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85
85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그 노인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특히 시장의 얼굴에는 반가운 기색마저 느껴졌다. 폭동 때의 조우와는 달리.
“리우트프란 왕자 전하, 마침내 나르본에 오셨군요.”
총장이 왕자에게 다가가 절했다. 하지만 시장처럼 깍듯한 예의를 취하지 않은 태도에 기사들의 눈이 살기등등해졌다.
“라프트레이 신께서 전하를 보내셨습니다.”
“왕자를 보낸 건 테클란의 국왕이잖아. 신의 사도가 아니라 국왕 대리로 왔는데, 말은 바로 해야지.”
레오파라가 토를 달았다.
“신의 징벌이시여! 저를 죽여 주소서!”
그렇게 말한 대신관은 두 팔을 벌리고 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교수들도 모두 일제히 대신관을 따라 두 무릎을 꿇었다. 시장과 시의 관리들은 얼빠진 얼굴로 그들을 멍청히 바라보았다. 그들 중 한 애송이가 홀린 듯이 따라 무릎을 꿇으려다, 연장자에게 겨우 제지받았다.
“사도도 아닌 왕자를 신의 징벌이라고 부르면, 모독인가요, 칭찬인가요?”
아타울프가 순진하게 물었다.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데, 레오파라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칭찬이지. 왕들이 좋아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징세 다음으로 징벌이다.”
“아까부터 수사학 잘하는 척하고 있네. 왕이 보냈는데, 신이 보냈다고 하면, 왕자는 부왕과 함께 자동으로 신의 사도가 되는 느낌이잖아. 보통 왕위를 노리는 왕자들은 발트라하 여신이나 스카텔란 신을 믿는데, 학문의 신과 잘도 엮네.”
“알게 뭐야, 왕위에 한번 오르면, 전쟁을 벌이고, 전쟁을 벌일 때마다 신의 징벌 운운하는데.”
코웃음 치는 사도들의 말을 들으며 살펴 본 리우트프란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라프트레이 신이시여, 저를 벌하소서!”
대신관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폭도들이 무기를 들고 학문의 신전을 습격했나이다! 폭도들이 학생들을 잔혹하게 죽이고, 신성한 아카데미들을 약탈했습니다.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학문의 신전은 텅 비었습니다. 이런 무참한 비극이 일어나는 동안, 나르본의 대신관인 저는 대체 무얼 했단 말입니까! 학생들을 지키지도 못하고, 폭도들을 막지도 못했습니다!”
“지금 국왕 대리인 왕자더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네요. 나르본은 국왕령이니까요. 따지고 보면, 학생들을 지키거나 폭도들을 막는 것도 국왕의 일이고.”
아타울프가 지적했다.
“그러니, 이 참담한 사태 앞에서, 저는 죄인입니다. 죄인을 벌하소서! 저를 죽여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나르본에 묻히게 하소서!”
“학문의 신전이 학문의 무덤이 되게 생겼네요. 그럼 학문의 수호자라는, 왕들이 좋아하는 칭호도 같이 묻히겠군요.”
레오파라가 건조하게 말했다.
“저는 감히 용서를 청하지 않겠습니다!”
“누구 얘기 하는 걸까요? 라프트레이 신의 용서? 테클란 국왕의 용서?”
“하나만 빌면 다른 하나는 안 빌어도 되는 느낌이네요.”
-우리, 강에서 뱃놀이 언제 해?
대신관이 열렬해질수록 내 사도들의 반응은 차가워져 갔다. 이곳에 처음 와서 과연 큰 성지라며 감탄하던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러니, 대신관으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저를 죽여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그렇게 외친 대신관은 두 팔을 벌린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 하늘에 큰형의 얼굴이라도 떠 있어서 교감이라도 하듯.
…가만, 라프트레이 형은 결국 태양신이기도 하니까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자연 신이 좋긴 좋구나.
“죽여 주십시오!”
다른 교수들, 즉, 대신관 아래 신관들도 모두 따라 했다. 장관이었다.
특히 애걸복걸하다, 총장을 안 죽였다며 펄쩍 뛰던 시장과 도시 관리들의 모습과 비교하면 얼마나 차이 나던지.
“왕자에게 죽여 달라면서 왜 하늘을 바라보는 걸까요?”
“아까도 말은 왕자에게 했지만, 용서는 신에게 빌었잖아.”
레오파라의 말에 아타울프가 대답했다.
“배짱이 끝내주는 노인네다.”
레오파라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냥 허공을 향해 저런 말을 소리쳐 대면, 미친놈인가 싶을 텐데, 왕자 앞에서 저러니까 무섭기까지 하잖아.”
“생각해 봐. 국왕 대리로 간 왕자 앞에서 노인네가 저런 말을 했다고 하면, 온 나라, 아니, 이웃 나라들까지 포함해서 온 세상에 소문이 다 퍼지겠지. 그럼 왕자도 성질 같아선 죽여 버리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폭동 전야만 해도, 동네 술주정뱅이들 앞에서 아무리 점잖게 말해 봤자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반응이었잖아. 하지만 왕자 앞에서 목을 베시오, 배를 째시오, 해 대니 효과가 극대화한다.”
“사실 그런 거야말로 상대 봐 가면서 해야지. 동네 깡패들 앞에서 하면 활이 다 뭐야, 석궁까지 들고 오겠네.”
모처럼 친밀하게 떠드는 사도들은 어딘지 편안해 보였다.
“그 유명한 나르본이라고 해 봤자, 신을 찬양하는 방식 정도만 볼 만하군.”
“학문의 성지라고 소문이 자자했지만, 막상 와 보니 신관들도 별거 없네.”
사도들이 거드름을 피우는 동안, 나는 리우트프란 왕자에게 눈길이 갔다.
예지의 꿈에서 이 폭동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생각하니, 꿈에 나왔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신들과 괴물들의 전쟁으로 세상이 멸망하는 꿈을 꾸었는데, 한 도시에서 일어난 폭동이 기억나겠는가. 처음에 봤다고 해도 뒤이은 충격으로 잊고 말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리우트프란 왕자에게는 중차대한 일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국왕 대리로 맡게 된 임무니까.
그것도 너무나 골치 아픈 일. 이미 일은 어그러져서 해결이고 뭐고 뒷수습만 골치 아프고, 왕가의 체면을 세우면서 신전과의 사이도 틀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찌 보면, 바로 그래서 국왕이 맏왕자를 보낸 터였다. 국왕이 직접 나서면, 그 여파가 지나치게 커지니까.
나는 리우트프란 왕자의 얼굴을 살폈다. 왕자는 지금 자신의 기사단을 만들어 가는 중이고, 부왕의 신임도 산 듯하다. 그러나 이번 일을 망친다면?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테오파노 님?”
“왕자를 지켜보고 있다.”
레오파라가 물어 와서 대답하자, 아타울프가 피식 웃었다.
“확실히 왕자가 좀 불쌍하게 됐군요.”
“전직 용병 따위가 일국의 왕자 걱정을 다 하고, 출세했지 뭡니까. 역시 테오파노 님을 따라 다니길 잘했습니다.”
레오파라가 바로 비꼬자, 아타울프가 발끈했다.
“이 자식, 맞는 말도 재수 없게 하는 게 너의 수사법이냐?”
“너라면 돈 받고 가르쳐 주마.”
“너라면 돈 줘도 안 배운다!”
둘이 옥신각신하는데, 잠시 침묵을 지키며 대신관과 신관들을 바라보던 리우트프란 왕자가 입을 열었다.
“라프트레이 신께서는 자비로우시니, 기꺼이 그분의 신도들을 용서하시리라.”
“자기가 용서하겠다는 말은 안 하네요.”
레오파라의 말에 아타울프도 덧붙였다.
“학문의 신전 내 일이면 신전 내에서 처리하란 거네.”
하지만 대신관은 고개를 저으며, 애절하게 부르짖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라프트레이 신께서는 나르본 대학을 떠나셨습니다!”
“그 무슨 망발이냐! 이곳은 라프트레이 신의 성지이다!”
리우트프란 왕자가 노하였다.
당연했다. 같은 성지라고 해도, 국왕령과 영주령의 차이가 있었다. 영주령이야 영주가 제 영지를 신에게 봉헌하면 된다.
하지만 국왕은 온 나라의 각 분야가 고루 발달하도록 각 종교를 신경 써야 했다. 국왕 개인의 열렬한 믿음과는 별개로, 국경 근처의 요지라면 전쟁의 신을, 학문의 교류가 활발한 곳이라면 학문의 신을 모시는 식으로 주도면밀하게 안배해야 했다.
특히 나르본은 테클란 왕가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지였다. 그런데 왕가가 봉헌한 성지에서 신이 떠났다고?
그것도 다름 아닌, 대신관의 선언.
젊은 왕자의 호통에, 백발이 성성한 대신관은 눈물 젖은 얼굴로 대답했다.
“라프트레이 신께서 나타나셨습니까?”
“아니, 그걸 명색이 대신관이 왕자한테 묻다니…….”
아타울프가 어이없어했지만,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분의 신관들이 공격받고, 학생들이 죽어 나가고, 신전이 약탈당하는 동안, 라프트레이 신께서 나타나셨습니까?”
백발의 대신관이 비통하게 외쳤다. 시장과 관리들이 움찔했다.
“그분이 왜 나타나지 않았겠습니까? 노하셨던 겁니다. 그리하여 감히 그분의 뜻을 저버린 자들을 벌하시고자, 나르본을 떠나셨던 겁니다!”
침묵이 일었다. 모든 신전에 존재하는 신이란 믿음의 기본인데, 대신관이 성지를 두고 저리 선언하다니.
“학생들이야 도망쳤다고 해도 도로 잡아 오거나 달래면 되지만, 학문의 신이 떠났다면, 나르본은 대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레오파라가 물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 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한 대신관은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리우트프란 왕자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그의 뒤에 얌전히 무릎 꿇고 있는 교수들을 향했다.
“학생들은 어디 있는가?”
“그들은 나르본을 떠났습니다.”
“그건 나도 안다. 어디로 도망쳤는가?”
“아마도…….”
교수들은 말끝을 흐렸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르본의 과거 폭력 사태 당시, 이곳을 떠났던 학자들이 다른 곳에 설립한 제2의 대학 도시. 같은 신의 성지이자, 이곳 출신 학자들이 세운 곳이라 분위기가 흡사했다. 지금 이 자리의 아무도 차마 입에 그 이름을 올리지 않는 곳.
“그곳이라면 발라흐의 도시가 아닌가.”
다만 나라가 다를 뿐.
“그렇습니다. 학문의 명맥은 언제 어디서나 이어 나가야 하니까요. 가장 어두운 암흑기일지라도.”
매끄럽게 대답한 교수에게 리우트프란 왕자가 싸늘하게 되물었다.
“그대는 지금 내 부왕의 치세를 암흑기라 칭하는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신관은 벌벌 떨었다. 대신관은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우트프란 왕자의 시선이 대신관을 향하자, 신관이 얼른 두 손 모아 빌었다.
“대신관님께서는 더는 속세의 일에 마음을 둘 처지가 아니십니다. 부디 용서하소서. 제가 어리석은 말씀으로 라프트레이 신의 노염을 산 것도 모자라, 리우트프란 왕자 전하까지 불쾌하게 해 드렸습니다. 저의 불찰로 학문의 신전에 폐를 끼치다니, 부디 저를 먼저 죽여 주십시오!”
이번에는 신관이 죽음을 청했다.
“죽여 주십시오!”
다시 신관들이 합창했다.
“신관들의 뜻이 정 그렇다면, 내 친히 라프트레이 신을 뵙겠다. 신의 뜻이 어떠한지 직접 알아봐야겠다. 신이 정말 떠나셨는지, 신을 잘못 섬긴 너희의 말만 들어선 모를 노릇이 아니냐!”
리우트프란 왕자의 마지막 말은 노성이었다. 왕자는 신관들이고 관리들이고 거들떠 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나르본 대학의 안으로 들어갔다. 기사들이 우르르 뒤따랐다.
“왕자가 홧김에 정말 신관들을 죽여 버리면 어떡하죠?”
“뭘 어떡해? 관리들도 같이 죽이면 되지. 그리고 신관들과 관리들이 서로 죽였다고 공표하는 거다.”
아타울프가 내게 묻는데, 레오파라가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양쪽 다 자기 사람 심으면 안 싸울 게 아닙니까? 이 기회에 시장도 신관도 중앙에서 내려 보낸 왕의 심복들로 채워 버리면, 앞으론 못 싸우겠죠.”
“확실히 레오파라가 말한 해결책이 왕들의 방식이긴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너희 둘 중 하나가 왕자에게 가야겠다.”
“하지만 다른 신의 성지인데―”
“그 신이 떠났다고, 대신관이 말했지 않으냐?”
둘 다 걱정하는 기색이었지만 내 말에 반론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나와도 관련 있는 사람에게 안부를 물을 뿐이다.”
내 말에 사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리우트프란 왕자는 왕명을 선포했다.
-나르본 대학의 총장과 나르본 시의 시장 권한을 거두겠노라.
그렇게 라프트레이 신을 섬기는 대신관의 직위를 제한, 총장과 시장 모두 권한을 잃었다.
그러자, 나르본은 다시 발칵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