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47
47
말하자마자 후회했다.
이럴 거면 놈들과 대화는 왜 했는가. 삼단 논법까지 세우면서.
이쯤 되면, 내 궁금증은 불치병이 아닐까. 언제고 이 호기심 때문에 망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선의 가능성을 그들 스스로 보여 주지 않으면, 내가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아무리 합당한 추론인들, 추론에 불과하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대혼돈이 일었다.
많은 정령들, 특히 괴물의 피가 묻은 정령들은 아까처럼 서로 죽고 죽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물을 정화하려는 정령들도 상당수 있었다.
수는 비등했지만, 갈수록 후자가 적어졌다. 전자의 쉬운 표적이 되어서. 후자는 물의 정화에 온 힘을 다 쏟느라 자신을 방어할 수 없었으니까.
나는 마법을 발현했다. 바람으로 전자와 후자를 떼어 놓았다.
전자의 어떤 정령들은 처음에는 내가 일으킨 바람에 저항하며, 여전히 후자의 정령들에게 덤벼들려 했다.
그러나 곧 내 마법을 당해 낼 수도 없고, 무엇보다 같은 파의 정령들에게 등을 내주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지만.
나는 더는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정령들의 혼란상보다 나만 지켜보는 레오파라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마주 보지 않았다. 정령들이 그를 질투하게 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었다.
레오파라로선 내가 자신을 구하러 온 줄 알았을 텐데. 구하긴커녕 그를 장난감처럼 갖고 논 정령들과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생각되지 않을까.
솔직히 나도 내가 대체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충 장단 맞춰 주고, 레오파라만 빼낸 후 정령들을 따돌리면 그만이다. 레오파라가 수면에 한번 도달하면 더 위험할 일도 없으니까.
가끔은 똑똑한 사람들도 성공해서, 정령에게 끌려갔지만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는 전설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신인 내가 일을 질질 끄는 것도 모자라,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니.
계약자를 바라보기도 미안했다. 신이 되어서 정령들도 다루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걸로 보이면 어쩌지. 안 그래도 날 약하게 보는데.
그때였다. 생각보다 혼돈의 결말이 일찍 났다.
-내가 이겼다!
물론 서로 죽고 죽였던 정령들 쪽이.
-내가 나 말고 모든 정령을 다 죽였다. 내가 제일 강하다!
그쪽에서 혼자 살아남은 정령이 외쳤다.
그 정령은 이제 괴물처럼 혼탁한 녹색이었다. 다른 정령들을 죽이며, 그들과 그 자신에게 묻어있던 괴물의 피가 더 응축되어 고여 썩은 듯이.
-테오파노 신이 방해하지만 않으면 저 정령들도 모두 죽이겠다!
그 정령은 이제 가히 독기를 뿜어내며 외쳤다.
아무리 맑은 샘이라도, 동물이 빠져 죽으면 그 물을 마실 수 없다. 이 정령 주변의 물도, 샘도 아닌 호수인데도 그렇게 혼탁해져 가고 있었다. 마치 그 정령이 호수를 샘으로 축소시키기라도 한 듯.
그러자, 이번에는 두 번째 정령들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우리는 아직 안 끝났어! 시간이 모자라! 미처 다 정화하지 못했어!
저 안타까운 목소리.
당연히 이 짧은 시간에는 무리인 일이었다.
그럼에도 절박하게 외치는 목소리는 역시 한 정령의 목소리였다. 죽고 죽이던 정령들에서 다 죽이고 혼자 살아남은 정령처럼, 정화하던 정령들에도 오로지 한 정령만 남았기에.
-허어어억!
전자의 정령이 비명을 질렀다. 후자의 정령도 자신처럼 하나지만, 자신과 비교도 안 되게 어마어마하게 컸기 때문이었다. 전자의 정령이 보통 정령의 크기라면, 후자의 정령은 정령의 거인과도 같았다.
그야, 정화하기 위해서는 서로 뭉쳐야 했으니까.
내 앞에서 처음 보였던 작은 사람의 모습과 달리, 레오파라와 팔짱 낄 만큼 크고 유령보다 생생한 사람의 본래 크기를 구현하려면 여러 정령이 뭉쳤던 것처럼.
그리고 이번에는 그런 장난이 목적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각자 정화했지만, 한 정령으로서는 감당 못할 괴물의 큰 잔해도 있었다. 그런 것에 여럿이 달라붙다 보니, 뭉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하나하나 지켜보았듯.
그리하여 전무후무하게 커다란 물의 정령이 출현하였다. 나뿐 아니라, 그 어떤 신도, 아니 세상 자체가 처음 보는 정령이.
‘우리’지만 뜻을 같이 하는 하나.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미처 끝내지 못한 정화에 더 신경 쓰는.
“네가 과연 정령의 왕이라면, 저 정령을 다스릴 수 있는가?”
나는 전자의 정령에게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방식대로라면, 저 정령을 죽여야 하니까. 하지만 무슨 수로 저 거대 정령을 죽일까.
“반대로, 네가 저 정령을 왕으로 섬기겠다면, 저 정령은 너도 정화해 주리라.”
내가 다시 말했다.
이 정령이 풍기는 악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저 거인 정령이라면 충분히 정화할 수 있을 터였다. 못 한다면 내가 도울 테니까. 내 말에 따랐던 대가로.
그 정령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제 이미 죽은 괴물과 똑같은 악취를 뿜어내며.
-죽인다! 저 정령을 죽인다!
저 분노. 그 뒤의 두려움.
정화가 두려운가? 오염이 좋은가?
-모두 죽이고 내가 정령의 왕이 된다!
그 정령이 입을 쩍 벌렸다. 역시 괴물과 똑같은 세 겹의 이빨이 생겨났다.
다음 순간, 정령은 몸을 부풀렸다. 물에 빠진 시신이 썩으면, 몸이 부풀어 오르는 것과 똑같은 양상.
독기가 구름처럼 일며 몸을 부풀린 정령은 이제 괴물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괴물처럼 크지는 못했지만, 괴물과 똑같은 악취를 풍겼다. 혼자 변형했는데도, 아까 정령 여럿이 뭉쳐서 구현했던 괴물의 형상보다도 더 괴물 같았다.
참으로 불쾌한 경험이었다. 괴물이 어떻게 태어나는지, 눈앞에서 목도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이렇게 생겨나는 괴물이 없다고도 할 수 있을까…….
-괴물이다, 괴물이 다시 나타났다!
-우리는 괴물을 믿지 않아! 우리는 괴물이 아니야!
-괴물은 우리의 신이 아니야!
그러자, 그 거대 정령에게서 다양한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확실히 괴물이 있었을 때 괴물을 좋아하고 숭배했던 정령도 있었겠지만 싫어하고 무서워했던 정령도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정령은 개별성이 없다시피 하니까, 서로 휩쓸리기도 쉽다. 지금 내 앞에서 일어난 일들이 정령들로서는 최대한의 개별성 발현인 셈이다.
그중 가장 뚜렷한 발현은, 괴물이 된 정령이었다. 하지만 그러자마자 괴물에게 스스로 잡아먹혔다.
그리고 성향이 같은 개별성끼리 뭉쳐서 태어난 이 거대 정령은 거대 정령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긴 했으나, 이제 공포를 느끼며 다시 개개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혼자 괴물이 된 정령과 달리 금세라도 무너질 판국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도 일말의 희망이 반짝였다.
결국 개별성을 억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지 않을까.
괴물 정령처럼 다른 정령들을 죽여 버리는 강압도 없었고, 자기들끼리 호수를 정화하려는 같은 목적 아래 뭉쳤다.
그러니 괴물이 호수를 지배할 때는, 다른 정령들처럼 좋아하는 척하며 차마 내지 못했던 목소리도 낼 수 있는 터다.
그 자발성이 낳은 개별성이라면.
능히 왕이 될 그릇이었다.
-내가 왕이다!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세 겹의 이빨을 번득이며 거인 정령에게 달려들었다.
-괴물이다! 괴물이야!
거인 정령은 공포에 휩싸여 도망가려고 했다. 그 거대한 형체가 산산이 무너져 내리기 직전.
내가 입을 열었다.
“정령의 왕이여! 정령을 지켜라! 호수를 정화하라!”
그렇게 말하며 스태프를 들어 괴물을 가리켰다.
지금 호수를 더럽히며 정령을 잡아먹으려는 존재를.
거대 정령이 놀라서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느라 무너지지 않았다. 모두 놀랐으니까, 그 공통의 느낌을 함께 구현하는 바람에.
-내가 왕이다아아악!
괴물 정령이 악을 쓰며 외쳤다. 하지만 이미 그 말의 마지막 소리는 괴물의 기괴한 울음소리에 더 가까웠다.
“물의 정령을 다스리는 왕이여, 정령들을 구하라! 호수를 지켜라!”
내가 다시 외쳤다. 나야 내가 세운 왕의 정의에 따른 자를 왕으로 부를 뿐.
-나는 물의 정령왕이다! 정령을 구하고 호수를 지킨다!
거대 정령이 고함쳤다. 그 형상은 이제 아까보다도 더 굳건해졌다. 그런 채로 거대 정령이 괴물 정령에게 덤벼들었다.
괴물 정령도 덤벼들었다. 두 정령이 싸우면서 거대한 기포가 일더니, 아예 소용돌이쳤다.
레오파라가 휩쓸려 가나 해서 바라보았지만, 그는 푸른 기운이 도는 검을 치켜들고 잘 버티고 있었다. 심지어 내게 눈짓해 보이는 얼굴은 이 시퍼런 물속에서도 상기돼 있었다. 핏기가 가셨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온 듯.
안심하고, 두 정령의 투쟁을 지켜보았다.
정령들은 생각보다 잘 싸웠다. 하루살이 삶에서 사람을 홀리는 일만 해 왔으니, 싸워 본 경험도 없을 텐데.
아까 서로 죽고 죽일 때도, 싸운다기보다 그냥 먼저 맞은 놈이 죽었다. 안 그래도 하루살이인데, 쉽게 죽으니까 쉽게 죽이는 식이었다.
거대 정령이 괴물 정령의 모가지를 부여잡고 흔들어 댔다. 괴물 정령의 다른 머리가 거대 정령의 다리를 물었다. 거대 정령은 쓰러지면서도 괴물 정령의 모가지를 놓지 않고 대가리를 한 손으로 후려쳤다.
아까 나와 괴물의 싸움에서 뭘 좀 보고 배운 티도 났다. 하긴 괴물을 잡으려면 일단 대가리부터 조지고 봐야지.
-파이어볼!
심지어 내가 했던 말도 똑같이 따라 했다.
물의 정령들도 물에서 쓸 수 있는 힘이 있지만, 그렇다고 상극인 불을 뿜어낼 수 있을 리가.
저래서야 되겠냐. 쓰려면 워터볼을 쓰든가.
나는 슬쩍 마법을 일으켰다. 거대 정령 근처의 물에서 워터볼을 일으켰다. 조용히 티 내지 않게 하자니, 작았다. 하지만 바람으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날리자, 그냥 날아가는 것보다 자전하는 회전력이 상당했다.
그대로 괴물의 몸뚱아리에 꽂히니까, 괴물의 형상이 일그러졌다.
-크허어억!
거대 정령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넌 이거 못 하지? 테오파노 신이 인정한 왕만 할 수 있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네. 결국 이들과 나 사이에도 모종의 계약이 성립했다고 볼 수 있으니까.
그런들 물의 정령끼리 물로 공격한들. 형상이 일그러져서 흩어진들, 흘러가는 물이 있으면 흘러오는 물도 있기 마련. 다시 합치면 그만이다. 역시 내가 끼어들어야…….
그런데 그런 공격이 먹히고 있었다. 거대 정령이 공격할수록 괴물이 흩어졌다 복구하는 속도가 느려져 갔다.
반대로 괴물이 거대 정령을 물어서, 거대 정령이 울부짖어도, 괴물의 독기를 거대 정령은 점점 빠르게 정화해 냈다. 하긴 독이고 뭐고 정화에는 물이 최고니까.
아, 그렇구나.
그 순간 깨달았다.
괴물 정령은 괴물이 되면서, 물이길 포기했다. 그래서 물의 속성을 점차 잃어 갔다. 스스로 물에 생겨난 불순물이 되었으니까.
반면 거대 정령은 더욱 힘이 세지고 거대해져갔다. 스스로 정화한 물, 그 가장 순수한 물의 힘으로.
물 만난 물고기와 불순물 사이 승패는 명확했다.
그래도 금세 결판나지는 않았고, 지켜보기 진짜 힘들었다. 끼어들고 싶어서. 이렇게 하면 한방에 끝날 텐데 왜 저러나, 답답해 죽었다.
형제자매들도 이래서 나한테 그렇게 참견했었나. 그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도 되었다.
아니지, 거대 정령은 지금 호수의 패권을 놓고 또 다시 생겨난 괴물을 퇴치하려고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다. 당연히 그 과정을 이끌었던 신으로서 개입하고 싶지.
반면 어머니 아버지 신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내게 참견할 게 뭐가 있어서? 이해는 무슨.
“끄어어어어억!”
마침내 이미 수세에 몰려 있던 괴물 정령이 죽었다. 자신의 본질을 저버리고 괴물이 됐지만, 바로 그랬기에 패했다. 본래의 괴물 못지않은 마지막 비명만을 남긴 채.
거대 정령도 몹시 지친 낌새였다. 저러다 무너져서 흩어져 내리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거대 정령은 그러기 직전, 다시 집중했다.
바로 괴물 정령이 남긴 잔재를 정화하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