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2
2
신성을 숨기고 눈에 띄지 않는 수수한 옷을 입었다. 지상으로 처음 떠나는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지상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신음했다.
“으윽… 앞으로, 여기서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길이 온통 진창이었다.
발이 푹푹 빠질 판인데, 아이들은 맨발로 돌아다녔다. 사방에서 돼지들이며 개들이 용변을 보았다. 사람들이 분뇨를 창문에서 내던졌다. 돼지와 개와 인간의 배설물이 한 군데서 만나 뭉개졌다.
악취 때문에 죽을 것 같았다. 천상에서 내려다볼 때는 이렇게 더러운 줄 몰랐었는데.
불쌍한 사람들, 안 그래도 힘들게 살았는데 괴물들의 반란으로 얼마나 많이 죽어갔던가.
걱정 마라. 내가 반드시 구해 주마.
으… 냄새… 내, 반드시 너희를… 으으…….
나는 악취로 어질어질한 정신머리를 붙들고 용병 길드로 향했다. 이곳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 찾기 쉬웠다.
마침내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자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계약과 다르다!”
“계약금이-”
“계약 조건이-”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힘들게 여기까지 왔건만, 모두가 나를 무시하고 떠드는 꼴을 보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용병 길드는 이상한 곳이었다.
병장기가 사방에 걸려 있고 다들 술과 도박에 빠져 있을 것 같은데, 실상은 재판정 같은 분위기였다.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책처럼 두꺼운 서류를 놓고 한 줄 한 줄 따져 가며, 학자들 뺨치는 격렬한 토론에 빠져 있었다.
“보수는 테두리가 온전한 금화로, 금의 함유량이 적어도-”
“말이 전투에서 부상당해 죽었을 때만 보상받으니까, 질병으로 죽었을 때도 부상으로 속이지 않게 가죽을 제출하라고 해서 애마의 가죽을 내 손으로 벗겨 갔는데 왜 인정을 안 해 주고-”
모두 글을 알지는 못하는지, 대필자가 옆에서 받아 써 주거나 읽어 주느라 더 정신 사나웠다. 우락부락한 사나이들이 수심에 찬 얼굴로 계약서를 바라볼 때는 도서관 분위기도 났고.
-너 같은 애송이는 평생 인간 세상에 내려갈 생각도 마라. 절대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친형인 전쟁의 신 스카텔란의 말이 떠올랐다. 형이야말로 꿈도 안 꾸고 예언하는 능력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부러웠다.
“사람을 찾으러 왔다.”
하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다들 나보다 목소리가 커서 아예 들리지 않는 듯했다.
“내, 세상을 구하고자 친히 이곳까지 왔노라. 너희 중 누가 내 부름에 응하여 나를 돕겠는가!”
신성을 싣지 않아도 위엄 있게 말하니, 한 사람이 마침내 나를 돌아보았다.
“아, 바빠 죽겠는데 웬 미친 새끼가-”
하지만 나를 보는 순간, 눈살을 찌푸리던 그의 얼굴은 충격으로 굳어졌다.
“헉, 진짜 잘생겼… 억, 보라색 옷…….”
그 용병의 말에 다른 용병들도 고개를 돌렸다가 입을 딱 벌렸다.
그러더니 대놓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와, 나 보라색 옷 처음 봐… 왕족만 입는 색 아냐?”
“난 본 적 있지만 저렇게 짙은 색은 처음 봐…….”
“얼굴도 끝내주고, 왕자가 틀림없네. 그런데 왜 혼자야?”
왜들 그러지? 이렇게 장식 하나 없는 옷을 입은 적은 처음인데.
열띤 토론도 그렇고, 생각보다 학구적인 사람들 같았다. 나도 점잖게 물었다.
“너희 중 누가 나를 도울 것인가?”
“…아, 네, 왕자 전하…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잠시 침묵이 일었지만, 처음 나를 보았던 용병이 얼른 말했다. 지상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정체를 드러내지도 않았는데 왕자로 추대 받다니… 기쁘긴 했다.
하지만 내겐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왕자가 아니다. 하나 그대의 충심은 잘 알겠노라.”
“…아, 네, 그렇고말고요. 고귀하신 분께서 암행을 하시는 중인데, 미천한 제가 그만 말실수를 했습니다, 으하하하!”
“그대처럼 충심을 아는 자가 어찌 미천한가. 자신을 낮추지 말라.”
격려했더니 용병의 얼굴이 붉어졌다. 얼마나 감동했으면.
주변의 다른 용병들도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아, 네… 고귀하신 분께서 이렇게 미천… 하지 않은 저희 용병 길드를 굳이 찾아주신 이유를 감히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길잡이 용병을 찾고 있다. 그는…….”
이름을 말하려다 멈칫했다.
첫 만남은 자연스러워야지, 나처럼 왕자 같은 이가 작은 길드의 용병을 어떻게 안다고? 수상해 보이겠지.
“금발에 푸른 눈, 키도 크고 체격도 좋은 청년이고…….”
난 좌중을 둘러보았다. 용병 길드라 다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다. 금발에 푸른 눈인 자도 있었고.
“…얼굴도 제일 잘생긴 자를 원한다.”
상세한 조건을 말하면 다른 자를 데려오진 않겠지?
자기 찾는 줄로만 알았다가 너 말고 딴 놈, 이러면 속상할 테니까. 신이면 자비로워야 한다. 미와 사랑의 여신이 미남으로 인정했을 정도니까, 여기선 제일 잘생겼겠지.
…만일 여기선 두 번째로 잘생긴 놈이면 어쩌지. 잘생긴 놈이면 다 데려오라고 했어야 하나.
안 그래도 고민인데 용병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런 자가 여기 없는가?”
다소 조급해져서 묻자 용병은 서둘러 말했다.
“아닙니다. 있습니다! 왕자… 아무튼 고귀하신 분께서는 저희 길드를 감시… 하신 게 아니라… 그놈 혼자만을 찾으신 게 분명하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 그대는 참으로 현명하도다.”
“크크큭!”
그때,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용병이 그쪽을 향해 눈을 부라리자, 곧 조용해졌다.
“네… 사람 보는 눈이 예리하신 왕자 전… 고용주님! 기다리십쇼!”
그러더니 그는 휙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모두 시뻘게진 얼굴로 나만 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몇몇의 눈에는 눈물마저 맺혀 있었다. 친절한 말 몇 마디로도 이렇게 감동하다니, 사람들은 얼마나 순수한지.
빨리 나의 신전을 세워야겠다. 수줍은 이들도 마음껏 웃고 울며 나를 숭배할 장소를 마련해 줘야지.
“다들 내 앞에서 마음껏 울고 웃어도 좋다. 나는 자비롭나니.”
“아, 아닙니다! 죄, 죄송합니다!”
“우, 웃으려던 게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괜찮다. 웃음이고 울음이고 참으면 몸에 좋지 않다. 정신이 건전해야 몸도 건강해지는 법.”
날 향한 숭배를 격려해 줘도, 다들 수줍어하며 눈길을 피할 뿐이었다. 우락부락해 보이지만 마음씨는 섬세한 이들이었다.
“자, 이놈입니다!”
그때, 마침 용병이 레르카다를 데리고 돌아왔다. 예지의 꿈에서 본 그자가 맞았다.
“무슨 짓이야? 왜 갑자기 쫓아내는 건데!”
짐을 잔뜩 든 채 용병에게 거칠게 항의하던 레르카다는, 나를 보더니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래, 네 죄를 네가 알렷다.
“그 옷은 대체 어디서 훔쳐 입은 거야?”
신성모독이다!
“내 어머니가 직접 골라 준 옷인데, 문제라도 있는가?”
정체를 드러낼 수 없어 꾹 참고 대답했더니, 다른 용병들이 새파랗게 질렸다. 동료가 저토록 무례하니 창피했겠지.
“죄송합니다! 당장 이 자식을 데려가십시오!”
“이거 놔! 난 아직 의뢰를 받아들인다고 하지 않았어!”
“당장 저분을 따라가지 않으면 너는 우리 길드에서 추방이다!”
“아니, 그렇게까진-”
내가 입을 열자마자 용병들은 더 열성을 다해 날 섬겼다.
“뭣들 하느냐! 신분을 밝히지 않으신 고용주께서 용건을 끝마치셨다!”
“적응 안 되게 자비로우신 고용주님을 당장 우리 길드 밖까지 모셔다 드리자!”
“우리에겐 너무 섬세하신 분인데 길드 밖 정도로 되겠어? 마을 밖까지 배웅해 드려야지!”
“안녕히 가십쇼! 다시는 이런 촌구석에 오지 마시고, 큰 데 가십쇼, 큰 데!”
* * *
시키지도 않은 에스코트까지 받고 보니 어느새 마을 밖이었다.
한적한 숲길에 레르카다와 둘만 남았다.
완벽한 상황. 놈을 처치하기 최적의 조건.
하지만 그전에 최대한 정보를 끌어내야 했다.
이놈 말고도 다른 배신자들이며, 어떻게 사람이 괴물들을 이끌게 됐는지, 왜 신들과 사람들을 배신했는지, 주신이 가두었던 괴물들을 어떻게 풀려나게 했는지.
“내 이름은 테오파노다.”
일단 이름을 밝히고 친절하게 인사한 후, 내가 말했다.
“괴물이 출몰하는 곳으로 안내하라.”
레르카다는 놀란 얼굴이었다. 하긴 찔리겠지.
“그런 데 가서 뭘 하시게요?”
“괴물을 처치하여 사람들을 구하려 한다.”
대담하게 정공법으로 나갔다.
“…아, 네… 대단하십니다…….”
저 떨떠름한 얼굴. 허를 찔려도 적개심을 잘도 숨기는구나.
“그런데 혼자 가십니까?”
“너도 같이 가고 있지 않으냐.”
“제 말은, 명색이 왕자신데, 왜 기사단에 군대에 주렁주렁 끌고 가지 않으냔 거죠. 용병 한 놈이 아니라.”
“나는 왕자가 아니다.”
나는 신이니까.
“아, 네, 그러시군요.”
놈은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길은 서슴없이 갔다. 역시 괴물들이 어디 출몰하는지 잘 아는 게 분명했다.
그러다 숲속의 빈터에서 레르카다가 발을 멈추었다.
“여기 괴물이 나오느냐?”
“아닙니다. 야영을 할 겁니다. 괴물이 나오는 곳까지 가려면 한참 걸리니까요. 불만이시면 말이라도 빌려 타고 큰 길드에 가시면 됩니다.”
“작은 길드라도 일만 잘하면 그만이지.”
놈의 열등감을 어루만져 주자 놈은 부끄러운 듯 고개 숙였다.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더니 열심히 시중을 들었다. 모닥불부터 피우더니 꿩을 잡아 와 통구이를 하고, 근처의 샘에서 물도 길어왔다.
저녁 어스름이 내린 가운데, 모닥불 앞에 앉아 갓 구운 고기를 먹고 차가운 샘물을 마셨다.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레르카다, 너는 뛰어난 일꾼이구나.”
어쩌다 이 성실한 자가 악의 길로 들어섰을까.
“칭찬보다 돈이 좋습니다.”
-돈은 만인의 해답이다.
과연, 지혜의 여신 발트라하 누나가 옳았다.
“이것이면 되겠나?”
나는 품에서 브로치를 하나 꺼내 주었다. 금테에 화려한 보석이 박혀 있었다.
놈이 이 브로치를 달고 있기만 하면 내가 이놈을 놓치더라도 어디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있었다.
탐욕스러운 용병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선뜻 손을 뻗지 않았다.
“귀중한 것이니 늘 몸에 달고 다녀라. 절대 떼어놓지 말고.”
“이건 너무 큰 보수입니다.”
돈이 좋다기에, 아예 보석을 주니까 거절하다니. 날 의심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브로치의 침으로 내 손바닥을 겨누었다.
“뭘 하려는 겁니까?”
하지만 놈이 먼저 브로치를 채갔다.
“침에 독이 묻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려-”
“됐습니다. 하…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건지…….”
내가 할 소리를 선수 치다니.
“이 브로치를 받겠습니다. 됐습니까?”
“그래, 잘했다. 그런데, 네 고향은 어디인가?”
“저는 밥 먹을 때는 말하지 않습니다. 말동무가 필요하시다면 귀족을 데려오셨어야죠.”
“귀족이 아니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놈이라면 귀족이었을지라도 친구 하기 싫은 걸 참고 말했지만, 놈은 묵묵히 꿩의 다리만 뜯었다. 식사를 끝내자마자 망토를 몸에 감고 누웠고.
“저는 먹자마자 눕지 않으면 잠이 안 옵니다.”
악당 주제에 예민하기 짝이 없는 놈.
예지의 꿈에서 신들은 레르카다의 정체를 파악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지금 이 시기에 그 길드에서 용병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밖에는.
남은 고뇌하는데 혼자 잠든 놈을 보니 정보고 뭐고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난 한 번도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없었다. 이놈이 아직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 지금 죽여야지! 놈이 괴물과 손잡으면 못 막는다.
결심했는데도 그만 망설이고 있을 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크으… 으르렁!”
어둠 속에 나타난 샛노란 눈들.
늑대 떼였다. 어느새 모닥불은 꺼져 있었다.
다음 순간, 레르카다가 칼을 빼 들고 늑대 떼에게 달려들었다.
“캬악!”
“거기 가만히 엎드려요!”
놈이 늑대 한 마리를 죽이면서 고함을 질러 댔다.
나는 시건방진 용병 앞에서 위엄 있게 신성을 발휘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럴 수는 없었다. 나는 신이었다. 신성을 품고 태어났고, 신성이 전신에 넘쳐흘렀다. 신성은 곧 내 본질이었다.
다시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천상에서는 그토록 쉽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내 힘이 발휘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벽이라도 있듯.
-지상은 사람이 창조한 세상이기도 하다.
학문의 신 라프트레이 형의 말이 떠올랐다.
-너처럼 널 믿는 사람 하나 없는 신은 지상에서 신성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거다.
배다른 형의 말이 맞았다.
내 힘을 실어 날랐던 천상의 순수한 에테르와 달리, 지상의 대기는 혼탁하고 무거웠다.
늑대를 물리치려 연달아 시도했다. 계속 실패했고, 마지막엔 내 신성이 대기 속으로 흩어졌다.
좌절감에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데, 레르카다는 뛰어난 검술로 늑대들을 죽이고 있었다.
원수에게 목숨 빚을 지게 생겼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집중했다.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내 힘을 퍼뜨릴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서, 지상에 내려온 이래 잊고 있었던 그 불가사의한 힘이…….
그 순간, 대기가 일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