
누나라면, 사실 존재하지 않는 의도조차 나 대신 멋들어지게 창조해 줄 테니까.
누나보다 머리가 좋지는 않지만, 배짱은 좋은 나였다. 누나처럼 실패의 가능성을 세세히 계산하지 못하니까.
어머니의 실망과 믿음을 마주하자, 순식간에 꾸며 낸 계획을 밀고 나가듯.
“네가 리우트프란과 비앙카를 결혼시킨들 내게 뭐가 더 이롭다는 거지? 리우트프란은 그렇게 귀천 상혼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여자보다 더 좋은 신붓감을 구할 수 있다. 비앙카도 늙은 남편과 자유롭게 사는 편이 나을 테고. 네 제안은 네 어머니 모신이나 내가 아니라, 헤르첼로이데에게나 유리할 뿐이다. 그러고도 네가 사랑의 여신에게 휘말리지 않았다고?”
발트라하 누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네, 연애건 정략이건 그 둘은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누님은 그 둘을 통해 결혼 세금을 비롯한 부당 세금을 철폐하고요. 그러니 어머니에게도 유리하지, 사랑의 여신에게만 유리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내게는?”
“세제 개혁은 그 자체로 누님에게 유리합니다.”
“세금이 높은 건 이유가 있다. 스카텔란에게 물어보렴. 전쟁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드나.”
“세금이 높으니까 전쟁도 하는 겁니다. 게다가 전쟁이 아니라 군주 자신의 사치에 들어가는 돈이 더 많지 않습니까? 호화로운 궁전이며, 애첩들의 연금과 총신들의 노름빚, 온갖 사치에 쏟아붓는 돈을 보세요. 백성들이 직접 기른 열매로 술을 담그건, 결혼을 하건, 장례를 치르건, 자유민마저 노예 취급하며 뜯어낸 세금이죠!”
모두, 어머니와 브론테제 숙부와 아민타스 형이 분노했던 일이었다. 아민타스 형은 내 도움을 청하기까지 했었고.
“심지어 사치 때문에 그 돈도 모자라, 관직을 팔지 않습니까? 특히 징세 대리인은 관직 정도가 아니라, 백성이 짊어진 납세의 의무를 왕이 돈 받고 판 거죠. 왕에게 가장 많은 돈을 낸 자가 징세 대리인이 되면, 그가 백성들에게 세금을 어떻게 약탈해 가건 왕은 상관도 안 합니다.”
“…지상에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잘도 아는구나? 네 조카가 말해 주더냐?”
“물론이에요. 내 조카는 그 제도를 고치려 하지만, 쉽지 않죠.”
“당연하겠지.”
“하지만 지혜의 여신이 나선다면 어렵지만도 않겠죠.”
“내가 날 섬기는 왕들의 방식을 고치리라 믿니? 적은 비용으로 큰돈을 빠르게 걷을 수 있다면, 왕들에겐 그보다 유용한 게 없지. 네 조카 왕도 그 점을 알아야 할 텐데.”
“그러나 누님이 새로운 세금 제도로 그들을 설득한다면, 그들은 늘 그랬듯 누님 말을 들을 겁니다. 제 조카처럼 본디 세금 문제를 개혁하고 싶었던 군주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무엇 하러 그런 제도를 고안해 내고 왜 그들을 설득한단 말이냐?”
역시 안 한다고 할 뿐, 못 한다는 소리는 안 하는 지혜의 여신이었다. 절대 못 하는 나와는 달랐다. 그러니 누나를 끌어들여 시키는 내가 승자였다.
“그렇게만 하면 누님은 돈의 신도 되실 테니까요.”
“돈의 신이라고? 그런 신이 어디 있단 말이냐?”
발트라하 누나는 어처구니없어했다.
나는 기꺼이 보이지 않는 손의 신에 대해 말해 주었다.
“누님의 신도인 리우트프란이 제게 경의를 표하게 된 계기였죠. 라프트레이 형님의 교묘한 솜씨를 누님이 하지 못할 리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니, 확신합니다.”
“세금 개혁을 한다고 돈의 신이 탄생하느냐?”
“정확히 그 뜻입니다.”
나는 누나가 눈살을 찌푸리건 말건 태연하게 말했다.
“돈은 상류층에만 묶여 있습니다. 그 아래로는 내려오지 않고요. 그렇다면 그건 돈이 아니라 금은일 뿐이죠. 하류층과는 관련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풀려나 흐른다면, 그 흐름을 일으키고 제어하는 존재가 돈의 신이 됩니다.”
“내가 돈의 신이 되고 싶으리라 여기니?”
“물론이죠. 누님은 절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실 거예요. 놓친다면 제가 라프트레이 형님에게 가져갈 테고, 형님은 하위 신 중 하나를 시켜 세금을 개혁한 후, 돈의 신으로 삼거나, 보이지 않는 손의 신을 돈의 신으로 삼겠죠.”
발트라하 누나의 눈빛이 번쩍였다.
누나가 입을 열었으나, 내가 선수 쳐서 말했다.
“그러니, 제 현명하신 발트라하 누님은 제 제안을 받아들여, 세제를 개혁하여 돈의 신이 되실 테고, 제 도움을 높이 사서 앞으로 제가 요청할 때마다 자금을 융통해 주실 겁니다.”
발트라하 누나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도 누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누나가 조용히 물었다.
“너는 괴물들과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만일 언젠가 괴물들과 전쟁이 벌어진다고 생각해 보자. 물론 일어날 리 없지만.”
그러면서 누나는 어머니를 잠시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얼굴은 싸늘했으나, 노여움을 표하지는 않았다.
“나는 다만, 네가 사람들 간의 전쟁을 못마땅하게 여기니, 네가 가장 중시하는 싸움이 전쟁이 되는 경우를 상정해 보았을 뿐이다. 그럴 때, 너 역시 큰 전쟁 자금이 필요할 터다.”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겠죠.”
나는 고개 끄덕였다.
“기사를 양성하는 데 큰돈이 들고 성채를 짓고 각종 장비를 마련하는 데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누나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제일 비쌉니다. 아무리 값비싼 무구건, 성채건, 장비건 그걸 움직일 사람 없이는 소용없으니까요.”
나는 지혜의 여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마쳤다.
“그걸 안다면, 누님은 돈의 신이 되실 테고, 모르신다면, 지금 되신들 언젠가는 끝내 다른 신에게 넘어가겠죠.”
지혜의 여신은 여전히 아무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뿐.
“넌 비앙카를 이번에 처음 만났다. 리우트프란과는 좀 더 인연이 있지만, 그가 네게 빚을 졌으면 졌지 그 반대는 아니다. 메데커 역시 처음 청해 온 일 이상을 네게 기대할 수 없고.”
하나하나 나열한 발트라하 누나가 내게 물었다.
“왜 그들을 이렇게까지 돕는 거니? 그들이 본래 예정에 없던 결혼을 도와준다면, 각자 영토의 통치자가 된 후, 너를 국교로 삼겠다고 약조라도 했니?”
“그들을 통해 그들의 백성을 돕고 있는 거예요. 그들이 자신과 백성을 한 몸으로 볼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그들의 수호신이 될 테고, 아니라면 수호신이 될 이유도 없죠.”
그러자, 나를 맹금처럼 바라보던 발트라하 누나의 눈빛이 비로소 부드러워졌다.
“정계에 처음 나온 이상주의자 애송이치고 제법이구나.”
칭찬이다, 칭찬이야. 수사법이 망했을 뿐이지. 수사학의 신에게 일러바치고 싶네.
“과연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국교가 될 만하구나. 그렇다면, 네 제의를 네 스스로 이행하지 못했을 때의 각오도 되어 있겠지? 그 둘을 결혼시키지 못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