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189
189
전쟁의 신 스카텔란이 제일 먼저 왔다.
붉은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갑옷마저 벗어 던진 채, 나체에 짐승 가죽을 둘러쓰고 칼을 휘두르며.
피에 굶주린 그 얼굴에 떠오른 살기.
살육의 신.
미와 사랑의 여신 헤르첼로이데가 다음으로 왔다.
가슴에는 해골이 주렁주렁 달리고 흰 뱀의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를 하고, 머리에는 장미 화환을 쓴 나체로.
“자매여! 나의 자매 하스칼이여!”
헬라네스 주신이 하스칼을 일디케에 봉인한 이래, 하스칼과 헤르첼로이데의 두 여신이 같은 고대 신을 아버지로 두었다는 혈연관계를 아는 이는 드물었다.
무서울 정도로 요염한 얼굴에 떠오른 욕망.
애욕의 여신.
학문의 신이자 태양의 신인 라프트레이가 세 번째로 왔다.
-학자들은 이성만 중시하다, 결국 그 이성까지 수단으로 전락하는 일을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말했던 학문의 신은 이제 태양의 광휘를 지상에서 온몸에 휘두르고 있었다. 감히 똑바로 지켜보는 자의 눈이 멀도록.
독단의 신.
예술의 여신이자 달의 여신인 라스카라사가 이어서 왔다.
보름달에서 초승달로 눈이 끝없이 변하는 가운데, 여신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큰, 거추장스럽기까지 한 옷자락을 질질 끌고 있었다.
-악을 미화하고 악인을 미화하고, 예술가들은 그렇게 스스로 도구로 전락한다. 본질을 잃고서 권력의 도구로.
끝없이 변하는, 그토록 빛나지만 아무것도 못 보는 눈동자.
피상의 여신.
술의 신 아민타스가 왔다.
머리의 포도 넝쿨 화환이 아래까지 길게 늘어뜨려져 벌거벗은 상반신을 칭칭 감싸고 있었다. 그 아래, 역시 넝쿨에 감싸인 벌거벗은 몸은 마치 짐승의 하반신 같아 보였다. 모든 걸 짓밟아 버릴 듯이 짐승처럼 날뛰니까.
술에 취한 사람들의 그 모든 죄.
죄악조차도 거리낌 없이 저지르게 하는, 심신 모두 마비되어 더는 자기 자신마저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 그 상태에 한번 빠져들면 중독되어 헤어 나오지 못한다.
광기의 신.
지혜의 여신 발트라하가 왔다.
무수한 왕관이 겹겹이 쌓여, 마치 탑과도 같았다.
그 왕관의 탑 아래 온몸이 비틀거리는 그림자로 화했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얼굴은 승리감에 도취된 잔혹 그 자체였다.
권력의 이름 아래 벌어지는 그 모든 악. 사람의 모든 능력이 권력을 맹종할 때 일어나는 타락.
권력의 여신.
바다의 여신 파스투란이 왔다.
여신이 걸어오는 앞에서는 거울 같은 물결이 잔잔하게 퍼져 나갔으나, 여신의 뒤에서는 난파선들이 스러지고 스러져, 잔해가 모래밭을 이루었다.
사람이 이해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는, 자연의 변덕.
그래서 신의 존재를 공포심으로 각인시켜, 사람의 굴종을 이끌어 낸다.
뭍보다 더 무서운 바다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재앙.
재해의 여신.
그렇게 여러 신이 모두 왔다.
그중에서도 브론테제 숙부의 변신이 가장 가슴 아팠다.
그 아름답고 우아하던 모습은 간 곳 없이, 큰 낫을 휘두르는 새하얀 백골.
죽음을 향한, 사람들의 가장 원초적인 공포.
죽음을 향한 그 두려움을 극복하여,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도록, 죽음을 경계하지만은 않도록, 장례 의식을 비롯해 죽음과 관련한 모든 면에서 브론테제 숙부가 얼마나 노력했던가.
하지만 이제 죽음은 다시 공포로 전락했다.
너 역시 나 같은 해골로 만들고자 낫을 들었다는, 너는 이 낫에 베일 무수한 낟알 같은 목숨 중 하나일 뿐이라는, 가장 적나라한 공포의 심상 그 자체가 되어.
어머니의 변신 앞에서는 그저 눈을 감았다. 간통과 사생아, 그 모든 오점 앞에서 분노하고 격노하는… 나의 어머니.
하지만 아버지의 변신 앞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아버지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밤하늘에 펼쳐진 찬란한 은하수, 그 모든 성단을 머리에 왕관처럼 쓴 거대한 아버지.
다른 신들처럼 이 변신을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날뛰지도, 숨으려 하지도 않는다.
이 야만의 현장에서도 그를 국교로 모시는 나라들의 숭배 의식과 똑같이 행동할 뿐.
이것이건 저것이건, 모두 그의 것이니까.
문명의 얼굴과 야만의 얼굴이 같은 유일무이한 존재.
-일디케는 문명의 최전선을 지키는 존재다. 일디케가 무너지면, 야만이 일어선다. 문명에 도전한다.
아버지가 선언했다.
사람들의 복수를 막고, 법을 세웠을 때.
하스칼을 일디케에게 봉인했을 때.
-사람들이 왜 복수하겠습니까? 법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보호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라프트레이 신이 물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 복수가 더 정당하고, 법이 더 악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진대 어찌 복수가 야만이, 법이 문명이 됩니까?
-나는 복수가 야만이라고 하지 않았다. 법은 공공의 복수니까.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러나 네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바로 그렇기에, 복수가 기준이 된다. 사람들이 법에 대해 가장 분노하는 점이니까.
아버지가 웃었다.
-네 말대로 공공의 복수가 실패하여 개인의 복수가 필요한 사회라면, 아직 법을 세우지 못했다는 사회라는 뜻이다. 그러니 일디케는 무너진다. 그리고 하스칼이 일어서리라.
아버지가 예언했다. 아니, 예언이 아니었다. 법칙을 세운 존재가 결과를 말하는 것일 뿐.
-그러나, 일디케가 무너질 때, 하스칼이 일어설 때, 우리 모두 함께 간다. 신들 중 그 누구도 하스칼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문명을 수호하지 못한 신들이 민낯을 드러내리라. 문명이 무너져서 사람들이 야만으로 돌아간다면, 신들이 함께 가리라. 그리하여 야만 또한 신들의 얼굴로 행해지리라!
아버지가 선언했다.
-신들은 문명을 다스린다. 하지만 야만 또한 다스린다!
아버지가 포효했다.
-사람들의 문명만 다스릴 뿐, 야만은 다스리지 못한다면, 신이 아니로다!
아버지가 판결했다.
그리하여 하스칼이 갔을 때, 모든 신들도 함께 갔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도 도망갈 수 없었다. 도망간다면, 신이 아니니까. 예지의 꿈에서 일어났던 신성 박탈과는 또 달랐다.
다만, 야만으로서의 마법이 아직 없었을 뿐이었다. 오랜 세월, 사람들과 어울리며 발전하기도 하지만 타락하기도 하는, 그런 닳고 닳은 면모가 아직 없었을 뿐.
그런들, 내 안에서도 꿈속에서 그 힘을 처음 느꼈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나 요동쳤다.
그토록 위험하다고 느껴서 봉인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대체 무얼 위험하다고 느꼈던 걸까.
그 존재… 그 존재도 떠올랐다…….
지금까지 잊고 있었지만, 꿈에서 나를 각성시켰던 존재.
어쩌면 나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내 마법이 타락했을 때의 나? 내가 야만의 얼굴을 쓰고 변신했을 때의 나?
아니다. 그렇게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무시당했다고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이여! 다시는 무시당하지 않도록, 모두가 너희를 결코 잊지 않게 해 주겠노라!
“흐아아악!”
“허어억!”
복수의 여신이 휘두르는 독사 채찍들이 두 살인자들을 휘감아, 공중에 매달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들을 볼 수 있도록.
독사 채찍들이 그들을 벌거벗겼다. 그들의 몸을 내리칠 때마다 불길로 변하는 독사들이 그들을 서서히 불태웠다. 그들은 가장 마지막에 죽었다.
“강간을 막다 살해당한 자가 살인범을 무시했다며 형량을 줄여? 강간 살인의 공범들이여, 너희도 똑같이 능욕당하라!”
애욕의 여신이 역시 공중에 나체로 매달린 판사들을 거세하고, 그 성기를 독사로 만들어 그들을 범했다. 살육의 신이 두 살인자들의 변호사들을 포함해 모든 동조자들을 죽이고 죽였다. 판사들만 살아남았으나 미쳤다.
그 모든 본능이 풀려나왔다. 원초성이 울부짖었고, 야만이 도래했다.
피에 굶주린 군중이 날뛰었다.
성주는 진작 잡혔으나, 군중은 평소에 실패로 쓰겠다며 달팽이 껍데기를 모아 오라는 명까지 내렸던 성주 부인에게도 반감을 품었다.
성주 부인은 도망쳤지만, 반란이 시작되자, 장원을 떠나 성으로 피신 온 다른 귀족들은 모두 잡혔다.
그들은 곤봉으로 무장하고 두 줄로 서 있는 사람들 사이를 달려가야 했다. 긴 줄의 끝에 다다르기 전에 많은 이가 맞아 죽었다.
그러자 기사들과 용병들이 왔다. 그들은 십만의 농민을 죽였다. 반란자들 삼분지 일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나는 신들이 야만을 다스릴 때, 방해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없었다.
대신 억울하게 휩쓸리는 이들이 없도록 보호했다. 귀족들도 농민들도 최대한 살려 보고자 했다.
사도들은 넋이 나가 어쩔 줄 모르면서도,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도, 충실히 내 곁을 지켰다.
그러다가, 렉스가 테오의 아이를 발견했다.
역시 아버지를, 그리고 할아버지를 찾고 있는 소년. 헤어질 경우 만나게 되어 있는 집으로 가야 한다는 소년.
테오와 닮은 그 얼굴을 도저히 몰라볼 수 없었다.
우리는 그 아이를 보호했다가, 마법진으로 세렌에서 신관 공부 중인 테오의 지인들에게 보내어 맡겼다.
마침내 야만이 멎고, 살아남은 이들도 뿔뿔이 흩어졌을 때, 신들도 떠나갔다.
하지만 나는 떠나가지 않았다.
-테오파노 님, 떠나셔야 합니다…….
목소리마저 쉬어 버린 레오파라가 소통으로 간구했을 때,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간신히 서로 지탱하고 선 사도들 모두를 일제히 잠재웠다.
그곳은 묘지였다. 이 모든 일이 시작했다가, 그리하여 모두가 이곳에서 떠나갔고, 이제 우리가 다시 돌아온 곳.
라우라가 죽은 곳.
하지만 그 시신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복수의 여신에게 바쳐지는 산 제물의 운명이었다.
안젤로와 같이 묻어 주고 싶었는데.
내가 신으로서 라우라의 시신 곁에 남아 있을 수 없었듯, 라우라도 안젤로와 함께할 수 없었다.
“왜 왔나, 테오파노 신?”
슬픔에 잠겼던 내게 누군가 거칠게 물었다. 안젤로의 무덤 위에 앉아 있는, 복수의 여신.
삼각형의 고개를 빳빳이 들고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쉭쉭거리던 독사들도 이제 모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마치 잠이라도 자듯.
살아 올라 꿈틀대던 채찍들이 아니었고, 손에 타올랐던 횃불도 재만 남았다. 날개는 접혔고, 흰 눈의 피눈물은 멎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이 순간, 제일 무서웠다.
“모든 게 내 잘못이야… 미안해, 누나…….”
“누나라고? 하하하하!”
하스칼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지금 그녀는 내 누나가 아니니까. 헤르첼로이데의 자매일 뿐.
하지만 나는 도저히 몰라볼 수 없었다.
일디케 안에 하스칼이 있듯, 하스칼 안에 일디케가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니 처음부터. 하스칼로 변한 이후로도 줄곧.
내 또 다른 친누나. 둘째 누나, 일디케.
가장 다정했고 가장 착했던 누나.
“나는 네 누나가 아니다. 내게는 혈육이란 없고, 아무도 없다. 아무도 있어선 안 되니까!”
아버지가 일디케 누나를 법의 여신으로 세우고, 일디케 누나가 법의 여신이 되었을 때, 나는 누나를 영영 잃었었다.
“미안해… 모든 게 내 잘못이야… 내가 라우라에게 안젤로를 불러냈기 때문에…….”
“하하하하!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아주 잘했지! 너 때문에 내가 풀려났으니까! 내 눈을 보고 말하라, 철없는 막내 신이여! 라우라는 복수할 자격이 없는가? 안젤로는 복수 받을 자격이 없는가?”
다시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한 그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피눈물을 흘릴 때마다, 괴로워하던 사도들의 심경을 비로소 이해했다.
나는 복수의 여신이 말한 그들의 자격을 부정하지 못했다.
“일디케 누나, 제발… 누나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걸 알아… 내가 얼마나 미안한지… 말해 주고 싶을 뿐이야… 누나 잘못이 아니라고…….”
“참으로 가련한 막내 신.”
독사가 넝쿨처럼 뻗어 와, 그 긴 혀로 내 뺨을 쓸어 올렸다.
“애절하기 그지없지만, 일디케가 네 마음을 들어 주기나 하겠어? 나니까 네 그 가련한 말들을 들어 주고 있는 거야. 일디케 앞에서라면 네가 이런 말들을 할 수나 있을 것 같아? 한번 해 보지 그래? 일디케는 그때야말로 널 결코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결국 네 잘못이 아닌 일을 두고 사과한다면, 그건 동정밖에 안 되지.”
하스칼이 웃었다.
그러다, 그녀는 길게 자란 손톱을 제 가슴에 찔러 넣었다. 피가 흘러내리고, 그 상처에서 불꽃이 일었다.
“제발 그러지 마!”
“하지만 궁금한걸? 이 안에서 과연 일디케가 반응할지 안 할지. 오, 들어 봐. 일디케의 마음속에도 약점은 있었어. 겉으로는 모두 끊어 낸 척하지만, 네가 더는 널 누나라고 안 부를 때마다 일디케는 상처받았지…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는 네가 커서도 말을 편하게 하는 혈육은 사실 전부 친형이나 친누나였으니까, 안 그래?”
하스칼이 싱긋 웃었다.
“그렇지 않아, 아민타스?”
그녀가 내 뒤를 향해 던진 말에 뒤돌아보니, 아민타스 형이 서 있었다.
그도 이제 더는 광희의 신이 아니었다. 우리 중 하스칼이 제일 늦게 사라지니까.
“하스칼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술의 신은 태연하게 말하며 다가왔다.
“나의 하스칼, 오늘도 아름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