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54
54
아니, 절대 그렇지 않은데―
하지만 브론테제 숙부 특유의 애조 띤 목소리며 심오한 표정과 어우러지자, 그 말 자체가 멋있게 들렸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기꺼이 시련을 무릅쓰는 어린, 아니 젊은 신. 우리 교의 초기 전설로 써도 좋을 듯했다.
라스카라스 누나도 과장은 좋은 향신료라고 했으니까, 교리서 전체에 아낌없이 치면,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겠지. 내 고난을 처음부터 함께 한 레오파라가 세부까지 잘 살려서 쓰면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이야기가 되리라.
“왜 진작 나와 네 숙모를 찾아오지 않았느냐? 오늘 밤은 당장 어떻게 지내려고. 네 사도들과 함께 나의 궁에서 묵으렴. 내, 네가 천상에서도 누리지 못한 호강을 시켜 주마.”
브론테제 숙부가 허언을 하지는 않았다. 보석도, 때로는 보석보다 귀한 광물도 전부 땅 속에 묻혀 있으니까. 천상을 다스리는 아버지 주신이 가장 강력한 신이나, 가장 부유한 신은 하계의 군주였다.
-브론테제 오라버니가 하계를 차지할 때만 해도 불쌍하게 여겼는데, 이제 보니 제일 알짜배기를 차지했잖아?
파스투란 고모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던 대로.
솔직히 끌리긴 했다. 그동안 미래의 악인들을 포섭하고 마법을 창조하고 괴물과 싸우느라 불편한 줄도 모르고 살았었다. 숙부의 걱정을 들으니, 예전의 생활이 그리웠다.
“단언컨대, 한번 하계에 내려오면, 절대로 떠나고 싶어지지 않을 게다.”
…가고 싶어도 못 가겠다.
“사람들이 괜히 사후의 세계를 꿈꾸는 게 아니다.”
명계의 군주가 하도 자부심에 차서 말하여, 내 사도들을 흘끗 보았더니, 다행히 사후 세계에 끌리는 듯한 얼굴은 아니었다.
숙부는 내 시선을 따라 그들을 보며 자상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 네 일행의 말소리가 들리더구나.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이 벌써 죽음을 논하다니, 참으로 앞날이 유망한 청년들이다.”
이제 사도들의 낯빛이야말로 굶어 죽은 사람처럼 파리해졌다. 브론테제 신의 조카 앞에서 죽음을 입에 올렸기 때문에 죽음의 신이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겠지.
하지만 브론테제 숙부는 내게 공부하다가 죽으라던 라프트레이 형의 일방적인 폭언도, 죽음에 대한 토론으로 여겼던 분이다.
“과찬이십니다. 죽음에 대한 토론은 신과 사람 모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까요.”
“착하디착한 내 조카가 얼마나 사려 깊은지.”
그 후로도 브론테제 숙부의 가장 중요한 용건이 끝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일이라곤 하나, 본래의 호강과 거리가 멀어진 내 생활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숙부의 마음에 새삼 뭉클했다.
“네가 정 나와 함께 하계로 내려가지 않겠다면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할 이야기가 있다. 신들의 이야기니 너의 사도들은 들을 수 없겠구나.”
“네, 숙부님.”
드디어 그렇게 말한 브론테제 숙부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숙부는 내 전도유망한 사도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레오파라, 아타울프. 그대들은 내 막내 조카를 성심껏 모셨다. 이제 그 보상으로 죽음의 신이 내리는 은총을 받거라.”
내 사도들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공포가 서렸다.
그 무례한 태도를 꾸짖을까 하며 숙부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브론테제 숙부는 기분 상해하지 않았다. 죽음의 위엄을 향해 사람이 보내는 경의라고 너그러이 생각하니까.
“그대들의 나이라면, 주변 사람의 죽음을 겪고도 남음이다.”
둘 다 전직 용병이라 다행이다. 주변에 죽은 사람이 없었다면, 숙부는 그들이 나를 섬기기에 인생 경험이 부족하다고 여기겠지.
“…네, 그렇습니다.”
“네…….”
내 사도들은 내 눈길을 받고 숙부에게 어영부영 대답했다. 그 정도면 사람치고 죽음의 신 앞에서 아주 잘하고 있었다.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좋았다.
끝까지 안 가지는 편이 제일 낫긴 하지만.
“내, 그대들의 친애하는 죽은 사람들 중 단 한 명을 만나게 해 주겠다.”
뭐라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런 큰 은총이라니?
내 사도들까지 챙겨 주는 브론테제 숙부의 마음에 감동하긴 했지만, 놀라운 파격이었다. 숙부가 나를 조카들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줄은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형제자매들의 계약자들이 죽음의 신에게서 이런 총애를 받은 적이 있던가?
어깨가 으쓱해질 지경이었다. 그들과 직접 만나 내 입으로 말해 주고 싶었다. 잠시라도 천상에 올라가고 싶을 정도로.
“누구를 바라는지, 말해 보아라.”
두 사도들은 멍하다 못해,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이었다. 하긴 신에게서 너무 큰 은총을 받으면, 아무 생각 안 나겠지. 꿈인가 싶고.
그래서, 레오파라와 아타울프는 각기 누굴 고를까? 가족? 연인? 친구?
궁금한 가운데서도, 젊은 그들이 소중한 이들을 벌써 잃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람의 수명이 짧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 레오파라가 많이 외로워했었다. 겉으로는 전혀 티내지 않아서,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을 정도로…….
“그래, 당장은 고르기 힘들겠지. 하지만 기회는 한 번뿐이고, 만날 사람도 한 명뿐이니, 신중하게 선택해라.”
죽음의 신이 자상하게 충고했다.
아타울프는 연인, 레오파라라면 어려서 잃었을지도 모를 가족을 선택하지 않을까.
아타울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죽음의 신이시여, 크나큰 영광에 감사드립니다.”
깍듯이 인사하며 절한 그는 내 예상과 달리, 죽은 용병 한 사람을 만나고자 했다.
그의 목숨을 구했지만 자신은 죽고 말았던 전우인 걸까.
레오파라는 아타울프가 대는 이름을 듣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러나 내가 그런 반응에 레오파라를 보자, 바로 시선을 돌렸다.
“알겠다, 아타울프.”
고개를 끄덕인 죽음의 신이 한 손을 쳐들자, 희푸른 불꽃이 흘러나왔다.
그 불꽃은 도깨비불처럼 사방을 휘감아 돌면서 바람처럼 일렁거리다 우리를 스치기도 했다. 그때마다 불꽃이 발산할 리 없는 한기가 일었다. 나와 내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신음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윽고 불꽃이 점점 커지더니, 그대로 망령이 되었다.
피를 뒤집어 쓴 거구의 사내는, 바지 양쪽의 색깔이 다르고, 소매를 부풀린 줄무늬 옷을 입고 있었다. 과시적이고 실용성이 적어 지금은 유행에 뒤떨어진 용병의 복장이었다.
얼굴에 흉터가 난 피투성이 망령은 음산한 눈길로 아래만 보았다. 자신이 파묻혔던 땅을 노려보듯.
“나를 기억하나?”
아타울프가 망령에게 다가가 물었다.
망령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아타울프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 일종의 번득임이 일었는데, 산 사람이 생기와는 결이 달랐다.
흉터가 난 얼굴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히죽, 불길한 웃음을 띠었다.
-난 너 같은 애송이는 모른다.
저 망령은 절대 아타울프가 친애할 만한 자가 아니었다. 대체 누굴 부른 건가?
기가 막혀서 내 사도를 보았지만, 그는 침착히 말을 이었다.
“그래, 모르겠지. 나는 네가 알았던 그 애송이가 더는 아니니까.”
-그래 봤자, 너는 나를 이기지 못했어.
망령은 제가 앞서 한 말과 모순되는 소리를 하며 반박했지만, 아타울프는 그 점을 지적하지도 않았다.
“그래, 나는 널 이기지 못했어.”
히죽. 망령의 기분 나쁜 미소가 더 커졌다. 망령의 몸집도 함께 커졌다.
-너는 그를 구하지 못했어.
이 둘이 말하는 ‘그’가 대체 누군데? …레오파라는 아니겠지만, 아타울프와는 무슨 관계지?
“나는 그를 구하지 못했어.”
그러나 아타울프는 또 다시 인정할 뿐이었다. 그 무감한 옆얼굴을 보며 내 속만 탔다.
-모든 게 내 말대로야, 흐흐흐.
망령이 웃었다.
“너는 내가 너를 결코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었지. 나는 평생 네 부하일 수밖에 없으니, 네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아타울프는 이젠 아예 망령이 생전에 했다는 말을 그대로 읊고 있었다. 내 사도가 미쳤나.
-너는 날 죽이고 싶어 했지.
망령은 이젠 몸집이 두 배로 커지며 아타울프를 내리 누를 듯했다.
-하지만 나는 네 손에 죽지 않았어. 네가 아무리 날 죽이고 싶어 했어도, 너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지. 결국 내가 옳았어. 크히히히!
망령의 웃음소리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놀랍게도 망령은 점점 생기를 얻어 가고 있었다. 설마 내 계약자에게서 흡수하고 있는 건가.
“그래, 네가 옳았어.”
다시, 아타울프가 인정했다. 망령이 또 다시 몸집을 부풀렸다.
“너를 죽이는 건 내가 아니라 내 친구여야 했으니까.”
망령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넌 아무것도 몰라.
“나는 다 알아.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어. 너는 그를 입에 담을 수도 없을 정도로 괴롭혔지. 그는 나한테조차 아무 말도 못 하고 힘들어 했어. 그가 참다못해 반항하자, 넌 그를 때려눕혔지. 그때, 그는 죽을 뻔했어.”
그 순간, 아타울프의 눈은 망령을 보지 않았다. 망령조차 꿰뚫고, 그가 살아있던 과거로 돌아가, 그때 목격했던 끔찍했던 일을 떠올리면서.
-네가 그때 숨어서 비겁하게 지켜봤군! 겁쟁이 쥐새끼 주제에!
“그래, 난 숨어서 비겁하게 지켜봤어. 난 겁쟁이 쥐새끼였지.”
또 다시 망령의 말을 인정하는 아타울프의 입을 내 손으로 틀어막고 싶었다.
-그랬으면, 네 눈으로 똑똑히 봤겠군! 내가 그를 죽였다!
망령이 함성을 울렸다. 이제 그의 몸은 처음 나타났을 때의 세 배로 커졌다.
“아니, 너는 그를 죽이지 않았어. 그가 너를 죽였어.”
망령의 커졌던 몸이 뒤흔들렸다.
“겁쟁이 쥐새끼처럼 벌벌 떨며 숨어 있던 내가 마침내 용기를 내서 널 죽이려 했을 때, 그가 네 눈에 흙을 뿌렸어. 눈을 감싸 쥐고 주저앉은 네 머리를 돌로 내리쳤고, 너는 즉사했지.”
아타울프는 오연히 말했다.
그러자 망령의 몸은 둘로 나뉘었다.
그림자 하나가 돌을 쥐고 다른 그림자를 내리치자, 다른 하나가 쓰러졌다. 하나는 사라지고, 다른 하나만 남았다. 그렇게 망령은 죽을 때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우리는 네 시체를 불태우고, 남은 잔해를 늑대 밥으로 만들었지. 다른 사람들은 네가 도망친 줄 알뿐 네가 죽었는지조차 몰라. 오직 그와 나만이,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어.”
…아타울프가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이유. 아타울프의 신과, 같은 사도에게조차 밝힐 수 없는, ‘그’의 비밀이었으니까.
-복수할 테다.
그러나 망령은 이를 갈았다.
-그는 내 꿈을 꾸고 있어. 난 그걸 느낄 수 있지. 그가 날 부르니까.
망령은 다시 웃었다.
-그는 밤마다 죄책감에 싸여 내게 용서를 빌고, 나는 그런 그에게 침을 뱉지. 그러면 그는 울부짖는다.
망령은 웃으면서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나는 그를 기꺼이 용서하고말고. 언젠가, 더는 견디다 못한 그가 창문에서 뛰어내리게 할 거야. 아니면 강에 몸을 던지거나. 이제 보니 늑대 밥이 되게 하는 것도 좋겠군! 그것이 나의 용서다!
망령이 킬킬거리며 다시 몸을 부풀렸다.
“너는 그렇게 못해.”
그러나 아타울프는 의연하게 말했다.
“그가 내게 말하지 않아도, 그가 어떤 악몽을 꾸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내가 아니라 그가 너를 죽여야 한다는 걸 알았듯.”
-닥쳐! 너는 나를 막지 못해.
“그래, 나는 너를 막지 못해. 그가 너를 막았고, 막을 테니까.”
아타울프가 망령의 말을 다시 인정했는데도, 이번에는 희열을 느꼈다.
-겨우 그 말을 하려고 나를 불러냈나?
“그래, 너는 그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는 그를 찾아오지 못하며, 그가 다시 너를 이기리라고 말해 주려 왔다.”
아타울프의 눈이 붉어졌지만,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의연했다.
“너는 죽어서도 그를 괴롭혔지만, 이제 그의 삶이 너의 죽음을 극복하리라고 말해 주러 왔다.”
-절대 그렇게 안 돼!
“너는 다시는 네가 처한 지옥을 떠나, 그 누구의 꿈에도 깃들지 못한다.”
-네가 무슨 수로 나를 막는다고!
“내가 그에게 말할 테니까. 네가 죽어서도 얼마나 사악한 망령인지, 어떻게 자신이 처한 지옥으로 그를 끌어들이려고 하는지, 모두 말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