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216
216
“여신은 다른 신들이 테오파노를 구출하려는 꿍꿍이를 이미 파악하고, 그들 중 누가 가장 가능성이 크고 누가 가장 적은지 셈하고 있구나. 그리하여, 가장 적은 자를 내게 고발하여, 내 주의를 돌리는 희생양으로 삼을 생각이도다. 스스로 뽑은 적임자가 내게 들키지 않고 테오파노를 구할 수 있도록.”
신들은 일제히 지혜의 여신을 노려보았다. 평소 그런 시선을 받으면 미소 짓던 발트라하 여신은 눈을 내리감았다.
“여신의 낙점을 받은 적임자가 누군지 궁금하구나. 해와 달의 쌍둥이 신이 아닐까?”
그러자 다른 신들이 이번에는 두 쌍둥이 신을 노려보았다.
“해의 신과 달의 여신은, 테오파노의 친남매들만 그를 구출하러 가는 건 공평하지 못하고, 배다른 남매인 자신들도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 권리를 얻는다면, 자신들도 어떻게든 주장하리라 결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친혈육인 서로와도 기꺼이 손을 잡을 의사가 있다.”
이 말은 테오파노의 친혈육이나 배다른 혈육들 모두를 극히 불편하게 했다. 동시에 가장 사이 나쁜 남매가 서로 협력할 생각을 했다는 소리에, 모두 놀랐다.
라프트레이 신과 라스카라사 여신 모두 다른 신들의 놀란 눈길 앞에서 정면만 바라보았다. 그래서 더 쌍둥이의 면모를 강조하면서.
“어리석기 그지없구나. 대체 무슨 권리 말인가? 세상의 운명을 건 전투를 앞두고 신의 임무를 저버릴 권리? 그것도 맡은바 임무에 방해되지 않게, 다스리는 영역이 지닌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하도록 혈연을 가장 잘 끊어 낸 모범인 두 신의 일이라니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더니 헬라네스 주신은 그가 평소 칭찬하고 아끼던 두 남매 신을 대놓고 조롱하였다.
“이제 앞으로,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두고 학문과 예술이 서로 겨루지 않을 텐가? 아이들이 공연의 재미에 빠져 학업을 소홀히 하건, 예술가들이 평론가의 악평 때문에 실의에 빠지건 말건, 두 신은 혈육의 정에 함몰하여 신도들을 저버릴 것인가?”
두 남매 신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학문과 예술, 인류 문명의 꽃이나니! 모두 내 자랑스러운 두 아들딸의 업적이노라!
지금까지 두 신을 칭찬해 왔던 헬라네스 주신이었다. 가장 아끼는 딸이라는 지혜의 여신에게도 정치의 여신인지 지혜의 여신인지 알 길이 없다며 따끔하게 말했었고, 적자며 적녀에게는 더 엄격하게 굴었었다.
가장 사랑받는 테오파노는 단 한 번도 칭찬을 듣지 못했었다. 그래서 막내 신은 자신이 아니라, 두 쌍둥이 신들이 가장 사랑받는다고 생각하기까지 했었다.
그 신들이 늘 주신에게 칭찬만 듣지 말고, 한 번쯤은 꾸짖음도 당해 보길 바랐던 다른 신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바라던 일이 이뤄진 지금, 너무 놀란 나머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즐기지 못할 정도였다.
“아, 내가 지나쳤구나.”
헬라네스 주신이 부드럽게 말하였다.
“사계의 신들부터 꾸짖어야 했었거늘. 여름의 여신과 봄의 여신은, 가을의 신을 끌어들여, 겨울의 신인 나를 내리누르면, 승산이 있다고 여겼을 텐데. 사계의 신들이 그 모양일진대, 그 아래의 신들을 꾸짖은들 공정하지 못한 주신인 나의 수치일 뿐이노라.”
그 생각을 제일 먼저 해냈던 여름과 바다의 여신 파스투란은 바닷물을 응축한 짜디짠 물의 결정을 목구멍으로 단번에 넘겼다. 조카 신들처럼 주신의 꾸지람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결국 당연한 일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큰오빠가 저버린 막내 조카를 구하려면 셋이 힘을 모아야 했는데, 정이 많은 둘째 오빠와 언니가 이미 대놓고 나서 버렸다. 그러니 자신이 뒤에서 조용히 주도해야 했다.
“존엄하신 나의 오라버니, 존귀하신 주신 헬라네스여.”
하지만 파스투란은 배짱으로는 사 남매 중 제일 싫어하는 헬라네스와 맞먹었다. 둘이 제일 닮았다고 봄의 여신과 가을의 신이 조용히 동의할 정도로.
“주신의 혜안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감히 주신을 실망시키지 못한 존재들의 잘못을 어찌 그리 속속들이 꿰뚫어 보셨는지요. 주신께서는 그리 높이 홀로 고고하게 계시고, 저희는 주신의 관심을 받기에는 너무나 모자란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의 속내를 알았느냐고 돌려 묻는 터였다.
다른 신들은 파스투란 여신의 물음에 숨통이 터진 기분이었다.
그러자, 헬라네스 신이 처음으로 미소 지었다.
“내가 테오파노를 제일 사랑하기 때문이다.”
신들은 그 순간 공격 직전의 독사처럼 머리를 꼿꼿이 들고, 독기 가득 한 눈초리로 헬라네스 신을 노려보았다. 뱀 혓바닥처럼 쉿쉿 거리는 소리도 났다.
“그대들이 아무리 테오파노를 사랑한들, 내 사랑에 견줄 수 있을 것 같으냐.”
신들은 어이가 없는 나머지, 독기마저 빠졌다. 하지만 처음의 반응이 지나고 나자, 그 말에 담긴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테오파노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그대들 모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지, 사이 나쁜 경쟁자와도 손을 잡을 정도로. 그러니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테오파노를 향한 사랑은 나보다 얕아진다.”
“과연 그렇습니까, 나의 남편 헬라네스여?”
“나의 아내, 피오르델리케여. 그대는 테오파노를 여전히 약하디약한 막내아들로 보고 있소.”
“그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자 한 것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그 아이는 봉인의 열쇠였으니까.”
겨울의 신, 천년 빙하의 침묵이 넘쳐흘렀다. 그 진실을 아는 신이건, 모르는 신이건, 가슴이 얼어붙었다.
“몰랐다고 하고 싶은가? 사계의 신들이야 그 살아 있는 봉인이지만, 다른 신들도 과연 끝까지 눈치 못 챘다고?”
헬라네스 신이 자신의 자식들을 둘러보았다.
“나는 그대들이 어엿한 신으로 장성했을 때, 테오파노를 지상에 데려가고 싶다던 그대들의 청을 모두 거절했었다.”
신들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테오파노를 하위 신으로 삼으려던 의도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다른 신들에게 뒤로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니까.
그러나 이미 터를 잡은 신의 보호를 받으며 지상을 거닐면, 문명 속 제 영역을 발견하여 힘을 얻기도 좋다.
먼저 지상에 있었던 사계의 신들에게 이런 호의를 받은 신들은 자연 신인 해와 달의 신, 숲의 여신이 고작이었다. 다른 신들은 홀로 해내야 했다
그러나 테오파노에게라면 해 주고 싶었다. 지상에서 자신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해내는지 보여 주고 싶었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자신이 아니면 누가 테오파노에게 그렇게 해 줄까 싶어 하며 꺼낸 제안을 거절당했는데, 그랬던 게 자신만이 아니라니.
게다가 그때, 이유조차 말해 주지 않으며 직접 알아내라던 헬라네스 주신이 이제야 말하는 진실은 기가 막혔다.
“어찌, 내 아들의 그런 비밀을 모두에게 고합니까!”
피오르델리케 모신은 분노했다. 자식을 위협받은 모성은 암늑대의 눈으로 암사자처럼 으르렁거렸다. 가정을 수호하는 모신의 분노는 지금은 사라진 하스칼에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봄의 성향도 같이 발현하고 있었다.
얼음을 녹이는 봄, 얼어붙은 땅 위로 솟아오르는 새싹, 신들은 마음이 고양되었다.
태양신은 겨울의 어둠을 몰아내는 가장 강렬한 광선을 발하고 싶었다. 숲의 여신은 숲의 생명력을 끌어 올리고 싶었다. 그런 감정이 모두에게 퍼져 나가면서, 그들은 느꼈다.
모신이 주신을 향한 반항을 촉구하고 있다는.
혹독한 겨울 뒤, 다가오는 봄이 겨울을 이길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 누가 저항하랴.
무엇보다, 설령 가망이 없다고 해도, 테오파노를 구할 길이 아닌가?
테오파노, 울리면 울고 웃기면 웃고, 순수하고 순진한 나의 동생. 우리의 동생.
오롯이 전해지는 진심 어린 사랑.
영역을 관장하고자, 혈연끼리라도 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외로움을 달래 주는,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
태어나서부터 모두를 올곧게 좋아해 온 테오파노가 지켜 온 관계를 헬라네스 신이 위협한다면, 왜 반항하면 안 될까.
“나는 내 사랑스러운 막내아들이 영영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마법의 신이 되어, 괴물들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지 않았더라도 그를 사랑했으리라. 아무것도 아닌 신이어도, 테오파노는 내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니까.”
그렇게 말한 헬라네스 신이 다른 신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의 아내이자 그의 어머니인 모신은, 그가 열쇠인 줄 알면서도, 그의 뜻대로 지상에 내려가게 두었다. 그가 어떤 신이 되는지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여.”
피오르델리케의 기세가 꺾였다.
“그의 형제자매들이자 나의 자랑스러운 자식들이여, 그대들은 그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 그에게 무어라도 하나 더 가르치려 열심이었다. 심지어 그의 비밀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위치에서도, 그가 천상의 내 곁에 머물러 있는 편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지상에서 그대들과 함께 신으로 활약하기를 바랐지.”
신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테오파노를 가르친 그대들은, 이제 그의 반만큼도 신답지 못하도다. 신도들을 저버리고, 세상을 저버리고, 다가올 결전보다 혈육의 구출에 힘쓰다니, 사심이 없어야 할 세상의 지배 신이라 할 수 있는가. 테오파노가 그대들의 약점이 되고자 그대들을 사랑했는가. 그의 사랑을 모독하지 말라. 그대들이 그토록 강해질 수 있었던 것도, 테오파노의 사랑이 그대들을 지탱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 빚을 갚으라. 그의 사랑을 존중하라.”
이제 주신의 눈에는 경멸이 깃들었다. 냉혹한 눈초리보다 더 신들의 마음을 찢는.
“그대들이 그에게 제일 좋은 길을 택했다면, 이제 테오파노가 선택할 차례다. 그는 적에게 사로잡히고 만 자신을 위해,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이들이 희생하기를 바라지 않을 테니까.”
이어서, 주신이 엄숙하게 선언했다.
“이제 내 사랑하는 아들 테오파노는 봉인의 열쇠만이 아니라, 마법의 신이노라. 마법의 신이 스스로 그 자신과 세상의 운명을 결정할 기회를 아무도 범접하지 말라. 나, 주신 헬라네스는, 자랑스러운 신의 아버지로서 그의 선택을 수호할지니.”
* * *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둥글고 아름다운, 날 채워 주던 것들이 있었는데, 모조리 흘러가 버린 듯.
나의 내면은 텅 비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텅 빈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확실한가? 안심할 수 있도록?
…일어나야 했다. 다시 정신 차리고, 마음을 다잡아서…….
하지만 눈조차 뜰 수 없었다.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사도들이 걱정할 텐데… 내가 금세 일어나지 않고, 너무 오래 잠들어 있으면.
제대로 쉬기나 할까. 내 곁을 떠나지도 못하고 나만 바라보고 있으면 어쩌지…….
하지만, 솔직히 좋았다. 이제 일어나면, 언제 눈 뜨더라도, 사도들이 내 곁에 있겠지.
그 걱정하는 얼굴들이 보기 좋았다. 아무리 미안해도.
깨어날 때, 그 얼굴들만 볼 수 있다면, 내 몸 하나 돌보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절로 희미한 웃음이 지어진다…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걸까…….
그때, 무언가 떠올랐다. 그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전쟁… 전쟁의 장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마지막 결전. 예지의 꿈에서 보았던 장면.
그 결전에서, 신들과 인류는 패한다.
배신자들의 활약 때문에.
물론 이제, 그들은 아트리타스만 빼고 내 사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그 꿈의 장면을 다시 보게 되니, 가슴 아팠다.
그때도 가슴 아팠지만, 지금은 더했다. 마치 그들이 모든 신과 사람들뿐 아니라 나를 저버린 듯.
당연한 소리나 하고 있다니…….
그 장면은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생각하지 않으려는데, 그 장면이 바뀌었다.
서서히… 관찰자의 시점으로 지켜보는 내 눈에만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레오파라의 얼굴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바로 앞에서 바라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