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26
26
전쟁을 치르기 직전의 땅.
전쟁을 치른 직후의 땅.
전쟁의 여파가 극명한 곳들.
병사들뿐이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고 잔치가 시작하자 슬금슬금 나와서 어울렸던 주민들도 있었다.
전장을 떠돌아다니는 용병들보다 농성하느라 고생했던 그들이 더 크게 환호했다. 영주와 성주의 눈도 번쩍거렸다.
실수했구나.
나는 전쟁에 지친 이곳 사람들이 전쟁의 신을 원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대한 신이 그 위용을 드러내며 현현하면 사람들로선 감격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들이 행여 바라지 않는 길을 가게 될까 봐 걱정했었는데 착각이었나… 난 정말 애송이구나…….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나섰다.
“나는 마법의 신, 테오파노다.”
나는 금빛 후광을 널리 퍼뜨렸다. 레오파라와 계약을 맺었을 때처럼.
“테오파노 신! 테오파노 신! 테오파노 신!”
“물과 불로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셨다!”
나도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영주들을 비롯해 사람들이 소리쳤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잔치를 베푸신 신! 화끈하고 통이 크신 신!”
“한 방의 불! 한 방의 물! 한 방의 남자! 아니, 남신!”
용병들도 환호하며 반겼다. 용기가 생겼다.
그새 마법이 늘어서 그때처럼 사람들의 등 뒤에서 아무것도 태우지 않았고, 재를 날리지도 않았다. 금빛도 더 선명하게 환하고 밝았다.
“나는 마법으로 전쟁을 끝냈다. 내 힘은 적을 이기지만, 평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나는 너희에게 영광이 아니라 행복을 가져다주겠다. 우리 교에서는 모두 노래하고 춤추며 함께 행복하다.”
잘 말했나? 모르겠다. 스카텔란 형이 위세를 부린 다음으로 말하자니 뭐든 유치하게 들렸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솔직하게 말해야 했다. 그래야 그들은 그들의 신을 제대로 알고서 선택할 수 있을 테니까.
“와아아아!”
사람들이 환호했다. 예상보다 호응이 좋아서 희망이 생겼을 때였다.
“테오파노 신, 만세! 테오파노 신을 위해 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자! 우리의 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그때 아타울프가 나섰다.
그러더니 흥분했는지 번들거리는 눈으로 레오파라에게 말했다.
“테오파노 신의 첫 번째 신도 레오파라, 노래해라! 내가 춤을 추겠다!”
하지만 레오파라가 대답하길 기다리지도 않고, 그 장신의 체구로 바로 춤추기 시작했다. 레오파라가 음치인 줄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하하하!”
사람들이 그런 아타울프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테오파노 님을 위해 다 함께 춤추자!”
레오파라가 노래하지 않아도, 아타울프 스스로 고함을 질러 댔다. 아예 웃통까지 벗어 던지고 춤추자, 사람들의 웃음이 더 커졌다. 여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레오파라는 살기등등한 얼굴로 아타울프를 노려보았다. 음치인데 노래를 시켜서 화가 난 모양이었다. 안 해도 되는데.
“하하하하!”
그때 스카텔란이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 일제히 전쟁의 신을 바라보자, 그가 손가락으로 아타울프를 가리켰다. 아타울프가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과연, 아주 즐거운 교단이로다. 저리 춤추는 어릿광대가 다 있지 않은가?”
스카텔란 형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눈길은 싸늘했다. 내가 아주 잘 아는 표정이었다.
“감히 신들의 경쟁에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끼어드는 어릿광대라니, 정말로 재미있구나, 하하하하!”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한 분위기 속에서 스카텔란 형의 웃음소리만 울려 퍼졌다.
“네 춤에 상을 내려야겠구나. 안타깝게도 나는 예술의 여신이 아닌지라 춤이라곤 하나밖에 모른다.”
그렇게 말한 전쟁의 신이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칼이 하나 나타났다.
그 칼은 곧 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로 베고 우로 찌르고, 위로 올려 치고 아래로 내리찍고, 사방으로 휘두르면서… 정녕 춤을 추는 듯.
“광대여! 내 칼과 춤을 추는 영광을 내려 주겠노라! 어디 한번 마음껏 춤을 춰 보아라! 하하하하!”
스카텔란 형이 웃음을 터뜨리자 칼은 무서운 기세로 아타울프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아아악!”
사람들이 공포에 찬 비명을 올렸다.
그 소리에 아타울프는 정신 차린 듯 움직였지만, 도리어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그가 비틀거리는 순간, 칼은 그에게 꽂히기 직전이었다.
챙!
하지만 칼은 곧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튕겨 나갔다.
내가 급히 아타울프에게 친 방어막에 막혀서.
방어막에 강하게 부딪쳐 가늠도 못 할 방향으로 튕겨 나간 칼이었지만, 스카텔란 형이 눈도 돌리지 않고 한 손을 뻗어 손에 쥐었다.
전쟁의 신은 무기가 어느 방향으로 가건 돌아보지도 않고 손으로 잡아낼 수 있었다. 볼 때마다 신기했다.
“괜찮은가, 아타울프?”
나는 아타울프에게 가서 물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가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손을 내밀었지만 꼼짝도 하지 못하고서.
충격을 받아 마비된 듯했다. 내가 그를 일으키려 했지만, 레오파라가 더 빨랐다.
하지만 아타울프는 레오파라의 손이 닿자마자, 뿌리치며 일어났다.
“내 사랑하는 동생, 테오파노. 왜 그대가 좋아하는 춤을 막았는가?”
그때 스카텔란 형이 입을 열었다.
“내 사랑하는 형 스카텔란이여,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 신도의 춤이지, 형의 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형이 나를 사랑한다고 사람들 앞에서 말했으니, 나도 질 수는 없었다.
“하하하! 저 꼴사납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그대가 좋아한다고?”
“내 신도가 나를 위해 춘 춤입니다. 어찌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아, 내 동생 테오파노 신은 참으로 자비롭도다.”
스카텔란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수호신이 되겠다고 나선 이상, 그들 앞에서는 진실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 저렇게 말하는데? 내가 마치 무슨 거짓말이라도 한 것처럼-
“테오파노, 그대는 위대한 주신과 숭고한 모신의 신전에서 태어나 자라난 신이다. 지금까지 지상에는 발도 들이지 않았던 유일한 신이기도 하지. 천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해 온 내 동생이 저 어릿광대의 춤을 좋아한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찮은 제물에 초라한 의식이라도 마음이 담겨 있기만 하다면. 그러나 그렇지 않은 춤을, 예술의 여신이 베푸는 공연을 보고 자란 그대가 간파해 내지 못했다고?”
형이야말로 그런 이야기를 왜 지금 사람들 앞에서 굳이 하는데?
하지만 사람들의 눈길이 흔들렸다. 스카텔란 형의 말이 더 진실하게 들려서. 마치 내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것처럼.
“솔직하게 말하라. 저 어릿광대의 춤은 추하고 흉하며 신들을 모독하기까지 하였으나, 그대는 아직 신도 수가 적으니 신도를 살리고자 했을 뿐이라고.”
신성 모독.
스카텔란이 태연하게 한 말에 사람들이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신성 모독은 중죄였고, 그 죄를 범한 사람은 신에게 큰 벌을 받았다.
신들로서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는데 그냥 넘겼다면,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는 짓이니.
무엇보다 그런 신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권위도 세우지 못한 약한 신은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없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니까.
반면, 그때 엄혹하게 처벌하여 위엄을 크게 떨친다면 교세를 널리 확장하고 명성을 드날릴 기회기도 했다.
특히 새로 종교를 세운 신들에게는. 그래서 그들의 처벌이 더 오랜 신들의 처벌보다 심할 때도 종종 있었다.
-사람들이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술의 신이 말했었다.
-날 납치하고, 감옥에 가두었었지.
술의 신 아민타스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에게 제발 풀어 달라고 애원이라도 했을까?
다정한 이복형은 눈부신 미소를 지었다.
-나는 지금 네게 미소 짓듯, 그들에게도 미소 지어 주었어. 그런 뒤 그들을 벌했지. 특히 날 모욕한 왕에게는 최고의 대접을 해 주었다.
그 왕의 어머니가 왕을 산 채로 갈기갈기 찢어서 잡아먹었다.
-너는 내가 왜 그 왕에게 모든 이의 기억에 남을 최후를 내렸는지 알 거야.
나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이복형의 손길 아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그렇게 해라. 아니면 지상으로 내려가지 마라.
아무도 내가 지상으로 내려가서 무언가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에, 아민타스 형만이 진지하게 조언해 주었었다.
한 신이 자신의 위엄을 세우겠다고 나서면, 주신 헬라네스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런다면 그 신도 주신을 따를 이유가 없으니까.
지금 내가 나로선 신성모독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아타울프를 용서해도, 형이 스스로 모욕을 느꼈다고 주장하면, 막을 길이 없었다.
그때 전쟁의 신이 말했다.
“내 동생이 진실을 말한다면 나도 내 동생의 신도에게 자비를 베풀리라.”
그 말에 비로소 형의 진의를 깨달았다.
스카텔란 형은 친형이면서도 배다른 형인 아민타스의 반만큼도 다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형이 아타울프를 직접 해치우지 않는 이유는, 내 손으로 해치우라는 뜻이었다.
아민타스 형처럼 새로운 신의 권위를 세우도록. 모든 사람이 절대 잊지 못하는 방식으로.
스카텔란 형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날카롭게 직시해 왔다.
나는 아무런 노여움 없이 그 눈길을 되돌렸다. 형이 나를 해코지하고자 벌이는 짓이 아닌 줄 안다는 뜻에서.
스카텔란 형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반면 아타울프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낯빛이 희게 질렸다. 후회하는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다음 순간, 그 눈빛은 처음 보는 반항기를 띄웠다.
내게 항의할 때조차, 곧잘 웃던 아타울프의 눈빛 같지 않았다.
내가 자신을 구해 주지 않으리라고 여겼겠지.
하지만 그러다가도 아타울프 역시 웃었다. 스카텔란 형과는 비교도 안 되게 미미한 웃음이었지만, 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
뭐가 그렇게 흡족해?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스스로 확신에 차서.
넌 대체 어떤 사람이야?
역시 먼 훗날, 괴물의 편에 서는 악인이라서?
“내 사랑하는 형 스카텔란 신이여, 내 신도의 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유감입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타울프의 춤이 마음에 듭니다.”
또한 나의 신도였다.
스카텔란 형의 눈은 잘 벼린 칼날 같았다. 하지만 비틀린 입술에서 나온 말은 가벼웠다.
“마음에 든다고? 어디가 아름다워서?”
“여자들도 좋아했습니다.”
내 미래의 여 신도들. 지금의 신도들보다야 춤과 노래를 잘하는 이들이 조금은 있겠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신의 분노가 두려워 벌벌 떨던 분위기가 다소 풀렸다.
“동성의 매력에 둔감한 이들도 이성의 매력에는 민감합니다. 반대도 마찬가지듯.”
이것도 헤르첼로이데의 가르침이었다.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바로 그 가르침이 표현하는 대상이었던 스카텔란의 눈매가 치켜 올라갔다.
“같은 남성의 눈에 아름답지 못하더라도, 여성의 눈에 아름다우면 분명 미의 가치가 있습니다.”
헤르첼로이데는 미의 여신이기도 했다. 연인인 스카텔란이 그녀가 내린 정의에 이의를 제기하면 바로 일러바쳐야지.
아타울프가 웃통을 벗어젖혔을 때 제일 환호했던 여인들이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카텔란 형이 팔짱을 꼈다. 불쾌한 기색이었다.
사람들은 여기서 신의 분노를 목격하는 증인이거나, 그 분노를 실행하는 형리여야 했다. 그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스카텔란 형의 기분을 더 상하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사람들은 내 말에 자연스럽게 반응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예상 밖이었지만, 그래서 더 그들의 의견이 소중한 터였다.
“그래서 내 동생이 갑자기 여신이 되었는가? 나는 네 생각을 물었다. 다른 이들이 아니라.”
“마음에 들긴 해도 저 역시 아타울프의 춤이 흉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는 일부러 추한 춤을 추었으니까요.”
내가 시인하자 스카텔란 형이 흡족해하는 건 놀랍지 않지만, 아타울프는 왜 비슷한 표정을 짓는 걸까.
그것도 레오파라를 돌아보면서.
정말 추했던 것은 아타울프의 춤이 아니라 의도였다. 그는 분명 나를 모욕하려 들었으니까.
그가 믿겠다고 맹세한 신을.
“비록 그의 춤은 아름답지 않으나, 그 자신의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춤이 좋았다. 아타울프의 진실을 내게 보여 준 춤이니까.
한 신도가 내게 거짓말을 했다가도 스스로 진실을 드러내었다. 그렇다면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되었다. 사람을 이해하는 길을.
“네 춤의 의미가 무언지, 왜 그런 의미를 품게 되었는지 너 자신은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