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56
56
“아닙니다. 저는 그 모든 위대하신 신들을 모두 믿습니다, 죽음의 신이시자 가을의 신이시여.”
…그래, 잘 대답했다, 레오파라.
“하지만, 저는 제 유한한 삶을 살아가며, 오로지 테오파노 신만을 섬기고자 합니다.”
레오파라의 대답에 나는 그만 입술을 깨물었다.
“그대의 입으로 그대의 삶을 유한하다고 하면서, 스스로 한계를 두느냐?”
브론테제 숙부가 준엄하게 물었다.
“한계가 아니라 목적입니다. 유한하기 때문에 더욱 필요한 삶의 목적입니다.”
그러자, 죽음의 신은 이삭이 무르익은 들녘에 쏟아지는 가을 햇볕처럼 미소 지었다.
하지만 나는 울컥한 나머지,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그런 내게 잠시 눈길을 둔 브론테제 숙부는 다시 레오파라를 향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죽어서도 테오파노 신을 섬기고 싶은가?”
“그렇습니다.”
레오파라는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그대가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그럴 수 없더라도 그러겠습니다.”
투박해서 더 순수한 진심.
“진심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그대가 그럴 수 있을지 가늠해 볼 일말의 가능성도 포기할 수 없다. 특히 지금의 맹세를 삶 너머까지 이끌고자 한다면.”
죽음의 신이 뜻하는 바를 깨닫고 레오파라의 눈매가 붉어졌다.
죽음의 신이 가을의 과실 같은 목소리로 감미롭게 말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어찌 죽은 자를 두려워하겠는가?”
“…두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대는 죽음을 모른다. 모르면서 어찌 두렵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라프트레이 형이 말한 수사학의 덫. 죽음의 신은 학문의 신이 인정한 대가였다.
하지만 브론테제 숙부는 레오파라에게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 가을의 풍요를 담은 눈길로 바라볼 뿐.
“그대가 그토록 목적 있는 삶을 바란다면, 죽음을 알 기회를 놓치지 말라. 죽음이야말로, 삶 본연의 목적일지니.”
레오파라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의 신이시여, 그토록 놀라운 축복을 거절했던 우매한 저를 용서하십시오. 이제, 신의 가르침을 받은 자로서, 기꺼이 그 영예를 받고자 합니다.”
브론테제 숙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대가 보고 싶은 사자는 누구인가?”
레오파라는 다시 고민했다.
그가 숙부의 은총을 처음 받았을 때, 아예 고려하지도 않고 거절하지는 않았을 터. 그러다가 영 고르지 못해 포기했을지도 모르고. 지금 또 다시 망설이고 있는 듯한 내 사도.
“저는 부모를 모릅니다.”
레오파라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거였어… 말할 이야기 자체가 없다고 생각했나…….
죽음의 신은 말없이 기다렸다. 선택은 단 한 사람이라고 이미 말했으니까.
“…저는…….”
레오파라가 나를 보았다. 사람이 죽음의 신과 마주하고 그 눈길이며 손길을 받는 와중에, 다른 데 시선을 돌리다니.
나의 계약자로서 나를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힘들 텐데, 오죽하면 저럴까.
하지만 내가 대체 어떻게 조언해 줄 수 있을까?
예지의 꿈에서도 레오파라가 노예였다거나, 반신이라든가, 괴물과 인간의 혼혈이라든가, 소문만 난무했다. 그만한 강자라면 여기저기서 혈육이라고 주장하고 나설 만도 한데.
끝내 밝혀지지 않았던 그의 과거는, 이제는 그 자신도 모른다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머니? 아버지? 부모 중 누구를 만나야 할까. 둘 다 좋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상관없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몰랐다.
레오파라가 예지의 꿈에서 선택했던 악의 씨앗이, 그의 부모 중 한 사람에게서 전해졌다면… 아니면, 둘 다 악하거나. 그렇다면 만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렇다고 고뇌하다 한번 거절했었고, 이제 용기를 내어 다시 고뇌하는 레오파라에게 또 포기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라고도 할 수 없듯이.
레오파라는 부모를 만나고 싶은 게 분명하니까. 너무 만나고 싶은 나머지, 그만 용기를 잃을 정도로.
그의 신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죽음의 신도 저토록 잘 이끌어 주었는데, 나는 해 줄 말이 없었다.
할 말이 있다고 한들… 나는 부모 신의 사랑받는 자식이고, 레오파라도 그 사실을 안다. 부모 없이 자란 그에게, 내가 조언할 자격이 있을까.
신인들, 사람이 겪은 아픔을 모른다면.
그래도 신으로서, 사람의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했다. 그가 죽음의 신에게 나에 대한 믿음을 흔들림 없이 표명했듯이.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동요와 아픔을 숨기지 못하고, 한없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의 간절한 눈길을 마주 보고 말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야, 내 실수를 깨달았고.
그 순간, 레오파라의 눈이 커졌다.
죽음의 신을 포기하고 선택한 신에게 얼마나 실망했을까.
그러나 나의 계약자는 때로, 참으로 이상스러웠다.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그의 눈길에 온기가 서서히 섞이더니, 물기도 스며 나왔다.
가슴이 덜컥하는데, 그가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사람이 신에게 괜찮다고 하듯.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입을 여는데, 이미 죽음의 신을 향해 고개 돌린 레오파라였다.
“…어머니로, 선택을… 어머니를 만나고 싶습니다.”
죽음의 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쳐들었다. 그 손에서 희푸른 불꽃이 흘러나왔다. 무심코, 레오파라의 검기를 떠올렸다.
이제, 레오파라의 어머니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아버지라면, 모종의 사정으로 자식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지만 직접 낳은 어머니는 그렇지 않다. 어머니가 아버지가 누군지도 말해 줄 테지.
내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남긴 증거를 내어 주며 찾아가라는 어머니. 사람들이 가장 열광하는 무수한 영웅 전설의 시작.
과연, 레오파라의 어머니는 누굴까. 레오파라가 잘생겼으니 미인일 테지만, 어떤 신분일까?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죽었을까?
그저, 슬픈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기를.
하지만 부모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자식을 남기고 요절한 여자가 그러지 않았을 리는 없다. 진상을 알게 되면, 레오파라를 위로해 주어야겠다.
그때, 브론테제 숙부가 쳐들고 있던 손의 불꽃이 서서히 꺼졌다. 숙부의 머리카락이 밤바람에 일렁거렸다. 레오파라를 바라보는 숙부의 눈이 깊었다.
“레오파라, 그대의 어머니는 죽지 않았다.”
우리는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네? 하지만 제 어머니는 분명─”
놀라서 되물은 레오파라의 말이 뚝 끊겼다. 마침내 깨달은 듯.
“그대의 어머니는 살아 있다.”
레오파라는 얼어붙었다. 충격으로 말미암아 아무 생각도 못 하는 듯.
“…브론테제 숙부님, 그러시다면 부디─”
내가 말을 못 잇는 레오파라 대신 서둘러 말하자, 죽음의 신은 자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파라, 그대의 아버지를 찾겠는가?”
레오파라는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를 재촉하듯 바라보자, 정신을 차리고 겨우 대답했다.
“…네, 네… 그러겠습니다.”
잘했다. 충격이 크겠지만, 그럴수록 그걸 곱씹으며 빠져들어선 안 될 때였다. 이럴 때, 아버지에게서 바로 진상을 들으면 되니까.
죽음의 신이 다시 손을 쳐들었다. 다시 신비스러운 불꽃이 일렁거렸다. 가슴이 뛰는 가운데, 그 불꽃만을 바라보았다. 레오파라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어서.
이윽고 다시 그 불꽃이 사라졌다. 죽음의 신이 레오파라를 바라보았을 때, 이번에는 내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대의 아버지 또한 살아 있다.”
“아, 씨─읍!”
아타울프가 괴성을 내질렀다가, 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 소리에 나는 무작정 움직였다. 다른 신 앞에서 내 사도의 무례를 꾸짖을 새도 없이.
“잘됐다, 레오파라!”
나는 레오파라를 끌어안았다. 아무 말도 못 하는 그 얼굴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눈을 들여다보았다.
“네 부모는 살아 있다. 그렇다면 반드시 만날 수 있다. 네가 용기를 낸 끝에, 이제 진실을 알게 됐으니까.”
…이번에야말로 흔들림 없이 말했지만 가슴이 떨려 왔다.
레오파라는 여태껏 스스로 고아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하지만 갑자기 그의 세상이 뒤집혔다.
아기였을 때, 그만 부모와 떨어지고 말았을까? 누군가 그를 유괴라도 해서?
…혹은 부모가 그를 버려서.
만난들, 더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 잃어버린 자식을 지금도 애타게 찾고 있는 부모와 만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희망을 포기해선 안 된다. 사람이 포기해도 신은 포기해선 안 된다.
그러나 희망이 클수록 상처도 크다. 사람에게 희망을 말한 신이, 그 희망이 낳은 상처를 낫게 할 수는 있는가?
“나와 함께 네 부모를 찾자, 레오파라. 내가 꼭 찾아 주겠다.”
하지만 사람의 곁에 있겠다. 그 희망이 실현되건, 실현되지 못하건, 절대로 혼자 두지 않겠다.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더라도, 아픔을 나누면서.
그러자, 레오파라가 눈물 가득한 눈으로 서서히 고개 끄덕였다. 나를 마주 끌어안으며.
나를 꼭 끌어안은 그의 팔에서 서서히 힘이 풀렸다. 나는 그를 더 힘주어 끌어안았다.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아타울프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서둘러 다가왔다. 그와 나는 내 품에서 소리 없이 의식을 잃은 레오파라를 부축하여 잠자리에 눕혔다.
“그는 오늘 밤, 죽음과도 같은 잠에 들었다.”
브론테제 숙부가 말했다. 죽음의 신이 내리는 또 다른 은총. 처음 내린 은총과 비교하면 작지만,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하계의 가장 큰 보석보다도 더 바라는 것.
아타울프는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이해한 순간, 죽음의 신이 그에게도 꿈 없는 잠을 내렸다.
* * *
“좋은 사도들이다.”
브론테제 숙부는 내 사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은 기둥이 넷 달려 있고 보석이 박힌 황금 침대에 누워 아기처럼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너울 같은 실크 휘장이 밤바람에 휘날렸다. 오늘 밤, 마음고생이 심했던 사도들이 호강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고맙습니다.”
숙부와 나도 큰 진주를 중심으로 각종 보석으로 장식하고 벨벳 방석을 놓은 황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숙부는 땅속에서 나지 않는 진주를 좋아하여, 바다의 여신 파스투란 고모와 땅의 보석으로 자주 교환하곤 했다.
왕좌보다도 화려한 의자에 앉은 우리 둘은 울긋불긋한 단풍잎과 잘 익은 밀 이삭으로 엮고 영근 열매가 드리워진 화환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이렇듯 가을의 신과 나란히 모닥불을 보며 앉아 있을 때면, 참으로 마음이 충만하였다.
자정이 넘은 시각, 다시 가을 술을 따른 유리잔을 건네며 죽음의 신은 말을 이었다.
“어제, 내 가장 사랑하는 조카가 죽은 자들을 명계로 돌려보냈더구나.”
브론테제 숙부가 나타났을 때부터 짐작했다. 이제야 나온 말이지만, 조바심은 나지 않았다. 그의 백성인 죽은 자들 못지않게 나와 내 사도들을 아껴 준 숙부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저는 작은 계기를 마련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제 발로 숙부님의 품으로 돌아갔지요.”
그래도 내가 죽음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히 해 두어야 했다. 죽음의 신에게 가장 사랑받는 조카가 숙부에게 무례하게 굴 리는 없으니까.
“물론이지.”
브론테제 숙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막 지상에 내려 온 동생이 서툴 수도 있지, 대뜸 트집 잡고 싸움 걸던 스카텔란 형하고는 얼마나 다른지.
“네 사도들도 그 일에서 제 몫들을 잘 해냈다.”
…아, 그래서 보상으로 그런 큰 축복을 내리셨구나. 그렇다고 신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상세히 말할 수는 없고, 죽음의 신은 그 점에서 특히 세심하였다.
내 생각과 달리, 나에 대한 마음 때문에 내 사도들까지 챙긴 건 아니었지만, 내 사도들이 스스로 죽음의 축복을 얻어 냈다는 점이 더 기뻤다.
그때, 죽음의 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는 죽은 자들을 다시 불러내는 일이기도 하였다. 우리 영민한 테오파노는 내가 네크로맨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