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King of Crusaders RAW novel - Chapter (110)
십자군의 왕이 되었다-110화(110/215)
인터미션 (5)
* * *
푸아투
“놈들을 모두 몰아내라!”
용병들이 검과 도끼를 휘두르며 마을을 헤집었다.
그들은 소와 돼지들을 밧줄에 묶어 줄줄이 끌고 나왔고 가져갈 수 없는 모두 불태웠다.
“놈들이 쓰지 못하게 모조리 불태워라! 이곳에 잿더미만 남겨라!”
“제프리 공작 만세! 헨리 국왕 폐하 만세!”
이렇게 불탄 마을은 총 세 곳.
연기가 솟구치며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주민들은 습격자들을 피해 숲과 주변 마을로 도망쳤다.
몇 년마다 벌어지는 일이었다.
전쟁과 징발.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저기 좀 봐! 공작님께서 본대를 이끌고 오셨다!”
“저건 공작님의 깃발이 아니야.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럼 리처드의 군대라는 건가?”
말에 탄 수천의 기사들.
그들은 약탈을 마친 용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리 궁수들은 뭐 하는 거냐! 어서 저놈들을 쓰러트려!”
“노, 놈들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용병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활을 든 기병들이 달려들며 화살을 쏟아냈다.
그들은 활을 쏜 뒤 방향을 돌려 반격을 피했다.
“도, 도망쳐라!”
“사라센이야! 저놈들 피부색을 보라고! 저놈들은 사라센이야!”
“리처드 공작이 사라센 용병들을 끌고 왔다!”
혼란에 찬 용병들이 하나둘 도망쳤다.
검은색과 흰색 망토의 기사들이 그들을 포위하며 외쳤다.
“모두 전투를 중단하고 항복하라! 이건 교황 성하의 명이시다! 저항하는 자들은 모두 베어 넘기겠다!”
잘린 팔다리가 평원에 널브러졌다.
살아남은 용병들은 대부분 항복하거나 숲속으로 도망쳤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십자군 기사들.
이 소식은 머지않아 젊은 헨리의 천막에도 전해졌다.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보두앵 공자는 리처드의 손을 잡은 겁니다.”
제프리 공작이 외쳤다.
“놈들이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먼저 선제공격을 해야 합니다, 형님.”
“아직 정확한 건 모릅니다.”
젊은 헨리 뒤에 선 마셜이 말했다.
“용병대가 맞부딪쳤을 뿐입니다. 만약 리처드 공의 본대가 왔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 놈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걸세, 마셜 경.”
제프리가 코웃음 쳤다.
“평생을 말 위에서 살아온 그대가 이렇게 겁이 많은 줄은 몰랐군.”
“저와 말 위에서 승부를 겨루신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실 겁니다, 공작님.”
젊은 헨리는 중앙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아직 아무 사절단도 안 온 건가?”
“아직입니다, 폐하. 저희가 먼저 사절단을 보내는 것도….”
그때 한 기사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젊은 헨리 앞에 무릎 꿇었다.
“폐하, 예루살렘의 보두앵 공자가 직접 이곳 진영으로 오고 있다 합니다.”
“고, 공자가 직접 이곳에?”
젊은 헨리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와 제프리, 마셜.
세 사람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 * *
“이게 정말 좋은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에이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말에서 내린 우린 안내를 받아 진영 안쪽으로 향했다.
젊은 헨리와 제프리의 진영.
기사와 종자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릴 바라봤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무서우면 먼저 가도 돼, 에이그.”
“그럼 별로 좋은 호위 기사가 아니겠죠. 그리고 제가 무서운 게 아닙니다.”
에이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전 아사신과 알 아딜도 상대했죠. 하르트만 백작도 홀로 찾아갔고요. 제가 무서운 건 공자님께서 위험에 처하시는 겁니다.”
“그래, 넌 겁쟁이가 아니지. 그냥 놀리려고 한 말이었어.”
난 주변을 둘러봤다.
기사와 병사들의 사기는 높아 보였다.
나름 질서정연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젊은 헨리가 내게 손댈 순 없어. 그 후에 벌어질 정치적 폭풍을 감당 못 하겠지.”
“하지만 이미 젊은 헨리의 용병대와 싸우지 않았습니까? 적잖이 화난 상태일 텐데요. 명분도 있고요.”
“우린 정식으로 싸운 게 아니야. 그보다는 가벼운 신경전에 가깝지. 용병들이랑만 싸웠으니까.”
우린 리처드보다 빨리 북진해 푸아투 지역에 도착했다.
한창 내전이 벌어지는 전장.
우린 한창 마을을 약탈 중이던 젊은 헨리의 용병대들과 전투를 벌였다.
사실 전투라기보다 학살에 가까웠지만.
‘마을을 아예 불태우고 있었지.’
전쟁 중 조직적인 파괴는 흔했다.
적이 땅을 되찾더라도 복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게 하는 것.
난 그걸 방해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메시지가 됐겠지.
선을 너무 넘지도, 너무 소극적이지도 않았다.
“그냥 말로 해선 안 되는 것들도 있잖아.”
내가 말했다.
“이번 경우에 한해선 어느 정도 미친놈처럼 보일 필요가 있어.”
“미친놈이라니요, 공자님께서 말입니까?”
에이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공자님께선 제가 여태까지 본 사람 중에 제일 계획적이신 분입니다.”
“그럼 계획적인 광기라고 해두자고.”
나도 웃으며 답했다.
이런 상황에선 합리적으로 접근해선 안 됐다.
‘자, 여러분 모두 싸움을 멈추고 다시 친구가 되세요.’
유치원 선생처럼 나서봤자 비웃음이나 무시를 당할 뿐.
그나마 무시당하는 건 나은 편이겠지.
약자를 존중할 강자는 없었다.
약자를 존중하는 건 약자 본인뿐.
미친놈들 나라에선 나도 어느 정도 미치는 수밖에.
양아치들을 두들겨 패는 조폭 선생 같은 느낌이군.
중앙에 가까이 가자 양옆으로 도열한 기사들이 보였다.
그 뒤엔 세 사내가 서 있었다.
두 명은 키가 컸고, 나머지 한 명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젊은 헨리랑 제프리로군.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젊은 헨리가 다가왔다.
“이, 이곳에 온 걸 환영하오, 예루살렘의 보두앵 공자. 그, 그대를 이렇게 만날 수 있어 기쁩니다.”
“저 역시 잉글랜드의 국왕 폐하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리처드와 비슷한 키.
이십 대 중후반의 외모.
원래 말을 더듬었나?
사소한 특성이라 안 쓰여있었나 보군.
그의 옆엔 마찬가지로 키가 큰 기사가 서 있었다.
사슬 갑옷에 갈색 머리칼.
자신감 넘치는 표정.
난 그에게 손을 뻗었다.
“윌리엄 마셜 경이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 사람을 위한 호칭과 수식어만 몇 개가 있을까?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기사] [유럽 기사도의 상징] [사자심왕 리처드를 이긴 사나이]그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공자께서 저와 일전에 만나신 적 있으십니까?”
“그럴 리가요.”
난 태연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많이 봤지.
잉글랜드 진영으로 시작할 때 영입대상 1호.
사상 최강 무력에 높은 충성도까지.
삼국지로 따지면 여포.
그것도 충성심 높고 똑똑한 여포였다.
‘막장 중세에서 유니콘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하나.’
맨 처음 엘레오노르를 섬겼고 그 후에는 젊은 헨리.
젊은 헨리가 죽고 난 후엔 그 아버지인 헨리 2세.
헨리 2세가 죽고 나선 리처드를 섬겼고, 리처드가 죽은 후엔 존 왕을 섬겼다.
그리고 존 왕의 아들인 헨리 3세를 보좌해 섭정까지.
80년 가까이 잉글랜드 왕실을 섬겼으니 기사도의 상징이라 해도 무리는 아니지.
“잉글랜드 최고의 기사라고 하더군요. 토너먼트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고요.”
“제가 기억하는 한 아직 진 적은 없습니다.”
그가 미소 지었다.
“저도 공자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나같이 놀랍기만 하더군요.”
“보, 보두앵 공. 리처드는 이, 이미 만났을 거라 생각하오만.”
젊은 헨리가 말을 더듬으며 끼어들었다.
“그 느, 늑대 같은 녀석이 어떤 약속을 했든 간에. 내, 내가 더 큰 보상을 줄 수 있습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전 리처드 공과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습니다. 공작에게서 어떤 보수나 선물도 받지 않았고요.”
“그렇다면 친애하는 공자님.”
젊은 헨리 옆에 있던 사내가 나섰다.
작은 키에 굽은 코.
여우 같은 눈까지.
네가 제프리로군.
헨리 2세의 아들 중 가장 영악하단 평가를 받은 사나이.
“도대체 왜 공자의 군대가 우리 용병대를 공격한 겁니까?”
“브르타뉴의 제프리 공이시군요. 제가 이곳 푸아투에 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난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교황 성하와 그리스도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서죠. 저와 예루살렘의 군대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싸움을 막을 겁니다.”
내가 말했다.
“그것이 왕의 군대이든, 리처드 공작의 군대이든 말입니다. 주님께선 이곳에서의 모든 분쟁을 멈추라 하셨습니다.”
“공자에겐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제프리가 외쳤다.
진심으로 화난 듯한 어조.
“이곳은 내 형님과 아버지께서 다스리는 땅입니다. 예루살렘 왕족이 도대체 무슨 권한과 자격으로 끼어든다는 겁니까?”
“간단합니다.”
난 하늘을 가리켰다.
이제 미친놈이 나올 차례였다.
“주님께서 내리신 권한이지요. 전 하늘의 계시를 받아 콘스탄티노플을 지키고 키프로스를 정복했으며, 이탈리아에선 프리드리히의 군대를 무찔렀습니다.”
난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광신도만큼 두려운 존재가 어디 있을까.
그것도 교황의 승인을 받고 군대까지 잔뜩 끌고 온.
“그분께선 이곳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싸움을 멈추라 명하셨습니다.”
“….”
젊은 헨리는 입을 다문 채 날 바라봤다.
적잖이 놀란 것 같은데.
그와 반대로 제프리에게선 끓어오르는 분노가 느껴졌다.
난 손가락에 낀 금반지를 흔들어 보였다.
로마를 떠나기 전 교황에게 직접 받은 선물.
“교황 성하께선 저에게 이곳 일을 위임하시며 그 증거로 이 금반지를 맡기셨습니다. 제 뜻이 곧 주님의 뜻이자 교황 성하의 뜻입니다.”
난 세 사람을 바라봤다.
내가 원하는 건 간단했다.
제3의 추가 되는 것.
이런 억지력이 존재하는 한 젊은 왕 헨리도, 리처드도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어디 이 구역 미친놈이 누군지 한번 알아보자고.
* * *
잉글랜드
버킹엄셔 러저셸 성
노란 햇살이 좁은 창문을 타고 들어와 방을 비췄다.
방에 있는 건 작고 허름한 침대뿐.
두 인영이 그 위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보두앵이 이탈리아에서 아키텐까지 왔다고?”
“예, 왕비 마마. 제가 직접 아키텐에서 확인한 정보입니다.”
비단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속삭이듯 답했다.
“정확히 어떤 목적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헨리와 리처드의 싸움을 멈추러 온 거야.”
“예?”
“그게 아니면 예루살렘 왕족이 직접 이곳 유럽까지 올 이유가 없겠지.”
중년의 여인이 말했다.
엘레오노르 왕비.
아키텐 땅의 딸이자 아름답고 풍성한 넝쿨.
수많은 음유시인의 후원자이자 헨리 2세의 아내.
그녀는 몇 년 전 아들들의 반란을 도운 이후로 계속 감금 생활 중이었다.
“나도 젊은 시절 예루살렘에 간 적 있었지.”
“프랑스의 왕비이시던 때였죠.”
“예루살렘. 그곳의 모래와 땅은 정말 아름다웠지. 축복받은 땅이었어.”
엘레오노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곳은 매일같이 사라센들의 침략을 받았어. 그런데 이곳까지 군대를 끌고 오다니. 분명 원하는 게 있을 터.”
그녀가 계속해서 말했다.
“분명 내 아들들을 설득해 십자군 원정에 끼어 들이려는 거야.”
“그렇다면 좋은 소식은 아니군요. 보두앵 공자가 원하는 건 따로 있으니 말입니다.”
“아니다, 어쩌면 보두앵이 내가 이 감옥에서 나갈 열쇠가 될지도 모르겠지.”
엘레오노르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트루바두르(음유시인)들의 노래를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인지 모르겠구나.”
“왕비 마마께서 이런 허름한 곳에 계시는 모습을 보니 제 가슴이 슬픔으로 미어터질 것 같습니다.”
여인이 울먹이며 말했다.
엘레오노르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헨리(2세)는 날 이곳에 가둬두면서 정작 나와 이혼하진 못했지. 내게 아키텐을 돌려주기 싫었던 거야.”
“이만큼 부당하고 사악한 짓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단다. 자, 너에게 맡길 일이 하나 있다.”
엘레오노르는 하녀를 불러 종이와 펜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내가 말하는 대로 쓰거라.”
하녀는 엘레오노르가 불러준 내용을 서신 네 개에 옮겨 적었다.
엘레오노르가 젊은 여인에게 다가가 서신들을 건넸다.
“이 서신들을 내 아들들과 보두앵 공자에게 보내야 한다. 그래야 무의미한 전쟁을 멈출 수 있겠지.”
그녀가 말했다.
“왕국의 운명이 여기에 달려있다.”
* * *
Q : 헨리2세는 왜 아들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킨 엘레오노르 왕비와 이혼하지 않고 그녀를 감금했나요?
A : 엘레오노르와 이혼하게 되면 그녀의 막대한 상속지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황이 이혼을 승인하면 엘레오노르의 땅은 다시 그녀에게 귀속되고, 그녀가 죽고 나면 아들들에게 상속될 겁니다.
또한 더 이상 헨리는 엘레오노르의 주군도 아니므로 그녀를 감옥에 감금할 수 없으니 아키텐으로 보내야 하고, 아키텐에서 그녀는 다시 아들들, 봉신, 루이 왕과 함께 불온한 모의를 꾸밀 것입니다.
게다가 다시 재혼하여 헨리의 국경 근처에 적대적인 이웃을 만드는 것도 가능했겠죠.
따라서 헨리2세는 그녀와 이혼하는 대신 자유를 속박하고 감금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출처 –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앨리슨 위어)