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01)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01화(101/215)
핏빛 독수리 (1)
* * *
“도랑 작업은 모두 끝났습니다! 짐마차들도 다 도랑 앞으로 옮겨놨고요.”
에이그가 말에서 내리며 외쳤다.
“준비해온 말뚝들도 다 비스듬하게 꽂아놨습니다!”
“거리를 표시하는 말뚝은?”
“그것도 아슬아슬하게 끝냈습니다.”
에이그가 숨을 헐떡였다.
“여기까진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망원경을 들었다.
우리가 진을 친 곳은 로마 북쪽의 안템나이.
부대를 기준으로 좌측엔 테베레 강.
우측엔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었다.
돌진하는 기병을 막아내기에 최적의 장소.
난 위그를 바라봤다.
그는 한창 다른 전령들에게서 보고를 듣고 있었다.
“위그 경, 적 위치는 아직 파악 안 됐습니까?”
“아무래도 황제가 부대를 둘로 나눈 것 같습니다. 기사들로 이루어진 선발 부대가 3리그 거리에서 접근 중이랍니다.
그가 답했다.
“해가 중앙에 올 때쯤 도착할 겁니다.”
1 리그가 대충 4~5km였나.
그럼 대충 12, 15km 정도 남았다는 얘기인데.
두 시간 정도면 도착하겠군.
사절단도 안 보내는 건가.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나 보군요.”
“그랬다면 로마까지 오지도 않았겠지요. 이제 검으로 승부를 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위그의 말이 맞겠지.
불트에 올라탄 난 진형을 점검했다.
“도랑을 좀 더 깊숙이 파고 짐마차를 빽빽이 배치해. 말이 아예 넘어올 수 없게 해야 한다.”
병사들은 각자 연대에 맞춰 줄지어 서 있었다.
난 도시마다 파이크 연대를 구성했다.
제1 파이크 연대는 밀라노.
제2 파이크 연대는 페라라 등등.
같은 도시 출신끼리 뭉치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애초에 도시마다 방언이 다르기도 하고.
이렇게 구성된 연대가 총 다섯 개.
그중 두 연대가 최전방에 배치됐다.
두 연대 사이에는 대각선 형태의 통로가 존재했는데, 도랑과 말뚝으로 채워져 적 기병의 기동을 막았다.
그 앞엔 궁수와 쇠뇌병들.
이들의 임무는 간단했다.
적을 향해 사격하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통로를 통해 파이크 창들 뒤로 숨는 것.
통로 바로 뒤에는 또 다른 파이크 연대가 배치됐다.
최후방엔 두 개 연대가 앞과 같은 진형을 구축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까지 창을 들지 말라고 전하세요. 무거운 창을 계속 들고 있으면 지칠 겁니다.”
내가 말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1열은 무릎을 꿇고 파이크 자루를 땅에 박고….”
“2열에서부터 4열까지는 창을 앞으로 높이 들어야 하죠. 훈련은 이미 충분히 했습니다.”
위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젠 병사들을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그렇겠죠.”
난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덧 해가 중간 지점에 도착했다.
수만이 넘는 부대가 앞에 있었다.
롬바르디아 동맹군.
모두 내 지휘를 받는 병사들.
죽느냐 사느냐.
이들의 목숨이 내 손에 달려 있었다.
난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겠지.
지휘관은 언제나 자신감에 넘쳐야 했다.
그래야 휘하의 병사들도 안심하고 명령을 따르는 법.
우유부단하고 두려움에 찬 지휘관만큼 무서운 존재는 없었다.
전령의 보고를 받은 위그가 말했다.
“놈들이 접근 중입니다, 공자님.”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시선이 날 향했다.
난 천천히 팔을 들고….
아래로 내렸다.
“뿔나팔을 울려라!”
“적이 온다!”
병사들이 창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마지막까지 마차와 말뚝을 심던 병사들도 허겁지겁 자리로 이동했다.
궁수와 쇠뇌병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은 통로 앞에 서서 전방을 응시했다.
“전부 기병에 숫자는 대략 천 오백 정도입니다. 프리드리히 황제의 깃발은 없다는군요. 제후들 문장뿐이었답니다.”
“한번 흔들겠다는 거군요.”
난 망원경을 들었다.
멀리서 검은 파도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천오백.
선봉대가 저 정도라니.
본대에는 얼마나 많은 중기병이 있는 걸까.
“흔드는 것치곤 병력이 좀 많은 것 같습니다만.”
위그가 말했다.
그가 은가면을 만지작거렸다.
“앞 진형이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면 뒤도 순식간에 붕괴할 수 있습니다.”
“이제 병사들을 믿는 수밖에 없죠. 경께서도 그리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었죠.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군요.”
위그가 웃으며 답했다.
난 앞을 바라봤다.
위그의 말이 맞았다.
한 번이라도 돌파를 허용하면 모든 게 무너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걸 걱정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지금은 싸울 때야.’
전투를 알리는 뿔나팔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난 테오도라가 준 투구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좁은 틈 사이로 하늘 높이 세워진 성십자가가 보였다.
* * *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백년 전쟁 초기.
크래시라는 지역에서 양쪽 군대는 전투를 벌였다.
‘크래시 전투’
이 전투는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1 대 3의 열세였던 잉글랜드군이 프랑스군을 상대로 압승을 거둔 것이다.
잉글랜드가 승리를 거둔 이유는 다양했다.
유리한 고지 선점.
잘 훈련된 장궁수들.
제대로 통제되지 않은 프랑스 중기병 등등.
이전까지의 방식을 고수하던 프랑스군은 잉글랜드군의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내가 계획한 것도 당시 잉글랜드군의 전술과 비슷했다.
하지만 거기에 한 가지 추가한 게 있지.
바로 파이크를 이용한 창병들.
신성로마제국를 위해 준비된 맞춤형 전술 그 자체.
“놈들이 첫 번째 지점을 돌파했습니다!”
검은색 물결이 평원을 가득 채우며 다가왔다.
아직 전력 질주가 아닌 속보였다.
땅이 두드드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동시에 병사들 사이로 두려움이 퍼져 나갔다.
하지만 소리 지르거나 도망치는 이들은 없었다.
모두 제자리에서 쇄도해오는 검은 파도를 바라봤다.
“자세를 유지하라!”
1열의 병사들이 파이크를 바닥에 꽂자 그 뒤의 병사들이 창을 들었다.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
궁수와 쇠뇌병들이 짐마차 앞에 섰다.
모두의 시선이 앞을 향했다.
하얀 깃털이 달린 말뚝.
적들이 저곳에 도달하면 사격이 시작된다.
검은 파도가 계속해서 다가오고….
하얀 깃털이 그 사이로 파묻혔다.
“쏴라!”
맨 처음 날아간 건 화살들이었다.
궁수들이 활시위를 당기자 화살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들 중에는 말에서 내린 투르크 궁기병들도 있었다.
하늘이 순간 검게 물들었다.
활시위를 당기고 놓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쏟아지는 화살에 검은 파도는 순간 주춤했다.
화살에 맞은 말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하지만 주춤하던 파도는 이내 더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공포가 거의 안 느껴지는군.’
난 독일 기사들을 바라봤다.
하르트만 백작 때와 마찬가지.
동료가 옆에서 쓰러지고 짓밟히는데도 아무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마약이라도 한 듯 계속 돌진할 뿐이었다.
“계속 쏴라! 쇠뇌 앞으로!”
이번엔 쇠뇌병들이 앞으로 나와 볼트를 뿜어냈다.
이들이 노린 건 기사가 아닌 그들이 탄 말.
중갑을 걸치지 않은 말들은 기사에 비해 맞추기 쉬웠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궁수들도 하늘을 향해서가 아닌 수평으로 활을 조준했다.
“아직 부족해.”
난 앞을 바라봤다.
멈춘 건 5분의 1 정도.
그마저도 죽은 건 대부분 말뿐이었다.
살아남은 독일 기사들은 곧바로 뒤로 후퇴했다.
후방에 가서 미리 대기 중이던 말을 타겠지.
적 기병들이 파란색 깃털이 달린 말뚝을 통과했다.
“놈들이 두 번째 선을 통과했다!”
“궁수들은 뒤로 후퇴하라!”
궁수와 쇠뇌병들이 서둘러 뒤의 통로로 이동했다.
통로 뒤에 있던 궁수들이 활을 쏘며 이들을 엄호했다.
독일 기사들은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눈앞에 빽빽하게 펼쳐진 가시밭.
기사들이 든 창으로는 창병을 찌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방향을 틀어 창이 없는 곳으로 돌진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깊게 파인 도랑과 날카로운 쐐기들이 그들을 반겼다.
통로를 지나면 또다시 파이크로 이루어진 가시밭.
창들 앞에 선 말들은 서둘러 방향을 틀었다.
몇몇 말들은 그대로 돌진해왔지만 창에 찔리는 걸 피하진 못했다.
아직 가시밭을 뚫은 독일 창은 하나도 없었다.
“버텨! 버티면 된다!”
돌파가 불가능하단 걸 깨달은 독일 기사들이 말에서 뛰어내려 검을 휘둘렀다.
저게 그나마 나은 방법이겠지.
사슬갑옷을 걸친 기사들은 창으로 찔러 죽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이제 와서 반격하기엔 기세와 병력 둘 다 부족했다.
그 순간 전세는 기울었다.
“놈들을 죽여라!”
등에 달린 하얀 날개.
성묘수호단이 파이크 숲을 성큼성큼 돌파해 하마下馬한 독일 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성도 예루살렘을 위해!”
난데없는 도끼질에 독일 기사들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공격을 막아낸 창병들의 사기도 올라간 상태.
이젠 반대로 적에게서 공포가 느껴졌다.
“밀어내라! 놈들을 밀어내!”
난장판 사이로 후퇴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독일 기사들은 말에 올라타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위그가 다가왔다.
“공자님, 밀라노 연대를 전진시키면 놈들을 포위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안 됩니다.”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프리드리히 황제는 아직 본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을 터.
그에게 모든 패를 보여줄 순 없었다.
“기사단원들에게 말에 타서 적들을 추격하라 하세요. 하지만 너무 깊게 들어가면 안 됩니다.”
내가 말했다.
“황제가 포위를 시도할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명령을 무시하고 돌격하는 자가 있다면 군법에 따라 처벌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위그가 손을 흔들며 달려나갔다.
말에 올라탄 예루살렘 기사들이 후퇴하는 적 기사들을 쫓았다.
“저희가 이겼습니다, 공자님!”
에이그가 숨을 헐떡였다.
녀석이 투구를 벗으며 외쳤다.
“프리드리히의 군대를 물리친 겁니다!”
“아직 기뻐하긴 일러, 에이그.”
난 전장을 응시했다.
돌격을 막아낸 병사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도끼를 든 성묘단원들은 시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전리품을 챙겼다.
자신들이 한 훈련의 성과를 직접 봤으니 이제 사기는 충분하겠지.
난 에이그를 바라봤다.
“이제 겨우 전초전이 끝난 거야. 지금 당장 황제가 본대를 끌고 올 수도 있겠지.”
사실 그게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분노한 황제가 같은 방식으로 기사들을 돌격시키는 것.
크래시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그런 식으로 대패했지.
하지만 프리드리히 황제가 같은 방법에 넘어올까?
* * *
“지금 당장 놈들을 몰아쳐야 합니다! 제국의 병력이 훨씬 더 많지 않습니까?!”
“만약 이렇게 패배하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제국의 명예가….”
“모두 조용히 하게.”
프리드리히 황제가 손을 흔들었다.
제후들 모두 입을 다문 채 그를 바라봤다.
“저 숲이 안 보이나? 하르트만 백작은 후퇴하는 반란군을 추격하다 기습을 당했다고 했지. 이번에도 놈들이 기습을 준비했을 수 있네.”
그가 말했다.
“적 기병들이 깊숙이 추격해오면 대기 중이던 기사들을 내보내게. 잘하면 우리가 역으로 포위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이번 패배의 설욕은….”
“이번 전투의 목적은 반란군 놈들의 꿍꿍이를 알아내는 거였네. 이겼다면 좋았겠지만 져도 상관없지.”
황제가 코웃음 쳤다.
“그리고 이제 놈들의 전술이 분명해지지 않았나?”
그는 제후들을 한 명 한 명 노려봤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이들 모두 고개를 숙이거나 시선을 피했다.
“제자리에 긴 창을 세워서 버티는 거라니. 농민들을 데리고 재밌는 생각을 해냈군.”
황제는 앞을 바라봤다.
“저 정도는 더 많은 기사를 투입하면 돌파할 수 있네. 진형이 한 번이라도 무너지면 농민들은 도망치기 바쁘겠지.”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한 번 돌파할 수만 있다면 승리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선두에 서서 놈들을 끝장내겠습니다! 부디 제게 명예를!”
“모두 조용히 하게. 지금 당장은 싸울 때가 아니니.”
황제가 손을 흔들었다.
“우선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부대를 재정비하게. 로마가 약속한 식량도 받아와야겠지.”
프리드리히 황제가 말고삐를 흔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전장을 바라봤다.
“싸우기 전엔 검을 벼리고 방패를 두드려야 하는 법. 놈들이 먼저 나서길 기다리자고.”
* * *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하게 손으로 그려봤습니다.
파이크 창병들은 앞으로 창을 겨눈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