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188
188
법의 여신은 판사 복장으로 나타났다.
일디케는 사람들의 복장과 똑같은 복장을 하는 여신이었다.
다른 신들과는 달랐다. 예를 들어 스카텔란 형의 갑옷만 해도 신들의 무구답게 비범하고 권능이 느껴지는 의상이었다.
어떤 면에선 사람들의 갑옷과는 아예 개념이 다르다고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프라비타가 마석과 마법으로 제작한 갑옷이 사람들의 큰 감탄을 샀던 이유였다. 사람이 지금까지 꿈꾸지 못했던 경지에 가까이 갔기 때문에.
여러 곳의 의상을 즐겨 입는 발트라하 누나도 재질이나 모양은 훨씬 아름답고 훌륭하게 차려입어서, 신의 권능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일디케 여신만은 사람들과 모양이건 옷감이건 똑같은 복장을 했다. 여신의 옷이나 아까 일디케 신관의 옷이나 똑같았다. 가끔 공정하다는 사실을 과시하고자 법복을 입고 재판을 진행하는 영주들이, 더 질 좋은 옷을 입을 정도였다.
“테오파노 신이여, 나를 불렀습니까.”
여신의 냉철한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철두철미한 표정으로. 여신에겐 결국 이 엄격하고 권위 있는 복장이 제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디케 여신이여, 부름에 응해 주어 고맙습니다.”
동요를 내색하지 않으며 정중하게 맞이했다.
법의 여신도 사랑의 여신처럼 형제자매 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헤르첼로이데처럼 티격태격하며 허물없는 사이도 아니었다.
애초에 불가능했으니까.
-법의 여신은 홀로 선다. 법은 곧 자립이니, 그 어떤 관계도 더해지지 않는다.
아버지 헬라네스 주신이 명했듯.
-자립이라면서, 주신에게 너무 의지하는 듯하군.
엘라디안 누나가 빈정거렸다. 주변에 사는 사람 모두에게 속했던 숲이 영주의 소유가 된 일에 분개하여.
-일디케가 다른 가치들처럼 권위를 세우자면, 우리의 존중을 먼저 사야 하지 않는가?
발트라하 누나도 지적했다. 그나마 이 둘은 냉정한 편이었다.
-학문은 그 자체로 자유여야 하는데, 이 학문은 배우지 말라느니, 저 이론을 주장하면 죽여 버린다느니, 이건 학자들에 대한 탄압이다!
학문의 신이 분노했다.
-예술에게 외설의 누명을 씌우다니! 그럼 사회의 실상을 예술이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데? 예술을 현실과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처벌하겠다고?
예술의 여신이 성토했다.
-여자가 가슴을, 남자가 성기를 드러내지 않으면, 그들 육체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드러내란 말인가? 사람의 아름다움은 의상으로 더 돋보이는 것이지, 의상으로 숨겨야 하는 게 아니다!
미와 사랑의 여신이 고함쳤다.
-법대로 하는 전쟁이면 그게 전쟁인가? 전쟁 금지법이나 만들지 그래! 가능한가 보자!
전쟁의 신이 분격했다.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일디케 여신을 좋아하는 아민타스 형만 빼고.
그리고 헬라네스 주신은 한마디만 했다.
-나쁜 사이도 관계에 속한다.
그러니 법의 여신에게 공공연한 항의를 표출할 수도 싸울 수도 없었다. 주신이 금지했으니까.
나야, 천상에 있을 때는 아버지의 충실한 아들답게 왜 다른 신들이 그렇게 말을 안 듣는지 몰랐다.
지상에서 겪어 봐야 아는 일들이 있으니까. 일단 마법은 초창기라, 사회와 아직 갈등을 빚지도 않았고.
그러나 이런 일을 겪으면, 아버지의 금지가 얼마나 엄격한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어떤 관계도 맺어선 안 된다는 점이, 일디케 여신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천상에서건 지상에서건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일단 상황을 설명한 후 물었다.
“나는 이로써 법의 여신을 부를 여건을 충족한다고 여겼습니다. 일디케 여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신이 보통 다른 신을 부르면, 동맹이나 적으로서다. 일디케는 그 어느 쪽이어서도 안 되었다.
그리고 신들이 다툼의 판가름을 낼 때는 법의 여신을 옆에 세운 주신에게 가지, 여신을 따로 부르진 않았다.
주신의 금지 이래 신들도 일디케의 일을 잘 말하지 않으니까, 나도 그 이상은 몰랐다. 어떤 식으로 하는지 이야기도 들어 보지 않은 일을 사람들 앞에서 처음 해 보자니, 떨렸다.
“테오파노 신에게 동의합니다. 여건은 성립합니다.”
일디케 여신의 말에 나와 사도들은 안도했다. 사도들도 일디케 여신 앞에서 다른 신들보다 더 긴장한 듯했다. 내 긴장을 느꼈나.
“그러나 탄원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프라비타가 절로 벌어진 입술을, 스스로 꼭 깨물었다.
“무시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해쳐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라면, 법도 그 영향을 받습니다, 테오파노 신. 그런 자의 악을 깨달을 선이 없으니까요. 즉,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여 둘이 똑같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일디케 여신이시여, 안젤로는 전혀 그들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라우라가 증인이에요.”
“살인자들의 증언이 라우라의 증언보다 우선 되어서는 안 됩니다.”
프라비타와 파비안은 열렬히 말했다. 하지만 레오파라와 아타울프는 딱딱한 표정이었다.
일디케만이 아니라, 대체로 신전들은 신관이 일으키는 문제를 조용히 처리했다. 신관 전체에 대한 의혹으로 커지지 않도록.
하지만 그런 은밀한 처리가 도리어 신전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게 하지 않을까.
일디케 여신은 그들의 이의가 합당하긴 하지만, 판결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예전에도 그랬던 적이 있고, 그럼 일관된 법 해석을 위해 옛 판결을 존중해야 했다.
또한 라우라가 살인자들과 그 친지들은 물론, 판사 중 하나인 영주에게 위협받을 가능성도 말했다. 판사들은 판결을 그들의 권위와 결부시키니까.
“알겠습니다, 일디케 여신이여. 내 부름에 응해 주어 고맙습니다.”
내 사도들의 의도가 선하긴 하나, 여신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식으로 나가선 안 되었다. 여신의 거절 이래 아무 말도 없이 무표정한 라우라도 마음 쓰였고.
이 일을 마무리 짓고 라우라를 달래는 편이 나았다.
일디케 여신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나 라우라가 더 빨랐다.
“일디케 여신이시여, 테오파노 신이시여, 고맙습니다. 저처럼 하찮은 사람에게 이 같은 은혜를 내려 주셨으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라우라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눈망울도 맑고 또렷했다. 왼편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는 것도, 마치 맹세라도 하듯 진솔하게 들렸다.
슬플 텐데도. 그녀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얼마나 비통하겠는가, 라우라. 하지만 그대는 잘 견뎌 내고 있다.”
격려하자, 라우라는 희미한 미소마저 지었다.
“저는 견딜 수 있습니다. 저는 무엇이든, 모조리, 견뎌 낼 수 있어요. 아, 그들의 악행마저도 견뎌 냈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안젤로를 잃느니.”
“라우라─”
어떻게 대답할지 모르면서도, 무작정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라우라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안젤로가, 죽어서도 저를 걱정하며 제가 행복하길 바란 안젤로가… 죽어서도 거짓 누명을 쓴 일은… 그는 제가 연인이 아니었어도 구했을 사람이에요. 그 착한 남자가 위기에 빠진 여자를 구했다고, 살인자들을 무시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는 고인 능욕을 당한 일은… 절대로 견딜 수 없어요… 그토록 착하고, 그토록 절 사랑하는 안젤로를 보고 나니, 더는 견딜 수 없어요…….”
우리는 그 모든 말에 그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었다.
“견뎌서도 안 되고, 참아서도 안 되니까요.”
“라우라, 진정해라!”
그 단호한 말에, 불길한 예감이 들어 손을 뻗었으나, 라우라는 민첩하게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안젤로의 묘비 뒤에 섰다. 이 강력한 신들과 사도들 앞에서, 그 보잘것없는 나무 묘비가 자신을 지켜 줄 성벽이라도 되는 양.
죽은 연인의 묘비 뒤에 숨은 그 가련한 여인을, 억지로 끌어낼 수는 없었다.
“복수를.”
그때, 라우라가 청아한 목소리로 외쳤다.
뭐라고… 설마!
“나의 안젤로를 위한 복수를! 복수의 여신 하스칼이시여! 이 제물을 받으소서!”
“안 돼!”
일디케가 고함질렀다. 말도 나오지 않은 나는 무작정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라우라는 제 심장에 단검을 꽂은 뒤였다.
“안 돼!!”
일디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귀가 먹먹한 가운데, 나는 미친 듯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테오파노 님! 물약을 가져왔어요!”
“라우라, 정신 차려요! 죽으면 안 돼!”
-라우라! 일어나!
사도들도 애썼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라우라가 제 심장에 그토록 정확히 단검을 꽂은 순간부터… 아니, 그 이전 심장에 손을 올려놓고 우리에게 말했을 때부터…….
그녀를 살릴 가망은 없었다.
“테오파노 신! 그녀를 살려야 합니다!”
일디케 여신이 격분하여 소리쳤다. 차마 여신을 돌아볼 낯도 없어, 내가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내 손 아래서 그녀의 심장이 멎었다.
“라우라!”
“아아, 라우라!”
-안 돼!
사도들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아악!”
그때 레오파라가 갑자기 짐승 같은 비명을 질렀다. 라우라에 매달려 정신없이 슬퍼하던 이들까지, 다른 이도 아닌 레오파라의 비명에 움찔할 지경으로.
아, 네가 왜 그러는지 나는 안다. 하지만 이번만은 널 구하지 못하는구나, 나의 사도여.
“테오파노 님! 물러서세요! 모두!”
“으아악! 다들 물러서! 물러서라고!”
레오파라와 아타울프가 악을 썼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아아아아악!”
“아아악!”
-테오파노 신! 테오파노 신!
“움직여! 모두 움직이라고!”
“테오파노 님, 정신 차리세요, 보면 안 됩니다!”
사도들이 모두 동시에 소리 질러 댔다.
“멈춰라. 아무도 피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내가 말했다.
일디케 여신의 길고 윤기 나던 머리카락이 살아 꿈틀거리는 뱀들로 바뀌었다. 눈이 뒤집혀 흰 눈이 되자, 피눈물이 흘러 내려 붉게 물들였다. 등에서는 흉측한 날개가 솟아났고, 들어 올린 한 손에서 불꽃이 일더니, 그대로 타올랐다. 마치 여신의 팔 하나가 그대로 횃불이 된 것처럼.
“테오파노 신이시여, 그들이 라우라를 노리고 있어요! 살인자들의 변호사며 그 동조자들이 몰려왔어요, 라우라는 어디 있─ 아아아악!”
묘지로 다시 돌아온, 라우라의 친구가 말을 채 끊지도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무엇을 보고 비명 질렀을까. 라우라의 시신에? 라우라가 불러낸 복수의 여신에?
그 둘이 정녕 다른가.
레오파라가 라우라의 친구를 잡아끌어 우리에게 데려왔다. 나는 그녀에게 바로 죽음의 잠을 내렸다. 라우라에게도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죽음의 잠에서 진심으로 깨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영영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라우라의 친구가 말한 자들이 당도했다.
“사람을 무시해대는 나쁜 놈의 여자를 잡으러 왔다!”
“살인은 했지만 사람은 착한 친구를 감히 무시하다니, 죽어도 싸다!”
“무시하는 놈은 죽여야지, 감히 불만을 품어?”
묘지 입구에서부터 떠들어 대는 자들이 몰려왔다.
휙.
다음 순간, 하스칼의 머리카락이 허공을 갈랐다.
삼각형의 머리를 꼿꼿이 세운 독뱀이 채찍처럼 날아가, 그 말을 한 자의 혀를 물었다. 눈을 물었다. 코를, 귀를, 얼굴을, 생식기를.
채찍처럼 사방으로 날아가는 독사들이 그들의 전신을 물었다. 목만 빼놓으며.
독사 독이 올라 온몸이 시퍼래진 자들이 벌벌 떨며 쓰러졌다. 안젤로의 죽음은 그토록 무시했던 이들이 자신들의 죽음은 두려워해서 벌레처럼 기어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독사 채찍은 더 끈질기게 쫓아 올 뿐이다.
그렇게 하스칼이 복수하기 시작했다.
“어, 어디로 간 걸까요.”
눈물조차 말라 버린 얼굴로 프라비타가 물었다. 파비안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살인자들에게 갔겠지. 그리고 판사들에게도.”
“여기 있어선 안 됩니다. 테오파노 님,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다들 정신 차려!”
레오파라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저, 저게 뭐야…….”
아타울프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거칠게 들이쉬었다.
유독 새파랗게 빛나는 하늘에서, 검은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구름들이 전차처럼 질주하더니, 파도처럼 밀려들더니,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먹구름의 소용돌이가 생겨났고, 천둥이 일더니 번개가 쳤다.
그러나 한쪽 하늘에서는 태양이 여전히 이글거리고 있었다. 창백한 달이 벌써 떴다.
“저, 저럴 수가 있습니까?”
“신들이다. 신들이 오고 있다.”
신들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세상을 뒤엎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