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224
224
봉인이 깨어지자, 신들은 일제히 그 힘의 파편에서 몸을 피해야 했다. 그 파편이 그들의 힘을 갈기갈기 찢지 않도록.
그들은 이럴 때를 위해 전장으로 끌고 나온, 저마다의 가장 거대한 신상으로 몸을 피했다. 그 신상에 배인 믿음 속에 회복을 꾀하며.
그렇게 몸을 피한 뒤 숨을 헐떡거리며, 파스투란은 분루를 흘렸다.
어차피 봉인을 유지할 수 없었다면 사계의 힘을 써야 했을까.
하지만 그랬다면 봉인이 더 빨리 깨졌으리라.
지금은 그 힘을 쓸 수도 없었다. 봉인이 파괴된 순간, 사계의 권능도 부서졌다. 다시 회복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헤르스탈에 맞서 승리한들, 기후 격변이 불가피했다.
그래도… 그런들… 어쩌면… 더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도록. 여름과 바다의 여신은 입술을 짓씹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봉인의 열쇠가 지상에, 너무 가까운 곳에 있지 않았다면.
‘내가 나섰어야 했다.’
파스투란 여신은 자책했다.
피오르델리케 언니는 테오파노를 낳았다. 브론테제 오빠는 그를 대리인으로 삼았다. 헬라네스 오빠는, 그의 말대로 테오파노를 제일 사랑했다.
애초에, 그는 테오파노를 자식으로 삼지 않을 수도 있었다. 헤르스탈 스스로 끊어 낸 혈연을 그 역시 저버려서.
그편이 훨씬 더 안전한 열쇠였을 터다. 지금처럼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막내 아들도 막내 조카도 없었겠지. 그저, 안전하고 변함없는, 헤르스탈에게 제일 어울리는 열쇠만 있었을 터였다.
아무도 헬라네스 주신의 결정을 반기지 않았다. 모두 그 위험성을 말했다.
시간의 압제에 맞서 혁명을 이끌었던 헬라네스 주신은 그들을 설득하려고 들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나 혼자 그 아이를 낳겠다. 주신인 나는 그럴 수 있다. 너희는 그 아이와의 혈연을 인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 그는 위험한 일이라고 기를 쓰고 말리는 형제자매 신들에게, 자신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발트라하 여신을 홀로 낳았다.
그렇게 되자, 피오르델리케 여신이 마음을 바꾸었다. 남매로 태어났지만, 부부가 된 그들이었다. 그들의 부모가, 자식들도 그들처럼 되길 바랐기 때문에.
-내 자식들은 나와 그의 길을 걷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부부가 된 이상, 부부의 결합에 헌신하는 것은 결혼과 가정의 수호신인 나의 의무다.
브론테제 신은 피오르델리케 여신의 결정에 슬퍼하고, 헬라네스 신에게 분노했다. 파스투란 여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들 테오파노는 마침내 태어났다. 헤르스탈과 너무도 닮은 아이가.
그리고 너무나 다른 아이가.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헬라네스가 임무를 다하지 않는 신들은 신도 아니라면서, 강하게 키우고 어려서부터 서로 경쟁하게 했던, 사계의 신들보다 훨씬 더 냉철한 새로운 세대의 신들조차도, 그 아이와의 혈연은 무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지상에 내려가건, 전쟁에 나서서 헤르스탈과 지척에서 싸우건, 아무도 그 아이를 말리지 못했다.
본래대로라면, 헤르스탈이 그 아이를 납치했으나 제 힘으로 돌아왔을 때, 천상으로 보냈어야 했다. 그곳에서 잠시… 지상의 시간으로는 백 년간이건 천 년간이건, 그 아이가 필요한 만큼 잠들어 있는 동안, 그들은 헤르스탈을 다시 봉인하면 되었다.
테오파노의 부모 신은 못 하고, 대리인으로 삼은 숙부 신도 못 하고, 형제자매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면 고모인 자신이 나섰어야 했는데.
그러나 끝내 그러지 못했다.
그 아이를 구하러 가지 않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상처 입었지만 그토록 맑고 깊은 눈동자로 돌아온 조카의 결연한 얼굴 앞에서, 천상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지 못했다.
이제는 너무 늦었다.
신들이 그토록 무수히 죽여 온 괴물들의 시간마저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눈이 백 개, 팔이 백 개인 괴물들이 그들을 막아서는 모든 공격을 파악하고 죽였다. 도망쳐도 백 개의 팔로 낚아채 죽였다.
백 개의 뱀이 안개 같은 독기를 토했다. 화염 같은 불을 토했다. 백 개의 팔로 기사들을 말과 함께 들어 올려 불과 독을 토하는 제 아가리에 처넣었다.
그러면 그 백 개의 불구덩이 속에서 산채로 타 죽는 자들의 고함이 다른 자들의 귀청을 찢었다. 그 소리를 듣고 갑자기 쓰러져 죽는 자들도 있었다.
안전지대의 유혹에 끌리지 않고 가장 용감하게 싸웠던 병사들이 제일 먼저 죽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적의 진짜 목표는 따로 있었다.
마법의 사도들.
마그나테라는 자신의 가장 진화한 자식들, 자연의 굴레에서 가장 벗어난 자식들인 인간을 증오했다. 그 분노를 부채질하듯, 헬라네스는 인간 여인들과 적극 동침하여 무수한 반신들을 낳았다. 후에 닥쳐 올 전쟁에서, 신들의 편에 싸울 영웅들을.
그중 세상의 모든 동물을 죽일 수 있다는 예언을 받은 사냥꾼 영웅이 태어나자, 마그나테라는 전갈을 만들었다. 전갈이, 그처럼 작은 동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영웅의 발뒤꿈치를 화살처럼 꿰뚫도록.
그러나 사냥의 여신 엘라디안이 낳고, 테오파노 신이 가르친 반신 영웅은 그보다 훨씬 강했다. 그 영웅을 죽일 인간을 대척점에 세우고자, 헤르스탈 신이 제물로 삼았던 인간 역시 테오파노 신이 거두어서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 인간들은 아직도 있는 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그런들, 역부족이었다. 괴물들은 계속 되살아났고, 신들도 인간 영웅들도 지쳐 갔다. 그렇게 더 많은 존재가 되살아날수록, 시간은 점점 되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태어나기 전을 향하여.
필멸의 존재들이 불멸의 세상을 어지럽히기 전으로 돌아가고자.
반항하는 패륜아들이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고자.
그때였다.
자책과 절망 속에서 본능적으로 테오파노 신을 찾았던 파스투란 여신의 눈에 마침내 막내 조카가 들어왔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쳐들고 탄원하는 듯한 모습에 가슴 아팠다. 스태프마저 없는 빈손인데도, 마법을 발현하고 있었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구나…….
“지금이다, 테오파노!”
헬라네스 신이 외쳤다. 이미 테오파노가 마법을 발현한 뒤인데… 그 애가 뭘 할 줄 알고서?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 번쩍 빛났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어스름이 내리는 초저녁 하늘, 별들이 막 반짝이는 하늘가에, 테오파노의 부름에 답하듯 빛나는 별이 있었다.
새로 생긴 별자리가… 그중 제일 작은 별이었다.
“테오의 아이가 시각을 말한다. 역으로 흐르는 시간이여, 멈춰라.”
다음 순간, 그 별이 테오파노의 쳐든 손을 따라 움직였다. 물론 아니다, 눈의 착각이었다. 실제로는 별빛이 테오파노의 손을 따라 흐르며, 지상을 가리켰을 뿐이었다.
“테오파노 님!”
“테오파노 신이시여!”
레오파라와 마리우스가 일제히 외치면서 검을 쳐들었다. 아타울프와 프라비타도 마찬가지였다. 파비안은 물약을, 렉스는 물을, 레미는 흙을 쳐들었다.
다음 순간, 그들은 테오파노 신이 발현해 주었던 마법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정령들 역시 그들을 왕의 탄생으로 이끌었던 힘이.
마음이 조여 들었다. 테오파노 신은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에게 더는 마법을 불어넣어 주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테오파노 신의 마법도 소진될지 몰랐다. 그들은 미친 듯이 테오파노 신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이 모든 혼돈으로 격변하는 전장 속에서 그 거리는 너무 멀었다…….
이미 마법은 시작됐고, 가장 작은 테오 자리의 별이 발하는 빛은 되살아나고 있는 괴물들과 사람들을 모두 향했다. 그들을 일일이 비추면서.
다음 순간, 우박이 쏟아져 내렸다. 바위덩이만 한 우박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되살아나던 존재들을 강타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우박은 중력 때문에 돌보다도 살상력이 강했다. 심지어 빗나가지도 않고 정확히 목표물의 머리 정중앙에 떨어졌다.
되살아나던 존재들은 다시 죽었다.
맞서 싸우던 사람들마저 얼어붙은 침묵 속에서, 테오파노 신의 목소리가 맑게 울렸다.
“테오가 시각을 말한다. 시간이여, 흐르라.”
이번에는 처음 별보다 더 큰 별이 빛났다.
유성우가 쏟아져 내렸다. 빛나는 유성들은 그대로 사라져 버리지 않고, 비추어 낸 자들에게 떨어져 내렸다. 죽은 채로 시간이 멈추었던 자들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대로 쓰러져 평화로운 얼굴로 눈을 감았다.
“테오의 아버지가 시간을 말한다. 거꾸로 흘렀던 시간이여, 돌아오라.”
이번에는 더 큰 별에 맞추어, 밤하늘에 혜성들이 떠올랐다. 별은 되살아난 존재들을 비추었고, 긴 꼬리로 밤하늘에 수를 놓으며 떨어져 내린 혜성들이 그 존재들을 직격했다.
그 존재들이 쓰러지자, 그 모든 유해들의 무게에 마그나테라가 신음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비명 지르며 호소하지 못했다. 자식이기도 한 사람들을 부정하고, 사계의 섭리를 받아들인 생명체들을 부인했을 때부터, 자연의 모신은 그 신격을 잃어 갔기에.
그동안 자연이 피해갔던 여파를 단번에 되돌린 테오파노의 일격이 태고의 모신으로 하여금 마지막으로 눈감게 했다.
이제 마그나테라는 마그나테라라는 존재로 볼 수 없는, 다만 한 체계로서의 자연일 뿐이었다.
“테오파노!!!!!”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헤르스탈이 반격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그 무수한 멸망의 시계를 돌리면서. 이 전장을 가득 메운 그 무수한 사람이 스스로 돌리는.
그러나 테오파노 신은 헤르스탈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테오네의 별자리가 시간에 답하노라. 멸망의 시계를 파괴한 시간의 제물들이, 시간에 답하노라!”
이제, 별자리의 가장 큰 별이 빛났다.
“테오의 아내여, 시간에 답하라!”
그러자, 하늘에 운석이 출현했다.
그 커다란 천체가 지상을 위협했다.
그 아래 우뚝 선 테오파노 신이 고했다.
“헤르스탈이여! 다시는 시간을 되돌리지 말라!”
“감히 내게 명령하느냐!”
운석 앞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모든 괴물들이 도망가는 와중에서도, 헤르스탈은 분노했다.
“네 정녕 시간을 되돌린다면, 가장 먼저 회귀하는 존재는 그대, 최초의 제물이리라!”
헤르스탈의 말에 테오 아내의 별이 응답하여 더욱 빛났다. 운석이 지상에 더 가까워져 왔다.
헤르스탈이 회귀를 계속한다면, 운석 또한 소환될 터였다.
그가 최초로 바쳤던 제물이.
“네 감히 시간의 신에게 시간으로 대적하느냐!”
“너는 더 이상 시간의 신이 아니다! 네가 시간의 흐름을 어지럽힌 순간, 시간은 네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시간은 네게서 벗어나 이제 스스로 법칙과 질서를 지녔으니, 네 변덕에 휩쓸리지 않으리라!”
헤르스탈의 눈이 증오로 번득였다.
“내가 두려워할 것 같으냐! 필멸자들로 더럽혀진 세상을 멸망시키려던 나였다!”
헤르스탈이 외치며 다시 회귀를 발현했다.
그러자 운석이 그를 덮쳤다. 헤르스탈은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운석을 향해 갔다. 기꺼이 운석을 받아들이며, 세상의 멸망을 두 팔 벌려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세상을 멸망시키면, 그것을 막으려는 테오파노도 함께 소멸시킬 테니까.
설령 테오파노가 세상의 멸망을 막는다 한들, 테오파노 자신은 파멸할 테니까.
그것만이 이제 모든 걸 잃은 헤르스탈이 바라는 전부였다.
세상의 멸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수도 있는, 한때 시간의 신이었던 자가 꾸는 순간의 꿈.
쿠쿠쿠쿠쿠콰콰콰콰콰쾅!
처음 들었던 소리는 곧 모든 이의 고막이 폭발하면서, 무음의 진동으로, 지진으로 변했다.
운석이 폭발하면서, 헤르스탈도 소멸했다. 아트리타스를 비롯한 그의 수하들도 단번에. 그러나 그 여파는 세상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수호하라! 세상을 수호하라!”
명령이라기엔 비명 같은 소리. 고함이라기엔 울음 같은.
그러나 그 울부짖는 신의 마법은 그토록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운석의 그 모든 폭발, 그 여파를 가로막고, 그 잔재를 띄워 올리며, 어마어마한 방어막을 일으키고 있었다. 너무나 대단한 나머지,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를.
“사계의 신들이여! 테트라크로노스!”
이에 헬라네스 주신이 외치자, 봉인이 파괴된 이래 간신히 숨을 돌렸던 사계의 신들이 다시 힘을 모았다.
운석이 폭발한 지점 바로 위의 하늘가에, 빛의 장막이 드리워졌다. 오로라가 발현했다. 초록으로 빛나고, 붉게 타오르는 오로라가 하늘을 휩쓸며 운석의 파편을 거둬가기 시작했다.
모든 힘을 쏟아부으면서도 헬라네스 신은 환희에 차서 웃었다.
-내 아이는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최고의 변화였다. 헤르스탈을 봉인할 열쇠가 아니라 그를 쳐부술 창이었나니!
동의하면서도, 파스투란은 문득 의혹이 떠올랐다.
-그러려고… 테오파노를 구하러 가지 못하게 한 거야? 구하러 가지 않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우리는, 잡혀 갔다 탈출했으면서도 출전하는 테오파노를 말리지 못할 테니까?
헬라네스, 그 미친놈이 싱긋 웃었다.
-나도 알고 한 짓은 아니었어. 아버지로서 내 아들의 가능성을 믿었을 뿐이지.
저건 이제 더는 오빠도 아니었다.
파스투란은 대답할 가치도 없는 큰오빠와 절연하며, 차오른 울분을 쏟아부었다. 조카가 목숨 걸고 지켜 낸 세상을 보전하고자.
폭발의 여파를 여름의 생장력이 흡수하고, 봄의 생명력이 잠재웠다. 여름의 여신이 다스리는 바다는 해저 지진이 일어나 곳곳에서 해일을 일으켰다. 이제 봄도 여름도, 오래도록 찾아오지 못할 터였다.
파괴의 잔재를 겨울이 흡수하여 유례없이 혹독한 긴 겨울로 바꾸었다. 가히 소빙하기가 도래할 터였다. 그러나 세상은 멸망하지 않을 터였다.
가을이 힘을 소진한 봄과 여름을 하계에 잠들게 했다. 그리하여, 겨울이 위태로운 지상을 감당하며 버텨 낸 후, 봄과 여름이 다시 깨어나도록.
해와 신과 달의 여신 역시 큰 힘을 빌려주며 천체의 광휘를 상당히 잃었다. 다시 회복될 때까지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렇게 폭발의 여파를 봉인의 신들이 처리하는 동안, 폭발을 홀로 정지시켰던 테오파노 신은 모든 힘을 소진했다.
그리하여 마법의 신도 혜성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테오파노 님!”
“마법의 신이시여!”
지금까지 세상의 운명의 건 격변을 숨도 못 쉬고 지켜 보았던 사람들이 미친 듯이 고함지르며 달려갔다.
여섯의 봉인 신들 중 진작 쓰러지지 않은 다른 하나는 마지막 하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다른 신들이 테오파노 신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테오파노 님!”
-테오파노 신!
“큰아버지!”
그의 사도들이 먼저 도착했다. 그들의 외침과 함께, 그들의 무기에서 빛이 발했다.
-마법의 빛이다!
마리우스가 부르짖었다. 테오파노 신이 의식을 잃고, 그 자신의 마법마저 소진했는데도, 그 사도들에게 마법이 저절로 발현하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에 가득한 마법의 힘이, 그것을 창조한 신의 위기 앞에서, 신에게 가장 가까운 자들에게 스스로 나타난 듯이.
-나는 너희가 도달할 깊이고, 솟구칠 높이다.
레오파라가 문득 테오파노 신의 말을 떠올렸을 때, 그들의 마법은 하나로 모였다.
테오파노 신의 빛처럼 눈부신 광휘는 아니지만, 도깨비불처럼 작은 불빛들이 모여 빛의 그물을 짰다. 그리고 떨어지는 신을 받아안았다.
“흐흐흐흑!”
“아아아아!”
안도에 휩싸여, 미친 듯이 달려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멈추었다. 흐느껴 울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오히려 사람들의 반응에 압도당했던 신들은, 그 순간, 하늘에 드리워진 오로라보다도 거대하고, 해일보다도 엄청난 믿음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봉인의 신들을 도와 빙하기를 줄여 가고, 봄과 여름을 더 일찍 깨울 믿음이.
그리고 마법의 신을 지켜 낼 믿음이. 마법이야말로 사람들 마음에 품은, 세상의 그 모든 가능성을 향한 믿음이니까.
빛의 그물이 서서히 내려와, 사도들의 품에 안긴 마법의 신이 마침내 눈을 떴을 때, 사람들은 빙하기의 도래 앞에서도 퍼져 나가는 온기를 느꼈다.
“그리하여 시간과 마법이 결합하여, 불멸과 필멸, 영원과 변화의 결합이 이루어졌도다.”
그리하여, 헬라네스 주신이 예언하였다.
이제 소빙하기로 폭발의 여파를 감당할 신이.
“이제 세상의 주신은 테오파노 신이니라. 주신은 곧 수호신이나니, 테오파노 신이 나를 이어 세상을 지켜 가리라!”
-아버지!
눈을 뜬 테오파노 신이 안타까이 부르짖는 가운데, 헬라네스 신은 그를 돌아보았다.
-난 주신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걸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세상은 본래 네가 창조한 것이기도 했다. 네가 물려받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되었어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다. 너와 세상의 운명대로.
목이 멘 테오파노 신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가운데, 헬라네스 신은 활짝 웃으며 소빙하기로 사라졌다. 그 자신의 운명으로.
“주신 테오파노 신이여!”
제일 먼저 스카텔란 신이 한쪽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다.
이어서 아민타스 신이, 발트라하 여신, 유스타키아 여신, 헤르첼로이데 여신, 봉인의 신들 중 제일 먼저 정신 차린 라스카라사 여신과 라프트레이 신이.
언제 다시 만나게 될 줄 모를 맏형을 떠나보낸 브론테제 신이. 잠든 피오르델리케 여신과 파스투란 여신도 환영을 보내어 충성을 맹세했다.
이어서 그들을 따르는 모든 하위신과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온 세상의 모든 존재가 그들의 수호신을 맞이했다.
마법의 신 테오파노, 새로운 주신을.
* * *
-…주신이 되신 순간, 테오파노 신께서는 우셨다. 두 어깨에 놓인 세상의 무게를 실감하시면서.
그러나 그 울음은 그분과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만 들렸다. 새로운 주신으로서, 그를 경배하는 모든 이에게 웃으셨으니까. 다가 올 기나긴 겨울을 밝힐 따스하고 환한 빛을 퍼뜨리시면서.
그리하여 테오파노 신께서는 주신이라기보다 행복과 기쁨의 신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으셨다. 사람들은 그분이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시는지에 대한 복잡한 교리보다, 그분이 그들의 마음에 불러일으킨 행복에 기뻐하였으니까.
그분이 바라시는 대로.
그러나 그 많은 웃음 뒤에 얼마나 많은 울음을 홀로 삼키셨는지는 오로지 그분만이 안다. 그분이 사람들의 불행을 돌보시며 그들의 슬픔에 대신 우셨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면서도, 자신이 사람들을 위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행복해하시며 온 마음으로 기뻐하셨으니, 그 또한 테오파노 신이노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신.
-테오파노 신의 서에서.
-完-
에필로그
혹독한 겨울이었다. 사계가 처음 시작됐을 때, 세상이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시간의 봉인을 안정시키고자 있었던 빙하기가 사실상 되돌아왔기에.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았던 사람들이 많이도 죽어 나갔다.
마법으로 그들을 보호한 주신 테오파노와 그 사도들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이가 죽어 갔을 터였다.
그러나 마침내, 봄을 기다리다 못해 잊어버리고 말았던 겨울날, 문득 따사로운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삭풍에 등 돌리고 벌벌 떨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돌렸다. 그 얼굴로 내리쬐는 봄 특유의 햇볕이 그토록 반가울 수 없었다.
발아래 얼어붙은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자, 사람들의 눈물이 그 연초록의 새 생명 위로 봄비보다 먼저 떨어져 내렸다.
“테오파노 신이 옳으셨다!”
“테오파노 신의 말씀대로 봄이 왔다!”
“테오파노 신이시여!”
기나긴 세월 동안, 지쳐 갔던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던 테오파노 신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 사람들은 잔치를 벌였다. 새로운 주신의 탄생을 축하하는 잔치기도 했다.
본래 테오파노 신이 새로운 주신의 자리에 올랐을 때 이미 벌렸어야 할 잔치였지만, 전쟁과 뒤따른 소빙하기의 도래로, 테오파노 신이 금했었다.
“테오파노 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테오파노 신 만세!”
“사랑합니다, 테오파노 님!”
사람들이 테오파노 신을 칭송하며 즐겁게 춤추고 노래했다. 아직 빙하기의 시련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지라, 소박한 잔치나마 행복해하며.
그런 그들에게 주신이 축복을 내렸다.
새파랗게 맑은 하늘 곳곳에 피어난 작은 태양들, 테오파노 신의 금빛 후광이 자아내는 희망이 사람들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테오파노 님!”
“테오파노 신이시여!”
노인들은 굽은 허리로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주름진 웃음을 띠었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이 처음 보는 광경 아래 눈이 동그래졌다.
“하하하하!”
사람들의 웃음이 테오파노 신의 축복과 함께 푸른 하늘 아래 어우러졌다.
“하하하하! 사람들이여, 내 사랑을 듬뿍 받아라!”
테오파노 신은 그날 모든 신전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렸다.
그러다 잔치가 끝물에 이르러 사람들이 하나둘 잠들기 시작했을 때, 테오파노 신전에서 몰래 빠져 나오는 수상한 무리가 있었다.
“너희는 왜 따라오는 거냐?”
테오파노 교의 최고 신관이 뒤따르는 이들에게 눈을 부라렸다.
“최고 신관이 세상을 둘러보러 가시는 테오파노 님과 함께 가 버리면, 제가 떠맡을 업무가 엄청나니까, 도망치는 겁니다.”
테오파노 교의 대신관이 태연하게 말했다.
“테오파노 님이 주신의 정체를 숨기고 떠나시는 밀행인데 당연히 가장 오래 모신 내가 같이 가야지. 이는 테오파노 님의 결정이기도 하다.”
최고 신관은 근엄하게 말했으나, 또 다른 대신관이 콧방귀를 뀌었다.
“너희들끼리 알아서 결정하라고 하셔서 제비뽑기해서 이긴 거 가지고 무슨 운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과장하긴―”
“네가 제비뽑기하자고 했잖아!”
“네가 이길 줄 알았으면 하자고 안 했지. 어차피 난 길을 떠나야 했어. 사스키아 사도님이 꼭 한번 오라고 하셨거든. 다 큰 아들놈이 결혼을 안 해서 속을 썩인다나? 아하하하!”
“역시 다 속셈이 있었구나!”
-아, 또 또 싸우네, 막내 보는 앞에서, 안 부끄럽냐?
-괜찮아, 누나. 내가 싸우긴 싫지만, 형제자매들이 싸우는 거 보는 건 재미있어.
“거봐, 막내도 재밌대잖아― 악!”
“왜? 다쳤어? 어디가?”
대신관이 갑자기 비명 지르자, 신성 기사단장이 얼른 다가붙어 걱정했다. 다른 사도들은 멀뚱멀뚱 둘을 바라보기만 했다.
“드라콘이 자다가 내 손가락 깨물었어.”
“아니, 요놈이? 덩치도 산만 한 게 굳이 따라오겠다고 해서 테오파노 님이 작게 줄여 주시니까 도로 아기가 됐네? 깨물라면 제 꼬리나 깨물지 네 손가락은 왜 깨문대?”
“호호홍, 그러게 말야.”
-쟤 이상하게 웃는다.
-응, 응, 저 형도 웃는 게 이상해.
정령왕들이 흉보았지만, 신경도 안 쓰는 둘이었다.
“그놈은 하도 커서 어쩔 수 없다고 치고, 펜나까진 왜 작아졌는데? 날개와 뿔만 가리면 됐는데, 왜 같이 작아졌대? 이 하늘을 나는 애들을 타고 가지도 못하고 도리어 업고 가다니 말이 되냐?”
기사단장이 궁시렁댔지만, 그의 등에 업혀 잠든 펜나는 눈도 뜨지 않았다. 꼬리만 움직여, 기사단장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쳐 댈 뿐.
“됐고, 지금이라도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 특히 너, 국왕이 돼서 국사는 안 보고 왜 따라 오냐?”
최고 신관은 그들 특유의 딴 데로 새는 수사법 속에서도 본래 화제로 돌아가려 줄기차게 노력했다.
“국사야 테오파노 님과 나를 숭배하는 유능한 재상이 대신 보면 되고, 나는 국왕으로서 도탄에 빠진 백성의 삶을 살펴야 한다. 어차피 테오파노 님이 가끔씩 세렌으로 이동시켜 주실 테고.”
“핑계 대지 말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큰아버지에게서 일정 기간 이상 떨어지면, 타락해서 폭군이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라!”
“비앙카 사도님이 출산이 다가왔다고 편지를 보내 주셨어요. 리우트프란 님이 굉장히 긴장하고 계시대요. 좋은 물약을 보내 드렸는데, 여행하는 김에 두 분의 아기도 보고 싶네요.”
둘이 싸우건 말건 태평하게 자기 말만 하던 대신관이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고 손으로 가리켰다.
“아, 저기 봐요, 테오네의 별자리가 보여요!”
그 말대로였다. 동이 트기 전, 새벽하늘가에 빛나는 네 별이 그들의 앞길을 비추고 있었다.
“크와아앙!”
“히히히힝!”
갑자기 대신관과 기사단장에게 안겨 가고 업혀 가던 두 마리가 날갯짓을 하며 힘차게 날아올랐다. 그 별들을 향해서.
“아하하하!”
“역시 아직 애들이다!”
“애들이랑은 놀아 줘야지!”
아웅다웅 싸우던 사도들도 그들을 뒤따라 신나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사도들의 싸움을 화해시키기보다 즐기는 마음가짐을 지니게 된 테오파노 신은 미소를 지으며 날아올랐다.
사도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마음이 곧 용기였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앞날을 희망으로 삼았듯.
주신의 정체를 잠시 숨기고, 행복과 기쁨을 세상 곳곳에 퍼뜨리고자.
그들의 앞길을 옹기종기 모인 네 별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