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182
182
“그건 나와 스카텔란이야.”
나는 헤르첼로이데를 쳐다보기만 했다. 농담이겠지.
“에로스, 타나토스.”
헤르첼로이데는 사랑과 죽음을 뜻하는 고어를 입에 올렸다.
“타나토스라고 해서 브론테제 신을 떠올리지는 마. 파괴 본능을 뜻하는 거니까.”
“그렇다면 에로스는 창조 본능을 뜻하는 말이겠군요.”
지금 떠오르는 건 엘라디안 누나의 주장이었다. 헤르첼로이데의 사랑이나, 헬라네스 주신의 번식 대신.
“전쟁이 파괴하는 만큼, 사랑이 창조해야 하지. 그래서 헬라네스 주신은 나와 그의 적자가 같이 있어야 한다고 했어. 어떤 형태로건.”
“어떤 형태라뇨? 결혼이라거나, 아이를 가진다거나?”
“다 포함해서.”
설마…….
“거절할 수는 없었어요?”
“그럼 영원히 떨어져 있으라고 했어. 나는 전쟁의 영역에 가면 안 되고, 스카텔란은 사랑의 영역에 오면 안 된다고. 절대로.”
“그건!”
“그래, 나는 누구와도 싸울 수 없고, 스카텔란은 누구와도 사랑할 수 없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아버지라도 그런 걸 강요할 순 없어요!”
“헬라네스 주신은, 아무도 나와 싸울 수 없도록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했어. 스카텔란에게는 무슨 약속을 했는지 모르겠네. 평생 사랑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 보호?”
헤르첼로이데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둘은 연인이 되기로 한 건가요?”
“내가 결정했지. 스카텔란은 처음에 내 적이 되려고 했어.”
“형이? 형은 당신한테 푹 빠져 있잖아요!”
“혈육도 아닌 우리가 함께 있어야만 한다면, 적으로 있는 게 그의 본성이니까. 연인이 되는 게 내 본성이듯.”
“…완벽한 승리군요.”
“그렇지? 사랑이 전쟁을 이긴 거지.”
하긴, 거대한 미의 여신 앞에 있으니 전쟁의 신도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었더랬지.
“창조가 파괴를 이겼고.”
내가 그 말을 받아 중얼거리자, 헤르첼로이데가 미소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해 놓고도, 스스로 믿을 수 없었다. 창조나 파괴나, 다른 하나를 이기는 게 가능한가?
엘라디안 누나의 주장이 떠올랐다.
-창조는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아. 결합할 게 더는 남아나지 않을 때까지. 창조가 시작이자 끝인 이유지.
파괴에도 똑같이 해당하는 소리였다.
파괴를 뜻하는 고어가 죽음을 뜻하기도 하는 이유. 모든 걸 파괴한 나머지, 자기 자신조차 파괴할 때까지 멈추지 않으니까.
그 둘이 과연 다른가? 왜 주신 헬라네스는 전생의 신과 사랑의 여신을 붙여 놓으려 했을까?
…결국 양극단이 통한다면,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 두 본능 모두 제어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연애결혼이건, 궁정 연애건, 싸워서 영역을 넓혀 가고, 전쟁은 사랑을 배워서 사랑의 규칙을 받아들이고…….”
내 말에 헤르첼로이데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본능 그 자체기도 하지만, 우리보다 본능에 더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길을 제시해야 하니까.”
이번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와 사랑의 여신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마법의 본능은 무엇이니?”
안 생각해 봤는데. 나야 마법의 신이니까 본능으로 해서.
그러니까 대충 둘러대려는 순간, 결국 그게 정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구나 바라는 가능성의 기적이지. 세상 속의 나로서, 세상을 바꾸는 힘.”
나는 마법을 그들 자신의 힘처럼 쓰면서, 여러 새로운 마법을 내게 말하는 사도들이며 마법을 처음 본 사람들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마법을 그토록 경이로워하면서도 자연스레 받아들여. 마치 그들도 하늘을 날고 싶고, 불을 휘두르고,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게 하고… 그 모든 것을 한 번은 꿈꾼 양. 그 말도 안 되는, 늘 보아 온 자연현상에 반하는 일이, 거기 속해서 사는 존재로서 자연스레 꿈꾼 가능성인 것처럼.”
“정리하자면?”
헤르첼로이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모든 가능성을 꿈꾸는 본능.”
말하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괴물의 재앙이나 자연재해를 겪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면서도, 나도 새처럼 하늘을 날아 봤으면 좋겠다고, 물이고 불이고 죽을 뻔하기보다 마음대로 다뤄 봤으면 좋겠다고 꿈꾸는 게 하도 장해서. 씩씩하니 꿋꿋해서.
“혹은, 신이 사람을 사랑하는 본능.”
그 순간, 헤르첼로이데는 참으로 아름답고도 사랑스럽게 말해 주었다.
* * *
“네가 이겼구나.”
발트라하 누나는 선뜻 인정했다.
어머니는 이번에 일이 있어 오지 못했지만, 우리 중 제일 바쁜 듯한 지혜의 여신은 기꺼이 시간을 내야 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패배를 인정하는 보기 드문 순간이니까. 그 희귀한 경험을 같이 나누는 것도 내게 도움이 되리라고.
“이제 누님의 솜씨를 기대합니다.”
“기대해도 좋다. 그런데, 너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니? 네 새로운 신도 한 쌍은, 너를 국교로 삼기로 정했다. 다시 말해, 너는 나와의 내기 없이도 그들에게 세금 개혁을 요구할 수 있었지. 이제 그들은 나보다 네 말을 더 잘 들을 테니까.”
“일이 그렇게 될 줄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그마저도 미리 셈해서, 앞일을 내다보고 처신하는 것이 지혜지. 그들에게는 세금 개혁을 요구하고 내게는 다른 것을 요구한다든가.”
나는 먼 앞일을 보기만도 바빠서요.
“그런 지혜가 있었으면, 제가 지혜의 신이었겠죠. 하지만 전 지혜의 신이 아니고, 지혜의 여신 동생이니까, 그냥 누님을 이겨서 일을 맡기기만 하면 돼요!”
내게 패한 것을 인정할 때도 태연했던 발트라하 누나의 얼굴에 시름이 깃들었다.
“…대체 이런 놈이 날 어떻게 이긴 걸까?”
“누님을 이겨야, 누님의 실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놈이요?”
“뻐기지 말고, 지금의 승리에 안주해선 안 된다.”
“뭐 하러 그래요? 어차피 앞으로 다시는 누님을 이기지 못할 텐데요?”
“…이 승리만 해도, 좀 더 네게 유리하게 할 수 있었는데 놓쳤다!”
“하지만 누님과 저의 내기였잖아요.”
“내 말이!”
“그러니까 제가 좀 불리해도 누님에겐 그만큼 유리하죠.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우리 사이에?”
지혜의 여신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그러다가 누나가 숨을 몰아쉬자, 서서히 가라앉았다.
“…넌, 진짜 딴 데 가선 이러지 마라.”
“발트라하 누님도 아민타스 형님이랑 똑같은 소릴 하네요, 하하!”
“…좋다고 웃지 마라.”
“그럼 누님이 웃든가. 자기가 안 웃어서 제가 웃은 건데, 같이 웃지도 않고.”
“…넌, 진짜 그냥 놔두면 안 되겠구나.”
발트라하 누나는 나를 뚫어지게 보며 말하더니, 갑자기 나를 끌어안았다.
놀랐지만, 누나도 나한테 화낸 게 미안했겠지 싶어서 마주 끌어안았다.
그러자 발트라하 누나가 내 이마에 자기 이마를 갖다 댔다.
“하하, 누님, 아기 같고 귀엽─ 아아악!”
이마에서 불나는 줄 알았다. 진짜 파이어볼이 누나 이마에서 내 이마로 관통한 느낌.
머리를 불 타는 칼로 찌르듯이 엄청나게 아팠다!
“아아아악! 뭐 하는 거야?”
“네게 내 권능을 하나 전했다.”
“진짜요?”
“그래, 네 지혜의 가능성을 최고로 끌어 올리는 권능이다. 너는 지금부터 괜히 딴 생각하지 않고 집중해서 네 지혜의 최고치를 발휘할 수 있다. 네가 뭘 연구하건, 뭘 구상하건, 평소보다 훨씬 빨리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와, 진짜 고맙습니다, 발트라하 누님!”
나는 좋아서 막 웃고, 누나를 다시 끌어안았다. 누나가 내 품 안에서 한숨을 길게도 쉬었다.
“계산 좀 잘하고 살아라.”
“하고 사는데? 누나는 날 등쳐 먹지 않을 신인 걸 알고 한 건데? 그러니까 누나도 날 챙겨 주는 거잖아.”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이번엔, 라프트레이 형 같았어.”
“그 입 닥치어라.”
“네, 지혜의 여신님.”
발트라하 누나 외에도, 브론테제 숙부님과 어머니, 아민타스 형이 각기 감사를 표하며, 선물을 주고자 했다.
발트라하 누나는 지금 당장 결정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살다가 이런 권능이 필요하다 싶을 때, 네가 바라는 쪽의 능력으로 부탁하거나, 마법의 종교가 널리 퍼지면서 겪는 문제를 이 종교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싶을 때, 그때 말해도 늦지 않다.”
“역시, 지혜의 여신을 누님으로 둔 저는 행복의 신이 맞군요. 누님이 옆에서 말만 해 줘도 행복하니까.”
“그래, 네 모든 그 해맑기까지 한 느낌들이 서로 한데 섞어 흘러, 너를 네 삶의 모든 도착지로 실어 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너는, 그래, 네 방식대로 똑똑하구나.”
“그 칭찬이 왜 이렇게 기분 좋은 거죠?”
“똑똑해도 자기 방식대로 못 살아가는 이들,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도 똑똑하지 못한 이들 속에서, 네가 승자니까.”
“그리고 누님은 동생에게 한 번쯤은 져도 되는 강자고요.”
그러자, 지금까지 미간을 내내 찌푸렸던 발트라하 누나는, 마침내 웃었다. 조금 헛웃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활짝 피어난.
* * *
우리는 그렇게 라트랑을 떠나려 했다.
그런데 역시 라트랑을 떠날 준비를 하는 비앙카와 리우트프란이 뜻밖의 부탁을 해 왔다.
“헤셀 후작의 시신을 되살려 달라고?”
“그렇습니다, 테오파노 님.”
그가 말하려다 죽은 배후를 밝히고 싶다고 비앙카가 말했다.
“죽은 자의 증언을 활용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나는 주의 깊게 지적했다. 일디케는 아직 사자의 증언을 인정하는 법을 제정하지 않았다.
또한 신의 증언과 사자의 증언은 무게가 같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살인의 피해자라도 자신을 죽이려 한 사람을 착각한 채 죽었을 수도 있으니까.
“압니다. 그저 그의 입으로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
비앙카와 리우트프란은 이미 배후를 추측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라프레아의 사스키아 태후.
그 추측이 맞다면, 지금 당장으로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다만 같은 편끼리 공통의 적이 누군지 분명히 하는 일은 도움이 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을 참여시키지는 않기로 했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자주 보는 일은 서로에게 좋지 않다.”
서로 이별조차 말할 기회가 없었다면 모를까. 생사의 경계는 엄중히 세워야 하니까.
지금 같은 경우, 헤셀이 사자로서 지니는 권리는 그가 침해했던 산 자들의 권리 앞에서 물러서야 했다.
리우트프란과 비앙카도 그 경험을 두 번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
그들은 기꺼이 동의했고, 나는 사도들만 데리고 헤셀의 무덤에 갔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부패가 심해서, 라트랑에 바로 묻혔다. 고향으로 시신을 운구하지 못한다고 해도 목이나 심장을 따로 보존하기도 하는데, 부패 때문에 사람들이 꺼림칙해했다.
“최소한 부패했으니까, 그 기사처럼 죽은 몸이 되살아나진 않겠죠?”
파비안이 걱정스레 물었다.
-나도 진짜 싫었어. 본래는 유령이 나오던데.
“너무 죽자마자 살아나서 그런 거 아냐? 영혼이 몸을 떠나기 전에.”
아타울프의 추측이 그럴 듯했다. 사실 나도 확실히 몰랐다. 본래 브론테제 숙부가 금했던 네크로맨서는 내가 막 시작해 나가는 분야였으니까.
브론테제 숙부야 그런 일을 절대 하지 않을 분이고, 그러니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혼자 헤맬 수밖에.
내가 헤맨 만큼 후학들은 편하겠지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할 뿐이다. 아니, 근데 후학이 가능이나 할까. 이런 일의 후학은 생기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무덤의 묘비에 스태프를 갖다 대고 그를 소환했다. 프라비타의 친부모를 불러내며 깨쳤던 방식이었다.
당시, 부모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난쟁이들도 많았는데, 그들의 사례보다 훨씬 쉬었다.
-음… 제 부모님 때보다 좀 시간이 걸리네요?
프리비타가 말했을 때였다.
“물러나십시오! 뭔가 이상합니다!”
레오파라가 급히 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